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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하늘
 
 
 
카페 게시글
^^---산행 사진---^^ 스크랩 지리산 웅석봉 아래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는 석대산-수리봉(`12.10.20)
가을하늘 추천 0 조회 66 12.10.24 05:2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석대산(石岱山, 534m)-수리봉(남가람봉(568m)

 

산행일 : ‘12. 10. 20()

소재지 :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과 산청읍의 경계

산행코스 : 진자마을(경로당)밤나무 밭산길 개척석대산 정상석천원 갈림길산야초농원 갈림길수리봉(옛 남가람봉)청계리 갈림길청계저수지(산행시간 : 3시간 30)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징 : 웅석봉 가는 길목에 위치한 나지막한 산이다. 전형적인 흙산이지만 정상부근과 수리봉 근처는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수리봉 너머에 있는 상투바위가 웅석봉의 달뜨기 능선을 배경삼아 우뚝 서있는 광경은 한마디로 백미(白眉)이다. 도심(都心) 근처에 위치했더라면 어느 정도 대접을 받았겠지만, 지리산의 한쪽 귀퉁이에 다소곳이 숨어있기 때문에 웬만한 산꾼들 조차도 알지 못하는 숨겨진 산이다.

 

 

산행들머리는 진자(榛子)마을 경로당(敬老堂)

대전-통영고속도로 단성 I.C를 빠져나와 지리산아래 마지막 마을인 중산리로 들어가는 20번 국도를 타고 들어가다. 입석리에서 오른편에 보이는 1001번 지방도로 바꾸어 들어가면 얼마 안가서 산행이 시작되는 진자마을에 이르게 된다.

 

 

 

버스정류장 건너편에 있는 경로당(마을회관)의 오른편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계단식(階段式)으로 이루어진 논둑을 따라 들어가면 왼편은 감나무 밭이다. 길게 늘어진 감나무 가지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어서, 고개를 숙이지 않고서는 통과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나뭇가지에 커다란 감이 너무 많이 매달린 탓에, 열매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아래로 축 늘어져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차창(車窓) 밖으로 보이는 산야(山野)는 온통 감나무 천지 이었었다. ‘어머~ 어머~ 감이다 감!’ ‘너무 예쁘다뒷자리에 앉아있는 여성분들은 아직도 동심(童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니면 새로운 풍경(風景)에 흠뻑 빠져들어 오랫동안 잊어왔던 동심으로 되돌아 왔던지.. 산과 들에 빈틈없이 꽉 들어찬 감나무들은, 맨 마지막 빈 공간인 도로변까지 점령하고 있을 정도다. 온 세상이 감나무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감나무들마다 나뭇가지들이 늘어질 정도로 많은 열매를 매달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세상은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다. ‘오메 불이 나부렀네~~~’ 붉은 색의 아름다움은 결코 산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계단식 논두렁이 끝나면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잠깐 올라가다, 이번에는 오른편의 감나무 밭 사이로 난 길로 진행해야 한다. 감나무 밭이 끝나면서 만나게 되는 밤나무 밭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입석리에서 올라오는 주 등산로와 만나기까지 비교적 길은 뚜렷한 편이라고 한다.(산행이 끝난 후 선답자들의 후기에서 인용) 그런데 우린 감나무 밭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놓쳐버리고 잘 닦인 농로(農路)를 따른 덕분에 고난(苦難)의 산행이 되어버린 것이다. (전원주택)을 지으려고 농로를 잘 닦아 놓았으니 어떤 선두일지라고 그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감나무 밭으로 들어서서 오른편으로 진행하던 선두가 길을 놓쳤다고 되돌아 나온다. 그냥 능선까지 치고 오르겠다는 무언의 암시(暗示)일 것이다. 이곳이 두 번째의 잘못 판단했던 지점이다. 오른편으로 계속 진행했더라면 조금 돌더라도 정규 등산로를 만날 수 있었을 테니까. 감나무 밭을 50m 정도 치고 오르면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산을 만나게 된다. 그냥 무작정 치고 오르다가, 잡목(雜木)으로 인해 진행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우회(迂廻), 그러다가 희미한 산길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산길이 위로 향하지 않고 산의 사면(斜面)을 따라 옆으로만 이어지고 있다. 길가에 매여진 리본을 확인(確認)해 보니 산악회 것이 아니라 산()일을 하는 사람들이 매어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 길은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아닐 것이 분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오른편으로 진행하던 선두의 흔적이 길을 벗어나 왼편 숲으로 향하고 있다. 이곳이 세 번째로 판단을 잘못한 지점이다. 길이 비록 고도(高度)를 낮추고 있지만 계속해서 진행할 경우 정규 등산로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왼편 숲으로 들어서면 고난(苦難)의 행군(行軍)이 이어진다. 온통 참나무와 잡목(雜木)으로 이루어진 숲은 사람의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는데, 곳곳에 휘늘어져 있는 명감나무 넝쿨들까지 발걸음을 옮기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길 아닌 길 위에서 울다이보다 더 나은 표현이 있을까? ‘산행대장을 한명도 배정하지 않은 무책임(無責任)한 산악회를 원망하면서 걷다가 오늘 산행의 최대 복병(伏兵)을 만나게 된다. 말벌무리의 습격을 받게 된 것이다. ’! 따거!‘ 손목 부위가 불에 덴 듯이 따갑기에 내려다보는데 수많은 벌떼들이 덤벼들고 있다. 납작이 엎드렸다가 일시에 뛰쳐나갔지만 이미 다섯 군데나 벌에 쏘인 후였다. 윗도리를 벗으니 시퍼렇게 질린 집사람이 카드로 쏘인 곳을 밀기도 하고, 입으로 빨아내느라 정신이 없다. 다행이도 집사람은 무사하다고 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119에 문의를 하니, 호흡곤란만 아니라면 그리 위험한 상태는 아니니 얼음물로 쏘인 부위를 마사지 해주란다.

 

 

 

 

얼음물 마사지를 해도 통증(痛症)은 가라않지 않고, 그렇다고 무작정 주저앉아 있을 수도 없어서 산행을 이어간다. 같은 장소에서 벌에 쏘였다고 해서 응급조치를 해드린 분도 그냥 진행해 보자고 한다(이분 말고도 또 한분이 벌에 쏘였다.) 산행을 이으면서부터 집사람과의 다툼이 시작된다. 난 산행을 완주(完走)하고 싶은데, 마음이 불안한 집사람은 그만 하산(下山)해서 병원으로 가자고 하는 것이다. 석대산까지만 올라갔다 내려가자고 집사람을 꼬드겨 진행한 것이, 결국에는 산행을 마치고나서야 택시로 산청읍에 있는 병원에 다녀왔다. 벌에 쏘인 곳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능선으로 올라서게 된다. 따라서 길도 조금은 또렷해지고 있다. 능선을 걷다보면 가끔 등산로를 벗어난 곳에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통증이 심해서 만사가 귀찮지만 조망(眺望)을 보려는 욕심에 부득부득 올라서고야 만다. 바위 위는 그런 내 욕심(慾心)을 져버리지 않고 탁 트인 산하(山河)를 눈앞에 펼쳐놓고 있다. 웅석봉과 달뜨기 능선을 길게 늘어서있는 경관(景觀)이 시원스럽다.

 

 

 

 

 

갑자기 커다란 바위들이 능선을 가로막고 있다. 가지런하다면 그냥 통과해볼 만도 하지만 무질서하게 쌓여있기 때문에 우회(迂廻)를 하여 위로 오른다. 바위 위로 오르면 다시 한 번 웅석봉의 조망이 터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이어서 흙길로 되돌아온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거대한 바위 하나가 앞을 가로막고 있고, 바위를 돌아 오르면 시원스럽게 조망(眺望)이 터지면서 석대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30분이 지났다.

 

 

 

정상은 서너 평 넓이의 분지(盆地)에 커다란 바위들이 10여개가 무질서하게 쌓여있는 모습이다. 한 가운데에 산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커다란 정상표지석(534.5m)이 세워져 있고, 그 아래는 입석초등학교 동문들이 만들어 놓은 제단(祭壇)이 지키고 있다. 먼저 도착한 홍주아저씨부부(산행 때마다 진도의 名酒인 홍주를 챙겨 오시는 분이라 우리부부가 붙인 닉네임)가 벌에 쏘인 부위를 걱정하면서 막걸리를 권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양을 한다. 평소에 아무리 술을 좋아한다고 해도, 상체(上體)의 절반(벌에 쏘인 부위)이 불에 덴 듯이 뜨거운데도 냉큼 술을 마실 용기를 가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정상에서는 화장산과 백운산, 그리고 멀리는 한우산과 자굴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석대산 정상에서 남가람봉 방향으로 3분쯤 더 가면 삼각점이 나오는데, 이곳이 지형도(地形圖)534.5m로 표시된 정상이다. 아까 정상석을 보았던 지점은 정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상표지석이 세워진 봉우리는 높이가 539m로 이 지방 사람들은 그 모양이 사뭇 투구를 닮았다고 해서 투구봉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실제 정상인 535봉은 숲에 가려 있어서 보이는 것이라곤 하늘과 땅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위봉우리에다 조망까지 뛰어난 539봉에다 정상표지석을 세웠나 보다. 그렇다면 산의 높이다 539m로 적어 놓았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아쉽다.

 

 

 

어서 빨리 병원으로 가서 응급처치(應急處置)를 받아야한다는 집사람의 재촉에 쫓겨 사과 몇 조각으로 요기를 하고 남가람봉으로 향한다. 언젠가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라는 글귀(文句)를 읽은 적이 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집사람의 발걸음이 엄청나게 빨라진다. 느림보 산행이 자기의 전매특허(專賣特許)라는 것을 어느새 잊어버렸나보다. 평소에 무릎이 좋지 않기 때문에 걱정이 되지만, 다행이도 산길이 부드러워 마음이 놓인다. 산은 조그마한 봉우리를 쉬지 않고 오르내리지만, 그 높이가 낮기 때문에 야트막한 구릉(丘陵)을 걷는 것 같아 조금도 힘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완만(緩慢)한 경사(傾斜)로 이루어진 능선길은 참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이름 모를 잡목들이 적당하게 섞여 있다. 그러다가 잠시라도 나무들이 뜸하다싶으면 그 틈새에는 어김없이 무성하게 우거진 억새들이 차지한다. 석대산 정상을 떠난지 20분 정도가 흐르면 길가에 세워진 ‘119구조대의 위치 표지말뚝이 보이는데, ‘석대산 입석초교 3Km’라고 적어 놓았다. 아무래도 산 아래에 있는 입석초교에서 여기까지의 거리가 3Km인 모양이다. 능선의 왼편은 밤 밭인데 내려가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통증(痛症)이 도무지 가라앉질 아는데도 탈출할 길이 없는 것이다. 집사람이 걱정할까봐 아프다는 소리도 못하고 묵묵히 집사람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다.

 

 

 

119표지목을 조금 지나서도 계속되는 밤나무단지를 왼편에 끼고 걷다보면 진행방향에 제법 거대한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바위봉우리(474m) 위는 또 하나의 뛰어난 전망대(展望臺)이다. 가야할 방향에는 수리봉 능선의 봉우리들이 늘어서 있고, 오른편에는 경호강()과 강을 낀 너른 들판이 발아래에 깔려있다. 경호강 너머의 산들은 아마 월명산과 백마산, 그리고 둔철산일 것이다. 물론 왼편에는 웅석봉의 달뜨기 능선이 있다.

 

 

 

 

 

바위지대를 잠시 더 걸으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이정표 : 정상 3.5Km/ 석천원/ 청계). 오른편으로 내려가면 석천원으로 하산할 수 있으나, 계속 직진할 수 밖에 없다. 청계저수지에서 기다리고 있을 산악회 관계자들에게 얘기를 하는 게 먼저 인데, 청계저수지는 산의 왼편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대산 정상을 출발한지 50분 가까이 지났다.

 

 

 

삼거리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송신탑이 보이고 15분 정도를 더 걸으면 권씨들 가족묘에 이르게 된다. ‘묘역(墓域)은 능선의 한 가운데를 점령하고 있다. 묘비(墓碑)를 보니 가선대부(嘉善大夫 : 2품의 벼슬아치에게 내리던 품계)라고 적힌 묘()2()이다. 그중의 하나의 벼슬은 참판(參判 : 지금의 次官)이나, 나머지 하나는 엉뚱하게도 현감(縣監)벼슬이다. 이해가 가지 않지만 굳이 따질 일이 아니어서 그냥 발걸음 재촉한다. 묘역(墓域)을 오른편에 끼고 위로 오르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청계저수지로 내려가는 길인데, ‘흙 속에 바람 속에라는 민박집에서 이정표를 만들어 놓은 탓에 청계저수지라는 지명 대신에 자기들 농원의 이름인 산야초농원이라고 적어 놓고 있다. 물론 수리봉으로 가려면 곧장 능선을 따라 걸어야 한다.

 

 

 

 

 

 

산야초농원 갈림길에서 3분 가까이 걸으면 넓은 공터가 나온다. 넓이로 보아 예전에는 헬기장으로 사용되었나보다. 헬기장을 지나면 곧바로 수리봉(568.4m)이다. 수리봉은 한마디로 봉우리라고 부르기에도 어색할 정도로 야트막하다. 능선 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그저 그렇고 그런 구릉(丘陵)의 하나일 따름이다. 흙으로 이루어진 구릉 위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바위 몇 개가 쌓여있고, 그 위에 정상표지석이 놓여있다. 그런데 이 정상석이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지형도상에는 남가람봉이라고 적혀있는데도 막상 정상석은 석대산 수리봉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것이다. 원래 이곳에는 진주의 남가람라이온스에서 세운(1993. 10. 24) 정상표지석이 서 있었다. 아마 당시 라이온스 클럽에서 정상표지석을 세우면서 봉우리에 자기들 클럽의 이름을 갖다 붙였던 모양인데, 누군가가 그릇됨을 알고 본래의 이름을 찾아주었나 보다.

 

 

 

 

정상석 조금 뒤에 삼각점이 보이고, 삼각점 뒤의 언덕에 서면 대진고속도로와 3번 국도, 그리고 경호강이 나란히 달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경호강 건너편의 계곡에 앉아있는 다랑이 논들이 살가운 것을 보면, 나의 동심(童心)도 아직은 사라지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삼각점을 떠나 잠깐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면 왼편에 바위 무더기가 보인다. 바위 위에는 누군가가 뾰쪽한 돌을 이용해 탑()을 만들어 놓았다. 요기도 할 겸해서 들어서니 의외로 뛰어난 전망대(展望臺)가 우릴 맞는다. 오른편에 있는 웅석봉에서 시작되는 달뜨기 능선이 웅장(雄壯)하면서도 너그럽게 펼쳐지고 그 아래에는 청계저수지가 다소곳이 앉아 있다.

 

 

 

전망대의 오른편에 뽈록하니 솟은 바위봉우리 하나가 보인다. 진행방향에 있으므로 봉우리를 넘어야 하지만, 암벽산행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우회(迂廻)하면 되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바위봉우리에 오르면 웅석봉과 십자봉, 그리고 둔철산과 황매봉이 잘 조망(眺望)된다. 그리고 오른편에는 경호강과 건너편 둔철산이 어느새 코앞에 다가와 있다.

 

 

 

저 바위가 이곳 석대산의 명물이라는 상투바위일 것이다.

 

 

 

바위봉에서 시작되는 내리막 구간이 오늘 산행에서 제일 빼어난 구간이다. 각양각색(各樣各色)으로 생긴 바위들로 이루어진 바위들을 감상할 수 있는데다가, 스릴(thrill)있는 바윗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스릴을 위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구태여 우회(迂廻) 필요가 없다. 그리 험하지도 않은 바윗길임에도 불구하고 안전로프를 매달아 놓았기 때문에 초보 등산객들도 별 부담 없이 내려설 수 있다.

 

 

 

 

 

 

 

수리봉 암릉을 내려서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20분이 넘지 않게 더 걸으면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맞은편에 보이는 능선으로 진행하면 웅석봉으로 가게 되므로, 청계리저수지로 하산하려면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삼거리에서 청계저수지로 방향을 잡으면, 산길이 아래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산의 사면(斜面)을 따라 옆으로 길게 이어진다. 10분 이상을 옆으로만 이어지던 산길이 두 갈래로 나뉘면서, 청계리로 향하는 왼편 길은 가파른 내리막길을 만들고 있다. 조심조심 10분 정도를 내려가면 단성면에서 산청읍으로 넘어가는 1001번 지방도로에 내려서게 된다. 이곳에서도 산행이 종료되는 청계리 주차장까지는 10분 정도를 더 걸어야만 한다. 주차장이 청계저수지 둑의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산행날머리는 청계저수지 아래 주차장

저수지 아래에 도착하자마자 웃통을 벗어 제키고 씻고 본다.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땀 냄새를 풀풀 풍길 수는 없어서이다. 산악회 관계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택시를 불러 산청에 있는 의료원(醫療院)으로 나갔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통증이 수그러지지 않을뿐더러, 벌에 쏘인 부위에 염증(炎症)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렵게 찾아 온 산청의료원에서 난 낯선 풍경(風景)을 만났다. 토요 휴일(休日)임에도 불구하고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이 제법 많은데도, 서울에서 온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내 얘기를 들은 의료진들은 먼저 와 대기하고 있던 환자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를 먼저 진료해 주는 것이다. 무리한 부탁임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잃지 않고 배려해 주는 예쁘장한 간호사는 물론이고, 나를 먼저 진료(診療)할 수 있도록 양보해준 환자분들에게도 진정으로 감사드리고 싶다. 훈훈한 시골의 인심을 가슴으로 가득 담아온 하루였다. 그 인심이 약효(藥效)로 전이되었는지 채 하루도 안 되어 벌에 쏘인 부위가 언제 쏘였냐는 듯이 말끔히 나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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