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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과 결단의 달☜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8)
창25:22-23절) 다른 두 아들
우리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관계는 부모(父母) 자식(子息)이고, 또 형(兄)과 동생(弟)의 관계입니다. 물론 사람이 어렸을 때에는 부모보다 더 신뢰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형제보다 더 허물이 없는 사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라면서 어느 정도 자기 생각이 생기게 되면, 부모의 사이에도 갈등(葛藤)이 생기게 되고, 형제 사이도 갈라지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식구들 중에 유독 한 아들이나 딸이 다른 종교(宗敎)를 가지게 되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 또는 형제 사이의 관계도 달라지게됩니다.
심지어는 쌍둥이도 신앙에 있어서는 생각이 다를 때가 많이 있습니다.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두 형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두 형제의 아버지는 철저한 장로교 목사였는데, 아버지는 두 아들을 학교에 보내는 대신 집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들에게 플라이(fly)낚시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두 아들이 주위에 있는 자연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이 형제는 사이가 좋았는데, 형이 다른 아이와 싸움이 붙으면, 동생이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한밤중에 친구들과 함께 다른 집의 보트를 훔쳐서 이 보트로 폭포(瀑布)를 타고 내려오다가 배가 다 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자라면서 이 두 아들의 길은 달라졌습니다.
형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다트마우스 대학을 졸업하고, 시카고 대학의 강사가 됩니다. 그런데 동생은 신문사 기자(記者)가 되었지만, 노름에 빠져서 나중에 노름꾼들에게 무참하게 두들겨 맞고 죽게 됩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야생동물(野生動物)의 습성이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을 쳐도 이상하게 자꾸만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하나님의 은혜에 붙들려서 예수를 믿게 됩니다.
본문 말씀은 이삭이 오래 기다렸던 아내 리브가를 통해서 드디어 자식을 낳게 되는데, 쌍둥이 아들을 낳게 됩니다. 이 쌍둥이 아들은 외모(外貌)도 달랐고, 성격(性格)도 완전히 달랐는데, 결국 하나님에 대한 신앙까지도 달라지게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 두 쌍둥이 아들에 대하여 각각 다른 계획(計劃)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자식(子息)은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게 하시고, 어떤 자식(子息)은 내버려두셔서 자기 멋대로 살다가 망(亡)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가 믿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라, 태어나기도 전부터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계획(計劃)을 가지시고, 우리를 붙잡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Ⅰ.아이를 위하여 기도하는 이삭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子孫)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백세가 되어서야 겨우 이삭 한 명을 낳게 하셨습니다. 이삭은 자기 부인(婦人) 리브가를 만나는데, 무려 40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늦어서 결혼(結婚)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상당한 시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갖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이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면, 자식도 빨리빨리 결혼을 해서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삭은 결혼(結婚)도 늦고, 아이도 잘 생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전에 오래 기다리게 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좋은 것을 너무 빨리 주시고, 너무 쉽게 주시면 우리는 그것이 귀한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자식이나, 건강이나, 직장이나, 교회를 위해서 오래 기도하게 하십니다. 특히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는 오래 기도하지 않으면, 결코 주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삭은 자식의 문제를 두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25:21절)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아브라함의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山)에서 제물로 바치려고 했을 때, 이삭이 체험한 하나님은‘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 다 준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아무리 기다려도 자식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로 하여금 오래 기다리게 하시는 것은 기도하게 하시려는 목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필요한 모든 것을 기도해서 응답받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 가치(價値)를 모르거나, 내가 잘나서 된 줄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이삭은 아들이 생기도록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삭의 기도를 들으시고, 리브가로 하여금 임신(妊娠)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리브가가 어느 정도 배가 부르게 되었을 때, 배가 격동(激動)하기 시작하는데, 밤낮의 구별이 없었습니다.
보통 임신부(姙娠婦)들은 배가 어느 정도 부른 후에 뱃속에 있는 아이가 발로 배를 찰 때, 그것을 느끼고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아기가 뱃속에서 발길질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요동(搖動)을 치는데, 도저히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견디다 못해서 하나님께 기도로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하나님 제 배가 너무 요동을 치고 무슨 난리가 나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는 것입니까?’
요즘 같으면, 산부인과(産婦人科)에 가서 초음파(超音波)로 찍어보면 쌍둥이를 임신했으며, 쌍둥이들이 매일 뱃속에서 치고 박고 싸운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초음파(超音波)라는 것이 없어서 리브가는 이 요동(搖動)질의 원인을 알지 못해서 자기가 죽는 줄 알고, 깊이 근심을 했습니다.
리브가는 속으로 25:22절)...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라고 했는데, 다른 번역에는‘이러면 도대체 내가 어떻게 살꼬?’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리브가는 자기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격동(激動)으로 인하여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리브가는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물었을 때, 하나님은 놀라운 응답을 주셨습니다. 25:23절)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은 리브가의 기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응답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주 중요한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에게 ‘네 배가 쉴 새 없이 격동하는 것은 뱃속에 쌍둥이가 있는데 이 쌍둥이가 계속 싸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리브가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해 주었습니다.
리브가의 뱃속에는 쌍둥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쌍둥이는 무엇을 아는지, 세상에 태어날 때까지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고, 서로 이기려고 발로 차고, 싸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쌍둥이가 뱃속에서부터 서로 싸우게 될까? 하나님은 이 쌍둥이의 미래에 대한 말씀을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쌍둥이 사이에 민족(民族)이 갈라지게 될 것이며, 더 중요한 것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사람은 형이 아니라, 동생인 것입니다. 보통 형제는 형이 아무리 성격이 달라도 서로 형제우애를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때때로 아무리 형제 사이라고 하지만, 돈 때문에 서로 멀어지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고대(古代) 왕족(王族) 같은 경우에는 형제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살인(殺人)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은 리브가에게 뱃속의 아이가 서로 민족(民族)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이데올로기(Ideologie)때문에 민족(民族)이 갈라진 상태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북한(北韓)은 같은 민족(民族)이지만, 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의 두 아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서로 민족(民族)이 갈라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큰 자를 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작은 자를 택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큰 자가 은혜(恩惠)를 받을 수 있는 길은 작은 자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은 우리의 노력(努力)이나, 우연(偶然)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선택(選擇)하시고, 예정(豫定)하신 것에 따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하여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이 선택의 교리입니다. 이 교리(敎理)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擇)하신 것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를 일방적으로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당장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운명(運命)을 결정하셨다면, 우리 인간의 의사(意思)를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반발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성(本性)을 바로 안다면, 이 하나님의 선택(選擇)에 대하여 감사드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 중에서 그냥 두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자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시51:5절)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우리 인간은 모두 뼈가 만들어질 때부터 죄(罪)에 오염(汚染)된 존재입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나 처음부터 죄(罪)가운데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 중에서 자동적(自動的)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이삭의 두 쌍둥이 아들은 둘 다 죄인(罪人)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중에 하나를 택(擇)하셔서 한평생 설득(說得)하시고 감동(感動)을 주셔서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그가 처음부터 경건(敬虔)했거나, 착실(着實)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야곱이 나기도 전에 그를 주목하시고, 붙잡으셔서 결국 변화시키셨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또 다른 하나의 의문(疑問)이 생기는데, 그것은 왜 하나님은 쌍둥이 모두를 선택(選擇)하시지 않으셨느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공평(公平)하게 둘 모두를 선택(選擇)했거나, 버리셨다면, 우리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불공평(不公平)하게 하나는 택(擇)하시고, 하나는 버리셨을까? 하는 의문(疑問)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主權)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인간을 구원(救援)하셔야 할 책임이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모두를 구원(救援)하셔야만 하는 책임이나, 의무(義務)를 가지셨다면, 인간의 구원(救援)에 대하여 모두 당연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자들은 구원(救援)하셔서 영생(永生)을 누리게 하시고, 어떤 자들은 자기 욕심대로 살아서 멸망(滅亡)하게 하심으로 구원(救援)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인지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는 사람의 겉모습만 보아서는 택(擇)한 자와 택하지 않은 자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택(擇)함 받지 않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멸(輕蔑)합니다. (경멸=깔보고 가볍게 여기고 업신여김)
그리고 자기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똑똑하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택(擇)함 받지 못한 자는 이 세상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擇)함을 받은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Ⅱ.두 아들의 성장
26:24-26절)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결국 리브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쌍둥이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이 쌍둥이 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너무나도 달랐습니다.‘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다’고 했습니다.
큰 아들 에서는 온 몸이 붉어서 일단 혈기(血氣)가 넘쳤고, 아기임에도 불구하고, 몸에 털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거의 아기 짐승 같은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둘째 아들은 몸이 매끈매끈하고, 붉지도 않았는데, 나오면서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습니다. 아마 아기이지만, 속으로‘어딜 네게 먼저 나가려고 해!’하면서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아기들이 무슨 힘이 있기에 발꿈치를 잡느냐? 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엄마나 이모(姨母)가 머리카락을 한번 붙잡히면, 쉽게 빼내기가 어렵습니다. 아기들도 손으로 잡는 힘이 얼마나 센지 모릅니다.
그래서 두 아이의 이름을 짓기를 큰 아이는‘붉다’고 해서‘에서’라고 지었고, 둘째 아이는‘발꿈치를 잡았다’고 해서‘야곱’이라고 했습니다. 고대(古代)인들은 씨름을 자주했습니다. 그런데 씨름에서 넘어지는 체 하면서 상대방의 발꿈치를 잡고, 상대방을 쓰러트리는 기술(技術)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발꿈치를 잡는다는 것은 상대방을 속이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발꿈치 잡다’를 뜻하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태어난 두 아이는 모두 좀 특이했습니다. 하나는 들짐승에 가까울 정도로 털이 덮어 있었고, 혈기(血氣)덩어리였습니다. 원래 아기들은 악을 쓰면서 울 때, 전신이 빨갛게 됩니다. 그래서 일본어에서도 아기를‘아카짱(あかちゃん)이라고 하는데, 빨갛다는 뜻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작은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아 쓰러트리려고 하는 사기꾼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같으면, 짐승같이 미련한 형이 더 좋을까? 아니면 속이기 잘하는 사기꾼 같은 동생이 더 좋을까?
아무래도 우리가 하나님 같으면, 사기꾼 같은 동생보다는 짐승 같은 큰 아들 에서가 더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택(擇)하셔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성경(聖經)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의 공로(功勞)나 재능(才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前)에 하나님이 우리를 택(擇)하시고 설득(說得)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 믿고, 축복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選擇)의 교리(敎理)를 들을 때에 하나님이 불공평(不公平)하시다고 불평(不平)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이토록 변화시킨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또 우리는 우리 자신이 변화(變化)된 것을 생각할 때, 다른 어느 누구도 변(變)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은 다 구원하셔야 하는 의무(義務)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家族)중에서 끝까지 하나님을 거부(拒否)하고,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저 사람들을 구원하시지 않으실까? 원망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오직 자신의 미련한 고집 때문에 멸망(滅亡)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책임(責任)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단 이 세상을 사는 동안은 자유롭게 살았습니다.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에서와 야곱은 서로 다른 성격(性格)을 가졌을 뿐 아니라, 자라면서 사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25:27절)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에서는 상당히 남성적(男性的)인 사람이었습니다. 고대(古代) 사회는 힘이 지배하는 사회였기 때문에 남자로서는 가장 우대(優待)받고, 인기(人氣)있는 사람은 힘이 있고, 남성적(男性的)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서의 직업은 그 당시에 가장 남성적(男性的)인 직업인 사냥꾼이 되었습니다. 우선 사냥꾼은 힘이 있고, 행동이 아주 재빨랐으며 결단성(決斷性)이 있었습니다.
사냥꾼들은 사슴이나, 노루나, 곰을 찾아서 며칠이나, 몇 주 동안 뒤를 추격해서 결국 단 한발의 총알과 화살로 짐승을 거꾸러뜨려 잡아서 돌아오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사냥 잘하는 사람들을 영웅(英雄)으로 생각했고, 또 이런 사냥꾼들이 전쟁(戰爭)도 잘했기 때문에 무슨 큰 일이 있으면 가강 필요한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고, 언제나 집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집안일을 잘했고, 양(羊)들을 잘 돌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 사회는 남자가 집안일을 잘하는 것은 별로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은 너무 여성적(女性的)이라고, 무시(無視)를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텐트(tent)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자기 집의 비밀(秘密)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 집이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복(福)이 상속되는 집이란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반드시 이 하나님의 복(福)을 가지려고 결심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이 놀라운 복(福)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Ⅲ.에서와 야곱의 거래
어렸을 때, 부모님께 용돈을 받으면, 당장 무엇을 사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나중을 대비하여 착실하게 아껴두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보면, 당장 사 먹어버린 아이가 용돈을 아껴 모은 아이에게 돈을 좀 빌려 달라고 사정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조금 모은 것을 다 써버리느냐? 아니면 미래를 위하여 아껴 두어야 하는지는 언제나 우리의 딜레마(dilemma)입니다. 어느 날 야곱이 집에서 죽을 쑤고 있는데, 에서가 사냥으로 대단히 지치고, 피곤한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에서는 야곱이 팥죽을 쑤는 것을 보자, 당장 야곱에게‘그 붉은 것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25:29-30절)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에서는 너무나도 배가 고픈 상태에서 돌아왔기 때문에 죽을 달과는 소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에서는 오직‘저 붉은 것’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너무 배가 고프면,‘밥을 좀 달라’는 소리도 나오지 않습니다. 즉‘제발 저 흰 것을 좀 달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본문을 보면 형은 지금 배가 고파서 거의 숨이 다 넘어갈 지경인데, 동생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깐죽대면서 자기의 요구 사항만 말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야곱은 드디어 오랫동안 마음속에 감추고 있었던 비장(祕藏)의 카드(card)를 꺼냈습니다. 그것은 형에게 *이 팥죽을 줄 테니까 형의 장자(長子)의 명분(名分)을 자기에게 팔라*는 것이었습니다.
26:31절)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다시 말해서 야곱은 이 팥죽과 장자의 명분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여기서 장자의 명분을 판다는 것은 단순히 형과 동생의 순서를 바꾸자는 뜻이 아닙니다.
에서에게 장자(長子)의 모든 권리(權利)를 포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야곱은 이것이 두고두고 억울했을 수도 있습니다. 형과 자기는 쌍둥이인데, 단지 나올 때, 순서가 늦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비록 아기이지만. 너무나도 원통해서 발꿈치를 잡고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에 대한. 에서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에서가 이 말을 들으면, 화를 내면서‘당장 집어치우라’고 야단을 칠 줄 알았는데, 당장 장자(長子)권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즉 지금 배가 고파서 죽게 되었는데, 그런 장자(長子)권 같은 것은 가지고 있어서 무엇을 하겠느냐? 고 하면서 당장 팥죽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맹세(盟誓)를 하라고 하니까 에서는 기꺼이 맹세(盟誓)까지 했습니다.
옛날에 장자(長子)는 다른 형제에 비해 유산(遺産)의 갑절을 상속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영적(靈的)인 장자(長子)권이었습니다.영적(靈的)인 장자(長子)권은 하나님의 복(福)을 가질 수 있는 권한(權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네가 복이 될지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그 말씀과 기도의 축복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의 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축복 권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복(福)은 먼저 가지는 사람이 임자이지만, 이것은 진짜 복(福)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장자(長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이것이 엄청나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禮拜)의 복(福)이 있습니다. 예배(禮拜)가운데, 하나님과 교제(交際)하는 감동(感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죄(罪)용서가 있었고, 모든 시험(試驗)을 이기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 장자(長子)권은 돈으로 사거나, 팔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팥죽으로는 더더욱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장자(長子)권을 포기할 수는 있었습니다.
25:34절)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물론 하나님의 이 복(福)은 가지고 싶다고 해서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福)을 업신여기는 자는 결코 가질 수가 없습니다. 에서가 이 하나님의 축복을 소홀히 생각한 이유는 너무 현실적(現實的)인 생각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당장 먹고, 당장 편하고, 당장 재미있게 지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에서는 기회주의자(機會主義者)였고, 철저하게 미래의 복(福)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에서는 너무나도 작은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長子)의 축복권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반드시 축복된 미래(未來)의 약속(約束)이 있습니다. 우리가 에서같이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하면, 결코 하나님의 큰 복(福)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앞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축복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모두 다 미래(未來)의 약속(約束)의 행태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신앙의 인물(人物)들은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위대한 복(福)이 있습니다. 너무 이 세상의 썩을 작은 것에 눈이 어두워 이 엄청난 복(福)을 버리지 마시고, 지금 꾹 참고, 인내(忍耐)하여 미래(未來)에 큰 복(福)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찬송가 483장 *구름 같은 이 세상*
12월 4일 첫 주일 예배
▣알림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교갱원은 1단계 묵상, 생명의 양식과 필수과목(26과). 2단계 생명의 양식과 전도학교(13과).3단계 생명의 양식과 청지기 대학(17과)으로 정예부대가 됩니다. 누구든지 전화신청받습니다(유료 : 각 교재 1과당=1만원, 방법 : 교갱원 설립 때까지 임시 영상으로)
※새벽(冬)5-6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집시다.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46:5)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늘에 보물 쌓을 創立member ▽교갱원 설립할 온라인 특별 헌금▽
농협 NH콕뱅크 302-8772-0191-01(헌금 종류)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궁금한 내용 문의 ☞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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