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앓이
봉혜선
대학 때 만난 이청준은 소극적이고 낭만적인 문학소녀를 전혀 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선생님이 되라는 아버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살아도 된다고 격려했고 나만의 나를 인식할 수 있게 해주었다.
혹시 교사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라는 의심을 할 만큼 철두철미하고 빈틈이라곤 없는 아버지가 이끄는 대로 상업 교사가 되기 위해 강요당한 학과에 집어넣어진 상태였다. 수학 교사이던 아버지를 연상하게 하는 ‘숫자’로만 이루어진 수업이란. 전공은 단 한 번의 수업으로도 충분히 멀어졌다. 문학을 향한 열정을 알아주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순종은 못난 나를 향한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분노이기도 했다. 나의 편은 없다. 심지어 나도 내 편에 서보지 못했다.
하루 한 두 시간이 고작인 전공 수업 후 도서관으로 향하는 학교에 정을 붙여갔다. 도서관에 사는 이청준을 만나러 다녔다고 해야 학창 시절을 설명할 수 있다. 글에 대해서 이청준에 대해서도 말을 걸 사람은 사서밖에 없었다는 고백을 해야겠다. “오늘도 이청준?” 폐가식 도서관 사서는 매 번 한 작가의 작품을 빌리는 나에게 아는 척을 해주었다. 그렇지만 작가로서 늙어갈 수 없다니!
이청준의 글은 나의 말 못해 하는 답답한 마음을 이해해 주었다. 말을 소리로만 하지 않듯 말하는 표정, 이를테면 이마를 좁히거나 미간을 찡그리고 입술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다가 오므리는 온갖 행위를 이청준은 글로 나타냈다. 맞은편 상대가 고개를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갸웃하면 금새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말을 바꾸는 현실의 모습을 글로 풀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상자가 바로 옆에 있는 듯, 이 경우가 아니면 저런 사정이 있다고 읊조리는 말 속에 있는 글자를 신봉하는 작가다운 작가의 글에서 헤어나기는 어려웠다.
대표작 <눈길>은 이중 의미를 품고 있는 동시에 내가 지향하고 싶은 예술로서의 문학의 길을 보여주는 소설이자 산문이다. 눈(雪)길(路)은 먼 길 떠나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目)길(道)을 뜻하기도 한다. 아들과 함께 걸어온 순백의 눈길이 이제 혼자 돌아가야 할 막막하고 미끄러워 위험해진 길이 된 것이다. 어머니는 유일하게 돈이 되는 집을 잡혀 집을 떠나는 아들의 노자에 보태고 돌아갈 곳 없는 자신의 뒷걱정은 하얗게 지웠다. 늙은 몸을 누일 곳이 없는 처연한 심정으로 주저앉으려는 몸과 목을 아들을 향해 늘였다. 어머니는 붙잡을 수 없고 더 이상 고향에 들일 수 없을 아들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넣으려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눈길에 슬픔을 얹었다.
<눈길>은 글자의 조합이 의미하는 차이를 보여줌과 동시에 같은 글자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 이중의미를 품고 있다. 이는 그간 ‘문학가란 이래야 한다.’고 막연히 동경해 오던 언어유희와 글자의 엄정성 면에서 나에게 나아가야 할 방향 지시등이었다. 문인이라면 문학을 표현하는 수단인 글자만큼은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엄한 아버지에게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커온 그간의 마음을 글자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구나 눈치 채지 못하게 다른 뜻을 지닌 같은 글자로 가린다면 혼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청준은 눈길에 두고 온 어머니의 눈길을 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자전 소설이기도 한 글에서처럼 작가는 오랫동안 어머니를 보러갈 수 없었다. 어머니 뿐 아니라 객지로 나온 자신이 돌아갈 집을 없앤 자괴감에 스스로를 풀어주지 않았다. 자식을 위해 온갖 오물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는 이름이 어머니가 아니던가. 단 한 번, 커피를 마시며 밤을 새는 내 등짝을 치고 마음 아파 울던 엄마가 잠깐 뇌리에 나타냈다 사라졌다. 학창 시절 중 엄마는 늘 그 자리에 있을 뿐 특별히 생각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생각은 날이 풀리며 갖은 더러움을 품고 스러지려는 눈(雪)의 속성에까지 닿았다. 내 눈길이 머문 작품 <눈길>은 이제 막 여고생티를 벗고 대학생이 된 나에게 흰 눈의 의미를 바꾸게도 했다.
닿지 못할 데라고 여긴 글자 생활의 뒤안길을 들여다보았으며 글이 탄생되는 현장에 함께하는 듯한 고통과 희열의 느낌은 아직도 유효하다. 문학이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예상할 수 있게 되자 관심은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 이어졌다. 글자에 천착한 이청준의 글을 샅샅이 훑었다. <쓰여지지 않은 자서전> <소문의 벽> <매잡이>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작품에 그려져 있는 것이 진짜 세상이고 현상의 세계는 마치 책 속의 세계의 어떤 그림 같은 것, 늘 변하는 가짜의 세계 같은 것으로 느껴져서 변하지 않는 진짜 세계를 책 속의 추상에서 찾는 버릇이 생겼어요.”
작가와 같은 경험을 갖지 못한 나를 원망했다. 가난한 경험이 없던 어린 날들을 반납하고 싶었다. 작가의 글의 산실이자 주요 배경인 장흥에 가서 살고 싶었다. 동감해 주고 대변해 줄 테니 독서를 더 이어가라고 했고 내게 있는 줄도 몰랐던 생각의 갈피들을 하나씩 뒤지듯 살피라고 했다. 이청준은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다고 여기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나를 격려했다. 전공으로서는 가까이할 수 없으나 현실의 아이러니함 속에서도 나를 찾을 수 있을 듯한 희망을 발견했다고나 할까. 어렴풋하게 이어오던 독서에 더 천착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전공과 문학의 병치 또한 가능한 이중생활이 아닐까 하는 희망의 단서가 되었다. 무엇이라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있다고 여겼다.
전공을 물리고, 독서로 날밤을 샜고, 영어 서클에 들어가 밤늦은 모임을 갖느라 아버지가 정한 귀가 시간도 맘대로 어겼다. 결혼할 때 챙겨온 팸플릿만 200여 권이 넘는 연극 관람 역시 글자를 따라 다니고자 한 행위다. 내게 ‘글자’는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무엇이며 끝없이 갈증을 일으키는 대상이다. 이청준에 대한 독서는 내 고민의 주름을 펴 주었다. 무엇이 가리키는 것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맹목은 복종을 의미한다. 아버지와 선생님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은 다른 데를 향했다. 이청준은 글자라는 종교를 제시했고 단어가 가진 진정한 의미, 단어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문학의 미(美)를 새삼 일깨워 주었다. 그렇게 이청준이 내게 종교가 되었다.
도서관에 있는 모든 이청준을 대하며 책 뒤에 붙게 마련인 평론가의 글은 잠시 미루었다. ‘나의 이청준’이 필요했다. 그의 글은 짜깁기 잘 된 트위드 천처럼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조화를 이루었다. 어느 한 줄, 조사나 순서를 바꾸어 보면 그는 숨었다. 마치 풀려난 실밥처럼. 그러나 자연스런 올 풀림은 필수였다. 그는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은 왜 그르냐에 대하여 편 가르지 못하게 했다.내가 만든 이청준을 가졌다. 다시 연대별로 평설을 대했다. ‘씨실과 날실의 조화로 이룬 소설’이라는 평론가의 평은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잘 못 읽지 않았음을 증거해 주었다.
독서의 끈을 이어가다가 20년 만에 덜컥 닿은 소설가 이승우는 이청준의 영향을 받아 종교학에서 국문학으로 선회했다고 했다. 아, 그럴 수도 있는 것임을 나는 놓쳤구나. 이승우는 이청준 식 문투로 인간과 신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소설가이자 불문학 교수 최윤은 이승우의 글을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각국에 소개했다.
2008년 이청준이 지병으로 타계한 날 빈소를 찾았다면 그곳에 ‘남겨진’ 이승우와 최윤, 그들을 붙잡고 함께 울 수 있었을까? 혼자 울다 지쳐 나는 나가지 못했다. 빈소를 찾은 이들은 황망해서 내달렸을 것이나, 신음하느라 못 달린 이에게도 절망이 노크하지 않기를. 그의 눈길이 닿아 있는 한 글 생활을 놓지 못하리라. 꽁꽁 언 땅 위에서 길을 잃고 헤맬지라도.
수필과 비평 2022, 10.
서울 출생
한국산문 2019.12 <투명함을 그리다> 로 등단
한국 문인 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