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신고만 하면 ‘철거 OK’서 건축위 심의에 상주 감리까지
장전동 아파트 철거 현장 가 보니
광주 학동 철거 참사 후 법 강화
바뀐 규정 적용 부산 첫 사례
시행 얼마 안 돼 현장 곳곳 혼선
종전 1달 소요 사업장 3달 걸려
부산 금정구 장전동 옛 화목아파트의 철거 작업이 한창이다. 15층 규모의 화목아파트 철거 현장은 지난해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사고 후 강화된 법이 적용된 부산 첫 고층 사업장이다. 금탑건설(주) 제공
16일 부산 금정구 장전동 옛 화목아파트 철거 현장. 촘촘하게 이어진 시스템 비계와 가림막만 보이고 철거 건물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철거 현장이 아닌 신축 공사장과 유사한 모습이다. 시스템 비계 사이 임시로 만든 계단을 이용해 상층부로 40m가량 올라가면 비로소 철거 현장이 보인다. 작업자들은 이 계단을 이용해 철거 현장에 도착해 건물 옥상에서부터 철거를 진행해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
1986년에 준공된 이 아파트는 15층 규모 221세대로, 지역주택조합 사업을 위해 9월 철거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광주 학동 철거 현장 붕괴 사고 후 강화된 건축물관리법이 올해 8월부터 시행됐는데, 해당 사업장은 바뀐 규정을 적용받는 부산의 첫 15층 건물이다.
동원된 철거 장비의 동선을 비롯해 철거 과정은 현장에 상주하는 감리를 통해 철저하게 감독된다. 예전에는 주요 공정만 감리가 살피는 방식이었다면, 법 강화 후 일정 규모 이상의 철거 작업장에는 상주 감리를 두고 있다. 옛 화목아파트 철거 현장에는 상주 감리 2명이 근무하고 있다.
학동 참사 후 허가제 대상 건물도 확대됐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건물이 신고만 하면 철거 가능했다. 하지만 올해 8월부터 연면적 500㎡ 이상, 건축물 높이 12m 이상의 4개 층(지하층 포함) 이상 건축물도 여러 단계의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우선 철거 업체는 건설안전기술사가 작성한 해체계획서를 구청에 제출하는데, 이 과정만 한 달가량 걸린다. 이후 구청은 국토안전관리원의 검토를 받고, 이를 통과하면 건축위원회 심의를 열어 해제 계획을 검토한다. 복잡한 심사를 통과하더라도 당장 해체는 어렵다. 인접 건축물 조사 등 해체를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 한 후 해체가 가능하다.
옛 화목아파트 철거를 진행하는 금탑건설(주) 이종범 대표는 “예전에는 신고부터 철거 완료까지 한 달 가까이 걸린 사업장이 지금은 최소 석 달은 걸리고, 철거 비용도 배 가까이 늘었다”고 전했다. 금탑건설(주)은 부산의 대표적인 철거 업체로, 삼성그룹의 모태가 된 부산 서면 옛 제일제당 건물 철거 등에 참여했다.
바뀐 규정이 시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다 보니 현장 곳곳에서는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민간사업자뿐 아니라 구청 등 관공서도 철거 작업을 발주하면서 강화된 규정을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철거업체와 발주처가 철거 비용과 공사 기간을 두고 충돌하기도 한다. 건축위원회 심의를 통과한 해체작업서가 막상 시공 과정에서 적용되기 어려워 다시 규정을 검토하는 작업이 반복되고 있다.
화목아파트 해체 감리를 맡고 있는 안병연 건축사는 “안전은 계속 강화되는데 현장의 돌발적인 상황에서 참고할 표준지침은 부족한 상황”이라며 “안전을 위해서라도 현장과 해체작업서 사이 괴리를 막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