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원장은 미국샌프란시스코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안 전 원장은 자신을 "철수 형!"이라고 부르며, 그가 빨리 귀국하기를 바라는 이들의 마음을 알고 있을까.
지난 1월 30일 진행한 프레시안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 시즌2, 3회의 요지(要地)는 "철수 형, 빨리 와 신당 만들어"였다. 냉철한 시사평론가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이 의견에 적극 동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함께 <이쑤시개>를 녹음한 안철수 전(前) 대선캠프 비서실 정기남 부실장과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그리고 서양호 실장은 '안철수 신당'에 의견을 보탰다.
정기남 부실장은 안철수 캠프 비서실 소속으로, 60여 일간 안철수 전 원장을 가까이에서 보좌했다. 정 부실장은 당시를 "의미 있는 체험이었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시장 후보직을 양보한 것부터 대선 때 보여준 후보 단일화 및 사퇴, 그리고 문재인 후보 지원 유세 차 광화문 광장에 깜짝 등장했던 일 등 안 전 원장은 "정치인이 가져야 하는 '타이밍(timing)의 정치'에 동물적 감각을 가졌다"고 평했다.
▲ 안철수 전 원장은 18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지난해 12월 19일 오후, 미국으로 출국했다. ⓒ연합뉴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머물고 있는 안철수 전 원장을 최근 만나고 온 무소속 송호창 의원과 금태섭 변호사 등에 의하면, 안철수 전 원장이 자신의 호칭에 대해 '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아닌 '안철수 전 원장'이라고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문재인에게 없는 '사생관', 안철수는 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민주당 초·재선 의원 모임 세미나에서 문재인 전 후보에 대해 "생각했던 것보다 사생(死生)관이 약했던 것 같다"며 "그래서 좀 실망했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문재인 후보가 의원직은 내놨으면 국민들이 결연한 의지를 읽고 조금 더 감동을 받지 않았을까"라고도 덧붙였다. 결국 문 전 후보가 자신이 가진 것을 버리는 자세가 부족했기 때문에 대선에서 패배했다는 말이다.
이철희 소장은 "윤 전 장관의 발언을 살펴봤더니 문재인 전 후보에게 인간적으로 크게 실망"해 "점잖게 '사생관'이라는 표현을 쓴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소장은 '사생관'이라는 단어에 안철수 전 원장을 대입했다. 안 전 원장이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시장 출마를 양보한 것과 문재인 전 후보와의 단일화 후 사퇴 등 "오히려 (안 전 원장이) '사생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그런 점에서 보면 문재인 후보가 의원직을 던지는, '버림'에 있어서는 (안 전 원장보다) 약하다"고 분석했다.
정기남 부실장도 안 전 원장의 행보는 "'사생관'과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안 전 원장이 '죽을 사(死)', 즉 사퇴할 때와 '날 생(生)', 살아날 때를 동물적 감각으로 정확하게 판단한다는 것이다. 정 부실장은 안 전 원장의 대선후보직 사퇴를 사(死)로, 문재인 전 후보 지원유세 차 광화문에 깜짝 등장했던 것을 생(生)으로 봤다.
진짜 '정치적 아웃사이더'는?
민주당 씽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 보고서가 최근 논란이 됐다. 연구원이 지난 22일 발행한 '안철수 현상의 이해와 민주당의 대응 방향'이라는 보고서에서 안철수 전 원장을 '정치적 아웃사이더(political outsider)'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 대선에 도전했던 기업가 출신 정치인인 정몽준 의원과 문국현 전 의원을 예로 들어 "선거에 패배한 이후 다시 정치권의 주역이 된 경우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서양호 실장은 이에 대해 "'안철수 전 원장이 아웃사이더가 됐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인 것 같다"며 "민주당이 안 전 원장을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인식하는 것 아닐까"라고 말했다. 정기남 부실장도 "민주당이 안 전 원장에 대한 트라우마 있는 것 아닌가"라며 "대선 때 단일화를 논의했던 연대의 당사자인데, 너무 경우 없는 짓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김윤철 교수는 "민주당이 '안철수 현상'을 여전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안철수 현상'은 국민이 민주당은 박근혜의 대항마를 못 갖고 있다는 생각에 안 전 원장을 주목한 것으로, 처음 등장할 때부터 야권을 대체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안 전 원장에 대한 민주당의 비판을 거꾸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안 전 원장이 대선 과정에서도 그랬지만 대선 과정이 끝난 후에도 독자적인 기반, 즉 진짜 야권을 재편하고 대체할 수 있는 세력으로 아직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며 안 전 원장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라고 설명했다.
이철희 소장은 "안 전 원장도 정치적 아웃사이더로만 남아서는 주역이 될 수 없다"며 "새 정치는 미국에서 혼자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특히 "민생 현장과 정치 현장이 다르지 않다"며 "정치적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정치 현안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전 원장이 들어와서 '나는 현실 정치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민중 속으로, 백성 속으로 들어가겠다'라고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기 위해서, 선택을 안 하기 위한 빌미와 변명으로 하는 것은 정말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악마의 맷돌'이 현실 정치이고, 일상 정치라면 뛰어들어야 한다고 본다. 그 속에 뛰어들어서 그것을 바꿔내야만 지도자로 검증받을 수 있고, 야권 재편의 핵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리더십을 보여줄 때다.
안 전 원장이 최소한 박근혜 정부 출범 전에는 들어와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사실 야권 재편의 결정적 분수령으로 가 있는데, 박근혜 당선인이 죽을 쑤니까 민주당이 굉장히 느슨해졌다. 키를 잡고 긴장을 부여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안 전 원장에게) 입당하라'는 얘기만 하고 있다. 안 전 원장의 선택이 민주당 입당 여부로 형애화 되는 것은 1차적으로 민주당의 책임이지만, 안 전 원장에게도 책임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빨리 판을 흔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뭔가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악마의 맷돌(Satanic Mills)'은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가 영국이 산업혁명을 거쳐 근대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종속된 서민들의 비참한 빈곤 상태'를 묘사한 단어
박근혜 정부, 이대로 취임해도 되나?
<이쑤시개> 2회에서 이철희 소장이 "인사 문제가 한두 건 더 터지면 상당히 아픈 상황까지 갈 수 있다"고 했던 말이 사실이 됐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이어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 지명자 인선이 파행을 겪으면서 한 달도 남지 않은 박근혜 정부 출범이 삐걱거리고 있다.
김윤철 교수는 이번 사태에 대해 "보수가 자기 발등 찍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 때 만든 중앙인사위원회 같은 인사시스템에도 보수·진보의 이념으로 "DJ·노무현 정부 때 했던 것을 다 없애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니까 정부 인프라 자체가 허약해졌다"는 것이다.
이철희 소장은 "새누리당이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 장상·장대환 두 명의 총리 후보자를 낙마시켰다"며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처음 실시된 2000년,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청문회 기준을 상당 부분 설정한 주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지금은 (새누리당이) 그 덫에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됐다.
김윤철 : 아예 총리를 엘리트층에서 찾지 말고, 아주 전향적으로…
이철희 : 난 40대 총리 콜!
서양호 : 김태호 의원?
김윤철 : 김태호 의원도 엘리트이다.
이철희 : 어차피 힘 안 실어줄 거!
정기남 : 그렇다. 거의 식물 총리 만들 텐데….
김윤철 : 그래서 오히려 '탕평'이라는 상징을 가진 사람을 시키는 게 어떨까.
이철희 : 난 박준영 전라남도지사 강추! 코드가 박 당선인과 비슷한 것 같다.
정기남 : 난 호남 구색 맞추기인 것 같아, 별로. 구체적 인물을 고민해보지는 않았는데 '서두르지 말아라'라는 것이다. 최적의 인물을 찾아내는 노력도 필요하다.
김윤철 : 박근혜 정부는 뭔가를 빨리하려고 하면 안 된다. 천천히 해야 한다.
이철희 : 천천히? 그렇다. 옛날에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이 김종필 전 총리를 6개월 동안 잡고 있었다. 서리 체제로…. 그래도 나라 안 망했다.
정기남 : 총리 없다고 국정이 안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2월 25일 대통령직에 취임하면서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를 국무총리에 지명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반대로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고, 3월 3일 김 대통령은 "국사를 더 이상 공백상태로 둘 수 없다"며 전 정권의 국무총리였던 고건으로부터 행정각부 장에 대한 임명제청을 받아 고건 총리의 사표를 수리, 김종필 총리 지명자를 서리로 임명했다. 이에 한나라당 소속 의원 157명이 국회 동의를 받지 않고 임명했다며 10일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이후 헌법재판소 재판관 8인 중 3인이 위헌의견을 냈고, 결국 사건은 7월 14일 각하됐다. 결국 국회는 김종필 총리 임명동의안을 의원 255명이 참가한 가운데 찬성 171표, 반대 65표, 기권 7표, 무효 12표로 8월 17일 통과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