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두상, 기원전 50년, 로마 콘세르바토리 궁전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말의 유래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말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뜻입니다.
루비콘강은 고대에 갈리아와 로마(이탈리아)의 경계를 이루는 강으로, 로마의 입구에 해당하는 강이기도합니다.
고대 로마의 기세가 등등하던 시절에, 로마는 원로원을 중심으로 공화정 체제로 통치되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본토을 상징하는 로마는 이렇듯 민주체제의 시작으로 보는 로마공화정체제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로마(이탈리아)외의 지역은 각 지역마다 총독을 임명하고, 로마의 지시를 받는 총독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총독들은 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기때문에,
원로원은 이들 총독이 이탈리아(로마)를 지배하고 통치하려고 할까봐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래서 만일 총독이 로마에 들어오고자할 때는 군대를 로마 밖의 주둔지에 두고,
수행원 몇 명만을 대동한 채로 혈혈 단신으로 들어와야했습니다.
만일 원로원의 허가없이, 군대를 거느리고 루비콘강을 건넌다면, 이를 반란으로 간주하고 응징을 당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루비콘강을 건널 때는 군대를 거느릴 수가 없었습니다.
캐사르 시저(카이사르 시저)는 갈리아지방의 총독으로 다른 나라와 전쟁을 벌여서 많은 노획물을 건지고,
계속 땅을 넓혀갔습니다. 그래서 로마시민들에게 인기와 명망이 하늘을 찌를듯했습니다.
시저의 인기가 높아가자, 로마의 원로원과 품페이우스는 시저의 총독 임기를 연장하지 않고 해임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맨몸으로 로마로 입성하라는 통첩을 보냈습니다.
시저는 반역할 의사가 없었지만, 원로원과 폼페이우스의 그런 행동에 배신감을 느껴서,
이를 거부하는 행동으로, 군대를 거느리고, 자신의 영지인 갈리아와 경계를 이루는 루비콘강을 건너게 됩니다.
반란이 시작된 것입니다. 일단 반란을 한 이상 성공하지 못하면 죽음뿐입니다.
루비콘강을 건너는 것은 곧 로마를 침범한다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말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간다는 뜻과 일맥상통합니다.
저는 결국 군대를 거드리고 루비콘강을 건너므로써, 로마의 천년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황제로 칭하고, 로마제국을 통치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