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 최민희
제22대 국회에서 과방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디지털 시대의 위협이 더 이상 개인이나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와 직결된 문제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은 크고 작은 해킹 사고들을 연이어 경험했습니다. SK텔레콤 유심 정보 유출 사고와 쿠팡의 대규모 고객 정보 유출은 그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건들을 과방위에서 처리하며, ‘해킹 사고가 발생한 후 사후적 대응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렇다면 사고 자체를 막기 위한 사전적 예방을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 고민의 과정에서 접하게 된 것이 바로 양자 기술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해킹 대응의 관점에서 양자를 바라보았습니다. 양자에 대해 공부하며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양자컴퓨터가 지금 우리가 널리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 보안 체계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인터넷 뱅킹을 하고, 주식을 거래하고, 공공기관에 로그인할 때 사용되는 주요 암호체계가 양자 기술로써 무너진다면 과연 어떤 일이 발생할지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바로 양자 내성 암호(PQC)와 양자암호통신(QKD)이었습니다. 양자 내성 암호는 미래의 양자컴퓨터 공격에도 견딜 수 있는 새로운 암호체계이며, 양자암호통신은 양자의 물리적 특성을 이용해 도청 자체를 탐지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대한민국이 디지털 강국으로 남기 위해서 이러한 기술들을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계속해 나갈수록 양자는 단순한 보안 기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양자는 이른바 디지털 이후의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입니다. 양자컴퓨팅으로 신약 개발, 복잡한 물류 최적화 같은 문제를 기존 컴퓨터보다 압도적으로 빠르게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양자 센서로 극미세 자기장과 중력 변화를 감지해 반도체 공정, 우주항공, 자율주행, 국방 분야에 혁신을 가져올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양자는 산업과 안보, 과학기술의 판을 바꿀 국가 전략기술인 것입니다.
세계 각국이 양자 기술 확보 경쟁에 뛰어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은 국가 양자 이니셔티브(NQI)를 통해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으며, 중국은 국가 차원의 전략적 지원으로 양자통신과 양자컴퓨팅 분야에서 빠르게 기술력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 역시 양자 플래그십(Quantum Flagship)을 통해 대규모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흐름을 보며 확신했습니다. 앞으로의 기술 패권 경쟁은 AI와 양자가 융합되는 영역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양자 기술 연구개발과 산업 생태계 조성, 인력 양성, 국제 협력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이른바 ‘양자 이니셔티브 법'도 발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과방위원장 임기를 마무리하면서도 양자 기술만큼은 대한민국이 결코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국회와 정부, 산업계와 학계가 함께 힘을 모아 대한민국이 양자 기술 강국으로 나아가길 기대합니다. 또한 시니어 과학기술인 여러분께서 평생 축적해 온 경험과 통찰 역시 대한민국 양자 생태계 발전에 큰 자산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필자소개
19, 22대 국회의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노무현정부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총장
월간 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