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게임=서형욱] 우치(폴란드)= "준우승에 그친 게 아니라, 세계 2위에 오른 것입니다."
3주간의 꿈 같은 여정이 아쉬움 속에 마무리됐다. 기적 같은 명승부를 펼치며 결승에 도달한 대한민국 U20 대표팀 선수들은, 결승전에서 김세윤이 얻고 이강인이 넣은 PK골을 지키지 못하고 역전패했다. 오랫동안 다듬은 롱패스 축구를 묵묵히 밀고 나간 우크라이나는, 방전된 체력에 느려진 우리 수비수들을 괴롭히며 차근차근 골을 쌓아나갔다. 결과는 1-3 역전패. 해 볼 만한 상대였다는 점에서 아쉬운 스코어지만, 굴절된 공이 번번이 상대 스트라이커에게 굴러간 '불운'은 우리 중 누구의 탓도 아니다. 우리 역시 이번 대회에서 약간의 '행운'에 덕을 입었던걸 상기하면, 우리와 같은 수의 경기를 치르고도 변함없이 견고하던 우크라이나의 경기력이 승리에 좀 더 가까웠을 뿐이다.
결승전 패배 아닌 월드컵 준우승으로 기억해야
패배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건 우리가 지금까지 거둔 성취를 마음껏 누리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결승전에서 진 것은 가슴 아프지만, 선수들이 거둔 성과는 이미 전인미답의 쾌거였다. 탄식보다 찬사가 더 잘 어울리는 성과를 앞에 두고 선수 개개인의 실수와 부진을 문제 삼는 것이야말로 더 안타까운 일 아닐까. 누구도 예상 못한 성과였고, 그걸 이뤄낸 것은 오롯이 '원 팀'을 이룬 U20대표팀 모두의 노력이었다.
대회 시작 전까지만해도 그들에게 관심이나 기대를 가진 이들은 별로 없었다. 조별리그 2차전 남아공전의 시청률이 지상파 3사 합쳐 1%도 되지 않았던 것은 상징적이다. 이처럼 '관심 밖'에서 조용히 출발한 U20 월드컵은, 결승전에 이르러 3사 도합 시청률이 30%를 돌파하는 폭발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위업'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이 대단한 성과 앞에서, 아직 어린 그들이 미처 갖추지 못한 것들을 꼬집어 부족하다 채근하는건 너무 잔혹하다. 욕심은 발전의 기반이 되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은 모두에게 해가 된다. 팀 스포츠인 축구에서 어느 한 두 명이 성공과 실패에 절대적 지분을 갖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승까지 오른 팀의 일원을 '패배자'로 몰아세우기 보다는 세계 2위의 성적을 낸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주길 바라는건 그래서다.
결승전의 패배는 누구 한 두 명의 실수가 아닌 팀과 팀의 정정당당한 승부의 결과였다. 예선부터 유지해 온 패턴플레이를 반복한 우크라이나의 공격에 무너진건 팀 전체이지 어느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바뀐 전술도, 그라운드 위에서 이전처럼 민완하게 뛰지 못한 선수들도, 패배의 아쉬움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 요소들이다. 그 안에서 원흉을 찾아 욕받이로 삼기 보다는, 더 나은 실력을 펼친 상대에게 박수를 보내는 편이 좀 더 성숙한 마무리 아닐까.
희생양 아닌 희망 찾을 때
대회 기간 동안 U20대표팀을 향해 가해진 인터넷 비난의 최대 지분은 아마 김정민의 몫일 것이다. 비판론자들에게 '6번 MF' 김정민은 가장 넓은 과녁이었다. 이들은 김정민이 '산책하는양' 뛰지 않았고, 잔 실수도 많은데다 스피드까지 없어 (U20은 물론 각급) 대표팀에 자격 미달인 선수라고 말한다. 아시안게임부터 A대표팀, U20대표팀으로 이어지는 그의 발탁을 이해할 수 없다며 그 근거로 경기 중의 여러 모습들을 지적한다.
하지만 화면에 비친 장면들에 근거해 선수를 평가하는 행위는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축구는 흐름의 스포츠이고, 화면에 잡힌 그 순간의 동작만을 분절해 도마 위에 올리는건 무모하다. 전술적으로 자신에게 부여된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거나, 공이 아닌 선수를 따라 움직이는 과정이었을 수 있다. 잘릴 위험이 있더라도 성공했을때 더 큰 찬스로 연결될 수 있는 모험적 패스였다면 무작정 잘못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완벽한 플레이를 펼친 것이 아닌만큼 비판의 소지가 없을 수 없겠으나, 결승까지 오르는 데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았거나 해를 끼쳤다고 비난하는건 도가 지나치는 생각이다.
결승전에 국한하여 보면, 김정민은 팀 전술의 큰 부담을 양 어깨에 짊어진 선발 멤버였다. 3백 앞에 홀로 투입되었고, 팀은 다소 공격적인 전술을 내세웠다. 이에 따라, 김정민은 상대 역습시 더 많은 상대 선수들의 공략을 버텨내야 했다. 수비가 강한 우크라이나에 균열을 내기 위해 김정민의 공격 전환 능력을 믿었던 정정용 감독의 전술적 선택은, 김정민의 역량을 믿은 것이면서 한편으론 이번 대회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던 그에게 아주 큰 부담을 건넨 것이기도 했다. 우리가 선제골을 넣은 뒤 라인을 내리자 김정민은 더욱 고립됐다. 압박 지원이 저조한 가운데 벌판에 노출된 김정민에게는 매우 힘든 시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난의 폭풍 속에서 그가 짊어져야 했던 부담은 간과되었다. 안타까운 풍경이다.
결승전 패배의 책임을 김정민의 것으로 돌리는건 그래서 더 잔인한 일이다. 안정환 해설위원은 “(이런 성과를 낸 팀의) 그 누구도 욕 먹어선 안된다. 과거 누구 못지 않게 비난을 받아본 입장에서, 김정민에게 고개 숙이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며 안타까워 했다. 안 위원은 김정민이 중원에 홀로 배치된 전술로 인해 위험한 상황에 자주 노출된 것은 김정민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안 위원은 결승전 중계 도중 대한민국이 중원에서 우크라이나에 밀리자 “중앙에서 숫자가 부족하다. 김정민이 혼자 대응하는건 어렵다. 주위 선수들이 수비를 더 도와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김정민을 희생양으로 삼는게 아니라, 이 대회에서 발견한 희망을 발판 삼아 더 나은 축구의 미래를 꿈꾸는 것이 아닐까.
남자 축구가 세계 2위의 성적을 내는걸 생전에 목격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던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외면 속에 차분히 대회를 준비했고 FIFA 대회 결승 진출이라는 믿지 못할 성과를 거뒀다. 결승에서 참패를 했더라도 이 팀에 돌을 던지거나, 개별 선수 누구에게 비난의 화살을 겨누는건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결승에서 패배한 팀이 아니라, 세계 2위의 자리에 오른 팀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그것이, 3주 남짓 우리에게 감동과 행복을 선사한 선수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물일지 모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출처 - 서형욱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