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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 년 전 한국 사회에 인문학 열풍이 분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며 그 관심이 조금 줄어들었는데, 최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결부돼 다시 주목받고 있다.1 인간을 상회하는 지적 능력을 지닌 새로운 존재의 출현이 예상되면서, 인간의 본질과 특성에 대한 탐구의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존 한국 사회에 깊이 자리 잡았던 문학, 역사, 철학, 언어학을 초월한 새로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디지털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기독교인은 이에 대한 관심과 함께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인간 이해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칼뱅은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 인간 자체로부터 이뤄질 수 없다고 봤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2 하나님은 지혜로우시고, 의로우시고, 선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진실하시고, 능력이 많으시고, 생명이 풍성하신 분이다. 이러한 특징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고, 지혜와 의와 거룩함을 부여받은 데서 특히 잘 드러난다. 이처럼 하나님은 다른 동식물과 차별화된 특별 대우를 인간에게 허락하셨다.
인간은 이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요구받았다. 그러나 그 은혜와 기대에 올바르게 반응하지 못한 채 죄를 범하며, 타락했다. 이처럼 인간은 의로우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과 질적인 차이를 지닌 죄인이다. 신칼뱅주의를 발전시킨 아브라함 카이퍼도 인간이 죄성을 가진 존재라는 인식 속에 신학적 사유를 전개한다.
이는 그의 영역 주권 개념 속에서 잘 드러난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이 형성하고 있는 삶의 질서가 더 이상 부패하지 않기를 원하셨고, 이에 따라 그 절대적인 주권과 차이를 지닌 상대적인 주권을 각 영역에 부여하셨다.3 이 인정 속에 각 영역은 고유 기능을 다해야 하는 과제를 지니게 됐다. 특히 정치권력과 법체계는 영역 주권이 부여된 대표적인 질서로서 평화와 안전을 보호해야 하는 고유 역할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인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종교개혁 전통이 갖고 있는 특징이다. 이것은 근대 이후 자리 잡은 인간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대비된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 과학기술을 발전시켰다. 그 결과 이제 생명 공학 기술을 통해 성별을 인간 스스로 결정하고, 인공적으로 생명을 만들어 내기까지 한다. 약물, 프로스테시스 장치 등을 활용한 인간 향상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을 상회하는 존재인 포스트휴먼이 돼 가고 있기도 하다. 과학기술로 하지 못할 일이 없어 보이는 상황, 인간이 마치 하나님이 돼 버린 것 같은 상황에서 인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현실과 괴리된 듯 보인다. 이로 인해 기독교 신앙은 이전보다 더 현실성이 결여된 미몽의 관념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독일 교회는 기독교 신앙이 지니는 인간 이해가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것이 디지털사회 속 방향 정립이 필요한 기독교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인식이 집약돼 있는 사회백서의 검토를 통해 독일 교회의 인간과 죄 이해와 이것이 디지털 사회에서 지니는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죄란 무엇인가?
종교개혁은 잘 알려진 것처럼 루터가 작성한 95개조 논제가 공론화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그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대비되게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주님의 영광을 강조점으로 삼았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몇 해 앞두고 있던 독일 교회는 이 표제들이 담고 있는 의미를 명료화하고, 현실 상황과 연결하고자 했다.4
특히 오직 은혜와 오직 그리스도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 관심은 2015년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라는 사회백서 출간으로 이어졌다. 독일 교회는 이 사회백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 은혜가 응축돼 있는 십자가 죽음이 성경과 교회 전통에서 어떻게 이해돼 왔고,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사회백서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가 달리신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과 교회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죽게 한 것은 하나님을 연상할 때 떠오르는 사랑이라는 관념에 부합하지 않고, 그 방식 자체가 지나치게 폭력적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5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현대인에게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사회백서는 십자가에 숨겨진 하나님의 의도에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과 화해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향한 열정적인 사랑이 있으셨고, 이것을 다소 폭력적인 방식으로 보일 수도 있는 십자가 사건을 통해 표출하신 것이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화해자 역할을 수행하셨다.6
독일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본질적으로 인간의 죄에 기인한다고 봤고, 이에 따라 그에 대한 이해가 정교화 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의도에서 2020년 발표된 “기독교 인간론에서 본 죄, 잘못과 용서”라는 제목의 사회백서는 죄를 단순히 도덕적 차원의 잘못된 행위로 이해하지 않는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과 분리되고, 멀어지는 데 있다.7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 대신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하나님 그리고 동료 인간과의 관계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토대 위에 잘못된 행위가 나타나게 된다. 여기에 인간의 자유 의지가 전제돼 있다.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이뤄진 행동이 하나님과 멀어지는 결정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이러한 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8 특히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의지(창 3:5)를 잘못된 선택을 통해 표출하면서 타락했다. 인간의 타락은 낙원의 상실로 이어졌다. 그 아들인 가인은 하나님이 동생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시자 분개했는데, 이때 하나님은 그에게 죄를 다스리고 선을 추구할 것(창 4:7)을 요청하셨다.
그러나 가인은 이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채 동생을 살해했고, 이로 인해 첫 형제 공동체가 파괴됐다. 또한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고자 추진된 바벨탑 건축(창 11:4)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자신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시도로서 공통 언어의 상실을 가져왔다. 이외에도 아모스,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들은 빈곤층을 돌보지 않음으로써 심화된 구조적 죄를 강력하게 비판했고, 사도 바울은 선 대신 악을 택하여 죄를 짓는 인간의 한계(롬 7:19)를 지적했다. 사회백서는 이러한 성경 내용을 토대로 죄의 형태를 정리해 설명했다.
죄의 형태와 용서의 은혜
교만은 대표적인 죄의 형태다.9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생각하는 것 이상, 또한 인간이 부여받은 능력 이상으로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피조물로 창조하셨는데, 그 사실을 외면함으로써 피조물의 정체성과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만은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의 저항이라 말할 수 있다. 하나님과 경쟁하려는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태도는 제1계명인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라는 하나님의 요구와 상충된다. 오직 하나님만이 관심의 중심에 자리해야 하는데, 인간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교만 외에 탐심도 인간을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요소다.10 탐심은 현재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필요한 것 이상을 열망하는 태도다. 이것이 무분별하게 표출될 때 그 심각성이 더해진다. 특히 “네 이웃의 집”,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 것(출 20:17)을 강조하는 제10계명은 이러한 탐심의 금지를 내포한다. 과도한 소유욕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동료 인간과의 관계를 왜곡시키기까지 한다. 그래서 탐심은 현대사회의 병리적 문화를 가져오는 원인 중 하나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특정 행동을 하지 않거나 혹은 수동적 태도를 보일 때도 하나님과 멀어지는 일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게으름은 죄의 한 형태다.11 하나님이 각자에게 부여한 은사와 재능이 있는데, 게으름은 이것을 발휘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의도대로 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동료 인간에 대한 무책임한 방기로 이어질 수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31-32)에 등장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습격을 받은 여행자를 목격했지만, 그를 도와주지 않고, 외면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에 의해 부여된 동료 인간에 대한 책임을 외면한 게으름의 일종이다.
거짓도 죄의 한 형태다.12 하나님은 참되시고, 인간은 거짓되다(롬 3:4).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따라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지향하며 살아야 한다(엡 4:25). 참된 것과 진실을 추구하는 노력은 신뢰가 깃든 관계를 형성한다. 반대로 거짓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관계를 파괴하게 된다. 이처럼 교만, 탐심, 게으름, 거짓 등의 죄는 하나님과 분리되고,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동료 인간과의 관계를 무너뜨리는 파괴력을 갖고 있다.
인간은 이러한 죄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절망 속에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을 갖고 계신 하나님 덕분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인간과 화해를 이루셨다. 피조물을 향한 창조주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것이다.
루터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믿음을 통해 죄로부터의 자유가 가능해졌다는 점을 밝히며, 이를 기독교인의 자유라고 표현했다.13
인간은 이 선물로 얻은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며, 새로운 시작에 감사해야 한다. 이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동료 인간과의 관계에서 용서와 화해를 위해 노력하는 일을 통해 구체화된다. 이러한 인간의 죄에 대한 독일 교회의 관심은 디지털 사회에서의 죄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됐다.
디지털 기술과 제1계명
디지털 기술은 인간에게 풍요롭고, 편리한 삶을 선물해 줬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의 발전으로 이동 중에도 간편하게 통화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손쉽게 검색, 활용할 수 있게 됐고, 내비게이션의 발전으로 목적지를 찾아가는 일이 이전과 비교해 매우 손쉬워졌다. 또한 2010년 이후부터 제4차 산업혁명 개념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는데, 그 핵심인 인공지능 기술이 크게 발전하며, 일상에 많은 편의를 제공했다.
특히 인공지능 번역 기술과 생성형 인공지능인 챗GPT는 지식과 정보의 습득을 용이하게 한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디지털 기술은 우리의 일상이 돼 가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죄를 짓게 할 위험성을 지닌다. 이 점을 간파한 독일 교회는 디지털 사회에서 심화될 수 있는 인간의 죄를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따라 2021년 이러한 문제의식이 담긴 “자유와 디지털”이라는 사회백서를 발표했다.
이 디지털 백서 집필에 최근 독일의 기독교윤리학을 선도하고 있는 보훔대학교의 트라우고트 예니헨 교수, 베를린 훔볼트대학교의 토르스텐 마이라이스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디지털 사회의 문제와 대안을 십계명과 연결해 설명하고자 했다. 십계명이 주어진 시기는 현재와 큰 시간적 격차가 있지만, 이것이 시대를 초월하는 신앙적, 윤리적 원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백서는 제1계명과 관련해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의 압제에서 해방시키셨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자유의 경험은 이스라엘 민족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지닌 사람 모두에게 공유된다. 이것은 특히 십자가를 통한 해방 사건과 연결돼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에 얽매인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사도 바울의 설명(갈 5:1)이 이를 보여 준다.
루터도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을 통해 기독교인에게 죄로부터의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자유를 선물하신 하나님은 그들에 대한 기대가 있으셨다.14 자유의지의 잘못된 사용으로 하나님 대신 다른 신을 숭배하지 않기를 원하신 것이다. 그래서 제1계명은 오직 하나님을 관심의 중심에 둘 것을 요구한다.
디지털 기술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인간에게 많은 혜택을 제공해 주겠지만, 동시에 인간의 죄를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제1계명은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신뢰할 것을 요구하지만, 디지털 기술은 인간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의지를 표출하는 도구로 활용될 위험성이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포스트휴먼으로의 노력이 이에 해당한다. 인간 향상 기술을 통해 정신적, 심리적, 육체적으로 완전무결한 상태에 이르려는 노력은 피조물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그 한계를 초월하려는 일이다.15 피조물로서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하려는 겸손함이 실종된 노력인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정보를 취급하는 다국적 기업이 불특정 다수의 정보를 획득, 활용하고 있다.16 이를 통해 사람들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감시 사회가 형성됐고, 다국적 기업은 마치 하나님처럼 권력을 행사하게 됐다.
따라서 디지털 사회에서 하나님을 대체하는 관심 대상이 증가하고 있다는 문제의식과 그 경계를 위한 냉정한 자기 점검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와 다른 이타적인 기술 활용이 이뤄져야 한다. 특히 가난과 질병 극복에 기여해야 하는 디지털 기술의 역할이 조명받을 필요가 있다.
디지털 기술과 제2계명
제2계명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형상을 만들지 말 것을 요구한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신적 존재의 형상을 만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도 형상은 신의 현존을 의미하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는 이러한 전통과 다르게 형상을 만드는 일이 금지됐다. 인간이 하나님을 상징하는 형상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을 임의로 취급할 수 있다는 것, 곧, 피조물의 정체성과 한계를 경시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더 나아가 인간 스스로를 위한 우상으로 활용될 위험성이 있었다. 그래서 그 시도가 철저히 금지됐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 가시화됐다는 것을 설명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존재(골 1:15)다. 이러한 인식 전환에 따라 초기 교회부터 하나님을 상징하는 형상이 제작되고, 활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종교개혁 이후 줄어들었다. 칼뱅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이 구약성경의 이해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금송아지 사건(출 32장)은 그들이 형상 제작에 관해 우려했던 이유를 잘 보여 준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간 사이 모세의 형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의 요청을 받아들여 금송아지를 제작하였다. 백성은 이 금송아지를 숭배하며, 춤을 추었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를 샀는데, 그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행복과 번영을 빌기 위해, 곧, 그들을 위해 하나님을 상징하는 형상을 제작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백서는 금송아지를 제작한 것과 유사한 현상이 디지털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을 판매하여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이 선한 것으로 간주된다. 상품 판매를 증진하기 위해 광고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상품을 매력적으로 인식시키려는 다양한 시도가 존재해 왔다.
최근에는 인터넷 광고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광고가 크게 증가했다. 그 영향으로 상품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더욱 커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구매 행위가 행복과 성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 강조됐다. 이를 통해 홍보되는 상품은 애플사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의 종교가 돼 버렸다.17 대중은 상품을 마치 금송아지처럼 열망하고, 숭배하고 있다. 디지털 백서는 형상 제작 금지 계명을 기억하며, 광고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과 상품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디지털 기술과 제3계명
제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을 금지한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지만, 오용해선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고대 사회에서 이름은 그 존재의 정체성과 결부됐다. 이름이 없으면, 그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이름은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름의 사용은 그 대상에 대한 존중과 경외를 담아야 한다는 요구와 연결돼 있었다.18 이러한 측면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오용돼선 안 된다는 계명의 준수는 하나님의 존재가 존중받는 것을 의미했다.
디지털 백서는 이것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나타난 교회의 변화와 연결해 설명했다. 이 집단적 고난 상황으로 인해 교회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됐다. 비대면 예배 증가가 그 대표적인 예다. 사실 비대면 예배는 팬데믹 기간 동안 독일 교회 안에서 많은 논쟁을 가져왔던 주제다.19 종말론적인 성도의 교제와 비교해 볼 때, 비대면 예배와 대면 예배가 동일하게 상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 또한 신약성경에서 서신 등으로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었던 것처럼 성령의 활동은 시공간적 제약을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비대면 예배의 가치가 격상돼야 한다는 견해가 있었다.
이와 달리 예배의 본질이 상호성에 있다고 보고, 비대면 예배를 임시적인 조치로만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논쟁을 치열하게 겪은 상황에서 디지털 백서는 점차 디지털화돼 가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오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20 이는 예배 형태의 변화 속에서 하나님이 존중과 경외의 대상으로 올바르게 여겨지고 있는지, 이를 구체화하는 예배의 기획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외에도 디지털 백서는 디지털 사회에서의 일과 휴식(제4계명), 디지털 기술과 환경 문제(제5계명), 디지털 기술에 의한 폭력(제6계명), 디지털 기술과 성(제7계명), 디지털 기술과 경제(제8계명), 디지털 기술과 진실(제9계명), 디지털 사회에서의 탐심(제10계명) 등의 주제를 다룸으로써 디지털 사회에서의 인간의 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제공했다.
타락한 인간과 디지털 사회, 그리고 한국 교회
한국 사회는 독일 사회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기술과 관련 산업의 발전을 경험 중이다. 특히 인공지능 기술 발전이 민간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의 천문학적인 재정 투입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삶에 공헌하지만, 하나님과 분리되고, 멀어지려는 인간의 죄성을 자극할 위험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사회백서의 설명처럼 교회는 이 기술이 피조물의 한계를 경시하도록 유혹하는 것은 아닌지, 또한 하나님 대신 다른 경배 대상을 갖도록 자극하는 것은 아닌지 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점차 디지털화하는 교회의 현실에서 하나님을 존중하고, 경외하는 올바른 예배 형태를 모색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심과 노력은 디지털 사회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을 갖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註
1) 김재인, 《AI 빅뱅: 생성 인공지능과 인문학 르네상스》(동아시아, 2023), pp. 245-254.
2) 존 칼뱅, 《기독교강요 1권》, 문병호 옮김(생명의말씀사, 2020), p. 165.
3) Abraham Kuyper, Antirevolutionaire Staatskunde. Volume.1 (J. H. Kok, 1916), pp. 265-266.
4) 2014년 발표된 사회백서인 “칭의와 자유”는 이 표제들을 심층적으로 주제화했다. 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 Rechtfertigung und Freiheit. 500 Jahre Reformation 2017 (Gutersloher Verlagshaus, 2014).
5) 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 Fur uns gestroben. Die Bedeutung von Leiden und Sterben Jesu Christi (Gutersloh: Gutersloher Verlagshaus, 2015), p. 59.
6) 앞의 책, pp. 122-123.
7) 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 Sunde, Schuld und Vergebung aus Sicht evangelischer Anthropologie (Evangelische Verlagsanstalt, 2020), p. 13.
8) 앞의 책, pp. 68-86.
9) 앞의 책, pp. 35-36.
10) 앞의 책, pp. 38-39.
11) 앞의 책, pp. 40-41.
12) 앞의 책, pp. 41-42.
13) 앞의 책, p. 118.
14) 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 Freiheit digital. Die Zehn Gebote in Zeiten des digitalen Wandels (Evangelische Verlagsanstalt, 2021), p. 41.
15) 앞의 책, p. 50.
16) 앞의 책, p. 46.
17) 앞의 책, p. 59.
18) 앞의 책, p. 72.
19) 김성수, “공적 교회의 위기와 그 역할의 재설정,” 〈기독교사회윤리〉 56(2023), pp. 163-164.
20) 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 Freiheit digital. Die Zehn Gebote in Zeiten des digitalen Wandels, p.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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