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조례가 문제 학생을 ‘언터처블’로 만들어… 무법천지 교실 초래[Deep Read]
문화일보 2023-07-25 09:19
■ 승재현의 Deep Read - 교권침해 원인과 해법
조례에는 학생 자유·권리만 있고 책임·의무는 없어… 지도 교사, 학부모 공세·법적 처벌 협박에 노출
교육은 사회화에 필요한 인격·자질 습득 과정… 교사의 정당한 교육 막는 학부모, 아동학대로 처벌해야
초·중등학교의 학생은 제자가 아닌 고객, 교사는 스승이 아닌 직원이다. 학생에게 잘못 보인 교사는 악성 민원과 공격 대상이 되거나 종종 법적 처벌까지 각오해야 한다. 학생의 뒤에는 내 자식을 ‘언터처블한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학부모가 있고, 그 뒤엔 학생에게 무제한의 자유와 권리를 허용하면서 책임과 의무는 지우지 않는 ‘학생인권조례’가 자리 잡고 있다.
교권 침해를 막기 위해서는 교사의 정당한 지도나 교육을 아동학대 위법성 조각 사유로 인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 교사의 정당한 교육을 방해하는 학부모를 ‘아동학대’로 처벌하는 방안 등이 적극 검토돼야 한다.
◇내 아이는 ‘언터처블’
내 아이를 언터처블한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부모 심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정경심 전 교수 부부 입시 비리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 전 장관 부부 측은 ‘가짜 서류를 만드는 일은 당시 비일비재했는데 우리에게만 마녀사냥식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라고 항변했다. 모범을 보여야 할 법무부 장관을 지낸 이의 재판에서 ‘아이의 성공을 위해 허위 서류 제출 정도는 괜찮다’는 주장을 펼치는 셈이다.
바야흐로 한국 사회에는 내 아이가 승자가 돼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학부모들을 사로잡고 있다. 적지 않은 학부모들이 자기 자녀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교사의 말이나 태도를 그냥 보아넘기지 않는다.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학교에 항의하거나 해당 교사를 아동학대로 고소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인권조례가 이런 문화의 조기 정착을 도왔다.
조례는 학생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모든 학생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이뤄 나갈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제정의 취지나 목적은 사실 타당한 측면이 있다. 학생에게 체벌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인권 보장을 위해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학교나 교사가 학생을 언터처블한 존재로 여기도록 하는 지나친 내용이 곳곳에 독소조항처럼 똬리를 틀고 있어 조례 제정의 당초 취재와 목적이 형해화됐다. 예컨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는 ‘학칙 등 학교 규정은 학생 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제한할 수 없다’(제3조)는 규정을 둬 학칙보다 조례를 우선토록 했고, 학교 밖 집회의 자유를 무제한 허용하는(제17조) 내용이 담겨 숱한 논란과 부작용을 낳았다.
◇전교조와 학생 인권
각 학교의 특수성을 고려해 만들어진 학칙보다 우선되는 조례가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느냐 등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지만, 조례 개정 작업은 오로지 학생의 권리와 자유를 최우선·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권리와 자유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규정하는 조항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 속에서 교사의 수업권을 방해하는 일부 학생의 언행이 자유와 권리 행사라는 명분 아래 용인됐다. 오히려 교사가 학생 행동을 지적하면 학대가 됐고 인권 침해가 됐다. 소수 학생의 교사 수업권 방해가 곧 다른 대다수 학생의 학습권을 방해하는 것인데도 학생을 말릴 방법이 없었다. 이 역시 민원에 따라 혹은 법적 고소에 따라 학대 혹은 인권 침해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법천지의 교실이 도래했다.
과거 교사들이 학생 지도를 빌미로 인격을 무시하거나 체벌을 행사했던 일이 있었다. 이에 전교조가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앞장섰다. 취지만 보면 학생을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 그러나 학생 인권을 교권과 대립하는 시각에서, 오로지 학생의 자유·권리에 초점을 둔 채 만들고 교육 현장에서 이를 적용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학생 인권과 교권 간의 균형이 완전히 깨졌다.
전교조는 학생 인권 중시를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라고 말했다. 이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직원과 고객의 관계로 바꿔놓았다. 그런 지금 전교조 소속 교사들조차도, 진보 교육의 상징처럼 돼 있는 서울시교육청의 조희연 교육감조차 조례 개정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됐다. 그만큼 교실 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자, ‘수요자 중심의 교육’만큼 ‘공급자 중심의 교육’이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교권 침해 막으려면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부당한 압력과 악성 민원, 법적 처벌 으름장 등 교권 침해를 막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교사의 정당한 지도나 교육을 막는 부모를 아동학대로 처벌하는 방안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 이는 인본주의적 교육문화 정착, 즉 ‘기본으로 돌아가기’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교육은 지식의 습득 이전에 타인에 대한 존중, 공감, 배려 등 시민사회에 필요한 인격과 자질을 훈련하는 과정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타인이 처한 환경을 배려하는 것을 배우고 훈련하는 것은 성장기 학생들의 정상적인 발달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교사는 그런 교육을 방해하는 학생을 적절한 방법과 절차에 따라 지도해야 한다. 학생의 명백한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건 아동학대가 아니라 교육이다. 일부 학부모가 ‘내 아이는 언터처블’을 고수하며 교사의 정당한 교육을 과도하게 문제 삼고 부당하게 압박함으로써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방해한다면, 이게 바로 아동방임에 따른 학대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서는 아동복지법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함께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교사 연대 프로젝트도 필요하다. 교권 침해는 손과 입이 꽁꽁 묶인 교사와 자유의 방종까지 보장받는 학생 사이에서 발생한다. 학생 뒤에는 자기 아이만 최고인 부모와 그 부모 편에 있는 인권조례가 있다. 교사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교권 침해에 대응하기 위한 든든한 연대가 필요하다. 교권을 침해당한 교사에게 “넌 혼자가 아냐”라는 명확한 시그널을 줘야 한다.
◇법·조례 전면 개정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교권과 학생 인권이 상호 존중되도록 조례를 전면 개정하는 작업도 병행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를 통해 교권을 확립하고 전체 학생의 학습권이 제대로 보장돼야 한다. 이를 침해하면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이 명문화될 필요도 있다.
중앙정부와 국회에서는 지체 없이 초·중등교육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개정안에는 ‘교사의 정당한 교육에 대한 아동학대 위법성 조각 사유’가 명시돼야 할 것이다. 법령과 학칙에 따른 교사의 정당한 교육과 생활지도, 고의·중과실이 없는 지도를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하루속히 통과돼야 한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국교총 정책자문위원
■ 용어설명
‘아동복지법 제17조’는 아동에 대한 금지행위 규정을 담은 조항. ‘아동의 정신건강이나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 등 10개의 금지행위가 규정돼 있음. 어기면 아동학대로 처벌됨.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존엄·가치·자유·권리 보장을 취지로 한 시·도교육청 조례. 경기·서울·광주·전북·충남·제주에서 시행.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개정 움직임에 탄력이 붙음.
■ 세줄 요약
내 아이는 ‘언터처블’ : 초·중등학교 학생은 고객, 교사는 직원으로 전락. 학생 뒤에는 내 자식을 ‘언터처블한 존재’로 만들려는 학부모가 있고, 그 뒤엔 학생에게 무제한의 자유와 권리를 허용하는 ‘학생인권조례’가 있어.
전교조와 학생 인권 : 전교조 주도로 만들어진 인권조례엔 학생의 권리와 자유만 있고 책임과 의무는 없어. 교사는 학대로 몰리거나 소송을 당할까 봐 문제 학생에 대한 지도를 포기하는 상황. 무법천지의 교실이 도래.
교권 침해 막으려면 : 교사의 정당한 지도를 막는 부모를 아동학대로 처벌하는 방안 검토될 필요. 교권 또한 존중되도록 조례를 전면 개정하고, 교사의 정당한 교육에 대한 아동학대 위법성 조각 사유가 법에 명시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