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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을 위하여
이 홍사
제 돈을 내고 모은 것이지만 계금이라는 명목으로 된 돈을 쓸 적에는 무엇에 쓰든 전혀 아깝지 않은 법이다. 제 돈이 계금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면 아깝지 않다? 참 희한한 인간의 사고방식이다.
평소에 숙면을 취하고 있을 시간이지만 새벽에 잠이 깨자 지난밤에 보다가 머리맡에 두고 잔 다이어리 뒤편의 지도를 펴놓고 남부지방의 길을 더듬었다.
오늘은 아내가 모은 계에서 승합차를 빌려 청산도로, 계금이라는 명목으로 이름이 바뀐 된 제 돈을 쓰러 가게 되어 있다. 아내 친구들의 계인데 남편들은 그저 들러리다. 들러리들의 나이는 고르지 않아 내 동갑내기는 한 명도 없고 제일 나이가 많은 치는 큰형님 벌이다. 그런데도 오래되니 친구처럼 편안하고 친하다.
아내는 어제 저녁에 차량 대여 업체에 가서 빌린 승합차 키를 받아왔다. 계원은 네 쌍의 부부, 여덟 명이라 승용차 두 대를 가지고 가는 것보다 작은 승합차를 렌트하는 것이 분위기도 그렇고 기름 값과 고속도로비가 절감된다고 승용차를 두고 차를 임차하기로 했다. 운전은 교대로 하더라도 길은 길눈이 밝은 내가 일러주어야 할 것 같다. 매년 연중행사로 하는 나들이인데 올해는 청산도로 간단다. 그런 장소와 일정은 여자들끼리 모여서 정한다. 불알을 찬 들러리들은 그냥 따라가서 술이나 마시고 코에 바람이나 넣고 오면 된다. 물론 일박이일 동안 숙박료와 술값이나 입장료는 올해의 총무인 아내가 부담을 하고 돌아와서 정산할 것이다.
옛날 열두 평짜리 주공아파트에 살던 시절에 마음이 맞고 가까운 이웃 여자들끼리 모은 계인데 역사로 따지면 이십 년이 훌쩍 넘은 계다. 아직까지 호칭이 누구 아빠보다는 그 주공 아파트의 호수인 102호, 403호 아저씨라고 부른다. 그 호칭이 입에 배어서 그렇다. 그 주공아파트는 재개발 되어 지금은 현대식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계원 중 두 집은 그 주공 아파트를 팔지 않고 가지고 있다가 재개발에 얼마를 부담하고 새 아파트를 분양받기도 했다. 102호는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거기로 들어가서 살지만 새로 지은 아파트가 몇 동 몇 호인지 모른다. 새 아파트에 들어가도 그냥 102호로 통용된다. 501호에 살던 우리도 그 아파트를 팔지 않고 있다가 돈을 더 내고 분양받은 서른네 평 아파트를 받아서 신혼부부에게 전세를 주었다. 그 주공아파트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거기에 살면서 모은 계는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으로 활기차게 지속되고 있다. 아파트 이웃이지만 참으로 돈독하고 만만한 사이로 살았다. 처음에는 다섯 명이 모은 계였으나 305호 남편이 전자회사의 캐나다 지점장으로 갔다가 조기 명퇴하고 거기에 눌러 앉는 바람에 여자 네 명이서 계를 꾸려가고 있다. 캐나다로 간 305호가 여유가 되면 모두 같이 밴쿠버에 놀러오라고 연락은 자주 한다지만 그건 계금이 더 모이면 가기로 하고 매년 국내 여행하고 그 동안 베트남, 태국, 해외 나들이도 두 번이나 했다. 엎드려 지도의 길을 더듬다가 나는 조금 전에 꾸었던 꿈을 생생히 되살렸다.
잠이 깬 시간은 새벽 네 시가 좀 못되어서다. 또 군대에 끌려가는 꿈을 꾸다가 잠이 깬 것이다. 벌써 전역한 지가 삼십 년도 넘고 늦게 둔 아들 녀석이 벌써 병장을 달고 있는데, 참 지독한 만기전역증후군이다. 여자들은 모이면 남자들 군대시절 얘기하는 것이 가장 듣기 싫다고 하지만 만기 전역을 하고 군대 끌려가는 꿈을 꾸지 않은 남자 없을 정도로 몸서리치게, 혹독한 기억이 뇌리 깊숙이 박히는 모양이다.
광주민주항쟁에서 도청사수대로 근무한 나는 처참하고 혹독한 군 생활을 했었다. 지독한 갈등과 양심에 상처를 받은 군 생활을 했기에 이런 꿈을 자주 꾸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아직까지 군대에 끌려가는 꿈을 꾸다니 참 지독한 증후군이고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악몽이다. 꿈은 선명했다.
꿈속에서 계급장이 없는 파란색 제복을 입은, 눈이 팔자로 찢어진 공익요원이 영장을 가지고 왔다. 군대에 가야한다는 것이다. 꿈속의 나는 영장을 내미는 그 녀석에게 삿대질을 하며 따졌다.
-내 나이가 얼만데, 군대 갔다 온 병역수첩을 찾아서 보여줄게, 이 자식아!
현관에 서서 그렇게 항의하는데, 그 자식은 제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국방부에 가서 따질 일이라며 영장을 발밑에 던져놓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발등에 떨어진 영장을 발로 차고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다 계단을 내려가는 녀석에 야! 이 자식아! 소리를 지르다가 잠이 깨었다. 꿈이지만 지독히도 약이 올랐다. 그 싸가지 없는 자식의 대갈통을 박살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런 꿈을 꾼 것도 약이 오르지만 개 같은, 말도 안 되는 꿈 때문에 달콤해야할 새벽잠이 깬 것도 오지게 약이 오르는 것이다. 아무리 꿈이지만 영장을 가지고 온 그 자식을 흠씬 두들겨 패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시 잠들기가 어중간해서 독서용 스탠드를 켜고 다이어리를 고 지도를 살폈다. 아무래도 가는 길에는 남해안고속도로를 순천까지 이용하고 거기서부터 고속국도를 이용하여 강진을 거쳐 해남을 통과해서 완도선착장까지 가야할 것 같다. 가다가 벌교에서 그 유명한 꼬막정식으로 점심을 먹는 것도 괜찮을 것 같지만 시간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여자들은 모이면 어디로 여행을 하자고 목적지만 정할 뿐이지 세부적인 행로와 답사할 명승지는 거의 길눈이 밝은 내가 짜는 형편이다. 대충 이 정도의 계획만 짜면 가다가 수시로 변하는 것이기에 무난하다 싶어 지도를 덮었다. 메모를 한 게 아니라 그 계획은 내 머릿속에 저장을 해두었다.
오늘 새벽에는 각자의 차를 가지고 수출타워 부근의 차량 대여 업체의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다. 거기에 차를 주차해놓고 승합차 한 대로 이동할 계획이다. 각자 새벽밥을 먹고 집에서 나서야 할 것이다.
시계를 보고 느긋하게 씻고 나오니 식탁에는 어디서 났는지 떡국이 올라와 있었다. 라면보다야 떡국이 낫지! 마주앉아 떡국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때웠다. 일박을 할 준비물은 지난밤에 미리 다 싸두었다. 올해는 아내가 총무라 차에서 먹고 민박집에서 먹을 안줏거리까지 든 박스도 있다. 어제 아내가 대형마트에 가서 장을 봐 온 것이다. 나는 박스를 세 개나 포개서 안고 아내는 가방을 들고 마당에 나오니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휴일인데다 새벽시간이라 도로가 한산해서 약속장소까지는 금세였다.
언제나 여행의 재미는 출발하기 전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이다. 어제 인터넷으로 그 섬을 둘러본 결과 청산도는 느림의 섬이라고 했으니 느림의 미학을 얼마나 체험하고 머릿속에 각인시켜올지 모르겠다. 아내의 말마따나 성질이 불에 달군 칼인 내가 꼭 가야할 섬인 듯 했다. 느림의 미학? 생각만 해도 마음이 느긋해진다. 우리가 약속시간을 정확히 맞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어지간히 일찍 나왔다. 일행 모두가 미명 속에 서서 두런두런 얘기를 하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마치고 아내가 임차한 차를 일러주고 약속이나 한 듯이 키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흰색 승합차 문을 열고 시동을 걸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차에 실린 가방과 준비물을 옮겨 실었다.
지체 없이 바로 출발이다. 운전대를 잡은 나는 차를 손에 익히느라 조용했지만 옆자리와 뒷자리에 앉은 이십 년 지기들은 남녀 가릴 것 없이 수다에서 수다로 이어지고 있었다. 가만히 들어보면 영양가라곤 서푼어치도 없는 소리들이다. 목소리로 미루어 모두들 들떠있다.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여행이란 이렇게 사람을 들뜨게 하는 모양이다. 운전을 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옛날 실크로드를 따라 다니는 국제 무역상들은 출발하면서 어떤 기분일까? 생사가 걸린 길을 나서며 어떤 주문을 욀까? 뒷좌석에서는 영양가 없는 소리로 떠들지만 나는 물질문명을 끌어들인 그 시대 사람들의 주문을 생각하며 잠시 숙연해졌다.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창녕을 지나서야 라이트를 껐다. 어지간히 일찍 출발을 한 것이다. 벌교에서 점심을 먹는다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오전 열 시쯤에 벌교를 통과한 것이다. 그리고 운전대를 잡은 내 입에 심심하지 않을 만큼 먹을 것이 들어왔다. 밀감이며, 비스킷이며 사탕 등속이다. 아내가 차에서 심심풀이로 먹을 간식까지 사둔 모양인데 조수석에 앉은 아내가 까서 내 입에 넣어주는 것이다. 강진에서 이정표를 보고 고속도로에서 내렸다. 그 동안 뒤에 탄 이웃들은 역시 영양가 없는 소리로 쉴 새 없이 떠들며 캔 맥주를 마셨다.
-어디 지름길이라도 있어요?
톨게이트를 통과하자 조수석에 탄 아내가 물었다.
-아니, 시간이 남을 것 같아 다산초당을 들러보고 가려고.
-다산초당보다 화장실부터 좀 가야겠구먼요.
뒤에 탄 102호의 목소리다.
-그대께서 해장 맥주를 제일 많이 마신 모양이네.
그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내리달렸다. 맥주를 마신 모두들 오줌보가 빵빵할 것이다. 화장실을 찾아 어느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가득 채우는 동안 모두 화장실을 다녀오고, 점심은 아무래도 완도 선착장 부근에 가서 먹어야겠다고 말했다. 모두들 그러자고 했다. 강진의 볼거리는 누가 뭐래도 다산초당이다. 다산초당을 둘러보는데 삼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내가 다산 선생에 대해서 아는 것만 설명을 하고 주마간산으로 둘러보았다. 원래 그런데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다시 차에 오르자 자리가 바뀌었다. 운전대를 403호에게 넘겨주고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403호는 나보다 다섯 살 위인데 술을 마시지 않는다. 하여 어디서든 술자리가 파하고 나면 술 못 마시는 죄로 운전대는 자연히 연장자인 그의 몫이 된다.
조수석에 앉았지만 굳이 내가 길을 일러줄 필요도 없이 고속국도는 완도까지 뻗어있었고 우회도로의 이정표가 확실히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완도에 들어섰지만 섬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을 만큼 완도대교는 넓고 왕래하는 차량이 많았다. 출퇴근 시간에 낙동강의 대교를 건너는 것쯤으로 여겨질 정도로 덤덤하게 완도라는 섬에 들어선 것이다. 청산도로 가는 선착장은 완도 읍내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예상과는 달리 작은 선착장이 아니라 제주도까지 가는 큰 배가 정박해있는 항구였다. 여객선 터미널에서 청산도로 가는 배표를 왕복으로 끊고 우리는 다시 읍내로 이동하여 생선 비린내가 풀풀 날리는 저자거리에서 장터국밥으로 늦은 점심을 때웠다. 모두들 새벽밥을 먹고 나왔고 또 들뜬 분위기라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난전에서 먹는 장터국밥도 별미였다. 점심을 국밥으로 때우고 저자거리를 한 바퀴 돌고 차를 선착장에 두고 도로 건너 빤히 보이는 공원으로 올라갔다. 주위에 산다면 아침 산책으로 오르면 딱 좋을 높이였다. 공원에 오르니 바다가 훤히 보이는 게 조망이 그만이었다.
내륙 소도시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탁 트인 바다만 보는 것으로도 본전을 뽑는 여행이 될 수가 있다. 경치만 탁 트인 게 아니라 가슴까지 확실하게 트이는 듯했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내려와서 붉은 모자를 쓴 안내원이 일러주는 배에 차를 실었다. 차를 열 대쯤 실을 수 있는 연안여객선이었다. 객실은 따로 없고 이 층 선실 뒤 갑판에 천막을 쳐 두고 나무의자가 놓여있었다. 승객은 열댓 명쯤 되고 차는 세 대가 실렸다. 뱃고동을 길게 울리고 배가 출발을 해서 바다로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갈매기가 무리로 날아들었다. 아내는 냉큼 눈치를 채고 차로 내려가서 새우깡을 두 봉지 꺼내 와서 일행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갈매기 밥으로 주라는 것이었다.
한 손에는 새우깡을 한 줌 쥐고 새우깡 하나를 집개 손으로 뻗으면 냉큼 날아와 채가는 것이다. 새우깡으로 유인해서 한 놈이 채가려고 날아드는 것을 보고 새우깡을 일부러 흘리면 그게 바다에 떨어지기 전에 다른 놈이 날아들어 부리로 집는다. 보통 곡예가 아니었다. 갈매기를 그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다. 승객들 모두가 갈매기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아내와 나는 일 층으로 내려가서 뱃머리에서 갈매기를 유인했다. 세 마리가 무리를 벗어나 우리를 따라왔다. 갈매기를 유인해서 부리로 새우깡을 집었을 때 놓아주지 않고 꼭 붙들고 있으면 녀석은 부리로 새우깡을 비틀어 분질러 먹는다. 새우깡 몇 개를 공중으로 흩뿌리면 그게 바다에 떨어지기 전에 세 녀석이 휘청거리며 부리로 낚아챈다. 새우깡 몇 개로 갈매기를 데리고 놀고 있을 때 배에 달린 스피커가 울렸다.
-아~ 아~ 앞에 선수에 계시는.......
거기까지 들었을 때 우리부부를 말하는 줄 알았고 위험하니 객실로 들어가라는 안내방송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데 방송 내용의 전혀 다른 성격이었다.
-앞의 선수에 계시는....... 류 전태 병장님! 뒤로 돌아!
배에 달린 스피커를 내 이름이 나왔을 적에 잠시 전율이 일었다. 이게 뭔 일이야? 이런 곳에서 내 군대시절 관등성명이 나오다니? 옆에 서있던 아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이어서 바로 스피커가 또 울렸다.
-이거 동작 봐라, 사제 군기가 바짝 들어가지고........ 뒤로 돌앗!
나와 아내는 뒤로 돌았다.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배는 역광에 의해서 선실이 잘 보이지 않았다. 바로 스피커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필승!
누군가가 경례를 척 붙이는 듯하다. 도대체 누구지? 생각할 틈도 없이 나도 선실을 향해 거수경례를 붙였다. 삼십 년 전의 몸동작이 재깍 반응한 것이다.
-바로!
거기까지 방송을 듣고 거수경례를 마치고 선실을 향했다. 선실에서도 누군가가 바쁘게 나와 둘은 객실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서 마주쳤다.
-필승!
가죽으로 된 마도로스 모자를 쓰고 급하게 계단을 내려온 사내가 내 앞에서 차려 자세를 취하고 거수경례를 척 붙였다.
-이게 누구야? 추 상병?
-예! 맞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둘은 포옹을 했다.
-근데 류 병장님! 저도 병장 출신입니다.
-아! 그런가? 추 종일이도 병장출신인가? 추 병장?
-예! 그렇습니다.
일부러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둘은 다시 포옹을 했다. 내 뒤에서 아내와, 갑판 위에서 일행들이 지켜보다가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군 시절을 바로 내 후임이야. 추 종일이라고.......
추 종일은 아내에게도 거수경례를 척 붙였다.
-꼴통 병장님 모시고 산다고 고생이 많으십니다.
-야? 내가 왜 꼴통 병장이야?
-지금 고백하건데, 후임들은 다 그렇게 불렀슴돠.
야! 이게 얼마만이야? 돌이키니 지나온 세월이 아득했다. 나를 바로 알아보았냐고 물었고 추 상병은 긴가민가해서 우리 부부가 일 층으로 내려가는 걸 보고 일행들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저기 내려가는 사람이 혹시 류 전태 씨가 아니냐고 물어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실로 들어가 마이크를 잡았다는 것이다.
추 종일! 군 시절에 나에게 어지간히도 많이 맞은 인간이다. 추 종일은 이등병 시절부터 내 조수였다. 155미리 곡사포 조수로 내가 제대하는 날까지 내 뒤를 따라다닌 인간이다. 155미리 곡사포는 수치 측정이 생명이다. 수치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야 명중을 시킬 수 있는 무기다. 수치 측정이 잘못 되면 바로 철모가 날아갔다. 나는 곡사포를 갓 상병을 단 녀석에게 물려주고 전역을 했다. 광주민주항쟁 시절, 도청사수대로 파견되었을 때도 같은 모포를 덮고 다섯 달이나 안고 잔 족속이다. 우리의 임무는 도청 정문 안에서 야간 작전 때 조명탄을 쏘아 올리는 지원병이었다. 우리 둘의 숙소는 도청 안쪽 담장 밑에 쳐놓은 야전천막이었다. 거기서 둘이 곡사포를 거치해놓고 조명탄박스를 쌓아두고 다섯 달이나 야전 천막생활을 했었다. 그게 어제 같은데 마도로스 모자를 쓴 추 상병의 귀밑머리가 허옇다. 얼마만인가?
-오늘 추 상병 만나려고 어젯밤에 그런 꿈을 꾼 모양이네.
-무슨 꿈인데요?
-군대 오라고 영장을 받는 꿈이었어.
-참! 지독하네요. 저도 그런 꿈을 자주 꿉니다.
-그건 그렇고 선장이면 빨리 올라가서 키를 잡아야 되는 거 아닌가?
-선장은 따로 있습니다.
-그럼 추 상병은 뭐야? 부선장?
-아닙니다. 선줍니다.
-선주? 이 배가 추 상병 소유란 말이지?
-놀라긴요. 이 배 말고도 두 척이 더 있습니다.
-우와! 막강하네. 우리 추 상병! 그룹 회장님이시네?
-대수롭잖습니다.
아내는 객실로 올라가고 추 상병과 나는 뱃머리에 가서 살아온 얘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내륙 전자도시에 둥지를 튼 얘기며 바다의 사나이가 된 추 상병의 신변얘기부터 시작되었다. 얼마나 반가운지 얘기를 하면서도 수시로 껴안았다. 추 상병은 아이가 다섯이나 된다고 했다. 요즘 세상에 다산했다며, 잘한 일이라고 추겨 세웠다. 딸 넷에 막내로 아들 하나인데 올해 겨우 중학교 일 학년이라는 말에 엄청 늦둥이를 두었네? 나도 딸 둘에 막내가 아들인데 지금 군에서 병장을 달고 있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하다 보니 고동을 울리며 배는 청산도에 닿았다.
우연찮게 만난 추 상병이 일을 접고 우리의 가이드가 되었다. 내가 운전대를 잡자 당연하다는 듯이 추 상병이, 아니 추 병장이, 아니다 호칭을 바꾸자. 추 종일 씨가 조수석에 앉았다. 나는 조수석에 앉은 추 종일에게 뭔가 어색해서 다시 물었다.
-내가 지금까지 추 상병이라고 부르는데 기분이 나빠?
-류 병장님! 절대 아닙니다.
-다들 들었죠? 이 친구는 배를 세 대나 가진 선주입니다. 저를 제외한, 다들 회장님이라고 부르세요.
-에이! 회장님은 무슨? 동네사람들 다들 추 선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냥 추 선장이라고 부르세요.
추 상병이 뒤를 돌아다보고 말했다. 추 상병은 선장 노릇을 하다가 키를 손에서 놓은 지 몇 년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숙소를 어디 정했냐고 물었다. 아내가 민박집 이름을 대자 추 상병은 으응, 그 집! 하면서 잘 아는 집이라고 했다. 추 상병 얘기로는 청산도는 영화 서편제의 촬영지가 되면서 육지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섬이라고 했다. 나도 오래 전에 그 영화를 보았다. 흥행에 성공한 작품인데 남도의 소리라는 주제를 시각으로 전환시켜 보여주는 야심찬 영화다. 추 상병은 그 촬영지부터 보자고 했다. 그의 안내로 좁은 언덕길을 올라가서 차를 세우고, 유자꽃이 핀 밭을 지나서 얕은 돌담이 쌓인 길을 보니 서편제의 한 장면이 불쑥 기억의 표면으로 솟구쳤다. 모시두루마기를 입고 나들이 준비를 한 세 가족이 소리를 하며 길을 떠나는 장면이었다. 그 곳에 들어서자 추 상병이 영화 속 아버지의 포즈를 취하며 소리 한 가닥을 길게 뽑았다. 모두 그럴싸하다고 박수를 보냈다. 영화 속의 오두막집을 둘러보면서도 우리는 살아온 얘기며 군 시절 얘기로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늙어가는 추 상병의 안내대로 섬을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돌면서 사진이 잘 나오는 곳과 경치가 좋은 곳에선 내려서 사진을 찍고 추 상병은 수 없이 많은 왜란 때 이 지역에서 어떤 방법으로 물길을 이용하여 승리를 했느냐에 관해 설명했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 그것을 이용하는 방법과 물이 정지하는 시기, 물이 역방향으로 흐르는 시기에 배를 어떻게 세우는 것이 전세에 유리한가를 우리에게 소상히 일러주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며 참으로 바다의 사나이답다는 생각이 들며 군 시절에 늘 나에게 퇴박만 받던 그가 이렇게 자기영역을 구축하고 성장했다는데 관해 뿌듯함이 일었다. 빨리 돌고 저녁 먹으러 가자는 102호의 말에 추 병장은 여긴 느림의 섬이라며 최대한 천천히 둘러보아야 한다는 점을 두 번이나 강조했다. 천천히 섬을 구석구석 한 바퀴 돌고 나니 날이 저물었다. 어두워서 전망대는 다음날 오전에 올라가기로 하고 배에서 내린 선착장으로 왔다. 저녁을 먹을 수 있는 횟집이 그곳에 밀집해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예약한 민박집은 작은 산을 넘어서 따로 외진 곳에 떨어져 있다고 추 상병이 일러주었다.
추 상병은 일행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큼직한 횟집으로 안내했다. 손님은 아무도 없이 텅 빈 횟집이었고 어촌의 여느 식당과 다름이 없는 구조였다. 우리 일행이 들어서자 추 상병은 주방 쪽을 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여보! 육지에서 내 생명의 은인이신 군대 선배님이 오셨어. 나와서 인사 드려야지.
그 소리에 앞치마를 걸치고 장화를 신은 몸피가 작은, 횟집 아주머니가 주방에서 나왔다. 키는 작지만 어딘지 모르게 당당함이 배어있었다
-류 전태 병장님이라고, 내 군에 있을 적에 직속 선배님이시고 내 생명의 은인이셔! 이분이 바로 내가 자주 얘기하던 내 사수야! 인사드려.
그 말에 고개를 굽실거리며 인사를 하고 비닐로 된 앞치마를 손으로 털면서 말했다.
-아이쿠! 귀한 손님 오셨는데 꼴이 이래서 되나? 육지 어디서 오셨나요?
-예! 경북 구미에서 왔습니다. 추 상병이 이 횟집도 경영하나?
-예! 집사람이 하고, 저는 그저 들러리죠. 류 병장님 오늘 저녁은 제가 확실히 쏘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배 세 척에 횟집까지 경영하고 있다니? 태연한 척 표정관리를 하고 자리를 잡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들 들었죠? 박수!
일행은 박수와 환호로 화답을 했고 추 상병의 아내는 많이들 드시라고 넉넉하게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 또 박수와 환호가 나왔다. 내가 일행들 틈에 자리를 잡자 추 상병은 나에게로 와서 차려! 자세를 하고 군대식으로 보고를 했다. 장난기가 잔뜩 묻어있는 행동이었다.
-류 병장님! 저도 주방에 들어가 칼질을 좀 하고 오겠습니다.
-복창소리 봐라. 이거!
나도 장난기가 듬뿍 어린 목소리를 뱉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주방에 들어가 칼질을 좀 하고 오겠습니다. 생명의 은인이신 류 병장님!
횟집이 떠나갈 정도로 큰소리로 복장을 했다.
-좋아! 실시!
대답이 끝나자 거수경례를 척 붙이고 주방으로 사라졌다. 모두들 또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박수가 가라앉자 식탁 건너편에 앉은 아내가 물었다.
-당신이 어떻게 저 분 생명의 은인이셔?
-내가 아니었으면 저 자식은 지금쯤 국립묘지에 누워있을걸?
그렇게 군 시절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남자들 군 시절 얘기라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내 얘기를 경청했다.
광주 민주항쟁 때 도청사수대로 파견되었다. 우리 부대에서는 155미리 곡사포로 명사수인 내가 차출되었으니 조수인 추 상병이 따라 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나는 상병이었고 추 상병은 이등병이었지만 일병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파견을 나가면 다른 부대원들이 만만히 보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관례다. 우리 임무는 조명탄을 쏘아 올리는 것이니 낮에는 할 일이 없다. 낮에 자고 밤에 근무하는 올빼미 생활이었다. 우리는 지원병이기에 시위대와 직접 몸싸움할 일은 없고 마냥 비상대기조였다. 어느 날 낮에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리던 녀석이 시위대와 몸싸움을 하는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도청 정문 밖으로 나가 진압대 뒤에서 얼쩡거리며 시위와 진압을 구경하다가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을 정통으로 맞은 것이다. 녀석의 몸은 순식간에 불덩이가 되어 길길이 날뛰며 나에게 뛰어오고 있었다. 제 정신이 아닌 본능적인 회귀였으리라. 옷을 벗어 던질 수가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군화를 신고 탄띠까지 매고 있었으니. 나는 침착하게 야전 천막으로 달려가 군용모포 두 장을 집어다가 재바르게 불덩이가 된 녀석의 몸에 둘둘 말아 불길을 질식소화 시킨 것이다.
거기까지 얘기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어디서 그렇게 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내 말을 자르고 403호가 물었다.
소방관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때 나는 소방공무원 공부를 하고 있어서 그런 응급조치 방법은 기본으로 익히고 있었다. 불길을 잡고 바로 녀석의 석유냄새가 듬뿍 밴 녀석의 옷을 벗겼다. 워낙 빨리 불길을 잡아 화상 부위는 없고 눈썹과 철모 밖으로 드러난 머리카락을 조금 그을렸을 뿐이었다. 옷을 벗기고 녀석의 몸을 찬찬히 둘러보았지만 허벅지와 등짝에 붉은 부위는 있었으나 후속조치 시킬 정도는 아니라 진압대 부근에 얼쩡거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급하게 전투복 두 벌을 보급 받아 계급장과 이름표를 달아주었다. 그 해 여름부터 겨울까지 도청 담 밑에서 둘이 올빼미 생활을 했었다. 진압대의 본대에서 수송되어 오는 밥을 먹고 목욕은 도청 청사 화장실에서 하고 이발을 못해서 장교머리보다 길게 기르고 추 상병은 어디서 구했는지 가끔씩 젤을 바르고 가르마를 타서 다니고 있었다. 군기 빠지기가 좋은 파견생활을 오 개월하고 복귀해서 바로 포상휴가를 나왔다. 그게 어제 같은데 벌써 삼십오 년이 넘었다며 이곳 청산도, 느림의 섬에서 느림을 배워가자고 하며 말을 마쳤다. 모두들 잘 들었다는 듯이 박수로 화답을 했다. 푸짐한 술상은 금세 차려졌다. 추 상병이 직접 칼질했다는 두툼한 회가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손님들 상에 회를 이렇게 썰었다가는 집구석 망합니다.
식탁모서리에 끼어 앉으며 추 상병이 특별대접이라는 듯이 말했다.
-우리는 손님이 아니란 말인가?
-손님 선을 넘어 특별히 모신, 한솥밥을 이 년이나 먹은 식구죠.
-알았어. 오늘 저 활어들이 노니는 통을 완전히 비우고 가겠어. 상관없지?
-예, 상관없습니다.
추 상병은 거수경례를 척 붙이며 큰소리로 복창했다.
첫잔 건배 제의는 내 몫으로 굳어졌다. 인정머리 없는 세월이 야속하다. 천천히 늙어가자며 느림을 위하여! 로 선창을 했다. 모두들 큰소리로, 느림을 위하여! 복창을 하고는 모두들 깨끗하게 잔을 비웠다. 저녁을 먹고 뻐근한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회는 두 번이나 리필 되었고 느림을 위하여! 열댓 번 외쳐야 했다.
느긋하게 가진 술자리를 파하고 민박집으로 이동할 때도 추 상병이 따라붙어 안내를 했고 민박집에 도착하자 주인을 불러 귀한손님 오셨으니 하룻밤을 자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일러주고는 나에게 좋은 밤이 되라고 거수경례를 척 붙였다. 그리곤 민박집의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온 길을 되짚어 제 집으로 갔다. 민박집은 바닷가 언덕 위에 게스트하우스를 하기 위해 지은 집이라 현대식 화장실이 딸려있고 깨끗한 주방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방에서도 들린다는 게 특별한 자연의 서비스다.
-그거 참! 남자들 군대 갈만한 곳이네.
-그래. 경비가 제일 많이 들 거로 예상했던 부분이 고스란히 굳었어.
403호가 이부자리를 깔며 말했고 총무인 아내가 받아쳤다. 여자들이 거실을 차지하고 남자 넷이서 안쪽 방을 차지하고 잤다. 민박집에서 이 차로 먹을 예정이었던 술과 안주는 개봉도 하지 않은 채 박스에 그대로 들어있었다. 오랜만에 흡족한 기분으로 창가에 귀를 열어두고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새벽에 꿈길을 덮쳐오는, 철썩이는 파도소리에 잠이 깨어 머리맡에 두고 잔 담배를 챙겨들고 나가다가 거실에 자고 있는 102호의 종아리를 밟았다.
-아야! 누구야? 좀 보고 다니시지........
-거, 여자가 다소곳하게 오므리고 주무시지. 쩍 벌리고 자니까 그렇잖아요?
하하하! 호호호! 새벽을 가르는 웃음소리를 기화로 불이 켜지고 모두들 잠에서 깨어났다. 깨어나서 아침을 하기는 이른 시간이니 산책으로 새벽바다를 보자고 했다. 동트기 전의 미명 속에 조심스레 언덕을 내려가 바닷가를 거닐며 새벽바다가 내쉬는 웅숭깊은 숨소리를 듣고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올라왔다. 여자들이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남자들은 교대로 씻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남자들이 서툴게 설거지를 하고 여자들이 씻을 때 추 상병이 빌려간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여전히 마도로스 모자는 쓰고 있었다.
-아침은 자셨는가?
-예. 먹고 왔습니다.
씻고 나오는 여자들마다 추 선장님, 추 선장님! 하며 오래된 친구처럼 다정하게 인사를 했다. 짐을 챙겨서 차에 싣는 동안 아내가 숙박비 계산을 하고 바로 출발이었다. 추 상병의 안내로 전망대를 향했다. 전망대라고 만들어놓은 시설은 따로 없고 옛날 봉화대로 쓰던 바위산 꼭대기였다. 길이 험해서 오르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그곳에 올라가서 추 상병의 설명을 들었다. 저기 멀리 보이는 섬은 무슨 섬이고 저기서 왜군이 쳐들어오면 피우는 봉화연기를 보고 여기서 봉화를 피우면 그걸 보고 완도의 무슨 산에서 봉화를 피운다고 했다. 추 상병의 설명을 듣고 있으니 청산도는 옛날 전략의 요충지로 요긴하게 활용된 섬이다. 여자들은 추 선장님! 하며 이것저것 묻고 있었다. 그곳에서 추 상병을 모델로 사진을 여러 번 찍고 내려왔다. 오전 배를 타러 나가며 추 상병의 횟집 앞에 차를 세워 추 상병의 아내에게 신세만 지고 잘 놀다가 간다고 인사를 하니 수족관 위에 준비해둔 비닐 봉투에 든 커다란 병을 네 개나 차에 실어주었다. 돔 젓갈이라고 했다. 지난밤에 회를 먹으며 유난히 맛있는 젓갈이 있어 무슨 젓갈이냐고 물었더니 돔 젓갈이라고 했다. 102호는 어디가면 살 수 있냐고 물었고 추 상병의 아내는 집에서 직접 담근 것이라고 했다. 별미였다. 모두들 맛있다며 세 번이나 더 갖다먹었다. 그걸 본 추 상병의 아내가 한 집에 한 병씩 가져가라고 아침에 네 병을 담은 모양이다. 맛보다 정이 담뿍 담긴 물건이다. 인사를 하고 기다리는 배에 차를 실었다.
추 상병은 선실을 향해 손만 들어보이고는 객실에서 우리 일행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두 척 더 가진 선박은 삼백 톤급 쌍둥이 배로 저인망 어선이라고 했다. 삼백 톤급이 얼마나 큰 배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누군가 저인망 어선이 뭐냐고 물었고 추 상병은 그것에 대해서 설명했다. 쌍둥이 배가 공동작업을 하는데 사흘에 한 번 들어온다고 했다. 또 누군가 삼백 톤급이면 배가 얼마나 큰가를 물었다. 모두들 궁금해 하던 질문이다. 대답은 지금 타고 있는 배의 네 배 크기라는 말에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정작 놀란 것은 배의 크기만이 아니었다.
완도에 도착해 추 상병이 안내하는 식당으로 가서 모두들 뒤집어졌다. 완도 선착장에 도착하니 얼추 점심시간이었다. 추 상병이 배에서 전화로 하는 모두 소리를 들었기에 식당은 예약된 줄은 모두 감을 잡고 있었다. 아마도 단골집이나 친한 친구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인 모양이다. 여보! 특별히 맛있게 해 돼! 여보! 아주 귀한 손님이야! 추 상병은 말끝마다 상대를 두고 여보! 라고 불렀다. 친한 친구의 아내를 두고 장난으로 여보! 라는 호칭은 쓰여도 무방하다. 더 돈독한 우정을 나타내는 말이니, 나도 가끔 동기들 부부 계모임에서 친한 친구의 아내를 두고 장난으로 여보! 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러나 나의 여린 상상력은 식당에 도착해서 여지없이 박살이 났다. 추 상병이 안내한 완도의 식당도 횟집이었다. 추 상병이 안내한 식당의 방으로 들어가니 예약손님 수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다른 방과 홀에는 손님들로 북적이는, 장사가 잘 되는 횟집이었다. 들어오면서 계산대에서 일어서서 인사하는 키가 후리후리하고 눈매가 서글서글한 주인아주머니가 인상적이었다. 추 상병의 여보! 라는 농담도 기꺼이 받아줄만한 인물로 보였다. 모두들 자리를 잡자 추 상병은 이 집은 회덮밥이 유명하다며 회덮밥으로 하자고 했다. 모두들 그게 좋겠다고 했다. 동의가 되자 추 상병은 문밖을 향해 소리쳤다.
-여보! 회덮밥 아홉 개 준비하라하고 빨랑 일루 와봐!
그렇게 외치는 걸 보고 아무리 단골집이지만 추 상병 장난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 말이 끝나자 컵과 보리차 주전자를 든 키가 후리후리한 주인아주머니가 들어왔다.
-여보! 내가 자주 얘기하던 군대 선임, 내 몸에 불을 꺼준 생명의 은인 류 병장님이 바로 이분이셔! 인사 드려야지? 경북 구미에서 오셨어.
-아이쿠!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귀한 손님께서 멀리서 오셨네요. 여보! 회덮밥만으로는 안 되겠네요. 낮술이지만 소주 한잔 대접해드려야죠. 안주를 따로 준비할까요?
-그래? 그게 좋겠군. 빨랑 준비해.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나를 비롯하여 일행들은 그대로 굳었다. 다들 얼른 정리가 안 되는 모양이다.
-야! 추 상병 복잡한 가계 같은데 족보가 어떻게 되냐?
-제가 아이가 다섯이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요즘 어느 여자가 애를 다섯이나 낳아요? 솔직히 키다리와 난장이, 둘을 데리고 삽니다.
-그럼 횟집이 하나가 아니고 둘이란 말이야? 어느 쪽이 퍼스트냐?
-섬에 있는 난장이가 퍼스트죠.
-추 상병! 이 여성상위시대에 능력 있다. 둘의 관계는 좋아?
-어쩌다 섬에서 나오면 키다리가 성님! 성님! 하며 껌뻑 죽는 시늉을 하죠.
-이야! 능력 좋다. 상상도 못할 일이네. 잠은 어디서 자냐?
-형편에 따라서 섬에 잘 때도 있고 여기서 잘 때도 있죠. 아무데 자도 상관없어요. 둘 다 이해하니까.
그런 대화를 할 동안 일행들은 아무도 끼어들지 않고 그저 듣고만 있었다. 모두들 궁금증이 풀렸는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었다.
-야! 추 상병! 꼭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었나? 바다의 사나이가 바람 조금 피우면 되지. 마도로스 사랑이라고 있잖아?
추 상병은 내 말을 듣고 지나간 얘기를 했다. 목소리가 사뭇 진지했다. 섬에 사는 큰 부인이 딸 셋을 낳고 자궁이 잘못되어 들어내고 빈궁마마가 되었다고 했다. 그런 상황을 두고 빈궁마마라고 하는 것도 추 상병에게 처음 들었다. 일이 그렇게 되자 추 상병의 어머님이 나선 것이라고 했다. 사대독자가 그 모양이 되었으니 대가 끊긴다고 난리가 나서 어머니의 주선으로 다른 여자를 보았는데 또 딸이었다는 것이다. 어머니 말마따나 아들을 낳을 때까지 열이라도 낳겠다는 심정으로 또 낳았는데 다섯 번째가 비로소 아들이라고 했다. 그 아들이 지금 중학교 일 학년인데 아쉽게도 어머님은 그 아이가 임신 팔 개월일 때 돌아가셨다고 했다. 추 상병은 오랜만에 진지하게 말을 했다.
일행들은 뭐라고 거들지 않고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게 중에는 딸만 둘이 있는 403호가 있다. 가만히 보니 추 상병의 얘기를 들으며 403호는 부부간에 수시로 눈이 마주쳤다. 느림을 위하여! 내 속에서 그 외침이 일고 있었다. 403호도 지금쯤 늦둥이를 하나 가지면 어떨까? 뜬금없는 생각과 동시에 옆에 앉은 추 상병의 어깨를 토닥이며, 느림을 위하여! 라고 작지만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해하겠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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