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시운전 / 강지수
날 때부터 앞니를 두 개 달고 태어난 아이치고 천성이 소심하다 했습니다
가장 부끄러운 기억이 뭐예요?
종합병원 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발가벗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았을 때요
그게 기억나요?
최초의 관심과 수치의 흔적이 앞니에 누렇게 기록되었지요 나와 함께 태어난 앞니들은 백일을 버티지 못하고 삭은 바람에 뽑혀야 했지만, 어쩐지 그놈들의 신경은 잇몸 아래에 잠재해 있다가 언제고 튀어 올라 너 나를 뽑았지, 우리 때문에 너는 신문에도 났는데, 하고 윽박을 지를 것 같더란 말입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대大자로 뻗었을 때 혹은 동명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
그럴 때에는 앞니를 떠올려보곤 하는 겁니다 천성이란 무엇인지, 왜 어떤 흔적은 흉터로서 역할하지 못하고 삭아져버리는지
당신, 당신은 한 번 죽은 적 있지요
아뇨 아뇨 하고 뒤돌아 도망치다 보면
잔뜩 눌어붙은 마음에 칼질을 해대는 것
한 가지 알려줄까요
무 이파리가 시들해서 죽은 줄 알고 뽑아보면
막상 썩지는 않은 경우가 많답니다
싱싱하지 않을 뿐
살아는 있어요
매운 향을 뿜으며
가끔 손등을 깨물어요 그러면 삐죽 튀어나온 앞니 두 개가 찍힙니다 나는 그것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어요
내가 어딘가에 남길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자국이거든요 벌겋게 부풀어 오르는 피부까지도
저 멀리 보이는 친구를 피해 길을 돌아갈 때 혹은
다시 태어나서도 나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할 때
그럴 때에는 앞니를 떠올려보곤 하는 겁니다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천성
나와 분리된 조각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리워하는 겁니다
발가벗고도 이를 내보이며 웃었던 날
심사평 <안상학 시인>
선자들은 강지수의 시를 당선작으로 뽑는 데 추호도 이견이 없었다. "날 때부터 앞니를 두 개 달고 태어난" 몇 천 분의 일의 선천치(natal teeth)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여정을 톺아내는 마음이 곡진하고 는 점을 높이 샀다. 사소한 사물일지라도 섬세한 시선으로 어루만지며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로 통합해가는 시적 완성도 또한 믿음이 갔다. 선자들은 모처럼 좋은 신인을 만났다는 마음을 서로 확인했다.
<시감상>
소수 정체성에 대한 수치심과 극복
몇천분의 1 확률인 선천치로 태어나면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사회는 비정상이라고 규정한다.그래서 수치심을 느껴서 감추게 되고 정상인의 무리 속에 숨어살게 된다. 그런데 죽음과 직면하게 되면 나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잠재되어 있는 선천치를 대면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와 나의 시선을 극복하게 된다.나-나 대화기법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제목이 선천치가 아니라 시운전이라고 한 이유는 아마도 처음 사는 인생이므로 서툴기 때문이거나 정체성을 드러내기 전을 의미한다고 짐작해본다. 이제 수치심을 극복해내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보인 이후는 시운전이 아닌 그냥 운전이 될 것이다.시의 제목과 본문이 떨어져 있으면 많은 상상을 하게 되면서 그 거리감이 팽팽해지는 효과가 있다.
*試運轉-기차, 배, 자동차, 기계 따위를 새로 만들거나 수리하였을 때에 실제로 사용하기 전에 시험 삼아 하는 운전.
시운전 / 강지수
날 때부터 앞니를 두 개 달고 태어난 아이치고 천성이 소심하다 했습니다
( 몇천분의 1로 선천치로 태어나면 웬만한 심장으로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소심해 질 수 밖에 없다.)
가장 부끄러운 기억이 뭐예요?
종합병원 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발가벗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았을 때요
(선천치로 태어났기 때문에 여러명의 의사들이 신기해서 내려다보면 부끄러울 것이다.나중에 상상하는 것이다)
그게 기억나요?
최초의 관심과 수치의 흔적이 앞니에 누렇게 기록되었지요 나와 함께 태어난 앞니들은 백일을 버티지 못하고 삭은 바람에 뽑혀야 했지만, 어쩐지 그놈들의 신경은 잇몸 아래에 잠재해 있다가 언제고 튀어 올라 너 나를 뽑았지, 우리 때문에 너는 신문에도 났는데, 하고 윽박을 지를 것 같더란 말입니다
(최초의 관심이 나에게 수치로 각인되었다. 100일 이전에 뽑혔다는 것은 선천치의 특징이다. 시도 사실에 근거하여야 한다. 선천치가 삭아서 뺐는데 이는 빼도 신경은 잠재해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대大자로 뻗었을 때 혹은 동명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
그럴 때에는 앞니를 떠올려보곤 하는 겁니다 천성이란 무엇인지, 왜 어떤 흔적은 흉터로서 역할하지 못하고 삭아져버리는지
(장면이 전환되고 변주가 일어난다. 앞행은 탄생과 관련이 있고 이 행은 죽음과 관련이 있다. 나와 똑같은 이름의 시체를 발견하고 나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그럴 때 천성을 은유하는 앞니를 떠올려본다.선천치를 통한 존재 사유이다.
흉터라도 남았으면 나의 존재를 깊게 깨달았겠다. 흉터없이 사라져서 다른 사람과 정체성이 같아 졌다.그러나 정상인이라는 것이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한다.)
당신, 당신은 한 번 죽은 적 있지요
아뇨 아뇨 하고 뒤돌아 도망치다 보면
잔뜩 눌어붙은 마음에 칼질을 해대는 것
(당신은 정체성을 부인하는 마음이 죽은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며 부인하며 도망친다.즉 나는 아직도 수치심에 천성(정체성)을 부인한다는 것이다.
선천치 즉 천성이 내 마음에 눌어붙어 있다. 칼질을 한다는 것은 선천치(정체성)를 부인하는 마음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알려줄까요
무 이파리가 시들해서 죽은 줄 알고 뽑아보면
막상 썩지는 않은 경우가 많답니다
싱싱하지 않을 뿐
살아는 있어요
(치아와 무는 모양이 유사하므로 이미지를 확장하여 변주한다.죽은 줄 알고 무를 뽑았더니 싱싱하지는 않지만 살아 있다라고 하면서 선천치에 생명력을 부여한다.선천치 존재의 귀중함을 깨닫는다. 몇천분의 1로 태어났기 때문에 선천치는
나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낸다는 것을 깨닫는다)
매운 향을 뿜으며
가끔 손등을 깨물어요 그러면 삐죽 튀어나온 앞니 두 개가 찍힙니다 나는 그것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어요
(선천적 정체성은 매우 강력한 것이다.가끔 선천치를 대표하는 앞니로 손등을 깨문다.앞니 두개가 찍힌다.그것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천성에 대해 사유한다)
내가 어딘가에 남길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자국이거든요 벌겋게 부풀어 오르는 피부까지도
저 멀리 보이는 친구를 피해 길을 돌아갈 때 혹은
다시 태어나서도 나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할 때
그럴 때에는 앞니를 떠올려보곤 하는 겁니다
(선천치는 나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대표한다.떳떳하지 못한 마음에 친구를 피해 길을 돌아갈 때 혹은 정체성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단어인 나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할 때 즉 정체성을 수치스럽게 생각할 때
그럴 때마다 몇천분의 1인 나의 선천치를 떠올려본다.다른 사람에게나 내게나 떳떳하지 못할 때 선천치를 붙잡는다. 선천치가 나의 존재를 드러낸다.)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천성
나와 분리된 조각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리워하는 겁니다
발가벗고도 이를 내보이며 웃었던 날
(이제 소심함은 나의 천성이 아니다.선천치에 대한 사유와 대면, 수용을 통해 수치스럽게 생각하던 과거는 사라졌다.그리워한다는 것은 극복을 해냈고 그것을 음미한다는 것이다.
1,2,3행과 수미상관을 이룬다. 성인이 된 인간들이 선천치를 비정상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선천치는 비정상이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조각이다. 성인이 되어 잃어버린 흔적, 자신의 정체성을 어린아이의 상태로 돌아가 당당하게 존재를 드러낸다)
1. 메시지
주제: 소수 정체성에 대한 수치심과 극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
2. 이미지의 연쇄와 교차
-선천치의 이미지: 앞니, 병원, 흔적, 자국, 조각 등
*핵심이미지: 선천치-무
-수치심의 이미지:소심, 뽑히다, 눌어붙다, 도망치다
정체성을 소재로 하는 신춘시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에 / 신이인
https://m.cafe.daum.net/somdaripoem/rA2J/47?svc=cafeapp
첫댓글 https://youtu.be/W0OgYMmawU0?si=-NSOKocUDnKPSe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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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lSYrAeNDTkU?si=qTQMTOfyK9gNJ09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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