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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어루만지며 |
본 문 | 왕상 19:1~8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네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사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를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
일 시 | 2025 03 02 주일예배 |
저는 큰 일을 이루신 목사님들이 나중에 좋지 못한 소문을 남길 때 “왜 저러지?” 그랬습니다. 처음이 좋으면 끝까지 좋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분은 찾기 어렵고 잘 되면 꼭 부패하거나 세상 권세나 명예를 추구하는 분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인간적인 약점을 보인 것이지요. 지금은 많이 이해합니다.
오늘 본문의 엘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큰 일,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 총 850명을 보기 좋게 멸시켜 버리고, 하나님만이 유일신이요 참 신이심을 알렸으니 얼마나 큰 일입니까?
이런 큰 일을 이루어놓고 한낱 이단 여인이 말 한마디에 “죽고 싶다”라고 외치는 것이 다 그린 역작에 황칠을 한 것만 같았습니다. 늘 보면서 좀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 정도라면 그런 허풍의 말에 오히려 더 담대한 모습을 보였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가만 제 모습을 생각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제가 많이 우울하거든요. 뭐 크게 저를 어렵게 하는 것도 없는데도 ‘이리 살아야 하나?’ 하는 그런 기분 말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까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우울할 수 없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우울증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엘리야처럼 말입니다. 엘리야는 차라리 죽기를 원합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며칠 전 인터넷 뉴스를 통해 보니 통계청이 잠정발표한 작년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14,439명으로 13년 만에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하루에 40명 가까운 사람이 자살을 합니다. OECD 국가 가운데 만년 꼴지입니다. 그리고 자살한 사람의 70%에서 80%가 모두 다 우울증에 걸려서 자살을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정도는 다르나 우울증을 경험하기 때문에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감기쯤이야 하고 가벼운 질환으로 여기겠지만, 감기가 모든 병의 원인이 되듯이 마음의 감기인 우울도 그러합니다. 그냥 두면 안 됩니다.
심각한 우울증은 생활을 불안하게 하고 가정을 파괴하며 죽음으로까지 몰아갑니다. 오늘은 엘리야의 우울증 극복사례를 통하여 우리도 자칫 빠질 수 있는 우울증을 예방, 극복하고자 합니다.
어루만져라
예수 믿는 사람도 우울증에 걸립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자살합니다. ‘엘리야와 같이 위대한 종이 어찌 이세벨의 말 한마디에 죽여달라고 할까?’ 하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엘리야도 우울증에 걸려 죽여 달라고 할 수 있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은 한없이 약한 존재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이 우울해지고 낙심하여 죽고 싶다고 생각할 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절대로 손가락질하고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답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죽고 싶어 하는 엘리야를 도와주시려고 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본문 15절에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고 말씀합니다.
완전히 탈진하고 자포자기한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 드러누워서 죽기를 기다리며 잠이 들었는데 천사가 와서 어루만졌다고 했습니다. 천사가 와서 엘리야를 혼내거나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정신차려! 네가 어찌 그럴 수가 있어?”라고 고함을 쳤다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루만졌다고 했습니다. 어루만진다는 것은 쓰다듬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어루만져 주었다는 것은 토닥토닥하여 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엘리야야 일어나서 먹고 마셔라” 보니까 구운 떡과 물 한 병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필요한 것을 몇 번이고 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스트레스를 받아 고통당하는 사람보고 꾸짖고 쥐어박고 욕하면 안됩니다. 욥의 친구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온갖 옳다는 말로 욥을 비난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어루만져 주어야 합니다.
나의 남편이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고 내 아내가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고 내 자녀가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또 이웃 형제들이 우울증에 걸릴 때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마음에 휴식이 없고 우울함이 안개같이 스물스물 마음을 덮어올 때 누군가 천사가 되어 줘야 합니다. 남편이 천사가 되어 주든지, 아내가 천사가 되어 주든지, 부모가 천사가 되어 주든지, 고목사님이나 권사님이든지 누군가가 천사의 마음이 되어 줘야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사람을 세우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직접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서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내야 합니다.
선생은 필요 없습니다. 지적질도 필요 없습니다. 교훈도 필요 없습니다. 완전히 스트레스에 걸려서 처참히 무너진 사람에게는 천사의 어루만짐이 필요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천사가 됩시다.
자아가 자기를 지탱하지 못해서 무너지는 것을 보고 꾸짖어봤자 소용없습니다. 밑에 가서 받쳐 주고 도와주고 어루만져 줄 사람이 필요하지, 교훈하고 꾸짖고 욕하는 사람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모른 척해도 안 됩니다. 혼자 두어서도 안 됩니다. 절대로 못 본 체해서는 안 됩니다. 신명기 22장 1~4절까지는 형제의 어려움을 못 본 체하지말라는 말씀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천사도 엘리야 같은 위대한 종이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에 한마디 교훈도 하지 않고 꾸짖지 않고 어루만져 준 것입니다. 떡과 물을 먹이면서 어루만져 준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 그렇게 하고 멈추면 안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한 번 가서 엘리야가 다시 드러누워 버리니 또 가서 위로하고 어루만져 주고 밥을 먹이고 마실 것을 주지 않습니까? 주위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몇 번이고 찾아가고 관심을 보이고 어루만져 주기 바랍니다.
2. 쉬게 하라
그리고 우울할 때면 그 우울이 어디서 왔는지 잘 살피고 스트레스나 몸을 혹사해서 온 것이라면 휴식이 필요합니다. 이번에 제가 상이 나서 아침 5시에 집을 나서서 그날 자정 무렵에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지난 주일 찬송을 인도하는데 무척 어려웠습니다. 은혜롭게 찬양 인도를 하려는데 목소리가 따라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고 집에 왔는데 갑자기 우울해지는 것입니다. 이게 뭐야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거야? 이렇게 살아서 지금 어떤 모습인데? 미래가 있어?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나는 것입니다. 저는 안마의자에 누워 한숨 깊이 잤습니다. 자고 나니 훨씬 좋아졌습니다. 쉬어야 합니다.
출애굽기 20장 11절에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신학교 동기인 두 목사님이 각자 교회를 개척하여 섬기다가 시간을 내어 기도원에 가서 충전을 하고자 했습니다. 한 분은 가자마자 기도굴에 들어가서 돌아가는 날까지 기도와 찬송을 계속했습니다. 또 한 분은 충분히 자고 쉬면서 기도하면 충전하였습니다. 기도원에 내려와서 누가 더 사역을 잘하였을까요?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육체적 휴식이 꼭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사십 주 사십 야를 엘리야더러 가게 한 것도 육체적 쉼을 가지게 한 것입니다. 걷는 동안 생각도 정리하고 새 힘을 얻는 것입니다.
요즘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이나 큰 일을 이룬 후 지친 사람들이 가는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산티아고 길을 몇 달이고 순례합니다. 그리고 건강하게 되어 돌아옵니다. 현실적으로 가기 어렵다면 유튜브 같은 매체를 통하여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산책하는 것이나 운동하는 것은 우리 몸에 굉장히 좋습니다. 우리가 걸으면 뇌세포가 활성화되고 근세포가 줄어들지 않고 혈액순환이 좋아집니다. 덩달아 마음이 상쾌해지고 기뻐집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몸무게가 70킬로그램을 넘어서자, 당뇨 전 단계 등과 같은 성인병이 나타나고 특별히 심장에서 이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심장이 벌렁대어 한동안 온몸이 파김치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한라병원에 가서 심장 MRI를 찍고 검사를 한 결과 심장을 움직이게 전기자극을 일으키는 곳이 여러 곳이 생겨나서 심장을 마구 뛰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주에는 의료시설이 없고 서울에 가서 시술을 받아야 하는데 먼저 약물로 치료를 해보자고 했습니다.
상당 기간 약을 먹어 보았지만, 차도가 없어 의사와 상의하고 제 나름대로 기도와 함께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한 2년 계속 걸으니까, 몸무게도 줄고 몸의 여러 이상증세가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은 고 목사님이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엘리야의 우울증을 고치기 위해서는 40주야를 걸으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도 하루도 쉬지 않고 시간을 내어서 적당한 운동을 해야 합니다. 걷는 운동이 제일 좋다고 하니 동네를 돌아도 좋고, 출퇴근 길을 걸어도 좋고, 운동은 꼭 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우울증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와 하나님의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있으면 마음에 큰 평안이 옵니다. 저도 많이 힘들어지면 예배 전에 미리 와서 장의자에 엎드립니다.
특별히 기도하지 않고 그냥 엎어져 있다가 잠이 오면 잠시 잠도 잡니다. 기도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얼마나 연약한지 다 아십니다. 너무 힘들면 기도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사야 40장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앙망한다는 것은 하나님만 보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말 안 합니다. 기도도 단순하게 한마디 외마디 소리로 기도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주여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고쳐 주시옵소서”
그 단순한 말을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고 계속하는 것입니다.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한 말씀 기도는 “주님 감사합니다”입니다. 여기에 나의 모든 것이 담겨있습니다.
우울증은 생사를 좌우하는 심각한 마음의 병입니다. 우울증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린 것 같으면 어루만져 주십시오.
육체의 병은 눈에 보이나 마음의 병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등한히 하기 쉽습니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을 조소하거나 가벼이 여겨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살만하구먼. 그러니까 우울이니 어쩌니 하지 먹고살기 바빠 봐라. 그런 일이 있는가’ 이렇게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라고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특별한 관심과 치료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남편이 아내에게 하나님 천사가 되고, 아내가 남편에게 하나님 천사가 되고, 자녀들의 천사가 되고, 이웃에 천사가 되어서 어루만져 주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