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일 자정.. 모든 짐을 정리했다. 정리된 짐을 룸 밖으로 내놓는 작업이 마무리다. 24:30분이 되어서 코스타리카 호의 마지막 밤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12.13(토) 05:00분, 잠에서 깨어났다. 어느덧 7박8일의 여정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행복했던 시간, 수많은 사람들과의 마주침, 모든 여정을 함께 했던, 남현우 변호사, 노경수 작가, 김텃골 박사, 강뜰에 약사, 고귀숙 아내, 우리 일행에 많이 동참한 이형미씨 등.. 모두 고마움으로 깊이 간직될 우정이었다.
실질적으로 추진한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개스트로 참여한 유흥준 교수, 조용헌 건국대 석좌 교수, 노동일 암센타 원장, 류시춘 EBS 이사장, 이상봉 디자이너, 은희경 소설가 등등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간한 추억과 인상을 남겼던 파울로 성악가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07:45분부터 9층 비엔나 홀에서 하선 절차가 진행되기에 서둘러야 한다. 06:00분에 아침 조식을 하기로 했다. 일주여를 애용하며 즐겼던 레스토랑과의 추억도 이것으로 끝이다. 코스타 네오로만티카 호와도 작별이다. 아침조식을 마치고 룸에 돌아와 그 동안 정들었던 우리의 편안한 잠자리를 만들어 주었던 룸과도 이별이다.
하선이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감사함 뿐이다. 부산항에 도착한 아침 시간... 또 다른 감흥으로 부산이 다가왔다. 부산이 이렇게 아름다운 항구라니, 믿기지 않을 정도롤 아름다웠다. 여행에서 돌아온, 잠시 이방인에서 고향으로 돌아와서일까? 부산항에서 바라본 부산, 그 아름다움이 짜릿한 감흥을 일으킨다.
부산역에서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원래는 오후 늦은 시각에 예매를 한 기차표를 앞당기는 것이다. 부산 여행을 즐기고 가자는 취지였지만, 아산역에서 다시 서산과 태안까지 가야하기에 앞당기기로 했다. 가까스로 13:30분 기차표를 구할 수 있었다. 그 시간까지 부산 여행이 시작된다. 우선 짐 보관소에서 짐을 보관하고 가벼운 차림으로 나섰다.
부산의 안내는 강뜰에 약사님이다. 부산이 고향인 부산댁이니까. 특별히 멀리 갈 것 없이 자갈치 시장과 국제 시장 일대를 거닐다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자갈치 시장은 부산의 역사다. 그곳엔 수많은 사연들이 살아 숨쉬고 있는 곳이다. 억척스러운 삶과, 한과, 시름을 달래줄 안식처였다. 고달펐던 그 시절을 고스란히 담고 현재는 그 옛것을 추억하며 현재와 미래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곳이다. 치열한 삶과 애환을 달래는 삶이 뒤섞이면서 자갈치 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이곳에서 친구를 만나고, 직장 동료를 만나고, 이웃 우정들이 만나 소주 한 잔에 삶을 싣고 떠나보내는 그런 장소였다. 기쁠 때도, 서러울 때나 괴로울 때도 찾아가는 명소였다. 이젠 그런 정감은 사라졌다. 현대화의 물결 속에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래도, 옛날의 추억을 되살려 보려 찾는이들이 아직도 많다. 우리도 그랬다.
세련되게 건축된 수산물 센타를 지나면서 아직도 포장마차집이 줄을이어 존재한다. 우리도 벌써 옛사람인지 그런 곳이 정겹다. 구곳에선 사람냄새가 난다. 고향 냄새가 난다. 그런 향수에 빠져들며 더 깊숙히 들어간다.
먹을거리들이 즐비하다. 값도 싸다. 그렇게 한 동안을 가다 멈췄다. 먹음직스러운 선지국에 싱싱한 야채와 깔끔한 반찬들이 우리를 머물게 했다. 커다란 통에서 우러나오는 선지국물과 신선한 배추 속잎에 아삭고추가 우리의 입맛을 돗구었다. 한 잔의 소주가 곁들여졌다. 여기에 우리의 마음을 속속들이 파악하며 서비를 하는 주인 아주머니의 상냥함이 어울려지며 한 판의 굿이 열렸다. 이렇게 깊이 우러난 선지국을 먹어보긴 처음이다. 부산을 그렇게 많이 다녔는데도 이곳은 그냥 스쳐 지나갔다.
몇 잔의 술잔이 오갔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살아온 흔적과 살아갈 흔적에 대한 깊은 애정이다. 지나간 시간과 현재를 아우르며 찬사와 추억을 더듬는 행위다. 우리는 지금 그 지점에 와있다. 그 행복의 지점에서 따뜻하고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고 있다. '순간이여 영원하라'는 파우스트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새참이다. 아침을 06:00분에 했으니 꽤, 시간도 지나 새참이다. 점심은 먹음직스러운 생선구이로 하기로 해서 간단히 소주 한잔 곁들인다는 것이 이렇게 푹빠져버렸다.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다시 걷기 시작했다. 국제시장 쪽으로 거닐면서 소화를 재촉했다. 삶은 여행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상의 여행이 시작된다. 엄마품에 안겨 여행은 시작된다. 가까운 곳으로부터 멀리..그렇게 일생을 살다 영원한 여행속으로 떠나는 것이다. 어떤 여행을 할 것인가는 각자의 운명이다. 다 다르다. 짦은 여행에서부터 긴 여행까지, 가까운 여행에서 먼 여행까지,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까지 다양한 인생의 여행길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떤 여행을 하다 갈까? 이왕이면 재미 있고 흥미진진한 여행을 하리라. 그 장소가 어디든 아름답지 않은 곳은 없다. 그곳에서 보고 만나고 느끼며 아름다움을 창출해 내리라. 사람냄새 맡으며 자연과 벗하고, 웅장하고 화려한 문화에 화들짝 놀라기도 하리라. 고통받고, 찌들리고, 가난에 허덕이는 그 장소에서 연민과 슬픔도 함께 하리라.
여행은 다양함 속으로 빠져드는 행위다. 그 다양함을 인정하는 것이 여행이다. 그 다양함 속에서 나를 반추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정립하는 행위, 그래서 따뜻하고 다함께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깨달음을 얻는 행위가 여행이다. 그것이 상실된 여행은 허무하다. 그렇게 따지다 보면 우리가 해야할 일, 세상에 태어나서 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각자의 몫이다.
그렇게 걷고 또 걸어 마침내 선지국을 맛있게 먹었던 주인 아주머니가 소개해준 생선구이 집에 도착했다. 아직도 덜 소화가 되었지만 생선구이 점싱을 꼭 먹어야 된다는 모두의 바람을 저버릴 수는 없다. 이제, 여행에서의 마지막 식사자리다. 아쉬움과 행복감이 어우러지는 순간이다. 듬뿍들은 정... 헤어질 때는 그놈의 정때문에 마음이 짠하다. 그러나 인생은 늘 이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순리고, 그런 순간들을 숱하게 맞아왔던 나이들이 아닌가? 건강하면 또 만나게 되어 있다.
시차를 두고 열차를 타고 천안, 아산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남현우 변호사와 우리 부부가 30분 먼저 출발이다. 김텃골 부부, 노경수 작가는 그 다음..
천안 아산 역에 내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의 향을 즐기며 기다린다. 어느덧 비워두었던 집이 그리워진다. 설렌다. 그렇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돌아오기 위해서 떠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