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계속되는 사도행전 (행28:23-31) 23.8.2.
그런즉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 진 것과 그들이 그것을 들을 줄을 너희가 알라 •• 바울이 만 2년을 자기 셋집에 거하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받아 들이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킹제임스 성경) (28-31절)
바울의 생애 마지막 부분에 보여지는 애국 애족의 행사는 뜻밖에 믿고 구원받는 자도 있었지만 믿기는 커녕 인정하지도 않으며 반발하는 자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그다지 유쾌하거나 고무적(鼓舞的)으로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반응과 상관없이 담대히 전했는데 아무도 막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이상한 점은 오늘 본문이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인데 그토록 일관되게 추구하여 왔던 로마 황제 앞에서의 재판을 통한 복음 전파의 광경도 보이지 않고 전승에 의할 것도 없이 사도행전에서도 몇 번이나 예고되었던 바울의 순교에 대해서도 아예 언급 조차 없다 는 것이 매우 이례적 (異例的)입니다
고대 기독교 역사가의 고증(古證)에 의하면 바울은 가택연금의 시기(AD61-63년, 65세) 를 비교적 평안하게 지낸 후에 가이사 앞에서 1차 재판을 받았는데 로마의 법으로는 사형 죄에 해당할 만한 사항이 없고 유대인들 간의 사소한 종교 문제라는 이유로 무죄로 판결을 받고서 석방이 되었으며
디도와 함께 그레데 섬과 아가야 지방과 마게도니아와 지금의 터어키 지역의 소 아시아 교회들을 방문하고 마침내 당시의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던 스페인까지 찾아 가서 복음을 전파했다고 하는데
AD 64년에 발생한 로마의 대 화재 사건의 주모자로 평소에 황제 숭배에 부정적이고 거부하는 자들이 많아서 눈에 가시 같았던 기독교인들을 지목하여 뒤집어 씌우고
참혹하게 박해함으로 인하여 순교자들이 속출하고 있었는데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순교를 각오하고 베드로와 함께 로마를 찾았다가 체포되어 사형 언도를 받고 감옥에 갇혀 삼엄한 경비속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불과 3일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다고 합니다
즉 로마를 둘러싸고 있는 아우렐리우스 성의 남문 밖으로 5km 떨어진 지점 즉 오스티안 가도 (街道)에 위치한 아크바스살비아라는 곳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는데 그 후에는 카톨릭에서 이곳에 트레폰타나 수도원을 세웠고 지금은 바울의 순교 교회 (성당)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행전의 기록자인 누가도 함께 순교한 것은 아닐텐데 이토록 중요한 순간을 일부러 뺀 것이 아니라면 무엇때문에 스데반의 순교 장면에 버금가는 숭고하고 놀라운 광경을 기록하지 않았을까요 순교가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자랑스러운 것인데 자세한 기록은 고사하고 아예 언급 조차 없다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침 운동 겸 산책시간에 걸으면서 성령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누가는 직업이 의사였기 때문에 사람의 질병이나 육체의 훼손에 대해 남다른 감각과 관찰력과 민감함 그리고 분별력이 있으므로
존경하는 스승이자 영혼의 목자인 바울이 참수를 당해 목이 잘리고 머리가 땅바닥에 구르는 참담한 모습을 거짓으로 표현할 수도 없고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고 그의 우선적인 독자인 데오빌로에게 자세한 바울의 순교 장면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란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사도행전이라는 이름으로 인물과 사건을 복음적이고 선교적인 관점에서 기록을 했지만 그 사도들을 이끌고 보호하며 주도적으로 교회를 세워 나가는 주체가 나 성령이고 보면 성령행전 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요 오히려 영적으로는 더 적확(適確)한 표현이라 할 수가 있는 것인즉
바울은 순교로 이 땅의 생애를 영광스럽게 마감하지만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하면서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성령의 역사는 계속 되어야 하기 때문에 수천 년의 교회 역사에 비한다면 바울의 38년의 경건한 생애는 그 시작에 불과한 것이므로
단절의 이미지가 있는 것들은 다 생략하고 지속적인 진행의 이미지만을 더 강력하게 부각시키려는 나의 의지가 있기 때문이요 실제로 그 후에도 더 극심한 박해와 속사도 시대의 순교 신앙이 맞물리면서
더욱 많은 순교자들이 쏟아지듯이 속출하게 됨으로써 겉 보기에는 기독교의 암흑시대라고 하지만 영적으로는 지극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던 그야말로 천국의 잔치가 성대하게 벌어 졌던 것이란다
여기까지 듣고 나니까 구약에서의 족보는 낳고 죽었다는 표현으로 일관하는데 (창5장) 그 중에 노아의 자손의 계보는 낳았다는 표현만 있고 죽었다는 말이 없으며 다만 아브라함과 그 아비 데라는 단절의 의미를 강하게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창12:1) 데라만 유일하게 죽었다고 기록한 것이 생각났으며 (창11:32)
심지어 예수님의 족보는 아브라함부터 다윗에게, 다윗으로 부터 예수님까지 무려 42대가 내려오는 동안 사람마다 '낳고'라는 표현은 있으나 '죽었고' 라는 말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영생과 연결이 된 자들에게는 (그들도 분명히 죽었지만, 히9:27) 출생만 표현되고 죽었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생략한 것이라는 깨달음이 왔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생애와 함께 그들의 사역으로써 28장으로 마감이 되지만 사도행전의 주체이신 성령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성장시키시며 완성하시는 역사 곧 성령행전은 그 이후에도 중단 없이 계속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대환난을 지나서 천년 왕국 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령의 이런 역사가 바울의 시대에는 스페인 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다면 열두 사도들의 순교적인 충성으로 말미암아 동쪽으로는 인도와 파키스탄, 남으로는 아프리카, 그리고 서쪽으로는 아메리카로, 동북 아시아 곧 일본, 중국 대한민국 등으로 전파되었으며
성령님과 사명자들이 서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지구를 한바퀴 복음으로 돌아서 마지막 귀착지(歸着地)로 정해진 예루살렘을 코앞에 두고 있으며 아직도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미전도 종족 곧 복음의 오지(奧地)를 찾아가면서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도 진정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소원이자 성령의 행전이 계속되는 현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땅끝까지 복음이 증거 되어야 끝이 오리라는 주 예수의 말씀이 아름답게 성취되도록 충성 해야 할 것입니다 (마24:14)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