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일) ‘하늘씨앗교회(담임목사 김옥성)’에서 ‘12월 영성학교’가 열렸다.
14시부터 16시까지 <신앙과 영성철학>이란 주제로 김한중 수도원장님께서 특강을 해주셨다.
솔성수도원(率性修道院), ≪중용(中庸)≫에서는 ‘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이는 곧 천지가 명하는 것에 순응하고 따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김한중 수도원장은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신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측 목사로서,
하늘씨앗교회 김옥성 목사님과는 동갑이면서 동문수학하신 사이셨다.
두 분께서 함께하자고 다짐하셨던 목회의 가치는 솔성과 하늘씨앗이었다.
한 분은 도시에서 대중을 상대로, 한 분은 무등산 자락에서 수행을 통해 실천하고 계셨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마지막까지 전라남도 도청을 사수했다는 김한중 수도원장,
달동네 하월곡동에서 목회를 시작했다고 하셨다.
목사직을 자진반납하신 고 허병섭 목사님 후임으로.
또한 노가다 목사님으로 유명하셨던 고 허병섭 선배 목사님을 집사님으로 모시고.
이젠 고인이 되신 허 목사님을 한빛교회에 다닐 때는 간혹 뵈었다.
대안대학인 녹색대학 공동대표도 하셨다.
녹색대학 2대 대표이셨던 한면희 선배님께서 허 목사님을 문병하러 가실 때 동행하지 못했다.
그때 한 선배님과 같이 서울대학교병원을 찾았어야 했는데.
김한중 목사 수도원장님 특강을 1인칭 화법으로 정리했다.
귀가 시원치 않아 목사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부분이 많다.
게다가 전화기에 메모하면서 속도와 정확도가 많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용이 잘 못 된 것은 전적으로 필자인 내 탓임을 밝힌다.
한국교회가 이러면 안 된다.
수도원은 영성을 수련하는 곳이다.
호모 사피엔스, 육체는 진화가 안 됐다.
정보는 엄청나게 진화했다.
마음이 진화한 건 감정이다.
이성은 아직 진화됐다고 말할 수 없다.
이성은 감정 행위를 좀 돕는 데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이성은 어마어마한 힘을 가졌다.
에고는 감정과 결부된 것이다.
힘든 일을 10년 정도 하고 나면 에고가 말랑말랑해진다.
그때 도를 닦으면 된다.
이성, 이론 공부를 먼저 해야 한다.
이성의 사유가 작용하는 게 철학이다.
영성은 지적 작용으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철학을 공부하고 수행한다.
영성철학을 잘 했던 집단인 인도 부랑아들이다.
인도철학, 동양철학은 상당히 지적이다.
해탈하면 신 앞에서 떨지 않을 정도가 된다.
현존 신학에서는 진리를 가져올 수 없다.
신학의 70%는 가짜다.
정직하지 못하다.
알맹이가 없다.
요즘 교회 현상, 교회를 어떻게 잘 운영할 건가를 가르친다.
모든 종교철학은 실재를 찾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실재는 하나님이다.
하나님, 즉 하늘씨앗이 실재다.
이해하지 못해 수행하지 않는다.
씨앗을 갖고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어떻게 발아시키는 것인지는 모른다.
영성훈련과 수행을 통해 해탈해야 한다.
지금은 위대한 스승이 나타나지 않는다.
영적 폭발이 불가능하다.
영성철학의 시작은 우리가 생명체라고 자각하는 것에서부터다.
그 생명체의 모순을 자각해야 한다.
모순을 자각하지 못해도 사유는 가능하지만 철학은 불가능하다.
천국은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삶은 온통 고통으로 채워져 있다.
두카를 ‘고(苦)’로 번역했다.
두카는 마음에 안 드는 것, 즉 모순을 말한다.
두카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게 철학이다.
두카, 모순이 있다.
모순의 원인이 있다.
모순을 어떻게 사라지게 할까?
모순이 사라져야 한다.
세상이 심란하다는 건 뭔가 잘 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개판으로 만들지 않았을 텐데.
드라마, 현실로 보지 말고 시시하게 봐버리면 될 것이다.
인도철학 네 단계다.
생사, 마야, 니르바나, 요가.
잘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정확하게 볼 건가?
해탈은 마음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깨달음은 지혜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사회적 해방을 위해 해탈을 거쳐야 한다.
해탈 없는 사회적 해방은 바리세파처럼 변해버린다.
지적 심미에 빠지면 엄청난 학자가 될 수 있다.
해탈이 없으면 인간이 안 된다.
원래 우리는 인간이 아니다.
몸이 인간 모습을 타고난 것에 불과하다.
몸을 벗어나면 고통이 사라진다.
난 사람인데...
영성철학이 안 된다.
인간, 신 등 모든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나야 해방된다.
모든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나야 신적이 된다.
인간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고 하지만 벗어날 수 없다.
계속해서 인간으로 태어나봐야 모순으로 빠진다.
인간을 벗어나려면 인간을 정밀하게 이해해야 한다.
우리 인간에게는 5개 몸들이 있다.
육체.
정묘체,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
이지체, 천국보다 더 높은 천국에 간다.
원인체, 윤회한다.
영혼, 주체를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요가는 영적수행방법론이다.
운동으로 하는 요가가 아니다.
육체를 정화시키는 종교는 없다.
육체를 해방시키는 방법은 소식(小食)으로부터다.
정묘체 정화,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다.
어떻게?, 마음을 관찰함으로써 해탈에 이르게 된다.
이지체, ‘철학하기·진리공부·명상수행(깨어있기)’을 통해 심해탈에 이르게 된다.
어느 정도 돼야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해해탈, 진짜 수행이 필요하다.
깨달음이 올 때 몸이 정화된다.
두 개를 다하면 원인체가 정화되기 시작해 완전한 해탈에 도달하게 된다.
인간은 네 가지 몸으로 즐긴다.
쾌락은 죄가 없다.
인간은 동물성으로 죄가 없다.
한계가 있어 언짢기 때문에 몸들을 정화해야 한다.
수행은 이런 몸들을 정화해 생명체다운 삶을 누리게 한다.
정화와 쾌락은 반대로 죄가 없다.
탐닉이 문제다.
그러므로 중용과 절제가 필요하다.
그래서 수행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정화할 건가?
모순으로 꽉 차있는 삶, 당분간 고통이 따른다.
하늘씨앗교회 김옥성 목사님께서 12월 영성학교 특강에 초대해주셨다.
강북구 삼양동에 위치한 하늘씨앗교회까지 걸어가려고 맘먹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침식사량이 너무 많아 속도를 높일 수 없었다.
가래떡 여러 개, 동지팥죽 한 대접, 홍시 두 개를 먹었다.
특강 시작시간 14시에 늦지 않기 위해 13시 30분 지점에서 교통편을 이용하기로 생각을 바꿨다.
집에서부터 걸었다.
한강 광진교를 건넜다.
장신대학교 남문으로 들어가 서문으로 나갔다.
아차산 둘레길을 이용했다.
용마산 중곡지구에서 장평교 쪽으로 내려갔다.
장평교에서 왕산로까지 계속 직진했다.
장안사거리, 촬영소사거리, 답십리사거리, 동대문중 사거리, 전농1동 사거리를 지나갔다.
신설동역에서 우이신설선 경전철을 타려 했던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13시 30분이 다 된 시각에 제기역 3번 출입구에서 화장실을 찾아 서둘러 내려갔다.
볼일을 마치고 개찰구 앞에 서자 13시 30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제기역에서 1호선을 타고 가다가 다음 정거장인 신설동역에서 우이신설선 경전철로 환승했다.
삼양역에서 내려 뛰다시피 했다.
하늘씨앗교회가 들어있는 건물에는 14시 이전에 들어섰다.
건물 안에서 하늘씨앗교회로 이어지는 계단과 복도를 얼른 찾지 못해 두 번이나 물었다.
1~2분 늦게 들어간 것 같다.
첫댓글 힌두와 불교의 영성 그리고 켄윌버의 영성까지 회통되고 있습니다. 모아 놓는 것이 중요한것이 아라 어떻게 연결되어 상승작용을 일으켜 욕망이라는 장작에 불붙어 타는 두카를 햐결할 것인가의 철학이 영성철학 아닌가 보입니다. 기독교나 힌두의 전통처럼 신으로 부터의 탑다운 방식과 불교나 도교처럼 보텀업 방식 모두 연구되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탑다운 방식
보텀업 방식
dukkha , 苦를 실재[苦], 원인[集], 소멸[滅], 길[道] 사성제를 해결하는 길이 영성철학이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