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5일 스승의 날 아침 11시, 경주 구치소 앞에 30대의 버스가 조용히 밀려왔다. 구치소측과 경찰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바짝 긴장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총장.부총장님 사랑해요"
그러나 30대의 버스가 구치소 정문 앞에 멎자 주변은 갑자기 너무 조용했고, 각기 카네이션 한 송이를 든 학생들이 말없이 버스에서 내렸다. 포항에 있는 한동대 학생과 교수 1천5백명과 전국에서 모인 학부모 2백여명이 닫혀진 구치소 정문 앞에 말없이 도열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더러는 흐느껴 울고 더러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간절한 염원을 바쳤다. 눈물로 시작된 스승의 날 행사의 시작이었다. 매년 스승의 날에 학교에서 하던 행사를 경주 구치소 앞으로 옮긴 것이다.
며칠 전 한동대 김영길 총장과 오성연 부총장은 "죄질이 나빠" "도주의 염려가 있는 자" 라 하여 법정구속돼 수감됐다. 학생들은 목소리를 모아 스승의 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라.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 노래는 목이 메고 눈물에 젖었다. 노래말 그대로, 아니 그보다 더 높고 숭고한 사랑으로 맺어진 사제의 사랑이 천지를 흔들던 자리였다.
'총장님, 부총장님 사랑합니다' . 들고온 카네이션과 함께 사랑의 마음을 구치소 앞에 내려놓고 그들은 눈물로 그 자리를 떠났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구치소 앞에서 치러진 스승의 날 행사였다. 학생.교수.학부형들이 이렇듯 한 마음 한 뜻을 지닌 참다운 스승의 날 행사가 또 있었을까. 잔뜩 긴장해 대비하고 있던 경찰들은 오히려 가슴 뭉클해하며 손을 넣었다.
누구나 한동대의 교정에 들어서면 다른 학교에서 느끼기 어려운 신선한 감동을 받을 것이다. 누구를 만나든 활짝 웃는 웃음의 인사가 있음에 놀라고 생기 발랄한 공기가 가득 차 있음에 놀라게 될 것이다. 혼전 순결서약이 이뤄지는 학교, 무감독 시험이 시행되는 학교, 정직한 지도자가 절실한 이 시대에 정직한 지도자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학이 한동대학교다.
공교육을 믿을 수 없어 자식들의 장래 때문에 이민이 줄을 잇고 있는 이 세태, 자식들의 교육 때문에 부부가 갈라져 살고 있는 이 어이없는 이산가족 사태 속에서, 한동대의 학부모들이 절대 신뢰를 갖고 자녀들을 포항 한동대에 보내고 있음은 무슨 뜻이겠는가. 무너져 가는 교육의 실태를 두고 우리 모두 뼈저려하고 있지 않는가. 사학의 어려움을 우리 모두가 절감하고 있지 않는가.
설립 이후 6년여 동안 한동대가 걸어온 길은 숱한 시련과 눈물 밭이었음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목숨걸다시피 "다른 스승의 길" 에 가겠다고 나선 그들의 길을 격려하고 닦아주지는 못할 망정… 나는 법률에 무지하니 법원의 처사에 대해서는 입을 뗄 처지는 아니다.
그러나 김총장이나 오부총장 두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영리를 위해 이 두사람이 지었다는 죄를 짓고 또 제자나 학교를 등지고 도망할 사람들이 아님을 너무나 많은 사람이 보증하고 있는 형편이다. 진정한 사도(師道) 의 길을 목숨 걸고 가는 어버이 같은 스승들이다.
***한동대인 왜 눈물 흘렸나
43년간의 생애를 바쳐 영국 국익의 주 원천이었던 노예제도의 악습을 폐지하고 도덕 재무장운동을 펼쳤던 국회의원 윌리엄 윌버포스와 같은 인물이 우리에게도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혹여 이 사건이 사랑의 사도가 무엇인지를 몸으로 익히고 있는 한동대 학생뿐만 아니라 이 학교를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겨주는 사건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차제에 보기 드물게 곧은 교육자의 길을 가고 있는 이들이 왜 이런 처지에 몰려야 하는지 우리 사회 전반을 향해 묻고 싶다.
스승의 날 구치소 앞에서 눈물을 적시며 기도했던 한동대 학생들을 나 또한 눈물로 적신 앞섶을 열어 안아주며, 이 눈물이 결코 헛되지 않으며 우리의 미래도 결코 어둡지 않다는 말로 위로하고 싶다.
정연희 소설가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