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在美)로 읽는 야화(夜話) 행랑아범 아들, 마당쇠
악랄(惡辣)하기로 소문난 부자(富者) 노 참봉
그에 버금가는 잔인(殘忍)한 둘째 아들
추운 새벽녘에 행랑아범 불러내 찬물을 퍼붓는데…
노 참봉은 만석꾼 부자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를 가는 패악(悖惡)의 화신이다.
그의 악행(惡行)은 끝이 없다. 장리(長利)쌀을 놓아 남의 논밭을 빼앗는 것은 기본 (基本)이고 반반한 소작인(小作人) 마누라 겁탈(劫奪)하기, 논 한마지기 떼주고 남의 딸 사와서 노리개 삼기, 고리(高利)를 놓았다가 남의 집 가로채기…. 한터의 그 넓은 들이 모두 노 참봉 논밭이고 사이사이 박힌 백여호의 세칸 초가(草家)집은 하나같이 노 참봉의 소작농(小作農)이다.
더 큰 문제는 노 참봉 삼남매(三男妹)의 패악(悖惡)질이 제 아비를 뺨친다는 것이다.
큰아들은 머리에 돌이 들어 있어 서당(書堂)에도 다니지 않고 저잣거리 왈패(曰牌)들과 어울려 온갖 못된 짓을 일삼는다. 한터 사람들은 큰아들을 만나면 알아서 고개를 숙이고 길옆으로 비켜서지만 타관(他官)에서 온 장사치들은 멋모르고 쳐다봤다가 코피가 터지는 봉변(逢變)을 당하기 일쑤다. 분을 못 참는 사람들은 고발(告發)을 하려고 관아(官衙)에 가보지만 사또고 이방(吏房)이고 포졸(捕卒)까지 노 참봉의 돈꾸러미를 안 먹은 사람이 없어 더 분통(憤痛)이 터지고 만다.
열여섯살 둘째 아들은 큰아들과 다르다. 생긴 것도 말쑥하고 머리도 영악(靈惡)스러워 벌써 초시에 합격(合格)한 후 과거(科擧) 준비(準備)에 골몰(汨沒), 아버지의 기대(企待) 를 한몸에 받고 있다. “우리 둘째는 장원급제(壯元及第)해 암행어사(暗行御史)가 될 거야.” 노 참봉은 항상(恒常) 큰소리다.
둘째 아들도 피는 못 속여 잔인(殘忍)함이 몸에 배어 있다가 가끔 겉으로 드러나면 피를 보고야 만다. 북풍한설(北風寒雪) 몰아치는 어느날 새벽녘, 공부하러 일어난 둘째 아들이 발로 문짝을 ‘쾅’ 차더니 “행랑아범 게 있느냐?” 소리치며 살을 에는 새벽 공기를 갈랐다. 고뿔이 심하게 든 행랑아범이 문간방(門間房)에서 기침을 쏟으며 나오자 다시 큰소리. “내 방 한번 만져봐. 얼음장이야!” 행랑아범이 이경(二更) 때 군불을 지펴놓았는데 노 참봉 막내딸이 밤늦게 다림질을 한다고 아궁이를 뒤적여 불이 꺼진 것이다.
행랑아범이 안마당에 꿇어앉자 둘째 아들이 찬물 한바가지를 퍼부었다. 행랑(行廊) 아범의 하나뿐인 피붙이인 열다섯살 마당쇠가 뛰쳐나와 얼음기둥이 된 아버지를 안고 행랑채 방으로 들어갔지만 벌써 동사(凍死)한 후(後)였다. 마당쇠는 짐승처럼 울부 짖으며 대문(大門)을 박차고 나가 눈밭을 뛰어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행랑아범의 시신(屍身)은 거적때기로 말아서 뒷산 눈밭에 묻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해는 뜨고 지고 세월(歲月)은 흘러갔다.
4년이 지난 어느날 밤, 그날도 매서운 한파(寒波)가 몰아닥쳤다. 한터 들판 끝자락, 나지막이 솟아오른 봉우리에 횃불이 오르고 “와-” 함성(喊聲)이 적막강산(寂寞江山)을 찢었다. 동학군(東學軍)이 몰려온 것이다.
동학군(東學軍)이 대궐(大闕) 같은 노 참봉 집으로 들이닥쳤다. 안방 사랑방(舍廊房)을 뒤졌지만 아무도 없었다. 늠름(凜凜)한 젊은 대장(大將)이 쌀뒤주를 밀치자 비밀(祕密) 통로(通路)가 나왔다. 그 속에 횃불 하나를 던지니 노 참봉을 필두(筆頭)로 온 식구가 줄줄이 나와 마당에 꿇어앉았다.
“비밀(祕密) 통로(通路)를 어떻게 단박에 찾았지?” 동학군(東學軍) 하나가 묻자 젊은 대장 (大將)이 대답했다. “내가 팠으니까.” 그는 4년 전(前)에 울부짖으며 사라졌던 행랑아범의 외아들 마당쇠였다.
마당쇠는 꿇어 앉은 노 참봉 둘째 아들에게 찬물 한바가지를 퍼부었다. 매서운 추위는 그의 몸을 얼음덩어리로 만들고 죽음의 공포(恐怖)는 그를 혼절(魂切)시켰다. ‘쿵’ 둘째 아들은 쓰러졌다. 노 참봉의 목을 치려는 동학군(東學軍)에게 젊은 대장(大將)이 말했다. “칼을 거둬. 목을 치면 고통(苦痛)이 여기서 끝나.”
동학군(東學軍)이 물러난 후 노 참봉은 동학군(東學軍)과의 약속(約束)대로 소작인(小作人) 들로부터 빼앗은 땅 문서(文書)를 모두 돌려주었다.
둘째 아들은 살았지만 머리를 다쳐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됐고, 노 참봉은 매일 밤 피를 한요강씩 토해냈다.
⇒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 어릴적에 어머님 말씀이 생각난다. 우 문사(禹 文士)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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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시어 감사하고 댓글주시어 따따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