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봉공(奉公) 제1조 선화(宣化)
1. 군수(郡守)ㆍ현령(縣令)은 본래 은택을 입히어 덕화(德化)를 펴는 것인데, 요즈음은 감사(監司)만이 이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동중서(董仲舒)(주1)의 대책(對策)(주2)에 이렇게 말하였다.
“요즈음 군수나 현령은 백성의 스승이요 지도자이니, 그들로 하여금 은택을 입히어 덕화를 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령이 현명하지 못하면 임금의 덕이 선양되지 못하고 은택이 입혀지지 못합니다. 오늘날 관리들은 아랫사람을 교훈함이 없고, 혹은 주상의 법을 이어받아 쓰지 않고 백성들에게 포학하게 하여 간악한 아전들과 부동하여 이익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외롭고 약한 백성들은 원통하고 괴로워서 생업을 잃어버리게 되니 심히 폐하의 뜻에 맞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음양(陰陽)이 순조롭지 못하고 나쁜 기운이 충만하여, 뭇 생령(生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백성들이 제대로 구제되지 못하니, 이는 모두 수령이 현명하지 못하여 이런 지경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살펴보건대, 덕화를 펴고 은택을 입히는 것이 수령의 책임인데도 오늘날은 감사의 정청(政廳)에만 ‘선화당(宣化堂)’이라는 현판을 써 붙였다. 수령들은 평소에 이 현판을 익히 보고 마음속으로 덕화를 펴고 은택을 입히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며, 우리들은 부세(賦稅)를 독촉하여 거두어들여서, 상사(上司)의 꾸지람만 면하면 그뿐이라고 여긴다. 슬프다! 어찌 고루하지 않은가.
《서경(書經)》에, “신하는 나의 팔ㆍ다리가 되고 귀와 눈이 된다. 내가 사방에 힘을 펴고자 하면 너희들이 하여라.”(주3) 하였으니, 군수와 현령은 사방에 힘을 펴는 것이다. 조정의 덕의(德意)를 선포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애모하고 받들게 하는 것을 가리켜 백성의 관장(官長)이라 이른다. 요즈음 수령들은 스스로 학정(虐政)을 행하여 원망이 조정에 돌아오게 한다.
조정에서 부세 징수를 연기하라는 조서(詔書)가 내렸는데도, 그것을 감추어 반포하지 않고, 한결같이 토색하여서 그것으로 치부하기 위한 거래를 자행하며 - 대동(大同)(주4)의 징수 연기를 말한다. -
부채(負債)를 탕감(蕩減)하라는 조서가 내렸는데도, 그것을 감추고 반포하지 않고서 아전들과 농간하여 그 요리(料理) - 처리 - 하는 밑천으로 삼으며, - 환자(還上)(주5) 탕감을 말한다. -
병자를 구하고 시체를 묻어 주라는 영이 내려도 이를 감추고서 반포하지 않으며, - 건륭(乾隆) 말년에 서방에서 온 역질(疫疾)과 같은 것이다. -
혼인 못한 자의 혼인을 권하고, 어린애를 돌보아 주라는 영이 내려도 감추고서 반포하지 않는다. - 선조(先朝 정조를 말한다) 때 자주 이런 영이 내렸다. -
재상(災傷)(주6)을 도둑질하고는, “조정에서 삭제하였다.”하고,
굶주리는 백성을 구호 대상에서 제외하고는, “조정에서 어렵게 여긴다.” 하고,
피륭(罷癃)(주7)이 호소하면, “조정의 영이 지엄하니 난들 어찌할 수 있나.” 하고,
옥사(獄事)를 팔고자 할 때에는, “조정의 금법이 본시 엄한데, 너는 왜 범했나.” 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곤궁하여 시끄럽게 조정을 원망하게 한다.
아! 그래서 되겠는가. 수령은 마땅히 이를 생각하여 백성을 대할 때는 오직 조정의 은덕을 선포하는 것을 제일의 직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 문공(韓文公)(주8)이 조주 자사(潮州刺史)가 되어 올린 사표(謝表)(주9)는 다음과 같다. “부임하고 나서, 관리와 백성들을 만나서 갖추 말하기를, ‘조정이 태평하고 천자께서는 신성(神聖)하고 위무(威武)하며 인자하여 억조창생을 자식처럼 기르되, 거의 친소(親疎)나 원근(遠近)이 없다. 비록 만리 바깥 영해(嶺海)(주10)의 궁벽진 곳에 있더라도 한결같이 기전(畿甸) - 서울 지방 - 지방 연곡(輦轂)(주11) 아래에 있는 것처럼 대우한다. 좋은 일은 반드시 듣고 악한 일도 반드시 살펴서, 아침에는 일찍이 일 보고, 저녁에는 늦게 파하여 조심조심하되 온 천하의 어느 곳에서나 하나라도 제자리를 얻지 못할까 걱정하므로, 자사(刺史)를 보내어 백성들의 고통을 직접 묻게 하는 것이니, 진실로 불편한 것이 있으면 위로 알릴 수 있다. 국가의 헌장(憲章)이 완전히 구비되고 태평한 지 오래되어, 수령들은 조서(詔書)의 조목을 받들어 그것을 범하는 자가 적으니, 비록 맨 남쪽 변두리에 있을지라도 태평을 누리지 않는 곳이 없다.’ 하였습니다. 이민(吏民)들은 성덕(聖德)을 칭송하는 소리를 듣고 고무(鼓舞)되어 환호(讙呼)하니 정치를 하는 데에 힘들이지 않고 앉아서도 일이 없었습니다.”
[역주]
[주-D001] 동중서(董仲舒) : 한(漢)나라 광천(廣川) 사람으로 경제(景帝) 때 박사(博士)가 되고 무제(武帝) 때는 여러 번 대책(對策)을 함으로써 무제에게 존중을 받았으며, 얼마 후에 강도상(江都相)이 되고 뒤에 교서 왕상(膠西王相)이 되었다. 저서에 《춘추번로(春秋繁露)》ㆍ《동자문집(董子文集)》이 있다. 《史記 卷121》 《漢書 卷56》
[주-D002] 대책(對策) : 이 대책은 동중서가 현량문학(賢良文學)으로서 무제(武帝)의 책문(策問)에 대답한 것이다.
[주-D003] 신하는 …… 하여라 : 이 말은 익직(益稷)에 보이는데, ‘너희들이 하여라.’는 말은 곧 신하들이 노력해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주-D004] 대동(大同) : 삼세(三稅 대동(大同)ㆍ전세(田稅)ㆍ호포(戶布)임)의 하나로 땅 구실에 기준하여 쌀ㆍ무명 등을 상납하게 하던 제도이다.
[주-D005] 환자(還上) : 환자(還子)ㆍ환곡(還穀)이라고도 하는데, 춘궁기에 빈민에게 곡식을 대여하고 추수기에 거두어들이는 일이다.
[주-D006] 재상(災傷) : 천재(天災)로 인하여 농사에 입은 해이다.
[주-D007] 피륭(罷癃) : 곱사등이인데, 이들에게는 국역(國役)이 면제되었다.
[주-D008] 한문공(韓文公) : 문공(文公)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의 시호이다. 자는 퇴지(退之), 호는 창려(昌黎)이다. 감찰어사(監察御史)ㆍ조주 자사(潮州刺史)ㆍ국자좨주(國子祭酒) 등을 거쳐 병부 시랑(兵部侍郞)에 이르렀고, 저서에는 《한창려집(韓昌黎集)》이 있다. 《唐書 卷176》 아래의 사표는 《한창려집(韓昌黎集)》 권38 표장(表狀) 〈조주 자사(潮州刺史) 사상표(謝上表)〉에서 간추려 인용한 것이다.
[주-D009] 사표(謝表) :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올리는 글이다.
[주-D010] 영해(嶺海) : 광동(廣東)ㆍ광서(廣西) 지방을 가리킨다. 그 지방이 북쪽으로는 오령(五嶺)에 의지하고, 남쪽으로는 바다에 임했기 때문에 이렇게 칭하게 된 것이다.
[주-D011] 연곡(輦轂) : 임금이 타는 수레인데 전(轉)하여 임금이 있는 수도를 뜻한다.
郡守縣令。本所以承流宣化。今唯監司。謂有是責。非也。
董仲舒對策曰。今之郡守縣令。民之師帥。所使承流而宣化也。故師帥不賢。則主德不宣。恩澤不流。今吏旣亡敎訓於下。或不承用主上之法。暴虐百姓。與姦爲市。貧窮孤弱。冤苦失職。甚不聽陛下之意。是以陰陽錯繆。氛氣充塞。群生寡遂。黎民未濟。皆長吏不明。使至於此也。
〇案宣化承流。是守令之責。今唯監司之署題榜曰宣化堂。守令習見此榜。心以爲宣化承流。非我輩之責。我且催科督稅。以免上司之嗔而已。嗟乎。豈不固哉。
書曰。臣作朕股肱耳目。予欲宣力四方。汝爲郡守縣令者。所以宣力於四方也。宣布朝廷德意。俾民愛戴。是之謂民牧。今之牧者。自作虐政。歸怨朝廷。停稅有詔。而匿之不頒。一向椎剝。以逞其興販。謂大同停退。 已債有詔。而匿之不頒。與吏朋奸。以資其料理。謂還上蕩減。 救疾埋胔之令。匿之不頒。如乾隆末年西來之疫。 勸婚牧幼之令。匿之不頒。先朝屢有此令。 偸災傷。則曰朝廷削之。汰飢口。則曰朝廷難之。罷癃仰號。則曰朝令至嚴。吾亦奈何。禁繫思鬻。則曰朝禁本嚴。汝何犯之。使斯民。嗸嗸然怨慕朝廷。噫。其可乎。牧宜念此。每對下民。唯以宣布朝廷。德意爲第一職分可矣。
韓文公爲潮州刺史。到州上訖。與官吏百姓等相見。具言朝廷治平。天子神聖威武。慈仁子養。億兆人庶。無有親踈遠邇。雖在萬里之外。嶺海之陬。待之一如畿甸之間。輦轂之下。有善必聞。有惡必見。早朝晚罷。兢兢業業。唯恐四海之內。天地之中。一物不得其所。故遣刺史。面問百姓疾苦。苟有不便。得以上陳。國家憲章完具。爲治日久。守令承奉詔條。違犯者鮮。雖在蠻荒。無不安泰。吏民聞所稱聖德。鼓舞讙呼。不勞施爲。坐以無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