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 이른 아침에 길에 올라 곧장 순천으로 가는데, 도중에 선전관 원집을 만나 임금의 왕명서를 받았다. 전라병마사(이복남)의 군사들이 모두 괴멸하여 돌아가는 것이 길에 줄을 이으므로 말 3필과 활, 화살을 약간 빼앗아 왔다. 곡성의 ‘강정’ 에서 잤다.
출처: 난중일기 유적편 (이순신 저, 노승석 옮김)
-‘곡성의 강정’은 ‘능파정’이라는 정자를 가르킨다고 합니다. 이곳은 고려 태조의 마군 장군이자 평산 신씨의 시조, 신숭겸 장군의 후손인 신대년과 그 아우들이 모두 과거에 합격하고 낙향하여 지은 정자라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 복직명령서를 1597년 8월 3일(음력)에 받고 수군 재건을 위해 순천으로 가는 여정 중 들러 친분이 있던 신대년과 그 형제들을 만나 시국을 논의했다고 전해지네요. 여담으로 평산 신씨들도 임진왜란에 많이 참전했는데 신립, 신각, 신호 등이 있습니다.
첫댓글 신숭겸 후손인 평산 신씨들이 임진왜란에 많이 참전했군요 신립이 평산 신씨였다니...
어쩐지 북방뽕 마군뽕
신각 장군은 해유령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최초의 육전 승전했으나 선조의 아둔함으로 처형되었네요. 신호는 낙안군수로서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여러해전을 치룬 사람입니다.
https://youtu.be/MixxxbJC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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