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수(攝受)와 절복(折伏)의 방편행 / 종범 스님.
부처님의 대자대비:
섭수(攝受)와 절복(折伏)의 방편행(2)
『화엄경』권66,「입법계품」제39, 53선지식(善知識) 중
무염족왕(無厭足王)선지식의 법문을 기록한 경문에서
절복의 방편행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기술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선재(善財)동자는 구도행을 계속하여
만당성(滿幢城)에 이르러 무염족왕이 머무는 곳을 물었다.
사람들은 대답하기를 ‘무염족왕이 왕궁에 머물면서
왕법으로 중생을 교화하는데 다스릴 사람은 다스리고,
인도할 사람은 인도하며, 죄악을 지은 이는 벌을 주고,
다툼이 있을 때는 판결을 내리고,
고독하고 빈궁한 이들은 보살펴주어서
중생들로 하여금 십악(十惡)의 죄업을 완전히 끊고
멀리 여의게 한다.’ 고 하였다.
선재동자는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무염족왕을 찾아갔다.
멀리서 보니 무염족왕은 많은 장식품과 대신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왕의 앞에는 십만 명의 군졸이 있는데
생김새가 험상궂고 의복이 누추하며 무기를 들고서
눈을 부릅뜨고 손을 내젓고 다니어서
보는 이마다 모두 두려워하였다.
중생들이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타인의 생명을 해치는 등의 악업을 지으면
그들을 포박하여 왕 앞에 끌고 가서 형벌을 받게 했다.
왕은 끌려온 이들에게 범한 죄에 따라 손발을 끊기도 하고,
귀와 코를 베기도 하고, 눈을 뽑기도 하고,
참수형을 내려 목을 베기도 하고, 피부를 벗겨내기도 하고,
몸을 해체시키기도 하고, 끓는 물에 삶기도 하고,
맹렬한 불에 태우기도 하고, 높은 산에 끌고 올라가서
밀어 떨어뜨리기도 하였다.
이런 고통 받는 형상이 끝이 없었다.
울부짖고 통곡하는 광경은 모든 지옥을
다 모아놓은 것과 같았다.
선재동자는 이런 상황을 보고 생각했다.
‘나는 중생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보살행을 구하고
보살도를 닦는데, 무염족왕은 모든 선법을 파괴하고
큰 죄업을 지으며, 중생을 핍박하여 생명을 뺏으면서도
미래에 받을 악업의 과보(果報)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어찌 여기서 법을 구하여
자비심으로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겠는가?’
선재동자가 이런 생각을 할 때에 허공에서 말이 들렸다.
‘선지식은 그대를 인도하여 험난하지 않고
편안한 곳에 이르게 하리라.
보살의 방편지혜가 불가사의하며,
중생을 인도하는 지혜가 불가사의하며,
중생을 보살피는 지혜가 불가사의하며,
중생을 성숙하게 하는 지혜가 불가사의하며,
중생을 수호하는 지혜가 불가사의하며,
중생을 해탈로 인도하는 지혜가 불가사의하며,
중생을 조복(調伏)시키는 지혜가 불가사의하다.’
선재동자는 이런 말을 듣고
무염족왕에게 가서 가르침을 청했다.
무염족왕은 선재동자를 데리고 궁중으로 들어가서
여러 시설과 법도를 보여주었다.
모든 것이 여법하고 품격이 높아서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어서 무염족왕은 말했다.
“내가 만약 참으로 악업을 짓는다면
어떻게 이와 같은 지위와 세력을 유지하겠는가?
나는 환술(幻術)로 여러 가지 모습을 보이는 해탈을 얻었다.
나의 국토에 있는 중생들은 악업을 많이 지어서
다른 방법으로는 악업을 버리게 하지 못한다.
환술로 죄짓고 벌 받는 악인을 보여줘서
중생들로 하여금 악행을 버리고 십선(十善)을 닦아
마침내 지혜의 세계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나는 일찍이 한 중생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았다.”
이상은 무염족왕의 법문을 요약해서 옮긴 것이다.
형벌과 공포의 포악한 행위가
보살이 실제로 죄악을 짓는 것이 아니라,
환술로 만들어 보여줘서 중생이 스스로 악행을 버리고
선행을 닦게 하는 자비의 방편행임을 설명하였다.
마음은 보리심과 무명심이 있다.
보리심은 지혜심? 자비심? 서원심이고,
무명(無明)심은 탐욕심? 분노심? 우치심이다.
보리심을 쓰면 보살이고 선지식이며,
무명심을 쓰면 범부이고 중생이다.
그런데 중생을 보살피고
중생을 성숙하게 하는 보살의 자비행이 불가사의하다.
인도할 사람은 인도하고, 다스릴 사람은 다스린다.
이것이 보살의 섭수와 절복의 자비행이다.
보살은 어떠한 절복의 무서운 행위를 보이더라도
그것은 자비심을 실천하는 방편행일 뿐이다.
보살은 불가사의한 자비행으로
중생을 복덕과 해탈의 세계로 인도한다.
출처 : 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