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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의 한국수필
-21세기는 수필 르네상스 시대
윤 재 천 - 수필가
1. 들어가기
일본작가 야네기 무네요시는 [공예문화]에서 ‘문화는 항상 움직인다’고 했다.
21세기-새천년의 문턱을 들어서면서부터 퓨전이란 단어도 시대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대기업의 독과점 전략에 대항하기 위해 힘이 미치지 못하는 몇 개의 기업이 생존전략의 일환으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병합하는 것을 퓨전이라고 하더니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은 세계의 곳곳 어느 분야에서든 유행어처럼 번져 마치 이 시대의 현실과 사회상을 대변하는 용어처럼 통용되고 있다.
원래 이 단어는 라틴어의 ‘Fuse - 섞다’의 명사형으로 융합, 합병 또는 제휴함으로 해석할 수 있다. 퓨전은 서로 다른 생각이나 무리의 성질 - 상충되던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의 개체들이 고유성을 유지하면서 다른 개체와 융합해 보다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의 새로운 것으로 무장하는 것을 말하며, 이에 대한 총체적 평가는 아직 진행 중인 만큼 낙관이나 비관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일반화된 것은 무엇보다도 교통수단의 획기적 발전으로 인해 동서는 물론 남북 사이에 교류가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진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논의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퓨전의 흐름이나 그에 대한 장단점의 규명이 아니고, 시대현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우리가 이를 통해 어떤 발전책을 설정할 것인가 하는 시점에서, 이 문제를 수필의 논제로 삼아 살펴보기로 한다.
2. 의식이 개방된 수필
이어령 교수는 “21세기는 수필의 시대”라고 말한 바 있다. 시대변화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한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작가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수필은 대중을 계도할 수 있을 정도의 주관이 없다면, 그 글은 혼이 없는 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 작가는 어느 하나의 색깔에 고정되어 있기보다는 자기 스펙트럼을 구축해 주제와 상황에 따라 적절한 논리와 정취를 펴는 융통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서의 주제와 상황에 따라 적절한 논리와 정취를 펴는 융통성은 독자의 구미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태도와 다르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개성과 빛깔 없는 무색무취의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수필은 경험에 따른 후일담이나 간직하고 있던 것의 고백 정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교시적(敎示的)인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지 않다.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나 수필이 사람들에게 힘을 충전시켜주는 기능을 다하도록 자기발전에 최선을 다하며 정진해야만 한다. 그래야만이 수필이 문학의 한 장르로 확고부동한 자리를 점유하고 다양한 감동을 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는 무수한 벽이 존재한다. 그 별을 허물지 않으면 벽 안에 갇혀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을 수도 없다. 자연히 쇄국적인 수필을 낳을 수밖에 없다. 독자가 글을 신뢰하고 그를 통해 마음을 열게 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먼저 의식의 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가 그들을 개방된 공간으로 안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감금되어 시대에 뒤떨어진 작품을 쓸 수밖에 없다.
수필의 명예를 지키고 수필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수필을 쓰는 사람들의 몫이다.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글만 고집해서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시대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수필
퓨전과 함께 현대인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는 일이 ‘웰빙’이다. 풍요의 시대 속에서는 무엇보다도 건강하고 행복해야 행복을 구가할 수 있기 때문에 수필도 퓨전의 의미를 지닌 뮤지컬수필, 메타수필, 접목수필, 마당수필, 테마수필 같은 작품이 필요하다.
퓨전은 넓게는 만남을 의미한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뿐만 아니라 수필과 다른 장르와의 만남도 퓨전이다. 음식문화에서도 퓨전시대를 맞아 이전에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음식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퓨전의 요소는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유행이나 시대 분위기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퓨전문화는 새로움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이를 탐구하는 도전의식과 상상한 바를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완성된다.
21세기를 대변하는 시대현상인 퓨전이 주도적으로 발전하려면 단순히 섞여 돌아가는 유행 같은 현상이 아니라 시너지효과를 창출해 새로운 문화를 이룩해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닫힌 사고에서 벗어나 전혀 상관성이 없는 장르와도 과감하게 결합을 시도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탈장르를 하지 않으면 새로운 작품의 창출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범위는 상상과는 거리가 멀어 문학, 회화, 조각, 사진, 영화, 음악, 설치미술 같은 장르를 초월한다. 이 사실은 동서양의 음식을 뒤섞은 퓨전요리의 인기와, 정장 같은 캐주얼과 외출복 같은 속옷을 그 예로 제시할 수 있다. 그 밖에도 다목적의 기능을 가진 가전제품이 출시되고 있는 것이나, 화장품에서도 여러 가지 재료로 융합한 기능성 상품이 만들어져 팔리고 있는데, 이것도 퓨전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모든 분야에서 서로 다른 성격의 재료가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 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4. 금기도 정석도 없는 세계를 넘나드는 수필
논리적이지만 그 안에 상상력이 깔려있는 수필이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만큼, 이 시대 작가는 이런 수필을 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수필은 시의 경우와는 달리 상대를 설득해아 하는 만큼 논리를 무시할 수 없고, 예술성 고취를 위해서는 허구-예술적 공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것은 술을 제조하기 위해서 누룩과 같은 발효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논리는 개성의 무덤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것은 과학적이고 원칙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수필은 원칙과 비원칙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 최대의 감동을 창출할 수 있는 만큼 상상력의 도입은 필요불가결한 일이다. 따라서 정형만을 주장하면 수필이 설 땅이 좁아지므로 자기 특성에 맞는 토양을 만들어 수필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고정된 틀과 형식을 강요하는 것은 글을 매장시키는 일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참신한 글을 쓰기 위해선 상상력과 함께 작법의 기교도 작가 개개인의 몸짓 그 자체이어야 한다. 그렇게 평범한 소재라고 해도 작가의 능력에 따라 경이롭고 신선한 감동을 전해 줄 수 있는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것은 기존의 것을 부정하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에 새로운 것을 접목(융합)시킴으로써 작품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날로그에 디지털이라는 옷을 입혀 디지로그 문화를 창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5. 융합을 통한 개성의 창출
요즘 사회현상은 그동안의 해체 추세에서 돌변해 융합으로 바꿔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 움직임이 만만치 않다. 융합주의가 세를 형성해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대학에서의 학과가 계열단위로의 병합이다. 문학과 역사, 철학과가 인문 계열로 통합된 것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이런 식으로 합쳐지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동안 순수니 비순수니 하던 선별의식도 점차 꼬리를 감추고 모두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지나치게 평가하던 것들에 대한 재평가운동과 함께 하찮게 여기던 것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움직임이 퓨전이라는 이름아래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의 고정된 관념에 대한 반성이며,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가져온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이 예술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종합예술인 연극과 영화의 경우다. 연극의 경우엔 막과 막 사이에 코미디언이나 가수가 출연해 관객의 긴장감을 완화해 줄 목적으로 만담이나 노래를 제공하는 것만 아니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고, 영화관에서도 관객을 더 모을 목적으로 상영되는 영화의 감독이나 배우를 초대해 이벤트를 갖기도 한다.
수필의 경우도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사실 전달에만 급급하지 말고 나름의 이벤트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읽는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독자로 세(勢)를 형성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진부하다는 평을 면치 못해 외면 받게 되므로,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장르 간의 접목이 수반되어야 한다. 현대는 이처럼 장르 고유의 벽이 무너져 ‘시 같은 수필’이나 ‘수필 같은 소설’이 유행하고 있다. 일부 소설가는 사소설처럼 자기 이야기를 써 놓고도 수필이 아닌 소설로 분류하는 것을 보면, 앞에 언급한 21세기는 퓨전 에세이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 말은 전통과 새로움의 대립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며 수필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므로 수필문학의 르네상스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런 현상은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다. 지금은 모든 것이 개체와 개체가 충돌해 하나가 득세하거나 붕괴하는 것이 아닌 통합하여 새로운 개체로 존립하는 시대로 바뀌어가고 있다. 상조하지 않으면 와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림과 수필과의 접목인 수화 에세이를 비롯하여 그림과 시가 있는 수필이 이러한 예다. 이제는 더 이상 획일화된 고정관념의 시대가 아니다. 소통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이고 이 뿌리는 퓨전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만화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내용과 합치되는 그림이 내용 전달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를 찾아 즐기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성인들까지 만화에 빠져들 이유가 없다.
작가는 수필 발전을 위해 작품 창작과 함께 부수적인 효과를 낳을 자료를 제공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독자에 대한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예술작품을 소재로 한 작품이거나 기행기처럼 특정 지역이나 문화 유적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는 이런 서비스가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톨스토이는 작품을 통해 오직 흥미 있는 이야기만 들려준 것이 아니라 동토의 땅에서나마 삶의 중요한 의의를 전달하고, 사람답게 사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를 제시했던 작가이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어느 시대나 이런 인물이 있어야 그 시대는 존립의 의의와 가치를 확고하게 유지하며 발전할 수 있다. 수필은 다른 장르와 달리 한 인간의 호흡과 체취라고 할 수 있는 삶의 기록이 독자들의 마음속에 각인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 길은 이를 명찰하고 최선을 다하는 자의 눈에만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6. 보다 진지하면서도 친근한 수필의 개척
수필은 다른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설득력이 강한 만큼 작가가 자신의 의도를 적극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하면 그 의도를 관철할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의 생활이 다양화되고 변화의 속도가 빨라져 갈수록 불안한 나머지 무엇인가에 몰입하고 싶어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지만 그 중에는 안정을 찾지 못해 좌충우돌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이 사실은 날이 갈수록 종교가 건재하고 신도의 수가 급격히 팽창하고 있는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남을 감동시킬 수 있는 작품을 쓰면서 독자의 의식수준보다 앞서 길을 개척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한다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줄 작품이 탄생되어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시대의 선각자로서 숭앙을 받을 수 있는 예가 작가다. 그 방법의 일환으로 작품의 내용과 합치되는 음악과 그림으로 분위기를 연출해 독자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길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 이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자연스러움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차원 높은 메시지는 자연스러움 속에서 배어나오기 때문이다. 과거의 일을 추억하는 경우엔 작품과 상관된 풍물이나 그때의 거리 풍경을 반추할 수 있는 그림이나 사진을 함께 게재하는 것도 효과적이지만 작품집에 직접 연관되지 않은 그림이나 부수적인 것을 싣게 되면 오히려 조화를 해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의미 있는 수필이 되려면 그때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음악을 삽입시키는 경우엔 더 이를 것이 없다. 퓨전은 이처럼 엄숙성과 소탈함, 고전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을 접목하는 데 그 의미가 있으며, 전통적으로 유지되어온 장르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함으로써 하나의 새로운 장르를 구축하는데 그 목표가 있다. 이를 현 시대의 고유성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은 현대인이 그동안 얼마만큼 변화를 갈망하고 있었던가를 잘 보여주는 예로 볼 수 있다.
이것은 관념의 성에 도전 해 보다 실용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려는 현대인의 의지가 얼마나 강열한가를 입증해 보이는 예로도 해석할 수 있다.
원래 퓨전은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불기 시작한 일종의 전략적 전술이고 대책이었다. 이 바람은 일시적인 사회현상이나 잠시 불다 잠잠해지는 추세 정도에 그치지 않고 여러 개체와 집단의 의식에서 물결처럼 번져 학문과 예술 분야에도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만들어내며 큰 파문을 형성했던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의식 속에 이를 향유하려는 요소가 자리를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세계적 현상은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 조직적인 틀을 형성하고 있는 기구의 구성원만 아니라 실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 외에 문학이나 음악, 미술 같은 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한 비조직적 집합체에도 영향을 미쳐 새로운 감흥과 충동을 경험케 하고 동영상 매체까지 가세함으로써 그 결과는 단순한 정취나 음률, 시각적 효과를 더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침내 퓨전문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에 이르렀다.
무엇이 중심이고 어느 것이 이를 에워싸고 있는 보조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의 현실과 현상을 연출케 됐다.
과거의 통례와 다르다고 모드가 ‘현대적’이고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없지만, 박진감을 잃고 널브러져 있거나 첨예화된 갈등으로 반목상태에 있던 것이 대립이 아닌 화합으로 관계를 바꿈으로 새로운 활기를 되찾고 높은 차원에서 새로운 가치를 구축하려는 것은 일단 그 취지만은 긍정적인 측면을 지닌 것으로 평가해도 좋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을 수밖에 없다는 격언처럼 정체되어 있는 것은 시대적 추세에 떠밀려 좌초되어 실종하게 된다.
전 시대에 고수되던 전통이 후세 사람들에 의해 인습으로 규정되어 마침내는 좌초되어 실종될 수 있다는 것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자연 소멸되는 경우를 이르는 것으로, 이런 식으로 없어진 것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 퓨전은 이런 실상을 해결하는 대안으로도 볼 수 있다. ‘무분별한 뒤섞임’이 이런 위기를 극복하는 최선의 대안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뒤섞임은 정체불명의 존재를 양산해 새로운 문제점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필의 경우는 이를 어떻게 수용해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가장 중대한 관심이므로 이를 몇 개의 항목으로 나누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수필을 쓰려고만 하지 말고 그 자체를 디자인해야 한다. 글로벌 시대에 맞는 수필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식상하여 독자에게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
② 글로벌 시대에는 지리적 이격거리는 무의미하다. 교통을 비롯해 혁명적 발달로 인해 세계는 그 모두를 극복하기 때문이다.
③ 남의 이론은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 또는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낱
치기(稚氣)에 불과하다. 개방적 사고로 가치 있는 부분은 수용할 수 있는 데까지 수용해야 한다.
④ 새로운 것은 파괴(해체)에서 나온다. 인위적인 것이 아닌 자연스러움으로 해체를 통해 창조의 불을 붙여야 한다.
⑤ 허구와 사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상상력을 통해 탄생하는 수필을 자신의 자화상으로 여기는 내적 심층세계까지 구축해야 한다.
이상의 내용을 명찰하고 실천하게 되면, 급변하는 문화에 발맞추어 퓨전수필이라는 개념으로 수필의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7. 나가기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그 명맥을 유지해 왔다. 때로는 해체되고 이합집산(離合集散)을 반복하면서 성장하기도 하고 정지되거나 뒤로 물러가 앉기도 했다.
글로벌시대의 문화는 모든 것이 융합되는 시대로 융합의 성패에 따라 인류의 미래는 결정된다. 서로 성분이 다른 것과 접목되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비율을 잘 조정해 조화를 이루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퓨전은 단순하게 합치는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러다보면 뒤죽박죽되어 시도하지 않음만 못할 수 있다. 수필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조화되지 않은 작품은 물에 뜬 기름처럼 치부를 드러내는 결과가 되고 만다.
고답적인 글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감수성과 기법으로 퓨전화 된 작품을 쓰며 수필의 정체성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긍정과 부정이 충돌하는 가운데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시대를 외면한 글은 음풍농월(吟風弄月)이거나 거꾸로 가는 시계처럼 궤도를 잃은 놀이공원의 유희기구와 같다. 이러한 시점에서 시대를 외면한 글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되고, 예전에 옳다고 생각한 것이 지금은 더 이상 생명의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다.
세상을 읽는 눈은 열린 사고에서 나온다. 수필의 주제는 제한되지 않고 그 무엇이나 될 수 있으며, 소재 또한 다양해야 한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지만 여러 장르와 적절하게 배합될 때 우리가 갈망하는 퓨전수필이 발전하게 된다.
무엇이든 좋은 것은 획일화된 것으로 한정지을 수는 없다. 우리는 새로움 그 자체를 찾기 위해 시행착오를 감내하면서 끊임없이 도전해야만 수필문학의 위상이 높아지게 된다. 문학의 대 홍수 속에서 수필이 자생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대를 따라가는 수필, 시대를 앞서가는 수필만이 시대의 르네상스를 앞당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