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이홍섭
울지 마세요
돌아갈 곳이 있겠지요
당신이라고
돌아갈 곳이 없겠어요
구멍 숭숭 뚫린
담벼락을 더듬으며
몰래 울고 있는 당신, 머리채 잡힌 야자수처럼
엉엉 울고 있는 당신
섬 속에 숨은 당신
섬 밖으로 떠도는 당신
울지 마세요
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
당신이라고
돌아갈 곳이 없겠어요
<시 읽기> 서귀포/이홍섭
이홍섭 시인이 쓴 위 시의 제목은 ‘서귀포’입니다. 제주도에 있는 서귀포 말입니다. 그런데 서귀포는 한자로 ‘西歸浦’라고 쓸 때, 지명이 주는 시적 의미가 최대한 발휘됩니다. ‘서쪽으로 돌아가는 포구’, 이것이 서귀포가 지닌 뜻입니다. 서쪽도, 돌아간다는 것도, 포구라는 것도 모두 적잖은 시적 울림을 담고 있습니다. 서쪽은 동쪽과 다르고, 돌아간다는 것은 전진한다는 것과 다르며, 포구는 정착민들의 마을광장과 다릅니다.
이런 제목을 가진 위 시는 그의 최근 시집 『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 속에 수록돼 있는데, 이 시는 기본적으로 시인과 당신 사이에서 전개됩니다. 시인은 “당신”에게 아픈 마음을 떼지 못하고 계속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여기서 “당신”은 시의 제목인 서귀포일 수도 있지만, 더 나아가 돌아갈 곳이 마땅치 않은 이 땅의 모든 조재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 속엔 나도, 너도, 그도, 털이 시커먼 짐승도, 둥근 달걀을 낳는 암탉도 다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런 ‘당신들’을 향하여, 시인은 ‘울지 말라고’, ‘돌아갈 곳이 있을 것’이라고 계속 달랩니다. 위 시에서 ‘당신들’은 돌아갈 곳이 없어서, 돌아갈 곳이 어딘지를 몰라서 울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갑자기 시인 이면우의 시집이 떠오릅니다.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 받은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가 그것입니다. 그렇지요. 이 시집 제목이 가리키듯이, 이 세상 어디에선가, 또 어느 집, 어느 골목에선가, 누구가가 실직 때문에, 이별 때문에, 질병 때문에, 죽음 때문에, 외로움 때문에, 가난 때문에, 마음이 복받쳐 울고 있겠지요. 겉으로는 모두가 잠든 고요하고 평화로운 밤과 같고, 모두가 분주하게 몸을 움직이며 활약하는 세상 같지만, 그속에서, 그 아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아픔 때문에 흐느끼고 있는가요. 그런 존재들을 각하고 그들의 아픔에 가만히 살을 대어보면, 세상이 아파서 내가 아프다는 『유마경』의 법어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뻐근하게 저려오는 것입니다. 존재에 대한 연민 때문에 가슴 한켠이 조용히 무너지는 것 같은 것입니다.
다시 위 시의 본문으로 돌아갑시다. 돌아갈 곳이 없어서, 돌아갈 곳을 몰라서, 상실감과 방황 속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일은 얼마나 마음 아픈가요. 돌아갈 곳이란 우리가 쉴 수 있는 곳, 우리가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곳, 우리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곳, 우리가 꿈을 꾸며 노래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그런 곳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그와 관계없이, 우리는 애써서 이 땅에 그런 곳을 만들고자 하며, 그런 곳을 상상하기도 하고, 그런 곳을 종교적인 믿음과 사유 속에서 저 너머에 설정하기도 합니다. 그런 곳을 애초부터 없더라도, 그런 곳이 있다고 믿는 마음이 있어야 우리는 이 세속의 강을 너무 아프게 울지 않고 건널 수 있습니다.
위 시의 “당신”은 정말 복받쳐 오르는, 참을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울음이 공개적인 것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우는 울음이라 더욱 가슴이 저리게 합니다. 위 시의 제2연을 보면 시인은 그 울음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습니다.
구멍 숭숭 뚫린
담벼락을 더듬으며
몰래 울고 있는 당신, 머리채 잡힌 야자수처럼
엉엉 울고 있는 당신
여기서 구멍 숭숭 뚫린 담벼락을 더듬으며 몰래 울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머리채 잡힌 야자수처럼 엉엉 울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또한 떠올려봅니다. 아무리 강한 심장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우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 한쪽이 아프게 젖어드는 것을 느끼지 않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위 시의 제2연에서 보여준 시인의 묘사는 절실하고 훌륭합니다.
이처럼 울고 있는 당신을 향해, 시인은 당신의 처지를 이해한다고, 그러나 너무 울지는 말라고, 그래도 갈 곳은 있을 것이라고, 당신의 이해자이자 동반자 그리고 위로하는 사람이 되어 당신과 한 몸처럼 마음을 모두 포갭니다. 이렇게 포개지는 마음의 두께를 보며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또한 봅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마음도 그 둘의 마음이 포개진 곳에 같이 포개지고 맙니다.
너도 나도 그도, 또 앞에서 말한 털이 시커면 짐승들도, 마당을 오고가는 암탉들도, 모두 무엇인가를 잃은 상실감으로, 또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를 알 수 없는 막막함으로, 더욱이 갈 곳이 없다는 절망감으로 울어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일도 인생사도 그 너머의 우주사도 결코 그 속을 쉽게 드러내 보이지 않고, 더군다나 우리가 견디며 넘어서기엔 그것들이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기에 , 우리는 누구나 이런 세계가 문득 내미는 고개와 절벽 앞에서 크고 작은 울먹임의 시간을 가져보았을 것입니다.
그런 경험 때문에, 모두가 남의 일 같지 않아, 우리는 길을 가다가도 서럽게 우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구체적인 이유나 사정도 잘 모르면서 그냥 우리의 코끝은 시큰거리고, 우리의 눈물샘도 조용히 눈물을 흘려보내고, 닫혔던 우리의 가슴도 뻐근해지며 통증을 느끼곤 합니다. 서럽게 우는 사람을 보고 그냥 떠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몸은 비록 물리적으로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그의 복받치는 울음소리는 계속하여 우리의 몸속으로 따라 들어오며 물감처럼 스며들고 맙니다.
시인은 위 시의 당신을 “섬 속에 숨은 당신/섬 밖으로 떠도는 당신”이라고 묘사합니다. 이 표현 속에서 당신이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과 소외감의 분량과 깊이가 거리 없이 전달돼 옵니다. 속에 숨고, 밖으로 떠도는 것이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그런 당신을 “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이라고 묘사합니다. 여기에서 또 다시 당신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쓸쓸함과 한계성이 밀물처럼 안겨 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더욱 아픕니다. 그러나 그 당신뿐만 아니라 우리들 모든 존재가 다 죽음이라는 저 해가 지는 서쪽으로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우리는 비록 우리의 삶을 산다는 말로 표현하지만, 이미 떠오른 태양은 서쪽을 향하여 꾸준히 발걸음을 옮기지요.
시인은 이런 당신의 운명까지도 압니다. 그러나 그는 위로를 멈추지 않습니다. 울지 말라고, 당신이라고 돌아갈 곳이 없겠느냐고 계속하여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입니다. 이 위로가 하도 절절하여 우리는 “가도 가도 서쪽‘인 그 끝에서 무슨 희망적인 전변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거야 모를 일이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실이 어떠하든 간에, 어쩌면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에, 우리들은 이 땅에서 절망감과 막막함과 아득함을 넘어서기 위하여 서로 위로를 주고받고, 그 위로의 힘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괜찮아질 거야, 희망이 있어, 갈 곳이 있을 거야, 내일은 새로운 태양이 뜰 거야, 너는 할 수 있어, 너를 믿어, 모든 게 감사한 생이야……. 이렇게 우리는 서로를 기운 나도록 해주는 말을 주고받으며 이 세상의 험한 다리를 건너는 것입니다. 위 시의 시인이 그것을 모범적으로,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홍섭 시인은 아날로그적 서정을 우리 시단에 전파하는 대표적 시인입니다. 아날로그적 서정이란 말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편의상 만들어본 말입니다. 이홍섭 시인의 시를 빌려 이것을 설명해본다면 그것은 모두부 같은 단절된 세계 대신 순두부 같은 스밈과 번짐의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홍섭 시인은 그의 고향 강릉의 대표적인 음식인 초당 순두부를 제목으로 삼아 <초당 순두부>라는 시를 쓴 바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도시의 모두부 같은 마음과 그 모두부를 자르는 마음 대신, 그가 순두부와 같은 마음을 천성적으로, 체험적으로 지니고 살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이 순두와 같은 그의 마음이 바로 그의 아날로그적 서정을 이루는 원천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감상해본 그의 시 <서귀포>의 비애감과 위로하는 마음도 이 순두부와 같은 서정이 빚어낸 것입니다. “누군가의 등에 기대어 가만가만 숨결을 느끼고 싶다”(시집 『숨결』의 <서문>)는 그의 마음 또한 아날로그적 서정을 지녔음을 알려주는 예입니다. 그런 숨결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또한 <서귀포>의 애틋한 서정을 탄생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효구, 『시 읽는 기쁨』, 작가정신,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