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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말은 인간이 기록한 성경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불어넣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영이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을 읽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중에 하나는 본문을 기록한 의도를 파악하며 읽는 것입니다. 본문을 읽을 때 성경은 이 사실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어떤 의도로 이 것을 기록한 것일까 그것을 질문하고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시리아 안디옥 교회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이 안디옥 교회 이야기를 왜 기록한 것일까요?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 문제를 따져봐야 됩니다. 사도행전 13장부터는 바울 사도가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 이방 세계의 복음을 전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이방 선교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 즉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마침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겁니다. 성령께서 이 말씀을 성취시켰습니다.
이때 안디옥 교회는 땅끝까지 증인이 되는데 크게 쓰임 받은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속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땅 끝은 각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읽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주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은 사람, 그 사람들이 보내심을 받은 곳이 땅 끝인데, 어떤 이는 안 믿는 가정으로 보냄을 받았고 신앙을 힘들어하는 자녀에게로 보냄 받기도 했고, 힘이 미약한 교회 또는 세속적인 가치관이 지배하는 직장 속으로 보냄을 받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각자의 땅 끝에서 주님께 보냄을 받은 사람으로서 일상의 선교사로 살아갈 때 그때 하나님께 쓰임 받은 안디옥 교회를 참고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일상의 선교지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도록 이 이야기를 교훈으로 얻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오늘 본문을 읽으면 이미 귀를 닫아버린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지금 독일은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이고 많은 분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거나 졸업을 앞둔 분들의 경우 좋은 직장을 찾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직장에 다니시는 분들 중에도 실직이나 이직을 염려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개인의 문제로 하루하루가 힘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무슨 교회 이야기냐 성도들이 힘든 삶을 살고 있는데 부흥한 안디옥 교회의 이야기를 해서 어쩌겠다는 거냐 성도들이야 힘들든 말든 교회만 부흥하면 된다는 이야기냐 뭐 설교가 이렇게 성도들의 삶에 현실성이 없느냐 그런 질문을 하면서 조금 비판적으로 이 본문을 보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회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성도들이 모이면 그것이 교회이고 교회에서 흩어지면 그분들이 성도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공동체의 차원에서 보면 교회 이야기이지만 개인 차원에서 보면 성도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안디옥 교회 이야기를 오늘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읽으며 두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2절과 연관이 있는데요. 당시 안디옥 교회가 예배를 드리며 금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예배를 드리며 금식했을까요? 이 질문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금식은 긴급한 일이 터졌을 때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로 검식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에스더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에스더서 4장을 보면 에스더가 수도 수산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한 곳에 모으고 자신을 위해 사흘 동안 함께 금식하며 함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 에스더의 상황은 긴박했습니다. 아말렉 출신의 총리인 하만의 계략으로 며칠 뒤가 되면 모든 유대인들이 페르시아에 살고 있는 모든 유대인들이 사육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모르드겐는 왕비인 에스드를 찾아가서 이 상황을 왕이 잘 모르고 있다. 이 상황을 왕에게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라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왕비가 임의로 왕을 찾아가면 죽을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죽음을 각오하고 왕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주장해 주셔서 이 문제가 잘 해결되도록 함께 금식하며 함께 기도해 달라고 요청을 한 것입니다.
금식을 언제 합니까?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마음의 간절함을 표현하는 수단이 금식 기도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안디옥 교회는 어떤 긴급한 일이 있었습니까?
왜 금식했습니까?
사도행전 11장과 13장의 이야기를 읽어보면요. 이런 긴박한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는 4월 19일부터 지금까지 안디옥 교회에 대한 성경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해보면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더하셔서 기독교 역사 최초로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안디옥 교회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생 교회였지만 어려움을 당한 예루살렘 교회, 모든 교회들의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를 돕고 섬기는 일에 있어서 모범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안디옥 교회는 크신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인종적으로 다르고 신분적으로,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신앙의 배경이 다 다른 다양한 신자들이 모여 있지만 주님을 믿는 믿음 하나로 그 다양성을 하나로 묶어낸 정말로 성숙된 그런 교회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안디옥교회 지도자들의 헌신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이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교회는 성장하고 있었고 성도들은 신앙적으로 성숙했습니다. 우리가 볼 때 안디옥 교회는 모든 것이 알레스 굿입니다. 모든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왜 검식한 것일까요?
2절에는 검식의 결과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2절 뒷부분입니다.
성령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내가 그들에게 맡기려 하는 일이 있다.
이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들이 금식한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교회들이 박해를 받고 있고 성도들이 흩어지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교회는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이런 큰 은혜를 주십니까?
왜 성장하게 하시고 왜 성숙할 수 있도록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데에는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성도들은 이것이 궁금했던 겁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유독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까 그 이유가 뭘까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몸은 머리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머리가 손을 들라고 하면 손을 들고 어디로 가라고 하면 다리가 움직여 그 방향으로 갑니다. 머리가 생각하는 대로 몸이 움직일 때, 그때 그 사람의 몸은 건강한 몸입니다. 만약 머리가 생각을 해도 생각한 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몸은 병든 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이신 주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할 때 그 교회는 건강한 교회입니다. 그래서 머리이신 주님의 뜻을 질문한 것입니다. 주님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 이것 자체가 주님의 뜻은 아닌 것 같습니다. 주님의 뜻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것을 위해 안디옥 교회 사람들은 금식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이 말하는 안디옥 교회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뜻을 간절히 찾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교회의 주인이 자기들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그들은 주님의 뜻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를 보면 기도하지 않는 교회가 많습니다. 기도회로 모이자 그래도 모이지를 않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면 그것 자체로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끝납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은 주님의 뜻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교회가 주님의 몸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말로는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그렇게 고백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6장에 아브라함이 하가를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부인 사라의 말만 들었지 하나님이 정말 이걸 원하는지 그것은 묻지 않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 인생에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에 두고두고 괴로움이 될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당시 아브라함은 자기는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13년 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와서 제일 먼저 한 말이 이 말이었습니다.
너는 나에게 순종하며 흠 없이 살아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의 믿음은 흠이 많았다는 뜻입니다. 그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아도 자신은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 32장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금송아지가 자신들을 이집트로부터 인도해 낸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그 금송아지에게 경배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분입니까?
그들이 생각한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배운 지식에 근거한 하나님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전능한 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신, 그 신을 금송아지 모양으로 표현했습니다. 이집트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낸 전능한 하나님 그분은 금송아지 모습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그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다. 그렇게 예배했던 겁니다.
자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몰랐습니다. 요즘도 그렇습니다. 자기 상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배운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추론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은 이렇게 생각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계속 앉아서 머리만 굴립니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위험합니다. 어쩌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자신 앞에 또다시 금송아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 속으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1절 부활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주님은 자신의 제자들을 각자의 땅 끝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땅 끝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마치 안디옥 교회가 하나님께 쓰임 받은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쓰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따라가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뜻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저는 목회를 하면서 많은 실수를 합니다. 그 실수의 핵심은 디테일입니다. 이렇게 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신앙의 당위성은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하고 거기에 부딪힐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에 있는 한인 교회에서 목사로 사역하도록 보내심을 받았는데 이 독일에서 정작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내가 보냄 받은 선교사로 사는 것인지 그 일에 있어서 막연할 때가 많습니다. 추측컨대 여러분도 이럴 때가 많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신다고 하는데 지금 내게 하나님이 뭘 원하실까 막연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물으십시오. 성령님은 오늘 성경을 보면 성령님은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묻는 자에게 대답해 주시는 분입니다. 묻지도 않으면서 나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겠다. 단정지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 사람들처럼 간절하게 주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교훈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을 읽으면서 두 번째로 만나는 질문은 3절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금식을, 그래서 그들은 금식하고 기도한 뒤에 두 사람에게 안수를 하여 떠나보냈다. 2절에서 이들은 금식했고, 그 금식의 결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왜 또다시 금식하며 기도했을까요?
하나님의 뜻을 알았는데 왜 무엇 때문에 또다시 금식하며 기도했어야만 했을까요?
이것이 저의 두 번째 질문입니다. 아마 성령께서 주신 그 대답이 안디옥 교회 사람들에게는 순종하기에 너무 힘든 대답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 11장을 보면 이 교회가 성장하고 또 성도들이 성숙하는 데 있어서 바나바와 바울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나바 이름의 뜻이 위로의 아들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분은 성도들을 아주 잘 돌본 분입니다. 정말 목양하는 심정으로 성도들을 돌봤습니다. 위로를 잘 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위로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성경을 통해 구약이 말하는 메시아가 누구냐 예수가 틀림없다. 이것을 성경을 가지고 잘 증명했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 사람들은 이 바울로부터 분명한 믿음의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안디옥교회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기독교 역사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그런 영광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우라고 합니다. 여기서 따로 세우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포리 사태라는 단어입니다. 아포리 사태 이 단어는 구분하다 임명하다 그런 뜻도 있고 또는 교제를 끊다 내쫓다 그런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입니까?
바울과 바나바를 구분해서 떼어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냥 떼어내는 게 아니고 이제는 니네 교회하고 관계를 끊어라.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니네 교회의 목회자가 아니다 그렇게 말씀하는 겁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이 두 지도자를 떠나보내면 교회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눈에 선하게 예상이 됩니다. 성장이 멈출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시험에 들 수도 있습니다. 위로받을 때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알게 되었지만 그 하나님의 뜻은 순종하기가 너무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금식하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주님 어찌 하란 말입니까?
우리 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이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데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주님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금식하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사렙다 과부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천지의 기근이 들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경제적으로 완전히 낭떠러지로 떨어진 겁니다. 세계 경제가 완전히 낭떠러지 상황이에요. 기근이 들어서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밀가루 한 줌과 기름 조금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으로 최후의 만찬을 한 후에 아들과 함께 죽을 작정으로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가정에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그 음식 마지막 남아 있는 그 한 줌의 그 밀가루 그걸 엘리아를 섬기는 데 사용하라는 겁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순종하는 데 쉬울까요? 경제적으로 완전히 엉망진창이 된 상황에서 그저 낭떠러지에 손걸 지고 있는 이런 상황인데 그걸 하나님께 내놓으라는 거예요.
마태복음 19장에는 한 부자 청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청년은 어릴 때부터 율법을 잘 지켰다고 합니다. 교회 열심히 다닌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 생각해 보기에 내가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찾아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과 대화를 하는 과정에 과정 중에 그 청년이 가진 문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해답을 가르쳐줍니다.
너는 지금 너의 공로로 천국에 들어가려고 한다. 니가 의롭게 삶으로써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메시아를 붙들어라. 메시아를 믿고 그 메시아를 따라가라. 이것을 위해서 너는 니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지금 당장 나를 따라오느라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청년은 주님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해답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이 내려놓아야 될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렇게 말합니다. 안디옥 교회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을 들었지만 그들은 순종하기 위해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이방 선교를 할 때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순종해야 하지만 순종하기 어려운 일 이것 때문에 그들은 금식했습니다. 이 기도는 자기를 쳐서 주님께 복종시키는 그런 기도였습니다.
오늘 성경은 이 안디옥 교회를 소개하면서 우리에게도 그렇게 살라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설교를 정리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안디옥 교회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이유는 안디옥 교회를 보며 삶의 교훈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각 사람마다 하나님이 보내신 땅 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땅 끝에서 예수 증인으로 사는 것이 삶의 목표입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인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이 사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안디옥 교회 사람들을 참고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안디옥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찾았을 때 순종하기 힘들었을 때 자기를 쳐서 복종시켰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다가오는 주에 상반기 특별 새벽 기도회를 하려고 합니다. 이 기도회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원래 우리는 일상으로 보냄 받은 선교사라는 그 키워드를 가지고 신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반년을 돌아볼 때 우리가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지, 내 땅 끝에서 나는 선교사로서 살고 있는지 그것을 한번 점검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이 기도회 때 살펴볼 성경 본문은 요나서인데요. 요나는 엄청나게 대단한 예언자입니다. 자기 시대에 북 이스라엘에서 정말 정말 유명한 예언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패한 예언자였습니다. 니느웨로 가라.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지만 그는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이럴 수 있습니다.
왜 순종할 수 없습니까?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고 내 뜻이 하나님의 뜻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뜻대로 내 뜻을 받아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니야 니 뜻과 내 뜻은 달라. 그렇게 말씀하면 우리 역시도 요나처럼 하나님을 무시하고 등 돌릴 때가 있습니다. 이번 주에 기도하면서 우리가 했으면 하는 일은 바로 이겁니다. 내 자신을 쳐서 주님께 굴복시키는 그런 기도를 우리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목사 안수를 받을 때 목사로서 이렇게 살겠습니다. 주님께 서약했습니다. 그리고 노회원들이 보는 앞에서 사람들에게도 약속했습니다. 돌아보면 그 서약대로 산 것도 있지만 아주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그렇게 살지 않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 직분자로 임직하신 그런 분들이 계실 텐데 여러분도 인지하시면서 하나님 앞에 서약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한 서약의 핵심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그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거짓말쟁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사렙다 과부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자기에게 불리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했고 그 결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았습니다.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삶의 상황 속에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그런 일들을 생각하면서 배부른 소리 하지 마십시오. 네코가 지금 석 자입니다. 무슨 선교사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우리 각자가 가라고 보냄 받은 땅은 다 다릅니다. 그 땅 것은 다 다릅니다.
어떤 분은 안 믿는 가정 속으로 보냄을 받았고, 어떤 분은 정말 힘든 자녀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라고 보냄을 받은 분들도 있을 겁니다. 또 어떤 분들은 정말 교회 생활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 그 교회 속으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세속적인 가치관이 지배하는 그 직장 속에서 고군분투해야 하는 그런 상황 속으로 보냄 받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칭찬 듣는 일상의 선교사가 되라 그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오늘 안디옥 교회를 보면서 참고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우리 같이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안디옥 교회를 보면서 우리 같이 기도해 봅시다. 그리고 우리 함께 찬양하면서요. 주여 내가 이렇게 살겠습니다. 우리의 입술의 고백을 주님 앞에 드립시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