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된 출판사만 있나? 우리가 찾은 또 다른 '100' 이야기들!
1. 한국 출판 100년사 객관식 모의고사
○…근대 인쇄술을 이용하여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단행본 <충효경집주합벽>을 발간했던 국내 최초의 민간 출판사는?
①서울문화사 ②광인사 ③창비 ④위즈덤하우스
○…육당 최남선이 창업하였으며 지금까지 국내에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출판사는?
①동명사 ②마음산책 ③민음사 ④중앙 M&B
○…근대 출판이 태동하던 시기, 국내 최초의 베스트셀러 소설로 꼽히는 작품은?
①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②조흔파의 <얄개전> ③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④이광수의 <무정>
○…1988년 납북·월북 작가들의 해금 조치가 내려진 후 처음으로 정식으로 시집이 출간되었으며, 1989년엔 이동원, 박인수 듀엣의 노래 <향수>로도 큰 인기를 모았던 시인의 이름은?
①윤동주 ②서정주 ③백석 ④정지용
○…다음 중 1970년~1980년대 국내 베스트셀러에 대한 설명 중 틀린 부분이 있는 것은?
①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는 단편소설이다. ②김홍신의 <인간시장> 주인공의 원래 이름은 '장총찬'이 아니라 '권총찬'이었다. ③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은 기독교의 '신의 아들'과 전설 속의 '사람의 아들' 사이에서 방황하는 젊은 신학도의 고뇌를 그렸다. ④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은 "나는 소설이나 책에 대해서는 좆도 모른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정답) 순서대로 ②, ①, ④, ④, ③
참고한 책 <우리출판 100년>(이중한·이두영·양문길·양평 지음, 현암사 펴냄)
2. 100년을 이어온 보물창고, 인쇄소 '보진재'
보진재(寶晉齋), 이름만 들어서는 뭘 하는 곳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한의원? 고미술상? 모두 아니다. 이곳은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한국 최고(最古)의 인쇄소다. 1912년 창업주 김진환이 처음 이곳을 세운 이래, 그가 흠모하던 북송의 4대 서예가 미불(米芾)의 서재 이름에서 따온 회사명을 고스란히 지켜왔다.
20세기 초 근대적 형태의 책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조선 인쇄소가 여럿 생겨났으나, 자금과 기술 부족, 일본 회사들의 조직적인 방해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환 창업주가 보진재를 세우고 예상되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을까.
보진재의 김덕환 총무팀장에 따르면, 창업주 김진환은 "대한제국 학부(현재 교육과학기술부)의 국립교육협회 교관으로 재직하며 당시 교과서 편찬 과업에 종사하던 중, 조선의 국권이 빼앗기는 것을 목격하고 국민의 보편적인 교육에 뛰어들겠다는 일념으로 보진재를 시작했다"고 한다.
창업의 또 다른 이유로는, 미술에 대한 창업주의 열정 때문에 전문적인 미술 인쇄에 대한 열망도 컸다. "창업 초기부터 원색 미술 인쇄에 중점을 둔다는 기술적인 강점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 인쇄소의 견제에도" 버틸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일제 말기인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가 역경을 무릅쓰고 편찬해온 <조선어 사전>의 인쇄를 의뢰받아 진행 중, 일제의 우리 말 말살 기도에 의한 조선어학회사건이 발생하자 보진재가 갖고 있던 모든 컷과 원고와 원판, 교정쇄 등을 감추었다. 그래서 해방 후에 무사히 사전이 발간될 수 있었다."
글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디자인이 아무리 훌륭해도 책이라는 물질적인 형태를 실제로 제작하는 인쇄소의 능력이 떨어진다면 소용없을 것이다. 보진재가 100년이라는 세월 동안 꾸준히 인쇄업 하나만을 지속해올 수 있었던 데에는 인쇄의 최신 기술과 세계적인 트렌드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온 바가 클 것이다.
그에 대해 김덕환 총무팀장은 "보진재가 창업 초 도입한 석판 인쇄술은 지금까지도 인쇄의 주된 공법으로 사용되는 옵셋 인쇄의 초기 형태로서, 목활자와 금속활자에 의한 먹 인쇄의 한계를 뛰어 넘어 칼라 인쇄까지 가능하게 만든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이후 민간 업체 최초로 1924년 옵셋 인쇄기 도입, 1935년 원색 프로세스 인쇄술 도입, 1956년 국내 최초의 사진 원색 분해 시작 등을 시도해왔다"고 했다. 눈 밝고 발 빠른 이들의 노력으로, 지금까지도 인쇄 공정의 디지털화 등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출판 인쇄와 상업 인쇄 분야에서만 100년을 종사해온 보진재는, 현재 스마트폰과 e-북의 도전 앞에 종이 책의 달라진 위상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김덕환 총무 팀장은 "종이 책은 발행 부수가 더욱 줄어들고 고급화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인쇄기의 디지털화 인쇄 제본의 단일 연결 공정화 등이 앞으로 인쇄업이 가야될 길이 될 것 같다"라며 대처 방안을 밝혔다. 또 다른 100년도 문제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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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진재 | 3. 책 귀신도 살겠지? 서양의 옛 서점들
이왕이면 다홍치마, 이왕이면 새 서점보다는 오래된 서점. 굳이 고색창연한 옛 서점을 찾아 들어가 구경하다 보면, 온라인 서점에서는 '품절'이라고 떴던 어떤 책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책장 한 군데 꽂혀 있는 걸 찾아낼 수도 있다. 그 즐거움을 아는 이라면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만화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에 등장하는, 헌책방에서 몇 시간이고 서서 책을 읽다가 급기야 쫓겨나는 책 귀신들의 심정을 알고도 남을 터다.
이 자리에서 소개하는 100년 역사를 훌쩍 뛰어넘는 서양의 오래된 서점들 한 귀퉁이에도 그런 귀신들이 살지 모른다. 또 하나의 공통점, 100년을 견디는 공간들은 공통적으로 다른 어느 곳과도 비교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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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의 명문 서점>(라이너 모리츠 글, 레토 군틀리·아지 시몽이스 사진, 박병화 옮김, 프로네시스 펴냄). ⓒ프로네시스 |
| 이 서점들의 소개 글은 <유럽의 명문 서점>(라이너 모리츠 글, 레토 군틀리·아지 시몽이스 사진, 박병화 옮김, 프로네시스 펴냄) 중에서 발췌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제임스 조이스,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의 작가들이 즐겨 찾았던 파리의 영어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조차도 100년 역사에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파리의 또 다른 영어 서점 갈리냐니 서점은 1856년 이래 오랜 시간 동안 파리 중심가 리볼리 거리를 지켜왔다.
<적과 흑>의 작가 스탕달부터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배우 이자벨 아자니와 험프리 보가트, 마를레네 디트리히, 뮤지션 믹 재거,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버트런트 러셀 등이 갈리냐니의 단골이었다.
파리에는 또 다른 100년 역사의 오귀스트 블레조 서점도 존재감을 과시한다. 1853년 처음 문을 열었으며, 센 강 우안(右岸)의 고급스럽고 부유한 지역에 위치한 서점이다. 볼테르의 <캉디드> 1759년 초판본을 전시하는 등 프랑스 문학과 화집의 오래된 판본을 전문으로 취급하고 있다.
포르투갈의 아름다운 도시 포르투에는 오로지 1869년 이래 명성을 떨치고 있는 렐루 서점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찾아드는 관광객이 무수히 많다. 1906년 건축가 크란시스쿠 사비에르 에스테베스가 지은 아르데코 풍 석조 건물의 뛰어난 아름다움 때문이다. 이 거대한 서점은 책의 '성전'이라 불릴 만큼 웅장하고 화려한 분위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직원들은 "아름다움만으로는 서점을 오래도록 운영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관건은 고객에게 수준 높은 조언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장 안테루 브라가는 "직원이 보다 수준 높은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충분한 급여를 지급"하며, 책으로 꽉 들어찬 2층에 비좁게나마 정기적인 미술 전시회도 열고, 탁자 세 개만으로도 에스프레소와 포트와인을 맛볼 수 있는 조그만 카페도 마련하면서 서점에서 문화적 체험을 누리고자 하는 소심한 고객들을 위한 서비스에 정성을 다한다.
독일 북서부의 슈타데 지역에 위치한 샤움부르크 서점은 1840년 8월 21일 개점했다. 젊은 청년이었던 창립자 프리드리히 샤움부르크는 지역 주민들에게 일일이 안내장을 보냈다고 한다. "'학생이 붐비는 고등학교, 각종 세미나, 군사학교'가 있고 '지방 법원과 법무부 사무국, 종교 법원, 그밖에 여러 위원회'가 소재한 도시라면 제대로 된 서점이 하나 있어야 하고, '지극히 상서로운 곳이 문을 엶으로써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게 되었다는 설명"이 적혀 있는 안내장이었다.
오랜 세월 샤움부르크 서점은 상업적으로는 기대할 수 없지만 진열 자체만으로 '우리 서점을 빛내는 책'을 선정하여 고객들에게 소개했으며, 무엇보다 낭독회라는 전통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해마다 평균 20회에 걸쳐, 샤움부르크 특선 도서전을 비롯해 요리와 음악 분야까지 확장한 저자 낭독회"가 열린다.
4.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
한국처럼 시간과 역사가 손쉽게 말소되는 공간에서 100년을 지켜온 도서관이 있을까?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찾아보았는데, 놀랍게도 있었다!
일단 부산 광역시립시민도서관을 꼽을 수 있다. 1901년 10월 일본 상인들의 모임이었던 홍도회 부산 지부에서 독서구락부 도서실을 개관한 것이 시초로서, 도서관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갖추기 시작한 때는 1919년이다.
건축가 강예린과 이치훈의 도서관 기행문(☞바로 가기)에 따르면, 부산 광역시립시민도서관의 가장 큰 독창성으로 "도서관 초기의 고문헌"의 보존을 꼽을 수 있다. 부산 거주 일본인들이 지었던 도서관답게 조선 총독부의 조선시정관계 자료, 일본과 조선 간의 외교 문서 등 20세기 초의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으며, 동시에 이것을 현재 한글로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제하는 작업까지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귀한 자료를 손에 닿지 않은 곳에 감춰둔 채 '이런 게 있다더라'라는 풍문에 그치지 않은 채, 현대사의 귀중한 아카이빙 작업까지 앞장서는 모습이 든든할 뿐이다.
한편, 서울 남산 소월길에 위치한 남산도서관도 이제 10년만 더 지나면 '100년의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아직까지 남산도서관하면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김선아와 현빈이 데이트하던 그 계단길만 떠올리는 분들, 한번 작정하고 남산 도서관에 가보시라. 도서 45만 여 권, 비도서 1만4000여 점, 연속간행물 1100여 종에 고서 및 동양서(구 일본서적 포함) 6만9000여 권에 달하는 놀라운 자료의 양에 입을 딱 벌리게 된다.
남산도서관은 1922년 중구 명동 지역에 '경성부립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개관했다. 남산으로 옮겨온 건 1964년이다. 남산도서관은 올해로 꼭 90년째를 맞이한 관록의 도서관답게, 문화 공간으로서 도서관의 영역이 확장되는 작업에 앞장서고 있다. 독서 치료 프로그램, 독서 치료 담당자 연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각종 전시회와 독서 모임, 저자 강연회 등을 연중 운행하며 '평생 교육 증진'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10년 뒤 100년을 맞이한 남산도서관이 또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동시에 애서가들을 위한 한결같은 보금자리로 남게 될지 기대된다.
5. 100년을 내다보는 100권의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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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 책의 사상 책의 힘>(동아시아 출판인회의 기획, 한길사 펴냄). ⓒ한길사 |
| 수많은 '100권 리스트'가 있지만 2010년 출간된 <동아시아 책의 사상 책의 힘 : 동아시아 100권의 인문 도서를 읽는다>(한길사 펴냄)의 인문 도서 리스트는 '근대' 자체를 묻는 거대한 기획이다. 이 책은 김구의 <백범일지>,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 펑유란의 <중국 철학 간사>, 천인커의 <한류당집>, 마루야마 마사오의 <강의록>, 이시무레 미치코의 <고해정토> 등 '동아시아 출판인회의'가 향후 상호 교차 번역·출간해 나갈 동아시아 지역 100권의 인문서에 대한 해제집이다.
동아시아 출판인회의는 중국, 홍콩, 타이완, 한국, 일본의 3개국 5지역의 대표 출판인들이 동아시아 서적 교류 촉진을 목적으로 결성, 2005년 가을 도쿄에서 열린 첫 회의를 시작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동아시아 책의 사상 책의 힘> 출간은 이 오랜 협력의 첫 결과물로, 이 책에 실린 '동아시아 100권의 인문 도서' 출간이 해당 지역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한국에선 한길사, 돌베개, 사계절, 동아시아, 마음산책, 사월의책, 지호 등의 출판사가 중국어권과 일본 서적의 출간에 참여 중이다.
한·중·일 3국 출판인들이 선정한 자국 책 각각 26권, 타이완·홍콩 두 지역 각 16권, 6권씩을 합쳐 100권. 최근 50년간 출간된 책을 중심으로, 지속성을 지닌 '현대의 고전'을 가려 뽑았다. 각 권에 대해 전문 연구자가 쓴 간략한 내용 및 의미, 목차, 지은이 약력을 압축적으로 담아 각국·지역의 공통의 가치 지향에서 출판 동향까지 지적 풍토를 넓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중국에선 사천출판집단이 <동아인문 100>, 일본에선 미스즈쇼보가 <동아시아 인문서 100>, 대만에선 연경 출판공사가 중국과 같은 제목으로 출간했다. 홍콩은 영문판을 맡았다.
이 100권이 중요한 이유는, 서적 교류가 동아시아를 새로이 구상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인데다가 그 서적 교류를 위한 첫 시작인 셈이기 때문이다. 류사와 다케시 일본 헤이본샤 고문은 "전근대의 동아시아는 서구를 훨씬 능가하는 기나긴 서적의 전통과 서적을 공유하는 관계를 갖고 있었다"며 동아시아 출판인회의가 이 전통의 독서 공동체를 현대에 재생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상상의 공동체>에서 근대의 국민이라는 새로운 상상의 공동체를 창출한 중대한 계기로서 '출판 자본주의'의 존재를 거론했다. 이를 상기한다면 국민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지정학적 지역의 '출판 공동체' 내지는 '독서 공동체'의 구상은, "단순한 담론 수준의 민족주의 비판을 넘어 민족을 만들어낸 '책의 힘'을 다르게 구성함으로써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관련 기사 : '동아시아 독서 공동체'를 향한 머나먼 길)
그 시작점으로부터 2년, 번역과 출간 작업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이 묵직한 100권의 책이 동아시아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공유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예정이지만, 이 서적의 공유가 완성되어감과 함께 우리는 '동아시아'라는 모호한 공동체를 보다 실천적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6. 이 책이 왜 금지당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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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권의 금서>(니컬러스 캐로리드스·마거릿 볼드·돈 소바 지음, 손희승 옮김, 예담 펴냄). ⓒ예담 |
| '금서'라는 단어를 들으면 온갖 종류의 '빨간 책들', 그러니까 불온한 종교 서적, 정치 서적, 음란물 등이 자동적으로 연상된다. 그러나 인류의 독서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지금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히 알려진 책들이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탄압받고 검열 받고 제한받았다는 사실에 충격 받을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100권의 금서>(니컬러스 캐로리드스·마거릿 볼드·돈 소바 지음, 손희승 옮김, 예담 펴냄)를 들여다보자.
데이비드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인규 옮김, 민음사 펴냄)이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안정효 옮김, 열린책들 펴냄),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김진준 옮김, 문학세계사 펴냄),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민희식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권택영 옮김, 민음사 펴냄) 등은 워낙 '악명'을 떨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춘 익숙한 책들이다.
하지만 그 외의 뜻밖의 목록들이 눈에 띈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이계영 옮김, 김영사 펴냄)? 세상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박형규 옮김, 열린책들 펴냄)와 스탕달의 <적과 흑>(이규식 옮김, 문학동네 펴냄)과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윤혜준 옮김, 창비 펴냄)는 대체 왜? 책을 금하고 소각시키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박상준 옮김, 황금가지 펴냄)마저 검열의 운명을 피해가지 못했다니? 이 흥미진진한 금서의 역사를 몇 가지 소개한다.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박웅희 옮김, 아이필드 펴냄)
위대한 SF 풍자 작가 커트 보네거트는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당시 독일 드레스덴 공습의 충격에서 평생 헤어나지 못했고, 그의 작품 속에서 되풀이 대학살의 이미지를 조롱하고 비꼬는 수사를 사용했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그가 미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드레스덴과 행성 트랄파마도어 사이를 오가는 분열증적이며 사정없이 웃긴 소설 <제5도살장>은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미국 각지에서 수난을 면치 못했다. 반기독교적인 신성모독, 비애국적인 전쟁 묘사, 폭력성, 외설성 등이 이유였다.
"1973년, 아이오와 주의 한 교육위원회가 <제5도살장>의 표현을 문제 삼아 서른두 권을 불태우고 이 책을 과제로 내준 교사를 면직하겠다고 위협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맥비에서는 이 책을 수업에 사용한 교사가 저속한 작품을 가르친 혐의로 체포되어 기소되었다. (…) 위스콘신 주 레이신에서는 교육구 교육과 총무를 맡은 윌리엄 그린들랜드가 '이런 책이 학교 도서관에 들어간다니 생각할 수도 없다'라며 <제5도살장>의 구입을 막았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김승욱 옮김, 민음사 펴냄)
<분노의 포도>는 1930년대 말 미국의 대공황 시기,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이주노동자 가족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한 걸작이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저속한 표현, 인생을 비참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자주 탄압받았다. 특히 주된 배경인 캘리포니아 지역의 반발이 거셌다.
캘리포니아 주의 컨 카운티는 '<분노의 포도>에 등장하는 농경 지역의 중심에 자리 잡은 곳'이었는데, 1939년 8월 21일 "이 책을 카운티 내 도서관과 학교에서 금지하는 결의를 통과시켰다. 결의문에는 '<분노의 포도>는 발칙하고 상스러운 표현으로 선량한 우리 주민을 저속하고 무식하며 세속적이고 불경스러운 사람으로 거짓 묘사하며 욕보였다'라는 말이 나온다."
또한 '컨 카운티 농민연합'의 워포드 캠프회장은 "스타인벡의 소설은 가장 몸서리쳐지는 정치선전이며 이 책에 항의하는 행동을 취함으로써 농장 노동자와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토머스 하디의 <이름 없는 주드>(정종화 옮김, 민음사 펴냄)
<이름 없는 주드>는 학자와 성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하던 가난한 청년 주드가 두 여자와의 사랑을 거치며 어떻게 파멸하는가를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본 소설이다. 앞서 <테스>로도 한 차례 '부도덕성'의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토머스 하디는 <이름 없는 주드>로 결정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이름 없는 주드>가 1895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을 때 "비평가들은 '섹스에 푹 빠진 추잡한 이야기'이며 '저자는 진흙탕에서 뒹구고 있다'라고 평했고 (…) 런던의 <월드>는 저자를 '타락한 사람 하디'라고 표현했으며 <가디언>은 이 소설을 '가능한 한 빨리 잊어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악몽'이라고 했다. (…) 하디는 <미천한 사람 주드>가 나오고 나서 33년을 더 살았지만 소설은 더 이상 쓰지 않았다. 웨이크필드의 하우 주교가 그의 책을 불태워버린 이후 하디는 소설을 쓰는 일에 완전히 흥미가 사라졌다고 했다."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김욱동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앵무새 죽이기>는 1930년대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의 조그만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흑인에 대한 재판을 둘러싼 이들의 차별 의식과 관용에 대해 이야기한다. 1961년 퓰리처 상을 수상할 만큼 격찬을 받았지만, 그만큼 예민한 주제를 둘러싸고 수많은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1963년에는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에서 고등학교 학부모회가 <호밀밭의 파수꾼>과 <멋진 신세계>, <앵무새 죽이기>는 백인을 부정적으로 그린 저속한 책이라며 학교위원회에 교재나 과제물에서 제외하라고 요구했다. (…) 1978년 워싱턴 주 이사콰의 학부모 중 한 명은 '음란한 부분이 785군데에 달한다'면서, 이 책은 공산주의적 사상을 띠고 있으며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한 채 읽게 함으로써 학교에 거점을 확보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허버트 셀비 주니어의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출구>
1950년대 브루클린에 사는 가난한 젊은이들의 잔인한 삶이 펼쳐진다. 남성과 여성, 어린이까지 기회만 닿으면 서로를 착취하고 폭력을 휘두르며 보복을 일삼는다. 예상할 수 있다시피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는 출간 즉시 미국과 영국 양쪽에서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소설 중 창녀 트랄랄라가 50명이 넘는 남자에게 강간당하고 죽는 장면이 문제였다.
"1966년 후반 영국 옥스퍼드 출판사 가문의 베이질 블랙웰 경이 나이 일흔이 넘어 읽은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출구> 때문에 '말년이 더럽혀졌다'고 불쾌해하며 보수당 의원인 찰스 테일러 경에게 이 책을 보냈다. 이 책에 혐오감을 느낀 테일러 경은 1967년 6월 웰윈 존스 검찰총장에게 지시해 검찰청이 공소를 제기하도록 했다."
1966년 11월에 열린 재판에서, 수많은 검찰 측 증인들이 이 소설에서 역겨움을 느꼈다고 증언했으며 특히 트랄랄라가 죽는 장면의 냉담한 묘사가 많은 비난을 받았다. 판사는 "이 법정에서 본 그 어떤 외설적인 책보다 훨씬 심각한 책으로 (…) 문자가 자아내는 공포를 가장 타락시키고 부패시켰다"고까지 표현했다.
7. 지구인들은 무슨 책을 제일 많이 샀을까
성서, 코란 등의 종교서를 제외한다면 인류 현대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의 명단은 무엇일까? 이 자리에서 10위까지 소개한다. 11위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최정수 옮김, 문학동네 펴냄)를 차지했으며, 100위까지의 자세한 순위가 궁금하다면 여기(☞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길.
1.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이인규 옮김, 푸른숲주니어 펴냄) 2.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김번, 이미애, 김보원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 펴냄) 3. J. R. R. 톨킨의 <호빗>(이미애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 펴냄) 4. 조설근, 고악의 <홍루몽>(최용철, 고민희 옮김, 나남출판 펴냄) 5. 애거서 크리스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김남주 옮김, 황금가지 펴냄) 6. C. S. 루이스의 <사자와 마녀와 옷장>(햇살과나무꾼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7. 헨리 라이더 해거드 <그녀>(이영욱 옮김, 황금가지 펴냄) 8.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박성창 옮김, 비룡소 펴냄) 9. 댄 브라운 <다빈치 코드>(안종설 옮김, 문학수첩 펴냄) 10. J. 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공경희 옮김, 민음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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