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다니는 한 엄마가 아들 학교 반장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들과 저녁모임이 있는데 나오실래요?” 퇴근이 늦어질지 모른다는 대답에 반장 엄마는 말했다. “저녁 먹고 노래방 가니까 아무 때나 오세요. 한참 있을 거예요.”
선생님들과 무슨 노래방인가… 의아해하는 엄마가 있다면 그 집 아이는 이미 뒤처졌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요즘 어지간한 학교에서 반장 엄마의 주 임무는 교사들 회식과 노래방 접대다. 또 다른 학군의 한 엄마는 자신과 면담하다 말고 학부모의 전화를 받은 담임교사가 “그만하면 성적 오른 거지. 안 그래?” 반말하는 걸 보고 경악을 했다고 한다. 얼마나 친하면 반말을 하겠느냐는 거다.
일부 교사와 학부모의 일탈이라고 나도 간절히 믿고 싶다. 하지만 올해 대학입시 입학사정관 전형에 공인어학시험이나 수상실적 같은 객관적 증거물이 빠지고, 담임교사가 써주는 주관적 추천서가 중시되면서 이들의 끈끈한 관계 만들기는 더하면 더했지 줄지 않을 건 뻔하다. 이젠 교사에게 촌지 바치는 것만으론 안심 못하고 ‘방과 후 접대’로 심기까지 살펴야 할 판이다.
그래서 나온 엄마들의 결론이 차라리 사교육이 깨끗하다는 것이다. 평판 좋은 학원에 아이를 맡기면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강사가 학원비만큼 제 몫은 한다.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학교 대신 학원에만 보낼 수 있다면 오히려 교육비 부담이 확 줄 거라는 말까지 나온다. 뜻 맞는 학부모끼리 목표가 같은 교사를 모셔다 아이를 가르칠 수 있다면 더 좋겠는 건 물론이다.
영국의 공약은 스웨덴 營利학교
6일 영국 총선에서 승리가 유력한 보수당의 교육개혁안이 바로 이거다. 학부모든, 종교기관이든, 교사든 누구든 자유롭게 학교를 세우게 하고 예산은 정부가 대겠다는 공약이다.
얼핏 영미식 신자유주의의 극치처럼 보이지만 이 파격적 교육개혁의 모델은 사회민주주의의 산실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1992년부터 학부모는 물론이고 영리기구도 정부 재정으로 ‘자유학교’를 운영할 수 있도록 개혁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소외지역 학생들이 후진 공립학교에서 풀려나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게 돼 혜택을 가장 많이 받고 있다고 보수당은 강조한다. 1100개교에 중고교생의 20%가 다니는 이들 학교의 핵심은 선택과 경쟁이다. BBC는 “스웨덴 자유학교는 영리추구가 가능해 학력향상에 계속 힘쓸 수 있다”고까지 소개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학원의 학교화’인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EBS를 찾아 “사교육을 없애는 것이 정부목표”라고 했다. 사교육비가 학부모 등골을 빼먹는 건 사실이되, 정부가 사교육시장 없애기에 매달리는 것은 북한이 장마당(시장)을 없애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교육 금지를 시도한 나라도 전두환 정권 때의 우리나라나 미얀마 캄보디아 같은 독재국가 정도다. 상품이든 서비스든 공급이 독점되면 품질이 떨어지고, 그것도 공공부문이 독점하면 부패가 생기기 십상이다. 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교육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교육 번창은 세계 공통의 현상이 되고 있다.
교육학자들이 정부지원을 받아 최근 펴낸 연구집 ‘사교육: 현상과 대응’에 따르면 대만 중등학생의 81.2%, 베트남의 76.7%, 일본의 75.7%가 사교육을 받는다(한국은 77%). 교육열 높은 아시아만의 현상도 아니다. 그리스의 80%, 케냐의 68.8%, 그리고 선진국도 이스라엘에서 62%, 영국과 미국에선 30% 이상이 사교육을 받고 있다. 심지어 싱가포르 이스라엘정부는 사교육 지원까지 해준다. PISA 자료를 활용한 분석에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사교육 참여율이 과학 34.4%, 수학 46.4%였다. 미국의 대입자문을 위해 국가협의회가 배포한 ‘2009 대입에 대한 대비’ 자료는 사교육의 효과가 긍정적이라고 밝혔을 정도다.
사교육이 우리만의 비정상적 현상이 아니라면 정부가 한정된 자원과 공력을 사교육 박멸에 퍼붓는 건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상황에서든 더 나아지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은, 미안하지만 아무리 유능한 정부도 막지 못한다.
차라리 ‘전교조와의 전쟁’을 하라
이 정부가 전쟁을 불사해야 할 상대는 사교육시장이 아니라 공교육 내부에 있다. 교원평가에 전원 만점을 줌으로써 정부와 정책을 무력화하겠다는 전교조 교사들을 그냥 두고는 공교육은 사교육에 판판이 깨지게 돼 있다. 전교조가 지켜주는 철밥통 교권에 기대어 촌지와 접대를 일말의 가책도 없이 받아먹는 부패교사가 존재하는 한, 공교육개혁이란 불가능하다.
교육당국이 이런 현실을 모르고 있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모른 체한다면 교육비리의 공모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고도 교사 추천서를 중시하는 입학사정관제를 밀어붙이는 무모함이 놀랍다. 내 아이가 ‘학교의 인질’에서 풀려난 덕에 교사 눈치 안 보고 이런 글을 쓸 수 있어서 난 정말 다행이다.
김순덕
2010-05-03 02:53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