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함께 한 희로애락
최명애
‘쾅’ 부딪치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운전석에서 내려서 조수석 쪽에 붙어있는 인도로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상대방 차는 작은 티코 차다. 내가 내린 쪽의 운전석을 박은 것이다. 나는 순간 가슴을 쓸어내렸고 두 다리는 힘이 풀려 후들거렸다.
상대방 운전자는 내리막길에 속력을 내면서 내려오다 중앙선을 넘어 핸들을 꺾으면서 내 차의 운전석 쪽을 박은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순간 아찔한 모습들이 생각 나 화가 났다. ‘만약에 몇초만 늦게 내렸다면 어떤 일이….’ 가슴, 손 모두가 떨린다. 상대방 차 운전자는 여자 운전자다. 엎드린 채 문을 두드려도 기척이 없다. 할 수 없이 경찰서 전화번호를 눌렀다. 운전자는 한참 동안 문을 두드려 나오는데 술 냄새를 확 풍긴다. 대낮에 왜 이리 술을 많이 마셨냐는 경찰의 말에 자기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더 어처구니가 없다. 개인 가정사로 인한 감정싸움이 상대방에게 지울 수 없는 피해를 주게 되는 일이 생긴다는 것을 왜 모를까. 10여 년 전 있었던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나의 운전 역사는 30대 중반 필기시험부터 시작된다. 혹시라도 불합격하여 창피를 당할까 봐 일주일간 열심히 노력한 결과 당당히 합격했다. 하지만 실기시험은 만만하지 않았다. 기왕에 하는 거 큰 차를 몰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보통 1종을 신청했다. 1번째는 떨어졌다. 2번째 합격하는 날은 대학교 시험에 통과한 양 날아갈 듯 기뻤다. 드디어 한 달간 뒤에 귀한 운전면허증이 내 손에 들어왔다. 손바닥보다 작은 물건을 30년 이상 항상 지니고 다닐 줄이야…. 면허증을 땄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운전을 잘할 수 없고 컴퓨터 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능숙하게 문서를 편집할 수 없다. 수많은 훈련으로 모든 일을 잘할 수 있다. 운전 연수를 받았지만, 도로에 나가기가 두려웠다. 골프와 운전은 남편에게 배우지 말라는 속설이 있다. 그런데 좀 더 보충하려고 남편에게 연수를 받았다. 다툼이 시작되었고 몸과 마음이 시달렸다.
그날도 나는 운전석, 남편은 조수석에 앉았다. 남편은 가며 소리를 지르다가 차를 세우라고 하더니 내려버렸다. 나도 화가 나서 그대로 가던 길을 출발해 버렸다. 앞만 보고 달려서 송림사까지 갔다. 계속 갈 수는 없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차를 돌릴 수가 없다. 송림사 앞에 차를 세우고 밖에 서서 기다리다 무작정 지나가는 차를 세웠다. 남자분이 창문을 내리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차를 못 돌린다고 하니 웃으면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요?”라고 묻는다. 똑바로 오는것만 했다고 답했다.
두근거리는 맘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좌회전 교차로가 보인다. 떨면서 차를 천천히 회전하는 중 맞은편에서 오는 덤프트럭 기사가 ‘ 빵빵’거리며 빨리 안 간다고 욕했다. 방망이질 하는 가슴을 쓰다듬으며 겨우 집 부근까지 왔는데 또 난관에 부딪혔다. 유턴해야 집으로 갈 수 있는 데 도저히 자신이 없다. 할 수 없이 차를 도로변에 세우고 비상깜빡이를 켜놓았다. 집에 가니 남편이 와 있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집에서 전화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차를 가지고 오라고 했더니 안심이 되는지 어디까지 갔었느냐고 묻는다. 어쨌든 이 일로 많은 경험을 했고 좀 더 용기를 낸 것 같다. 덕분에 운전 연수를 톡톡히 했다.
운전 실력이 조금 늘어 직장과 가까운 곳만 다니는 용도로 티코를 샀다. 한번은 남편과 아들을 태우고 전라도 쪽으로 여행을 갔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이라 여행지도와 교통표지판을 보며 전라북도의 구석구석 관광지를 찾아다녔다. 물론 혼자라면 겁이 나서 갈 수 없다. 대신 운전할 수 있는 남편이 있으니까 가능했다. 초보를 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불안하기는 하였지만 즐겼다. 그뿐인가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충주댐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30대 후반의 젊은 패기로 거침없이 차를 몰았다. 새로운 중형차를 인도받은 다음 날 안면도로 달려갔다. 아직 새 차에 익숙하지도 않으면서 겁 없이 출발해 버렸던 적도 있다. 말 그대로 무식이 용감했던 일이다. 그 이후로는 멀리 가면 내가 운전하겠다고 나섰다.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일이다. 사고라도 나면 어찌하려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용기가 가상했던 시절이었다.
어찌 좋은 일만 있었을까. 졸다가 가드레일을 박은 일, 오르막길에서 시동이 꺼져 불안에 떨었던 일, 뒤차가 내 차를 박아 병원 신세를 입었던 일. 신호등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욕먹은 일, 그때를 생각하면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보험 사기꾼이 지나가며 백미러에 부딪히고 치료비를 요구한 일 등 경력이 오래된 만큼 운전 생활도 파란만장하다. 자동차와 함께 한 희로애락이 추억으로 내 마음에 남아있다.
내 인생에 운전 면허증을 딴 일은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으니 참 좋았다. 우울할 때는 음악을 틀어놓고 드라이브를 하면 기분이 풀리고 아무리 운전해도 피곤하지 않았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나 신체 감각의 둔화와 반응속도의 저하에 맞추어 안전 운전을 하고 있다. 자격증이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한 마음이다.
첫댓글 자동차 운전은 늘 조심해야 하지요. 경력이 오래되었다고 잘 하는 것도 아니고 늘 예방 운전이 좋은 것 같습니다. 차를 몰면 희로애락이 많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잘 풀었습니다.
자동차는 나의 생활반경을 넓혀주고 자유를 주는 생물같은 물건이라 항상 함께하고 있습니다^^
실감나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