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 전지를 하며
김홍은
겨우내 한파에 시달리던 자연들은 어느새 봄에 젖어 싱그럽다. 양지바른 밭둑에는 파란 새싹들이 파릇파릇 눈웃음을 짓는 듯하다. 봄빛은 가냘픈 풀잎들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개울가 버드나무에도 푸른빛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대추나무는 앙상한 가지마다 다독다독 잎눈 트일 준비를 속으로 하고는 있겠지만 전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웅크렸던 마음도 나른한 몸짓으로 포근한 햇살아래 포실 포실한 흙을 만지니 손바닥이 보드라우며 간지럽다. 보송보송하게 돋아난 봄나물을 뜯는 소녀들의 다정한 목소리가 밭 가장자리로 흐르는 봄 물결소리처럼 정답게 소근 거린다.
대추나무 가지를 전정하면서 잘려지는 상처마다 안쓰럽기도 하지만, 잎 나고 꽃필 날을 기다리는 춘몽에 젖어본다. 어찌 나무인들 이 마음을 모르고 있으랴만, 춘우지정의 심정을 대추나무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자연그대로 자라게 내버려 두어도 나름대로 잘 자랄 것을 지나치게 억지를 부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날카로운 가시에 손을 찔리다보면 나도 모르게“앗 따가워”소리가 나오며 정신이 번쩍 든다. 이때마다 혹여 나무가 화가 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가지를 자를까 저 가지를 자를까 살피는 사이에 손목도 저려온다. 멋쩍게 커 올라간 줄기는 자르고, 땅에서 가까운 밑가지나 안으로 벋어나간 가지를 골라 속아내는 일도 눈썰미가 있어야 한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끊어낼 때는 아까운 생각에 요리조리 둘러보다 조심스럽게 전정가위를 들여댄다. 가지배열의 균형을 어릴 적에 잡아주어야 햇볕을 고루 받아 건강하게 잘 자라기 마련이다. 예로부터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고 하지 않던가.
어느새 봄날의 해도 살포시 기울고, 서녘 그림자가 길게 늘어선 가지사이로 바람결에 들려오는 산비탈 낙엽송 숲속의 장끼 울음도, 춘정이 가득하게 묻어있다. 모든 생명을 담은 자연들에게서 생동하는 봄의 의미를 다시금 느껴본다. 식물은 기온, 수분, 빛의 조건이 있어야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음이 자연의 이치이건만 나는 왜 이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고 있었는지.
올 여름에는 대추나무도 부쩍 크겠지. 잎도 많이 나와 잎자루 마디마디에 자잘하게 생긴 볼품없는 꽃이련만 잘 수정이 되어 열매도 풍성히 맺기를 바랐다. 보살핌은 소홀하면서 많은 수확을 바라는 마음은 어찌 게으른 농사꾼의 심보가 아니던가.
붉고 고운빛깔로 동글동글하게 익은 대추가 주렁주렁 매달림도 나무가 한 해 동안 고통스런 노력의 결과임을 모르랴 만,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살아왔음을 전지를 하면서 새삼 느꼈다. 금년은 정성된 마음으로 가꾸려 다짐을 해보나, 매사가 작심삼일에 불과할 뿐이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사랑을 베풀어야 그 보답이 오게 마련임을 알고 있지만 실행함이 그리 쉽지 않다. 살다보면 눈앞에 닥치는 이득만을 따르지 훗날의 즐거움은 잊는 게 일쑤다.
대추나무를 심은 지도 올해가 사년이 되었다. 어릴 때의 정성된 보살핌이 게으르다보니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지를 못했다. 심는 데만 급급하여 기초적인 사후대비는 않고, 얼른 대추가 달리기만을 욕심 부렸다.
대추나무는 잘 산다는 이유로, 묘목을 심기 전에 구덩이를 만들고 거름도 넣은 후 깨끗하고 고운 흙으로 덮는 정성이 생략되었다. 비가 오면 물이 잘 빠지도록 배수로를 만들었어야 하는데도 미처 생각을 못했다. 이로 하여 지난여름에는 배수가 되지 않아 고랑마다 물이 고여 나무가 자라지를 않았다. 요행이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농약도 겨우 한번 살포를 하다 보니 침식충이 발생하여 여러 나무가 아깝게 근원부위를 가해 받아 부러지고 말았다. 자주 세심한 관찰을 하지 못한 잘못을 어디다 하소연을 할 수 있는가. 매사 성급한 성격 탓으로 침착하게 따지지 않고 실행하는 바람에 후회를 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건만 또다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제는 많은 나무가 천구소병(天拘巢病)인, 일명 빗자루 병에 걸리지 않았을까 걱정이다. 아무래도 나뭇가지들이 정상이 아닌 상 싶다. 대추나무는 일반나무에 비하여 잎이 늦게 피어남에 새싹이 돋아날 때까지 참고 기다려보아야 할까보다.
강의시간에 가르치던 교과서 내용의 기억이 난다. 병에 걸리면 나무는 가지의 부분은 연한 황록색의 작은 잎이 빼곡히 자라 빗자루형태로 변하고 대추가 달리지 않는다. 병원균은 마이코프라스마로 치유가 어려우나 옥시테트라사이크린 수액을 만들어 나무에 주입하면 소생이 가능한 걸로 연구가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병에 걸리면 회생되기가 쉽지가 않다. 과거의 경험으로 보아 대추가 달려도 일반대추와는 다르게 육질이 보드랍지가 않고 뚝뚝했었다.
빗자루병은 마름무늬매미충에 의해 매개(媒介)되고 있으며, 대추나무, 뽕나무, 쥐똥나무 등을 기주식물(寄主植物)로 하고 있다. 하필이면 뽕나무 한그루가 대추나무 밭가에 외따로 서있어 오늘따라 눈길이 쏠렸다. 수십 년 묵은 뽕나무에서 어린뽕잎을 따 나물도 해먹고, 오디를 즐겨 따기도 하였으나 아깝지만 이제는 머지않아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는 명주실을 뽑아내던 누에의 먹이나무로 귀히 여겼던 뽕나무가 아니던가. 이제는 이기심에 의해 베어내야 함에 얼른 결정이 내려지지가 않는다. 대추나무나 뽕나무는 그 나름대로 쓰임새가 제각각 따로 있건만 병원균을 옮기는 매개충의 기주식물이니 고민스럽다. 대추나무관리는 부실하게 하고 애꿎은 뽕나무만 잘라버리는 격은 아닌지.
우리는 흔히 상황의 변화에 따라 유용지용(有用之用)에만 얽매이어 살아가다 더 소중함을 잃고 마는 경우가 많다. 뽕나무도 한때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유용한 나무로 소중하게 여겼으나 이제는 대추나무에 밀려 버림을 받게 되었다.
인간사 어찌 이런 일 뿐이겠는가. 사람이나 나무나 가치성을 지니고 있어야 존귀하게 여기기 마련이다. 어쩌면 자식의 유년교육도 대추나무를 전지하는 과정이나 무엇이 다르랴.
한그루의 과목을 심고 가꾸는 일도 정성을 쏟아야 맛있는 과일을 수확할 수 있음을 이제서 새삼 깨닫게 됨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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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등단
• 충북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 저서: 나무가 부르는 노래, 꽃이야기, 나무이야기 등
• 충북대학교 명예교수.
첫댓글 교수님 잘 읽었습니다. 저도 대추를 키우고 있는지라 마음에 와 닿는 글입니다. 농약을 몇 년 치지 않고 목초액으로 대신하였는데 작년 경우는 목초액도 여러 번 치지 못하여 빗자루 병으로 수확을 거의 못했습니다. 늦었지만 내일 쯤 처음으로 농약을 치려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맞아요 목초액, 영양제도 되고 벌레가 근접을 못하게 해준다는 목초액, 저도 경험이 있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나무나 사람이나 정성을 쏟아야하고 제대로 보살펴야 제구실을 하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 잘읽었습니다.
울엄니가 나의 유년교육도 대추나무 전지하듯 아픈 마음을 주셨더라면 망나니가 아닐수도 있었을 텐데!~
어머니 마음은 왜 그리도 약하셨는지!~~ㅊㅊ
"사람이나 나무나 가치성을 지니고 있어야 존귀하게 여기기 마련이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사랑을 베풀어야 그 보답이 오게 마련임을 알고 있지만 실행함이 그리 쉽지 않다.
어쩌면 자식의 유년교육도 대추나무를 전지하는 과정이나 무엇이 다르랴..'
소중한 교수님글 손모으고 천천히 감상 했습니다.
그리고 교훈도 받고 갑니다.고맙습니다 교수님.
교수님! 대추나무도 곡물이나 채소처럼 부지런히 가꾸고 정성을 드려야 하는군요.
대추나무는 심고 거름만 주면 잘 자라는 즐로만 알았습니다. 교훈이 되는 글 감상 잘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몇년전 보았던 대추나무들이 많이 컸지요?
환경은 원할치 않지만 병충해를 이겨내고 올해는 탐스럽고 붉은 대추가 주렁주렁 달리길 바래봅니다.
대추가 달리기까지 정성과 나무의 고뇌를 생각해보는 좋은글 감상 잘 하였습니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지금쭘은 대추나무 꽃이 노랗게 피여있을것입니다. 교수님의 정성에 풍성한 수확이 될것입니다. 시골에서는 비자루병에는 막걸리를 잘이용합니다.
지금은 전문약제를 예방차원에서 순이 나오기전 한번 처시면 될것임니다.대추꽃은 모두자화수정이라 잘 결실이됨니다 늦게피는것은 적과를 해주면 대추가 균일하게 큼니다.
인간사 어찌 이런 일 뿐이겠는가. 사람이나 나무나 가치성을 지니고 있어야 존귀하게 여기기 마련이다. 어쩌면 자식의 유년교육도 대추나무를 전지하는 과정이나 무엇이 다르랴.
교수님 글 잘 감상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