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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과 살처분 | ||||
불교가 굿이나 하는 종교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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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3일 경북 안동에서 처음 발생한 구제역은 아직도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구제역 발생지역의 반경 500m지역은 물론 3㎞까지 예방적 살처분(殺處分)이 실시되었다. 지금까지 수백만 마리의 가축들이 원인도 모른 채 생매장되었다. ‘동물사랑실천협회’에서 몰래 촬영한 살처분 장면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었다. ‘살려 달라’는 돼지들의 비명소리는 지옥 그 자체였다. 이 동영상을 보면서 축생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려 내렸다. 이번 구제역의 창궐로 말미암아 국가와 개인의 경제적 손실은 천문학적 숫자에 달하고, 사회 전반에 미친 파장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그 피해가 크다. 또한 구제역 방제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이 속출하고, 방역에 동원된 공무원과 축산업자들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구제역은 종식되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급히 생매장한 가축들의 침출수로 인해 제2, 제3의 재앙이 예상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종교인들과 동물애호가들은 지금 당장 살처분을 중지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언론과 환경단체에서는 구제역의 퇴치보다는 환경오염을 더 심각하게 여기는 것 같다. 자신들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구제역을 하루빨리 종식시키는 것뿐이다. 구제역 때문에 민심까지 흉흉해지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구제역 퇴치를 위해 꼭 살처분해야만 하는가?” 혹은 “살처분 외에 다른 방법은 없을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제역이 어떤 가축 전염병인지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구제역(口蹄疫, Foot-and-Mouth Disease)은 세계동물보건기구(OIE)가 지정한 10개의 병원균 가운데 A급 질병이다. 구제역은 아시아, 남미,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일정조건하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풍토병이지만, ‘생물학적 무기(biographical weapon)’가 될 수 있는 무서운 가축 전염병이다. 다른 종에게까지 아주 빠르게 전염되기 때문이다. 구제역은 실제로 생물학적 무기로 활용된 적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1917-18) 당시 독일은 수출용 가축과 사료를 오염시켜 적군의 말과 노새를 잃도록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미국과 독일 등에서 동물을 대상으로 한 공격 전략은 계속되었다. 이러한 공격을 막기 위해 20세기 초 많은 나라들에서 구제역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1909년 독일을 시작으로, 1924년 영국, 1925년 덴마크, 1951년 브라질에 이어 1953년 미국에 구제역을 연구하기 위한 동물 질병 센터가 세워졌다. 1930년대 마침내 독일에서 처음으로 구제역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그 때문에 1989년부터 1997년까지 구제역 발생건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선진국에서는 더 이상 백신접종이 필요 없을 만큼 구제역이 퇴치되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구제역이 다시 창궐하기 시작했다. 1997년 대만에서 68년 만에 다시 구제역이 발생, 4백만 마리(총 돼지수 38%)의 돼지가 죽임을 당했고, 6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경험한 바 있다. 이어 1999년과 2000년 남아프리카, 동아시아지역에서 연달아 구제역이 발생했고, 2001년에는 영국에서 20년 만에 구제역이 다시 발생했다. 2000년에 한국과 일본에 구제역이 발생했지만 초기대응을 잘해 손실이 크지 않았다. 2001년 영국은 초기 늑장대응으로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보았다. 3주 동안 보고되지 않은 결과 23개 지역 중 16개 지역이 전염되어 경제 전반에 큰 타격을 받았다. 영국정부는 농업과 식품체인산업에 42억 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했고, 관광산업에서 123억-138억 달러의 손실(해당산업의 36%)을 기록했다. 2001년 영국의 구제역발병과 대응 경험을 모델로 연구한 결과, 만일 미국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면 미국농장소득의 9.5%인 140억 달러의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또한 미국에서 초기대응에 실패했을 경우 발생할 경제적 손실을 계산하는 시뮬레이션 연구가 실시되었다. 이에 따르면 초기에 15마리 혹은 745마리의 감염우를 격리하지 못했을 경우 격리해야 할 소는 680마리에서 6200마리로 증가할 것이며, 8700에서 260,400마리를 살처분해야 하며 그 피해 액수는 23억 달러에서 69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 밝혔다. 만일 21일이 지나서야 감지했다면 매시간 늑장대응에 2000마리를 살처분하게 될 것이며 5억 달러씩 경제손실이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구제역은 초기대응이 가장 중요하다. 초기에 구제역 확산을 막지 못하면 엄청난 피해를 당하기 때문이다. 살처분은 더 많은 동물의 희생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임에는 틀림없다. 외국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구제역 발생 즉시 매몰 처리하여 더 이상 구제역이 확산되는 것은 막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살아 있는 상태에서 생매장하는 살처분의 방법만이 최선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본다. 동물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빠른 시간 내 안락사 시킬 수 있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구제역 발생 즉시 전국에서 동시에 예방백신을 접종했더라면 이처럼 전국적으로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구제역이 종식되더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초기 대응이 미흡했었다는 비판은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국민들은 살처분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동물애호가들은 살처분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감상적인 방법으로는 구제역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 아플 뿐이다. 살처분 외에 다른 방법이 있다면 왜 그렇게 하지 않았겠는가. 누군들 살아 있는 동물을 죽이고 싶겠는가. 이번 구제역으로 가장 큰 상처를 받은 피해자는 축산업자들이다. 이들은 자식과 같은 가축들을 땅에 묻은 심한 죄책감으로 평생 동안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들의 정신적 피해는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이러한 구제역에 대한 이해 없이 축산업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무책임한 발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구제역의 발생 원인을 “자연에 대한 몰이해와 인간의 잘못된 가축 사육 방법, 즉 공장식 축사에서 가축들을 대량으로 사육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옛날처럼 집에서 소나 돼지를 기르던 방법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현실을 모르는 공허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또 어떤 사람은 구제역을 계기로 육식이 아닌 채식주의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고기를 먹지 말자는 것은 축산업자들을 두 번 죽이는 꼴이다. 한때 조류독감으로 사람들이 닭고기를 먹지 않았을 때 어떻게 되었는가? 닭고기와 관련된 산업 자체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또 한때 산 낙지에 중금속이 들어있다는 보도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이처럼 한 가지 식품에도 큰 파장이 일어나는데 육식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매우 위험한 발언들이다. 육식문화는 이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식물과 동물로부터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만일 이 지구상의 인류가 어업과 축산업으로부터 먹을거리를 구하지 못한다면 이 지구의 인구 절반은 굶어죽게 될 것이다. 단적인 예로 섬이나 어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선이나 어패류를 먹지 못하게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고 육고기 외에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육식을 하지 말라고 하면 죽으라는 말인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필자가 육식을 장려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채식을 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육식보다는 채식이 건강에 더 이로울 수도 있다. 반면 건강상 육식이 꼭 필요한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남에게 강요할 사항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육식 자체를 죄악시하는 지나친 채식주의도 문제가 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채식을 강요한다면 그들은 무엇이라고 말하겠는가? 불교에서는 불살생계(不殺生戒)를 중요하게 여긴다. 살아있는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살생과 직접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불살생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다준다. 실례로 어느 불교국가의 해안지역에 살고 있던 불교도들이 집단으로 타종교로 개종해 버렸다. 인근의 스님들이 법문할 때마다 살생하지 말라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다 다른 종교로 개종한 뒤 죄책감에서 벗어나 매우 행복하게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또 다른 사례는 동남아시아 불교국가에서는 불자들에게 육류와 주류, 마약, 무기 밀매 등과 같은 직업에 종사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육류와 주류 등 유통업 종사자들은 대부분 불교도가 아니다. 그들은 이 분야의 산업을 장악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자들이 동남아시아의 경제권을 장악해 가고 있다. 불교도들은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소극적이다. 불교가 사람들에게 죄의식을 심어주어서 고통스럽게 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도록 격려하여 축적한 부를 불교발전을 위해 회향하도록 해야 하는가? 어느 쪽이 불교를 위해 바람직한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 구제역 파동에 대한 불교계의 대처를 보고 나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불교계에서 한 일이라고는 살처분으로 죽은 축생들의 영혼을 달래는 천도재를 지내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도살장에서는 수천만 마리의 축생들이 죽어가고 있다. 구제역으로 살처분 된 가축들을 위해 천도재를 지낸다면 도살장에서 죽어가는 가축들을 위해서도 매일 천도재를 지내주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불교가 죽은 동물들을 위해 굿이나 하는 그런 종교인가? 그보다는 구제역으로 인해 충격 받은 축산농가와 방역을 위해 희생된 자들과 그 가족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방역을 위해 불철주야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더 불교적이고 현실적인 불교도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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