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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물이 단물로
출 15: 22-27
예수님을 만나면 쓴 물의 인생이 단 물의 인생으로 바뀝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린양의 보혈로 출애굽하고 홍해를 지나, 수르 광야로 들어왔
습니다.
물이 없어 사흘 동안 길을 갔지만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한 곳에 이르러 물을 발견했지만 그 물은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곳 이름을 쓰다는 의미의 ‘마라’라고 지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한 나무를 지시하셨는데 그 나뭇
가지를 그 쓴 물에 던졌더니 물이 단 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갈3:13 우리가 받은 저주의 쓴 잔을 대신 마시고 나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 때
문에 우리의 인생이 복되게 변하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쓴 물을 마시고 우리에게 단 물 주셨습니다.
쓴물이 단물로 바뀌어야 합니다.
(사 38:17)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사 6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
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시126:5 눈물의 씨앗이 기쁨의 열매로
(요 5:24)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엡 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
럼 행하라
(몬 1:11)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요일3:10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사람의 몸은 70%가 물로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쓴 물이 꽉 차있고, 어떤 사람은 단 물로 차 있습니다.
쓴 물이 가득차 있으면 미움, 시기, 질투, 불평, 짜증, 다툼, 염려, 근심,,,,,
그러나 단 물의 마음은 감사, 평화, 기쁨, 축복, 이해, 용서,,,,,
꿀이 있는 곳에는 벌과 나비가 날라 듭니다.
내 마음에 단 물이 넘칠 때 사람들이 와서 마시고 좋아합니다.
생명수가 강물처럼, 단 물이 샘물처럼 흘러 넘쳐 나기를 축복합니다.
쓴 물이 단 물로 변하려면
1. 원망대신에 기도하라
-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자 수백만의 사람들은 일제히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쓴 물을 보고 원망했다는 것은 이미 저들의 마음이 쓴 물로 찼다는 것입니다.
원망은 쓴 물입니다. 히12:15 쓴 뿌리가 원망입니다.
수백만 명이 원망할 때는 , 쓴 물이 단 물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기도할 때 바뀌었습니다.
(출 15:24)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출 15: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
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마라를 만나면 원망하지 마세요.
고전 10:10 절망하고 원망하면 오히려 멸망하고 맙니다.
원망은 백해무익입니다. 서로에게 상처만 줄 뿐입니다.
사람을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세요.
기도할 때 하나님은 해결할 방법을 제시해 줍니다.
원망하는 사람에게 나무를 보여주지 아니했습니다.
기도하는 모세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모세는 배은망덕한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를 원망할 때 함께 원망하지 않았습니
다.
그저 기도만 했습니다.
약5: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내게 보
이리라.
기도하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기적적인 방법으로 역사하셔서 단 물로 바꾸어 주
십니다.
2. 원망 대신에 순종하라
- 하나님이 모세에게 한 나무를 지시했을 때 모세는 원망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니,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지금 모든 사람들이 나를 원망하고 있는데 나무 가지를 던지라고요.
이것은 말이 안됩니다. 나뭇가지가 어떻게 해결책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하늘에서 단비를 내리시던가. 천사를 지금 당장 보내셔서 꿀을 가져오게 하든
가...
어떻게 합리적이고 확실한 해결책을 주셔야지요.
저는 지금 곤란한 상황에 있습니다.
저들이 지금 나를 조롱하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했다면 쑨 물이 단 물로 바뀌지가 않았습니다.
단 물로 바뀐 것은 기도했을 때가 아니라, 말씀에 순종했을 때 일어났습니다.
기도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단 물로 안 바뀝니다.
기도하고 받은 성령의 감동이 있습니까?순종하세요. 그대로 가감하지 말고 순종
하세요.
단 물의 기적은 일어납니다.
(출 15:24)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출 15: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
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
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 새
(출 15: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
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
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나님은 모세의 순종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테스트하시고 순종을 요구하셨
습니다.
순종만 하면 치료하시는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단물로 바꾸어 주시겠다는 것입니
다.
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자는 순종하는 자입니다.
괴롭고 병든 인생을 고칠 수 있는 분은 치료자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순종할 때 단물로 바뀌는 치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첫 기적은 가나 혼인잔치에서 일어났습니다.
물을 가지고 기적을 베푸신 사건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바꾼 것입니다.
마치 쓴 물을 단 물로 바꾼 것과 같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물이 떨어졌다고 도움을 요청했을 뿐만 아니라
마리아는 순종의 자세를 가졌습니다.
(요 2: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
로 하라 하니라
하인들에게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미리 일러두었습니
다.
예수님은 물을 항아리에 채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떠다가 연회장에 갖다 주어
라고 했습니다. 하인들은 그대로 했습니다.
이성과 맞지 않고 경험과 맞지 않았지만 그대로 했을 때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맛좋은 포도주가 만들어 진 것입니다.
연회장의 손님들은 맛있다고만 했지 이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순종한 자들은 알았습니다.
(요 2: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
온 하인들은 알더라.
“물 떠온 하인은 알더라.
순종한 자만 아는 맛이 있습니다. 세계가 있습니다.
순종할 때 단물로 변합니다.
나아만 장군이 고침을 받은 것, 베드로가 기적을 체험한 것,,,,
모두가 자기 견해와 맞지 않았지만 순종했을 때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때로 기도할 때 내리는 응답이 전혀 기대 밖의 일이 될 때에 원망하지 말고 그
대로 받아들이고 순종하세요, 반드시 쓴물이 단물로 바뀔 것입니다.
3. 원망 대신에 인내하라
- 하나님께서는 마라를 단 물로 바뀌는 정도로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계획 해 놓으셨습니다.
열두 샘물이 있고 열두 종려나무가 있는 엘림의 오아시스를 이미 준비해 놓으셨
습니다.
출애굽을 할 때, 홍해를 건널 때, 수르 광야에서 사흘 길을 걸을 때, 마라를 만
났을 때, 쓴물을 단물로 바뀔 때 이미 엘림을 계획을 해 놓으셨습니다.
때가 되어 그곳을 인도하셨습니다.
(출 15: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여러분 마라가 있을 때 원망하지 마세요.
조금만 있으면 엘림을 만날 것입니다.
마라에서 원망하던 자들, 단 물을 마시고, 엘림에 이르렀을 때 얼마나 창피했을
까요.
조금만 참았으면 되었을 터인데 괜히 원망을 했다고 후회를 했을 겁니다.
참으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옵니다.
여호와이레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반드시 좋은 것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히 6:15 오래 참는 자가 받습니다.
눅8:15 옥토, 착한 마음으로 인내하는 자가 100배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벧전 5:6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욥을 보십시오.
결국은 갑절의 소유, 모년의 복을 받았습니다.
쓴 물의 인생이 단 물의 인생으로 바뀐 것은 오래 참았기 때문입니다.
(약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
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
라.
쓴 물의 인생, 원망의 인생이 되지 마세요.
특히 예수 믿는 사람은 단 물과 쓴 물을 함께 내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찬송하면서 또 형제를 원망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약 3: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
하니라
(약 3: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쓴 물을 단 물로 바꾸고, 쓴 물을 마셔 죽어가는 자들을 예수의 단 물로, 성령
의 단 물로 살려야 합니다.
- 원망 대신에 기도하세요.
- 원망 대신에 순종하세요.
- 원망 대신에 인내하세요.
반드시 ‘마라’를 지나 ‘엘림’의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막 길의 쓴물
출 15: 22-27
430년 만에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이적적으로 무사히 건너 구원을 받았습니다. 돌이 물 속에서 속히 침륜되는 것처럼 애굽군대를 깊이 바다 속에 침몰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들은 큰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내가 야웨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야웨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미리암과 여인들은 소고를 치고, 춤을 추며, 야웨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송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물 없는 광야, 메마른 사막에서 혹독한 갈증 때문에 괴로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강렬한 태양 빛, 뜨거운 모래알, 땀으로 얼룩진 육체를 이끌고, 수르 광야를 물도 없이 사흘길을 걷는 데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비록 430년 동안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은 되었지만, 물이 없는 사막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눈앞에 물이 있는 호수가 보입니다. 신기루가 아닌 물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살았다!’고 외쳐대며 서로 얼싸안았습니다. 기쁨이 충천합니다. 용기가 솟아납니다. 생명이 살아납니다. 그러나 있는 힘을 다하여 뛰어가 겨우 얻은 물은 쓰디쓴 물이었습니다. 쓴물을 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인생은 안식처가 없는 사막 길
이스라엘 백성이 도착한 그곳에 물이 있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마실 수 없는 물이었습니다. 마라에는 사람도 있고, 짐승도 있고,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금은 보화도 있었지만 그것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는 목을 축이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 수백 만의 사람도, 수 억의 돈도, 많은 금은보화 재물도, 그들의 목마름을, 그들의 타는 듯한 갈증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여로는 사막길입니다. 어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고,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늘 시간이 없고 바쁘다고 합니다. 돈과 명예와 권세와 인기를 얻기 위하여 동분서주하고, 재산이나 지위나 출세의 영달을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며 살아가지만 그것이 성취되면 허무 뿐이요, 도리어 세상의 쓴물을 마시게 하는 요인이 될 뿐인 것입니다.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위험하고 힘든 사람의 일을 대신하고, 반도체, 초전도체, 컴퓨터, 전자공학 등이 날로 발전하여, 이러한 최첨단 과학문명의 혜택을 입고 사는 우리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는 심한 갈증을 느끼며 살아가고 산재한 무기들은 사람을 더 큰 공포와 불안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사회 역시 메마른 사막의 갈증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정치판은 매일 혈투 중이고, 권력자의 자녀들이 연루된 부패의 고리는 너무나 단단하여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활력을 잃어버린 국민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자살율은 급증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으로 매일같이 죽음의 피를 흘립니다. 실로 인정도, 사정도, 의리도 없고, 윤리도, 도덕도 땅에 떨어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 메마른 사회에는 자족이 없고 안식처가 없습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만족이 없고, 어느 교회를 가 보아도 평안함은 얻지 못하고 만족이 없습니다. 이처럼 병든 거리와 부패된 사회를 걷고 있는 우리는 역시 쓴잔을 마시며 비틀거리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실로 이 세상은 영원한 안식처가 없는 사막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갈한 인생을 살아가는 오늘, 그 무엇보다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주님을 생각합시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 달리셔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신 주님께서 “아! 내가 목마르다”고 절규하시던 그 음성이 지금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막에는 살 길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쓴물을 마시고 불평했습니다.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던 이적을 체험한지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벌써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그들은 지금 원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쁜 일은 잘 기억하면서도 좋은 일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잘 잊어버립니다. 기쁘다고 찬송을 부르고 감사하다고 춤춘 지 겨우 사흘 지났는데 그들은 환경과 현실 앞에서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급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의 원망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혈기 부리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언제나 기도하는 자 편에 서십니다.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움직이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합니다. 광야같은 세상을 살아갈 때 결코 화를 내거나 혈기부리거나 원망하지 말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광야는 장미꽃같이 변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기적은 여러분의 손을 통하여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의 응답이 왔습니다. 본문 25절에 보면 “모세가 야웨께 부르짖었더니 야웨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지시하신 나뭇가지가 쓴 물을 해결하는 해결책이었습니다. 여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여기에 삶의 터전이 있고, 여기에 기적과 응답과 해결의 역사가 있습니다. 쓴물 옆에는 해독의 나무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문제 해결은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사람이 우둔하고 미련하여 그것을 모르는 것뿐이지, 해독제는 언제든지 가까이에 있는 법입니다. 어떤 문제로, 고통, 괴로움, 좌절, 낙심, 실패의 연속이라 해도, 모세처럼 하나님께 기도하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신령한 눈이 열리고 지혜를 얻어 쉽게 해결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예수님만 믿고 나아갑시다. 성령님만 믿고 나아갑시다. 그리고 기도합시다. 그러면 잘 되는 역사, 형통케 되는 역사, 문제해결의 역사가 분명히 올 것입니다. 이 나뭇가지는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십자가 아래에 구원이 있고, 십자가 아래에 보혈의 은총이 있으며, 십자가 아래에 축복과 성령충만과 재림과 병고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십자가만이 인생의 쓴물을 단물로 변화시킬 수 있고, 십자가만이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요 해독제가 됩니다. 그뿐 아니라, 사막에서도 치료하시는 하나님은 가까이 계십니다. 목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신앙양심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의를 행하고, 성경을 통하여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모든 규례를 지키면 치료하는 야웨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과학 이전의 치료자시요 생명의 원천이 되십니다. 우리의 호흡과 맥박의 주관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사(生死), 죽고 사는 것을 하나님께 맡깁시다. 예수님은 사막에도 꽃이 피게 하시고, 광야에도 시내와 샘물이 넘쳐흐르게 하십니다.
엘림을 주신다
메마른 사막 길을 지나면 엘림의 평화가 있고, 엘림의 축복이 있습니다. 본문 27절에,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라고 했습니다. 마라에서 남쪽으로 11.2km 정도 떨어져 있는 엘림은 ‘큰 나무’라는 뜻이요, 우물이 하나만 있어도 시골동네 모든 사람들의 식수를 해결하는데, 물샘이 열둘이나 되었다는 것은 사막에서도 마실 물이 풍부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종려나무 70주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은 복을 주시되 풍성한 복을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엘림은 천국의 모형입니다. 요한계시록 22:1~5에 나오는 천국의 그림자입니다. 이곳은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요 강 좌우에 있는 생명나무에서는 달마다 열두 가지의 열매를 맺고 있으며 그 잎사귀는 만국을 소성케하는 약의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또 저주와 아픔이 없으며 밤이 없고 햇빛이 쓸데없는 그런 곳입니다. 또한 우리들이 세세토록 왕노릇하는 곳입니다. 갈한 인생들에게 메마른 사막의 길을 지나면 바로 이와 같이 천국과도 같은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믿고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소망으로 참고 인내하며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막 같은 인생 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사망의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계십니까? 안식처가 없는 사막과 같은 세상에서 심한 갈증으로 인하여, 생명의 물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기 의지할 곳 없고 갈곳도 없는 인생 길에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 가까이에 계십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살 길이 있습니다.
그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를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안에 거하시고, 그분께 여러분의 인생의 모든 길을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서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생명과 기적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만을 신뢰하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인생의 쓴물을 단물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엘림과 같은 축복을 받아 누리는 여러분 모두가 될 것을 믿습니다.
마라와 엘림
출 15: 22-27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은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
소고치고 춤추며 여호와께 찬양했다.
그들 앞길은 춤출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I. 그대 정말 쓴 물이었던가?
1. 수르광야로 들어가 사흘 길을 걸었지만 물을 얻지 못했다
애굽 사람은 물이 넘쳐 파멸, 이스라엘은 물이 없어 불평, 불신앙
2. 마라에서 물을 발견했으나 쓴물(마라)이었다
실망, 좌절, 분노
가) 인생 길엔 실망스런 일(마라)이 많다
나) 인생 길엔 쓴 경험들이 많다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룻1:20)
`한나는 자식이 없으므로 마음이 괴로웠다`(삼상1:1-10)
`욥은 괴로움이 닥쳐올 때 원망했다`(욥7:11, 9:18, 10:1)
`모르드개는 왕의 조서가 발표된 후 대성통곡(bitter cry)했다`(에4:1)
다) 쓴물은 죄로 인해 마음에도, 사회에도 생긴다
시기, 다툼, 증오, 원한, 복수심, 원망, 분노가 마라다.
라) 그러나 사람들은 해갈을 위해 교회(기독교인)를 찾아온다
마실 수 있는 물로 기대하고 왔으나 쓴물 - 오히려 원망, 비난한다.
II. 쓴물 들여다 보기
1. 언제부터, 어떻게 쓴 물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 물 안에는 그 물을 쓰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첨가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라의 물도 일반적인 물과 차이가 없다.
쓰게 하는 것 때문에 쓴물이 되었다.
2.`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23절)
그 물 전체가 그리고 그 지역 전부를 마라라 했다.
3. 우리에겐 많은 가능성이 있다
지적, 진취적인 개혁성, 사람을 끄는 매력, 언어능력, 성실, 부지런함, 판단력, 외모, 인상도 좋다.
그러나 쓴 것이 모든 가능성을 말살시킨다.
모든 가능성, 장점을 그 쓴물 속에 잠겨 버린다.
4. 한국교회와 국가사회에 많은 장점과 가능성을 가진 인물이
이 쓰게 하는 것 때문에 마라가 되어버린 이들이 많다
5. 교회의 중요한 사역 중 하나는 이 쓰게 하는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가정파괴는 다른 장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쓴 것(쓰게 하는 것) 때문이다.
교회나 국가가 쓰러지는 이유도 같다.
6. 쓴 뿌리(히12:15), 독초와 쑥의 뿌리(신29:18)가 너희 중에 생겼다
우상숭배, 하나님을 떠난 자, 교회를 허는 자, 성도를 유혹하여 악에 물들게 하는 자.
7. 마라의 쓴물은 과거, 현재, 미래에도 많은 사람을 절망케 한다
8. 우리는 왜 이런 쓴 인생을 살아야 하나?
사람마다 쓴 것이 다르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 사람만이 안다.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이 마라가 될 것을 예견도 한다.
빤히 보면서도 청산하지 못한다.
모른체 하나 모르지 않는다.
직면하기 싫을 뿐이다.
9. 뿌리처럼 박혀 있고 암처럼 퍼져있어 제거가 쉽지 않다
`적은 누룩이 퍼지듯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5:6)
10. 그 쓰게 하는 것이
시기, 질투, 원망, 시비, 음행, 야망, 다툼, 탐욕, 고집, 교만 등
그것들이 우리 삶과 사역 전체를 쓰게 만든다.
III. 십자가로 단물 되는 인생
1. 하나님은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처음부터 왜 쓴물 주시나?
가) 부르짖게 하시려고(25절)
나) 법도, 율레를 정하시고 순종, 시험하시려고(25절)
다) 약속을 주시려고
즉, 순종하면 애굽인에게 내린 질병하나도 내리지 않는다(26절)
2. 모세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가리키셨다
가) 지시하신 그 나무를 물에 던졌더니 물이 달게 되었다(25절)
무슨 Magic power가 있는 것 아니고 하나님의 방법(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해결책)이다.
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미한다
그 십자가의 은혜가 내 안에 던져질 때 존재가 변한다.
`물이 달게 되었더라`(25절)
소유의 변화가 아니라 존재의 변화(쓴물->단물)다.
존재의 목적, 기능, 역할이 회복된 것이다.
버림받은(실망시킨) 마라가 생명수가 된다.
3. 치료하시는 하나님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26절)
가) 마라(개인, 가정, 교회, 국가)를 고치시고 치료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나) 성경은 마라의 우물 크기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size에 대한 관심이 많다.
다) 쓴물에 던져진 나무같이 자기를 희생하여 가정, 국가, 사회를 변화시키자.
IV. 엘림에서 좋은 샘 얻고 기뻐하자(27절)
1. 우리의 순례길의 엘림은 마라로부터 멀지 않다
2. 엘림은 오아시스다
물샘 12, 종려나무 70 그루가 있다.
사막에서 낙원은 물이 있는 곳이다.
`하늘나라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흐른다`(계22:1)
3. 하나님은 광야 같은 세상에서 엘림 같은 오아시스를 만들어 우리를 쉬게 하시고 회복시키신다
그러나 그 기쁨은 잠시뿐이다.
우리의 도성은 약속의 땅 가나안이다.
내가 있는 곳이 마라든지 엘림이든지 하나님 주신 곳을 하나님 뜻에 맞게 고치며 살되 영원을 사모하는 성도로 살자
인생의 광야 길에서 만나는 마라
출 15 : 22-27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바다를 갈라 IS을 건너게 하시고 따라오던 바로 군대를 심판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다를 건넌 사건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고전10: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했는데 이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것을 말해 줍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들은 죄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이고 하나님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산 자가 되었음으로 찬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원한 형벌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늘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야 하는데 여러 가지 환경으로 인하여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1, 죄인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구원을 받으면 어린아이와 같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서는 양육과 훈련을 받고 평가를 받으며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제일 좋은 곳이 광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광야는 신8:15.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허엿으며
렘2:6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 사람이 그 곳으로 다니지 아니하고 그 곳에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셔서 놀라운 은혜를 주어 양육하며 시험하며 훈련시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8:2.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2,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수르광야 길로 인도하여 사흘 동안 걷게 했습니다.
그래서 가져온 물도 다 떨어지고 마실 물도 없음으로 목이 말라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땅에 것만 바라보며 땅에 것을 먹고 마시고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을 바라봄으로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의를 가지고 살도록 육적인 목마름을 통해 영적인 목마름을 위한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 목마름은 땅에 것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위에 것을 찾을 때 채워지는 것입니다.
골3:1-2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고 배부르기 때문에 성도들은 땅에 것에 대한 목마름을 버리고 하늘에 것에 대한 목마름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 배부름을 체험하고 의와 평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3, 이스라엘은 마라의 물을 발견했지만 써서 먹을 수가 없자 모세를 원망 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체험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은 어떤 체험이나 기적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들을 때 오기 때문에 말씀을 잘 들어야 믿음을 받아서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주신 은혜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지 않고 살면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어려운 현실에 빠짐으로 불평하고 원망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미련하기 때문입니다.
잠 19:3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원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련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원망하지만 지혜로운 성도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알기 때문에 기도하며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않고 연약한 자신과 환경을 보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자신과 환경을 바라보면 낙심하고 좌절하게 되어 원망하게 됩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10명의 정탐꾼은 크신 하나님을 보지 않고 연약한 자신의 눈을 통해 적들을 보았더니 자기들은 메뚜기 같았고 적들은 크게 보임으로 부정적인 말을 하게 되었고 그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낙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문제와 환경을 보지 말고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4, 마라를 만나 이스라엘처럼 원망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기 전에는 원망을 해도 은혜아래 있기 때문에 자비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출14: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5: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16:2-3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17:3.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5, 그렇지만 언약을 맺고 율법을 주신 후에는 율법에 따라 심판을 했습니다.
민11:1.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11:33.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
민14:28-29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민 21:5-6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그래서 약 5: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이처럼 율법아래서 원망은 불신앙이며 공동체를 파괴하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 광야 길에서 마라를 만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6, 이스라엘처럼 원망하지 말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백성들의 원망을 들은 모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부르짖어 기도했는데
그 앞에 있는 마라는 그들의 행위로 바꾸고 해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에 살아가는 인생길에서 마라를 만나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의 기도를 들이신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꺾어 물속에 넣으라는 응답을 주셨고, 모세는 믿음으로 순종하여 나무를 던졌더니 쓴물이 변하여 단물이 된 것입니다.
단물이 된 것은 그 나무에 어떤 효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 나무를 통해 자기 영광을 쓴물에 나타냄으로 치료하시는 여호와임을 계시하였고 이스라엘은 그 영광을 본 것입니다.
26.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애굽의 바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계속 불순종함으로 여러 가지 재앙을 받았고 결국엔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홍해에서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러니 너희는 내 말을 잘 듣고 믿음으로 순종하면 너희에게 임하는 재앙들을 내가 막아줄 것이며 너희 삶이 강건해지도록 내가 책임지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라를 통해 이스라엘의 믿음과 마음이 어떠한지를 테스트하시고 안식이 예비된 엘림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순례길에서 만나는 마라는 안식이 예비된 엘림과 영원한 안식이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나가는 여정이기 때문에 마라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7, 우리는 인생길에서 수없이 많은 마라를 만납니다.
마라는 쓰다, 괴롭다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마라를 맛보게 하신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길에서 만나는 마라도 하나님의 주권가운데 일어나기 때문에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었던 처음 세계는 기쁨과 즐거움의 세계로 마라가 없는 세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저주를 받아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지고 마라와 같은 인생이요 마라와 같은 세상이 되어 모두가 탄식하며 고통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땅에는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났고 재난과 재해가 일어나며, 짐승의 세계는 양육강식의 세계가 되어 고통하고 인간들은 온갖 질병과 환경으로 인한 고통에 메여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우리 하나님은 이러한 세상과 인생들을 치료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신 한 나무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마라와 같은 세상과 인생들을 치료하십니다.
죄 문제, 어려운 환경, 육체의 질병, 직장의 문제, 자녀의 문제, 신앙의 문제들이 마라입니다
베드로는 고기가 잡히지 않음으로, 가나안 여인은 딸이 귀신에 들림으로
야히로는 딸이 죽음에 이름으로, 어떤 여인은 12년 동안 혈루병에 걸림으로
마라의 쓴 물을 만나 고통했지만 예수님을 만남으로 해결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다고 하시며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복음을 선포하시며 약한 자들과 병든 자들과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치료하신 것입니다.
눅8:21-22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나타난 모든 것을 제거하고 자기백성들을 구원하여 영생을 주기 위해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저주를 받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죽으신 것입니다.
사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그래서 누구든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로 인한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을 받고, 마라를 만날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명령하며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통해 해결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결론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 길로 인도하여 마라를 만나게 한 것은
고통을 주는데 있지 않고 하나님 백성에게는 영광과 함께 고난도 있음을 알게 하시고, 고난을 통해 연단하여 겸손하고 거룩한 백성이 되어 죄와 싸워서 이김으로 안식을 누리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길에서 마라를 만날 때 엘림으로 거쳐 가는 과정이기에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응답을 받으면 믿음으로 순종하여 은혜의 영광을 맛보고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