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이 무엇일까?』
『배지 뭐야. 여보게 아무리 봐도 배처럼 생기지 않았나?』
『그렇기는 하지만
배 같으면 사람이 보일 터인데 사람이 안 보이지 않은가?』
『사람이야 보이거나 말거나 밸세, 배야.
바다에 떠서 움직이는 게 배가 아니고 뭐겠나?』
☆☆☆
때는 신라 성덕왕 가절,
지금의 전라도 해남지역 사자포(속칭 사재 끝, 땅끝) 앞바다에
돌배 하나가 나타났다.
이상히 여긴 어부들이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배 가까이 다가가니
배에서는 아름다운
천악(天樂) 범패소리가 울려 퍼졌다.
☆☆☆
배는 사람을 피하여 둥실둥실 바다 가운데로 떠나가더니
사람이 돌아서니 다시 육지로 떠오곤 했다.
이러한 소문은
마침내 관가에까지 들어가게 됐다.
관원들이 실지로 나와서 본 후
고을 촌주(지금의 군수나 면장격)에게 보고했다.
관원들의 보고를 들은 촌주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 배는
외국에서 우리나라 사정을 탐지하러 온 배가 아니겠느냐?
배 위에 사람이 없다는 말은 그들의 위장술에 속은 것일 것이니라.
사람이 숨어서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달아날 이치가 있겠느냐?
그 배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황당한 배라고 아니할 수 없으니
수군을 풀어서 나포토록 하여라.』
☆☆☆
촌주의 명을 받은 관원들은
즉시 수군에게 첩보하여 정체 모르는 배를 잡아들이도록 했다.
무장한 수군 수십 명이
목선을 나눠 타고 돌배를 추격했다.
그러나 그 돌배는
바람 한 점 일지 않는 바다 위를 날쌔게 달아났다.
아무리 추격해도 쫓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달아나 그림자도 보이질 않았다.
☆☆☆
추격하던 수군들은 헛수고만 하고 돌아왔다.
『그것 참 알 수 없는 일일세.
어찌 그렇게도 빨리 달아날 수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부리는 배는 아닐 성싶은데…
바닷가에 가끔 신선이 내려와서 배를 부린다더니
아마 신선이 내려와 노니는 걸까?』
『오라, 그래서 배 안에서 풍악소리가 울려 나오나 보군.』
『그것 참 이상한 일일세. 그 배가 정녕 나무로 만든 배는 아니지.
바위를 파서 만든 돌배가 틀림없지?』
『돌배가 어떻게 물에 떠다닐까?』
『그러기에 신선이 타고 노는 배거나 귀신의 조화라는 것이 아닌가.』
☆☆☆
이토록 괴이한 소문은 이웃 마을에까지 널리 퍼졌다.
의조 스님도 이 소문을 들었다.
스님은 곧 촌주, 우감과 장운 두 사미승,
그리고 불자 1백 명을 거느리고 바닷가에 가서 목욕재계하고 재를 올렸다.
드디어 배가 서서히 육지를 향해 오기 시작했다.
배가 바다 언덕에 닿자 스님을 필두로 일행을 배에 올랐다.
일행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배 안에는 사람이라곤 그림자 하나 볼 수 없는데
금물을 입힌 쇠 사람이 노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옆에 놓인 금함을 열어 보니
그 안에는 《화엄경》,《법화경》, 비로자나불, 문수·보현보살 등
40성중, 53선지식, 16나한 탱화 등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들은 모두 금으로 되어 있어 눈이 부시도록 휘황찬란했다.
그 중에는 금환(金環)과 흑석(黑石) 각 1매가 있었다.
☆☆☆
스님은 이 법보들을 조심스럽게 하선시켰다.
불자들이 불상과 경을 언덕에 내려놓고
봉안할 땅을 의논할 때 흑석이 갑자기 벌어지더니
그 속에서 검은 소 한 마리가 나타나
삽시간에 커져 큰 소가 됐다.
이날 밤,
의조화상 꿈에 금인이 나타났다.
『나는 우전국이란 나라의 왕이오.
금강산에 만불을 모시려고 불경과 불상을 배에 싣고 왔더니
곳곳에 크고 작은 사찰이 들어서 있어 봉안할 곳이 마땅치 않았소.
해서 그냥 돌아가는 길에 이곳 달마산 산세를 보니
그 형세가 금강산과 대동소이해 가히 경상(經像)을 모실 만하여
배를 멈추고 때를 기다린 것이오.
그래서 이곳이 부처님의 인연토가 되었으니
경전과 불상을 이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면서 누웠다 일어나는 곳에
절을 짓고 경상을 안치하면 국운과 불교가 흥왕할 것이오.』
금인은 이렇게 이르고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
이튿날, 의조화상은
금인의 지시대로 소에 불경과 불상을 싣고 길을 떠났다.
검은소는 경치 좋은 곳에 이르러
한 번 누웠다 일어나더니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산협(山峽)에 이르러 검은 소는 크게 울며 눕더니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다.
이 자리에 절을 창건하고
불상과 불경을 모신 후 절 이름을 미황사라 명했다.
이는 그 소의 울음소리가 극히 아름다워 「미」자를 취하고
금인의 황홀한 빛을 상징하여 「황」자를 택해 미황사라 칭했다 한다.
또 처음 소가 누웠던 곳에도 절을 세우니
이 절 이름은 통교사라 한다.
통교사, 미황사를 비롯 달마산 내에는
도솔암, 문수암 등 12암자가 산중 각처에 있었으나
지금은 미황사만 남아 옛 전설을 묵언으로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