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5일 “3분의 기적” (하루 3분의 말씀 묵상을 통해 당신의 삶에 기적을 체험하세요!)
제목: 예수님의 고난을 따르는 제자의 길
[이사야 53:1]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이 태어날 때 말, 코끼리, 나귀가 옆에 있었다고 합니다.
말과 코끼리는 아기 예수를 말구유에서 태어난 가난뱅이라고 놀렸습니다.
그런데 나귀는 "이 아이는 장차 왕이 될 거래"라고 말하며 아기를 존귀하게 여겼습니다.
말과 코끼리는 왕을 태우는 데는 자기가 최고라며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나귀는 말처럼 날쌔지도, 코끼리처럼 힘이 세거나 크지도 않아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내세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이 겸손한 나귀를 타고 왕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나귀는 사람이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어린 나귀새끼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태어나기 500년 전에 씌여진 스가랴에서 말씀하신 예언의 성취입니다.
[스가랴 9:9] ~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사람이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어린 나귀새끼는 ‘거룩’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죄와는 상관없는 거룩한 왕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또한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거룩해야 함을, 세상과는 구별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입성하실 때 수많은 유대인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를 외치며 열렬히 환영했고, 극진히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는 '승리'의 상징으로 왕자를 환영하는 극진한 대우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왜 예수님이 오셨는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전혀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타보지 않았던 나귀새끼를 타고 겸손의 왕, 섬김의 왕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나귀새끼를 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호산나”라고 외쳤습니다.
‘호산나’는 '지금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로마의 정부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실 정치적인 메시아로 생각하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치적 메시야를 뛰어넘어 온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온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아로. 온 인류를 구원해주실 만유의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창과 칼을 휘두르며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로마를 정복하기 위해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기 위해 고난 받고 결국 죽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1:15~18]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
예수님은 마지막 예루살렘 여행길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시며 우셨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기위해 짐승을 데리고 왔고 오는 도중에 상처가 날 수도 있기에 상처 나지 않은 것과 교환해서 제물로 드릴 수 있도록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준비했습니다.
반 세겔의 성전세를 내야 하는데 로마 돈은 이방인의 화폐이기 때문에 하나님 집에 돈을 낼 때는 세겔로 바꿔야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화폐를 세겔로 바꿔주는 환전소가 필요했습니다. 이 일 자체는 좋은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동기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환전하는 과정에서 이익이 생겼고, 이익이 생기니까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예배를 지배하게 됐고, 성소를 지배하게 됐습니다. 성전에서 물건을 바꿔주는 사람들이 장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점점 심해져 제사장과 짜고 물건을 팔게 됐습니다.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장사에 우선 순위를 두고 신경을 썼습니다. 사람들의 눈은 모두 이익에 충혈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보고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동기, 선한 동기로 일을 시작합니다. 그러다 그것이 이해관계와 맞물리고 이익이 생기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마음은 짐승처럼 변하기 시작합니다. 겉으로는 양과 천사같이 말하면서 실제로는 그 안에 강도의 소굴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