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63. 생존(survive)
어떻든지 나는 무스탕 탐사를 모두 마쳤다.
나는 힘든 무스탕 일정에서 끝까지 생존하는데 성공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내 배낭을 메고 무스탕 일정을 견뎌냈다.
원래 내 배낭을 셀파 비전의 포터가 져주기로 되어있었는데,
예산과 여러 가지 절차상 나는 내 배낭을 메고 탐사에 임하게 되었다.
하리가 자기 배낭하고 바꾸어 메자고 그러지만 그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어떻든지 간에 이렇게 해서 나는 내 배낭을 메고 마지막까지 모든 일정을 마치게 되었다.
그러나 원래부터 무엇인가를 메거나 들고 다니기를 싫어하는 내가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무스탕 여정을 걸어 다니는 것은 아주 힘들고 어려웠다.
상보체 오르는 길의 악명 높은 베나 패스를 지날 때에는 진짜 죽을 맛이었다.
덕분에 거기서부터 찝차를 이용하여 조금 편하게 빨리 일정을 마치기는 했지만
고산지대에서 힘들고 어렵기는 누구나 마찬가지 이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쁘고 조금만 무리하면 숨이 막힐 것 같고
머리는 지끈거리고 몸은 나른해서 생존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버텨내주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다.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역사의 증인이 될 수 있고 그 결과를 가져올 수가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버텨내고 생존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사라져 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표했던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도중하차를 하고 만다.
그리고 나름대로 자신을 합리화시키며 있는 자리에서 만족하며 살아간다.
수많은 천재들이 역사에서 사라져갔다.
수많은 제국들이 한 때 이름을 날렸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꿈과 이상을 그리며 인생이란 전투에 돌진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역사의 진보와 변혁에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가?
왜 수많은 천재들이 빛을 밝히지 못하고 중간에서 사라져가는 것인가?
왜 수많은 생명체들이 생존과 번영을 이루지 못하고 멸종해가는 것인가?
왜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안일에 머물러 죽어 가는가?
그것은 육체의 소욕과 안일에 빠져 영혼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런 추구가 습관화되어 일상의 삶으로 승화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자 라베송은 ‘습관은 의지적 운동을 본능적 운동으로 변형하는 것’이라고 했다.
목표를 향한 삶은 의지가 아니라 본능이 되어야 한다.
의지는 사라질 수 있지만 본능은 사라지지 않는다.
실패하고 포기하는 이유는 그것을 즐기며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무서운 사람은 주어진 임무를 철저하게 수행하는 사람이고,
그보다 더 무서운 사람은 그것을 즐기며 수행하는 사람이다.
마지막 승리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수행과 초월의 삶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끝까지 수행하는 것이요, 수행의 마지막은 초월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존이 성공’이라는 나의 명제는 이제
생존을 넘어서 ‘일상의 수행’이라는 단계로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