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캔디에 도착하자마자 사무실 인근 Inn에서 두어 시간 눈을 붙인 후 바로 출근길에 나선다. 내일모레 있을 ‘고문방지의 날’에 계획된 전시행사와 매주 화요일마다 있는 무료법률 상담 때문에 캔디 인권사무소는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는 중이어서 직원들과의 첫 대면을 눈인사로 나눈다. 채식주의자의 등장으로 모두가 뜨악해하는 가운데 난다나 신부님 곁에서 직원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만장이 넘는 홍보 팜플렛을 접고, 홍차를 마시고, 스탭인 하샤니와 ‘김범과 문근영의 결별’에 대해 수다를 떨고, 법대졸업반 학생들을 위한 인권교육 트레이닝 수업을 참관하다보니 벌써 퇴근이다. 오늘부터 두 달 간 유숙할 수녀원을 천천히 찾아간다. 사무실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수녀원은 모든 면에서 중세시대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 없다. 여장을 풀고 냉수로 목욕을 한 뒤(온수 시설이 없다) 수녀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강도 높은 ‘호구조사’를 받고 난 뒤, 갑자기 고장 난 찬장 문을 어설프게 고쳐드리고 나니, 하루가 이미 가고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녀원 곁에 있는 호텔의 혼인식 탓에 이 늦은 시간에도 John Legend의 <All Of Me>가 수녀원 이곳저곳에 크게 울려 퍼지는 중이다.
삶이 있다. 그저 삶이 있을 뿐이다. 고문과 강간과 강제 실종사건들을 매일 대면하고 사는 이곳 캔디 인권사무소의 안과 밖, 그 빛과 어둠 사이로 깊이 파고드는 어찌할 수 없는 사람살이의 여여함을 느끼며 스리랑카에서의 첫날밤을 맞이한다.
그나저나, 대책 없이 쿵쾅대는 저 댄스 곡 들 좀 호텔에서 어찌 해 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