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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봄으로 성화되는 길
(시 25:15)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히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우리들은 증거로 계시된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우리가 받은 빛이 모든 참된 빛의 신령한 근원이 되시는 주님에게서 온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협력하는 사람들은 안전한 기초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세상을 타락에서 구원하는 사업을 위하여 능력을 바칠 때에 풍성한 축복을 저들에게 부어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본이시다. 주님을 바라봄으로 우리는 주님의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며, 더욱 고상한 품성을 형성하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구세주를 올바로 증거 하도록 우리를 도우신다.(1SM 172.2)
모든 인간은 똑같이 지음을 받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의 회개하는 과정도 같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감동시키시며, 죄인은 다시 새 생애로 거듭나게 됩니다. 때때로 어떤 영혼들은 격렬한 회개, 마음을 찢고 슬퍼하는 일, 또는 양심의 가책으로 두려워하는 경험 등을 겪지 않고, 그리스도께 이끌리는 때가 있습니다. 저들은 높이 들림을 받으신 구세주를 바라봄으로써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1SM 177.4)
예수님께서는 인간적인 노력에 도덕적인 능력을 결합시키기 위하여 오셨으며,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은 범사에 저들의 모본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저들의 시야에서 떠나게 하는 일을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9)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진리를 바라보고, 또한 바라봄으로 변화될 수 있으며,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범죄에서 순종으로, 불 순결에서 순결로, 또한 죄에서 마음의 거룩함과 의로운 생애로 변화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저들에게 진리를 증거 하셨다. (1SM 262.1)
성화의 작업은 평생의 과업이다. 이 작업은 지속적이어야 하지만, 진리의 어떤 부분에 대하여 빛을 거부하거나 등한히 할 때, 성화의 작업이 심령 가운데 이루어질 수 없다. 성화된 영혼은 무지한 가운데 처하여 있는 것을 만족치 않을 것이며, 빛 가운데서 행하기를 열망하여 더욱 큰 빛을 얻기 위하여, 추구할 것이다.
광부가 금과 은을 캐듯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마치 숨은 보화를 찾듯이 진리를 탐구할 것이며, 받은 빛에서 더욱 큰 빛을 찾아내며 항상 지식의 증가를 보일 것이다. 그는 계속적으로 은혜와 진리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게 될 것이다. 자아를 극복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큰 거울을 바라봄으로 품성의 모든 결함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는 혹시 품성에 대한 하나님의 표준에 의해서 정죄를 받고 있지나 않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1SM 317.2)
우리들은 바라봄으로 변하게 된다. 거룩한 모본이신 주님의 완전하심을 명상할 때에, 우리들은 완전한 변화를 입으려는 욕망을 품게 될 것이며, 주님의 순결하신 형상을 따라 새로 지음을 입게 될 것이다. 품성의 변화가 이루어지며 진노의 자식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때문인 것이다. 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가게 되며, 신령하게 되어 신령한 사물들을 분별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의 정신을 일깨워 주며, 하나님의 율법의 기이한 이치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사람이 진리로 말미암아 회개하게 될 때에, 품성이 변화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또한 그에게는 이해력이 크게 증가하게 된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되며, 그리스도의 정신을 소유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삼게 될 것이다. (1SM 338.1)
우리들은 천국에 지망하기 위하여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눅 10:27)는 율법의 요구에 응해야만 한다. 우리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을 때에만 이 일을 할 수 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바라봄으로써 마음에 생기 있고 발전하는 원칙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성령께서 계속 역사하시고 신자들은 은혜에서 은혜로, 능력에서 능력으로, 품성에서 품성으로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영적 성장을 이룩함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된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저주를 끝내게 하시며, 신자로 하여금 죄에 속한 행동이나 영향에서 완전히 해방되게 하신다. (1SM 395.1)
바라봄을 통하여 인간은 찬탄할 수밖에 없게 되며, 그분께 더욱 끌리게 되고, 더욱 매료되고, 그분의 형상에 동화되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되기까지 그리스도와 같아지기를 더욱 소망하게 될 것이다. ‘에녹’처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한다. 그의 마음은 예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다. 그분은 최상의 친구이다.... (3SM 169.3)
우리는 바라봄으로써 변화된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품성의 완전하심과 거룩하심을 사람들에게 밝히 보여주신 거룩한 원칙들을 무시하고 사람들의 교훈과 이론에 집착할 때, 교회 안에서 산 경건성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초래되는 일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주님께서는 “내 백성이...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렘 2:13)고 말씀하셨다. (GC 478.2)
지적· 영적인면 모두에서 바라봄으로 변화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의 법칙이다. 사람의 마음은 숙고하도록 허락된 사물에 점차적으로 적응된다. 그러므로 마음은 습관적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에 동화된다. 사람은 자신이 정한 순결과 양선과, 진실의 표준 이상으로 향상할 수 없다.
만일 자아를 자신의 최고의 이상으로 삼는다면, 그는 자기 이상의 표준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오히려 그는 점점 더 퇴보되어 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만은 사람을 고상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기 자신만을 신뢰하면, 그는 필연적으로 퇴보할 수밖에 없다. (GC 555.1)
예수를 붙잡고 놓지 말라 — 나는 다시 그대에게 자신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라고 명한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능력 있는 분을 붙잡고 놓지 말라. 우리 주 예수님은 그대를 위한 그분의 사랑을 표현하셨는데 그 사랑 안에서 그분은 그대가 구원되도록 그분 자신의 생명을 주셨다. 그대는 그 사랑을 불신하지 말아야만 한다. 어두운 면을 보지 말라.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가지라. 예수님을 그대의 죄를 용서하시는 구주로 바라봄으로써 그대는 그분의 형상으로 변할 수 있다.
“나는 나의 구주께 요청하였으며, 그분은 나를 자유롭게 하셨으므로 나는 이제 진정으로 자유롭다. 나는 주님의 것이며, 주님은 내 것이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분이 나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심을 안다. 나는 내가 그분을 불신한다는 것을 나타냄으로 그분을 서운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원수와의 관계를 끊겠다. 나를 묶은 줄을 그리스도께서 끊으셨으며, 나는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라고 말하라. (3SM 326.1)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너희들은 실망을 당하지 않았느냐. 자, 이제 우리와 같이 살자. 그러면 세상적으로 번영할 수 있다. 이익을 얻고, 돈을 모으고 세상에서 이름을 날리자.” 기다리는 사람들은 위를 쳐다보면서 대답한다. “우리는 깨어 기다리고 있다.” 세상의 쾌락과 세상의 명예와 재리의 유혹에서부터 돌이켜 그들은 그 위치에 있음을 보여 준다. 그들은 바라봄으로 강해진다.
그들은 게으름과 이기심과 안락을 사랑하는 정신을 극복한다. 고난의 불이 당겨질 때, 기다리는 시간은 더 길게 느껴진다. 때때로 그들은 슬퍼하고, 그리하여 믿음은 흔들린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정신을 집중한다. 공포와 의심을 극복한다. 그들은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대적들에게 말한다.“나는 깨어 기다리노라. 나는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노라. 나는 환난과 고난과 궁핍 중에서라도 기뻐하리라.” (2T 194.2)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대들의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분을 바라봄으로써, 그대들은 그분의 감시 아래 일하고 있다는 것과, 그분의 임재로 그대들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과, 그분께서 그대들의 동기를 아신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매 발걸음마다 그대들은 이것이 예수님을 기쁘게 할 것인가, 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인가 하고 겸손히 묻게 될 것이다.
아침과 저녁에 그대들의 열렬한 기도가 그분의 축복과 지도를 위하여 하나님께 상달되어야 한다. 진실한 기도는 전능하신 분을 붙들고 우리에게 승리를 준다. 그리스도인은 그의 무릎에서 유혹을 저항할 힘을 얻는다. (4T 615.4)
모든 능력의 근원은 한이 없다. 만일 큰일을 당하여 성령께서 그대의 영혼에 역사하시길 구한다면, 자신을 하나님 안에 숨긴다면, 그대는 백성 앞에 메마르고 생기 없는 자로 나서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기도를 많이 하고, 예수를 바라봄으로, 자신을 높이는 일을 멈추게 될 것이다. 그대가 하나님을 속으로 의지하며, 인내로 믿음을 구사한다면, 그대는 예수께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오라”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6T 48.2)
열심히 일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생각할 시간이 없다. 그들은 구주를 바라보고 있으며, 바라봄으로써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를 입는다. 그분은 품성형성에 있어서 우리가 따라야 할 모본을 지니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지상생애에서 거룩한 속성을 분명하게 드러내셨다. 그분께서 그분의 영역에서 완전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영역에서 완전해지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8T 86.2)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빛이시다.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어둠속에서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갖게 된다. ‘요한’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요 1:12)다고 선언한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그분을 바라봄으로써 마음과 정신과 품성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된다. (9T 141.3)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요 16:7)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되면 장소 때문에, 또는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접촉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유익을 얻지 못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었다. 구주께서 성령으로 모든 사람에게 가까이 계실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예수께서는 그분이 승천하지 않으신 것보다 그들에게 더 가까이 계실 것이었다.
이제 모든 사람은 주를 바라보고, 그의 품성을 반사하므로 말미암아, 동등하게 은총을 받을 수가 있다. 믿음의 눈은 현실적으로 주의 자비와 은혜와 오래 참으심과 호의와 사랑을 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주와 같이 변하게 된다. (RC 22.2)
우리가 참회와 겸손한 신뢰를 품고 우리의 죄 때문에 찔림을 당하시고, 우리의 슬픔 때문에 비애의 짐을 지신 예수님을 명상할 때에 주님의 발걸음을 따를 수 있게 된다. 그분을 바라봄으로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런 일이 마음가운데 일어날 때에 우리는 자신이 의롭다는 주장을 하지 않을 것이며, 예수님만을 높이고 우리의 무력한 영혼은 그분의 공로를 의지하게 될 것이다. (RC 80.2)
그리스도인은 항상 저희 앞에 구주가 계심을 알며, 바라봄으로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궤변의 과학을 위하여 이 보화를 포기할 것인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진리는 하나님의 보물로 가득 차 있다. 신성에 참여하는 자는 진리를 굳게 붙들 것이다. 그는 결코 진리를 떠나지 않을 것인데, 이는 진리가 그를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RC 124.6)
우리는 예수를 바라봄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더욱 밝고 더욱 분명한 견해를 갖게 된다. 우리는 바라봄으로써 변화된다. 선함과 동료인간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본성이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寫本)이 되는 품성을 계발하게 된다. 우리는 그분의 형상을 닮아감에 따라 하나님을 알려는 우리의 역량을 더욱 늘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하늘세계와 더 많이 교제하게 되고, 영원한 세상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점점 커지게 될 것이다. (RC 156.7)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이 교만이나 자만이 아니라, 온유와 겸손함으로 그분 자신과 연합하고, 하나님과 동역자들이 되도록 그들을 사랑의 끈으로 끌어당기신다. 죄인들이 돌이킬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정사와 권세를 잡은 자들 앞에서 영광을 받으신다. 이런 개심한 자들은 세계와 천사와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나의 증인들”(사 43:10,12)이라고 말씀하신다. 나를 바라봄으로 너희는 나의 품성으로 변화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와 같은 인내와 사랑을 나타냄으로, 너희는 이런 모습을 드러내어야 한다. (RC 198.4)
그리스도의 품성에 관한 지식에서 자라나는 것이 영혼을 성화시킨다. 속죄의 기이한 사업을 분별하고 옳게 평가하는 것은 구원의 경륜을 명상하는 자를 변화시킨다.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영광으로부터 영광에 이르러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함을 받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은 고상하며 세련시키는 과정이 된다....
그리스도인이 열망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품성의 완전함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계신 그대로 본다면 그분처럼 되려고 각성할 것이며, 이것이 인간 전체를 향상시킨다. 왜냐하면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요일 3:3)기 때문이다.... (RC 304.5)
우리가 예수를 바라볼 때에도 그러하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것이 의의 태양이신 그의 형상을 반사한다. 우리는 그 밖에 다른 것은 볼 수 없고, 다른 어떤 것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영혼의 눈에 새겨져서 우리의 일상생애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준다.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성정을 부드럽게 하고 복종시킨다.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거룩한 형상, 곧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간다.
우리들은 우리와 교제하는 모든 사람에게 밝고 활기찬 그분의 의의 광선을 반사한다. 우리는 품성의 변화를 입는다. 왜냐하면, 마음과 영혼과 정신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바치신 그분을 반사함으로 밝히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속에 거주하는 개인적인 산 감화력의 실현이 있다. (RC 310.5)
우리는 성경을 상고함으로 우리가 그리스도께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분이되심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되어야 하며, 그분과 동역 자가되고 생애와 품성으로 그분의 대표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처럼 살아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결하고 완전한 생애를 살아야 한다. 우리는 완전을 사랑해야 하는데, 이는 예수께서 완전의 화신이 되시고, 매력의 큰 중심이 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생명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고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RC 318.3)
예수님의 계속적인 임재를 누림 — 주님의 사업과 관련된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모든 단계마다, “이것이 주님의 방법입니까?”라고 물으면서 언제나 그분의 영광만을 바라보며 일함으로 그들의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의 헌신은 꾸준히 증가될 것이며,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은혜와 지식 가운데서 끊임없이 성장할 것이다...우리는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변화된다. (PM 68.1)
생애를 바라봄으로써 변화됨—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발에 등이요, 우리의 길에 빛이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선점당한 마음은 사단을 물리칠 수 있도록 방비가 된다.
그리스도를 그들의 매일의 동무와 친밀한 친구로 삼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권세자들이 그들 도처에 있다는 것과 예수를 바라봄으로 그들이 그분의 형상으로 동화되어 갈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바라봄으로써 그들은 거룩한 패턴으로 변화되어 간다. 그들의 품성은 하늘왕국을 위하여 부드러워지고, 세련되고 고상하게 된다.(1MCP 332.2)
바라봄으로 변화됨—바라봄으로 변화되는 것은 지성적 본성의 법칙일 뿐 아니라 영적 본성의 법칙이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은 숙고하도록 허락된 사물에 점차적으로 적응된다. 그러므로 마음은 습관적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에 동화된다. 사람은 자신의 순결과 양선과 진실의 표준 이상으로 향상할 수 없다.
자아를 자신의 최고의 이상으로 삼는다면 그는 자기 이상의 표준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오히려 그는 점점 더 퇴보되어 갈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사람을 향상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기 자신만을 신뢰하면 그는 필연적으로 퇴보할 수밖에 없다. (2MCP 418.4)
어떻게 승리자가 될까—우리는 우리 앞길에 놓여 있는 모든 장애물에 맞서서 한 번에 하나씩 이겨가야 한다. 우리가 맨 처음 장애물을 극복하면 그 다음 것에 대처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질 것이며, 노력할 때마다 더 잘 진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바라봄으로 승리자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연약하고, 믿음이 없게 되는 것은 난관들에 우리의 시선을 붙들어 매고, 옳은 것을 위해 진지하고 열렬한 싸움을 싸우는 일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2MCP 553.3)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사람을 위해 돌아가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그분을 바라본다면, 그들은 아들 안에서 비할 바 없는 매력을 볼 것이며, 바라봄으로써 그들은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어 갈 것이다. 이제 그대는 세상을 따라가는 일이 그릇되다 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2MCP 560.4)
그대의 입술에서 그처럼 쉽사리 나오는 통속적이고, 가혹하고 거친 말들을 삼가야 하며, 하나님의 영께서 인간행위자를 통하여 말씀하셔야 한다. 그리스도의 품성을 바라봄으로써 그대는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갈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그대의 심령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그때에 그대는 주 예수의 형상을 반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처럼, 순결하고, 거룩하고 정결하게 되라고 요구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녀야 한다. (2MCP 578.3)
보는것이 상상력을 부패시킴.이 시대는 부패가 만연하다. 안목의 정욕과 부 패한 정욕이 바라봄으로, 읽음으로 일깨워진다. 마음은 상상으로 부패된다. 저열하고 낮은 정욕을 일깨우는 광경들을 생각함으로 쾌락을 얻기도 한다.
불결한 상상으로 그려보는 이 악한 영상들은 도덕을 부패시키고, 속임을 당하고 얼빠진 사람들이 고삐를 풀고, 육욕적인 정욕에 빠지도록 준비시킨다. 그런 다음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들을 짐승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마침내는 그들을 멸망에 빠뜨리는 죄와 범죄가 따르게 된다. (2MCP 591.4)
악한 습관들은 정복되야 함—유리로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실제적으로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는다. 우리는 너무 적게 기대하므로 우리의 믿음에 따라 받는다. 우리는 자신의 길과 계획과 개념들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롬 12:2)입증할 수 있도록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우리를 괴롭히는 죄는 정복해야 하며, 악습들도 이겨야 한다. 그릇된 성향과 느낌은 뿌리 뽑혀야 하며, 거룩한 기질과 정서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우리 속에 싹터야 한다. (2MCP 600.3)
이기적인 행복은 균형을 잃은 것임—의무의 상도(常道:보통의 길))에서 벗어나서 이기적 동기로써 구하는 행복은 편벽된 것이며, 변역하기 쉬운 것이요 일시적인 것이니, 그것이 지나가 버리면 심령은 쓸쓸함과 섭섭함으로 차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기쁨과 만족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불안한 길로 걸어가라고 방임되지 아니하였다. 그리스도인은 공연한 후회와 실망 가운데 버린바 되지도 아니하였다. 만일 우리가 현세의 낙(樂)을 가지지 못하였을지라도 우리는 내세를 바라봄으로 오히려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2MCP 644.1)
우리는 사고 능력을 올바르게 장악할 하나님의 변화시키는 은혜를 원한다. 우리는 악을 생각하고, 못마땅한 일들에 마음을 계속해서 집중시킬지 모르지만, 이것이 과연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주는가? 그것은 우리의 모든 경험을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이 되게 만든다.
그러나 예수를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된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은 목적을 염두에 둔다. 눈은 성화되며, 귀도 성화된다. 악에 대해서 그들의 눈과 귀를 담을 사람들 또한 변화될 것이다.(2MCP 670.4)
모든 흠잡는 일을 제쳐 놓으라.우리는 생각에서 모든 불평하는 일과 흠잡는 일을 뿌리 뽑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눈에 보일지 모르는 어떤 결점도 계속 바라보지 않도록 하자....
만일 하나님을 올바로 붙들고 있으려면, 우리는 대단히 귀중한 것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수여하시는 순결, 영광, 능력, 친절, 애정, 사랑을 계속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와 같이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은 영원한 이익과 관련된 것들에 고정되어 버려서, 다른 사람들에게서 흠을 찾으려는 욕망을 갖지 않게 될 것이다. (2MCP 789.1)
우리는 그리스도의 매력을 우리의 그리스도인 봉사 가운데로 가져가야만 한다. 우리가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즐겁고 명랑하며, 강하고 복된 감화를 끼치도록 하기 위하여, 의의 태양의 부드러운 빛들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야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는 침울하거나 슬픔으로 인도하지 아니한다.... 우리는 불쾌한 것으로부터 우리의 눈을 돌이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여야 하며, 그의 매력적인 미(美)와 품성의 은혜를 더욱 얻어야 하며, 남의 실수와 남의 잘못들을 생각하는 것들을 중지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방법들이 결함이 없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종종 실수를 한다.... 예수님 외에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를 생각하라. 그대 자신으로부터 또는, 모든 못마땅한 사물들로부터 돌아서라.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결점을 바라봄으로써 우리의 믿음은 약해지고, 또한 하나님과 그의 허락들은 보이지 않게 된다....(TMK 13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