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의 ‘주역이고픈 그 낯빛’
지난 겨울 서울의 변두리에 있는 노인학교에 새 번째 강연하러 갔던 때의 일이다. 시작은 오후 한 시부터인데 오전에 겹친 일들이 있어 허둥대다가 점심을 못 먹은 채 버스에서 내리니 20분의 여유가 있었다. 그 순간 새삼 시장기가 도져 둘레를 두리번거렸으나 하늘을 오르다 만 고층 아파트 건물들 뿐이고 어디에도 식당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마침 길가에서 순두부를 끓여 파는 노점 하나가 눈에 뛰어 다가가니, 절로 군침이 꿀꺽 삼켜지는 것이었다.
체면불구하고 뜨거운 국물을 부은 냄비를 받아들고 막 숟갈질하려는데, 갑자기 바람이 일더니, 인도와 차도에서 낙엽들의 깡마를 떼죽음이 그물에 몰리는 물고기떼처럼 몰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도 허허로워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눈빛을 신호로 알았는지, 가로수의 가지에서 낙엽 하나가 너울너울 날아와 냄비그릇에 앉는 것이었다. 당황해하는 노점 아줌마가 내미는 손짓을 막고 한참 있으려니, 앉아있는 돌층계가 어지간히 차가웠다. 눈앞에서 구부정한 노인학교 수험생들이 나를 힐끔힐끔 처다보고는 소근대며 지나갔다. 순두부에 납죽 늘어진 낙엽과 노점의 순두부 – 그 삼박자에서 낙엽을 뻬니, 어쩐지 바람이 심술처럼 스산하다. 하늘은 마냥 드높기만 하여 반사적으로 내 삶의 황혼이 왜소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가을은 욕심을 버리게 한다더니---.
그날따라 나의 강연의 주제는 방정맞게도 ‘고려장 이야기’였다. 달 밝은 가을 밤, 퉁소 부는 사람은 그 애절한 가락에 의해 처량한 심정을 달랜다 했듯이, 노인들에게 지금 한창 젊은 젊음을 발산하고 있는 그들을 이해시키는 것보다, 이것저것 달래지지 않는 노인들의 공허한 가슴에 퉁소 소리 같은 걸 한 곡조 찡하니 들려주는 것이 적선일 것 같았다. 3백소 소리같은 한 곡조 찡하니 들려주는 것이 적선일 것이다. 3백 명 가까운 수강생이 거의가 할머니들이라 그런지 설움도 많고 눈물 또한 흔하다.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괜한 아첨이 아니라 의무라고 여겨진다. 위안을 주어야 한다. 한 그루 바람막이 나목으로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성이라는 이름보다는 어머니라는 이름이 더 아름답고 소중합니다. 여러분은 영원히 이 나라의 자랑스러운 어머니인 것입니다. 더구나 오늘의 풍요로운 터전을 다지느라고 오직 피와 땀에 절어온 여러분이 아닙니까? 그런 여러분의 경륜과 긍지와 발언권은 어디로 가고, 또 모든 덕목의 으뜸으로 살아오던 효는 어디로 가고, 개나 고양이와 동격인 3등 가족으로 밀려났을뿐 아니라, 심심찮게 현대판 고려장의 제물이 되다니요?”
이런 나의 서두에, 꾸벅꾸벅 졸던 시선들이 일제히 긴장으로 번뜩이며 목메이 듯 한 표정으로 나에게 쏠리는 것이다. 뒤늦게 요란한 박수 소리도. 그것은 결코 선동이 아니다. 그들이 가을에 설 자리를 잃는다면, 다가올 겨울엔 초라한 죽음으로 버려질 것이 뻔하다는 공감대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발로였다. 나는 다소 흥분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실망한 일은 있어도 너에게 실망한 일은 없었다.’ 이는 파리 근교의 애완동물 공동묘지에 있는 묘비명 이라고 한다. 7년 동안 함께 살아온 개를 묻으며 어느 부부가 적어놓은 글이란다.
우리나라 고사 중에도 고려말 개성에 부모를 잃은 눈먼 아이가 있었다. 그 집의 개가 꼬리를 내밀어 아이에게 이걸 붙잡게 하여 길잡이를 해주었다. 그 애기를 조정에서 듣고 개에게 정3품 벼슬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의 부모가 우리를 길러준 세월의 길이나 애정의 깊이가 그 개들보다 못해서 천덕꾸러기가 됐다는 건가. 아니면 난데없이 개보다 못한 불효자들이 쏟아져 내렸다는 말인가. 도대체 이게 무슨 업보인가.
18세가 되기까지 소녀는 훌륭한 부모가 필요하다. 그 나이가 지나 35세까지는 아름다운 용모가 필요하다. 45세까지는 원만한 성품이 필요하다. 55세 이상이 되면 돈이 많아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차마 그들에게 ‘너무 일찍 모두 물려줘서 가슴이 몹시 허전한 거죠?’라고 묻진 못했다.
그들 저마다 그런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러지 말았을 것을 ---
그때 그러지 말았을 것을 ---
그런 뉘우침이 역력한 가운데도 주역이고파 하는 노인들의 낯빛들, 그것은 모두에게 덧샘이고파 하는 빛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