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먼 물마루에는 불덩이가 이글거리고
해풍이 숨죽이는 아침 뜸 한 순간에
조산원 분만실에는 새 생명 첫울음소리
새들이 소리도 없이 나래 펼쳐 올렸을 때
금빛 물기둥이 하늘 끝에 닿아 섰다
함성은 노도(怒濤)와 같이 밀려왔다 밀려가고
어항엔 돛 올리고 멀리 거물거리는 고깃배들
동남풍의 뱃사람 말이나 서북풍의 뱃사람 말이나
상앗대 다 놓아버린 늙은 사공 뗏말이거나
젖 물리는 얼굴 갓난이 숨소리 숨소리
겨우내 진노한 빙벽 녹아내리는 물방울들
홍조류 바닷말들도 한참 몸을 풀고 있다
- 오현스님 (1932~ ), <탄생 그리고 환희 -새해 동해 일출을 보며> 전문
보라! 동해 먼 물마루에 불덩이가 이글거리고 숨을 끊듯 진통 끝에 새 생명 첫울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누가 끌어올렸는가, 저 하늘 끝에 닿아선 상서로운 금빛 물기둥을. 하얀 날개 펼치고 선회하는 바닷새들을 보라.
동남풍의 뱃사람 말이거나 서북풍의 뱃사람 말이거나 이런저런 뗏말이거나 짓눌린 우리 가슴의 노기와 함께 밀려왔다 밀려가는 큰 물결에 모두 휩쓸려간다. 이제 몸을 풀고 갓난이의 숨소리를 듣는 젊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신새벽 어항(漁港)은 돛을 높이 올리고 벌써 멀리 거물거리는 고깃배들로 출렁인다. 말의 성찬은 끝났다. 우리의 만남과 선택이 희망찬 새 시대를 열고 있다.
홍성란 /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