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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 김 명
상석은 대공 직물회사 공장장으로 근무했다. 멋쟁이 아저씨는 회사에서 여직원을 잘 다루기로 소문난 공장장이었다. 흔히 말하는 꽃밭에서 직장생활 할 때 여직원과 잦은 상담에 여성들의 심리를 잘 다루었다. 회사에 근무할 때 심리상담자처럼 개인적인 고민거리도 해결해 주다가 정년퇴직 한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자녀들은 출가하여 각자의 삶을 찾아 집을 떠나고 아내는 생활비 걱정하면서 일하러 다녔다. 집에 혼자 있어도 누가 불러주는 친구가 없어 심심하기 그지없다. 아내는 병원에서 주야로 병간호하느라 몇 달째 집에 오지 않는다. 혼자 집에 있기가 무료하여 서면에서 심리상담실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자주 들락거렸다. 오늘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디든지 나가보려고 외출을 생각했다. 나이가 있으니 친구도 취미가 다르면 만나기조차 어렵다. 베란다에 빨래를 늘어놓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하늘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쳐다보았다. 끼룩거리는 소리는 기러기의 속삭임이다. 줄지어 날아오는 기러기는 겨울 소식 전하려고 배달부처럼 이 지역으로 날아오면서 끼룩거린다. 거리에 소슬바람은 단풍잎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끌고 다닌다. 상석은 집에 있기가 무료하여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집에서 밖으로 나왔다. 철새도래지인 을숙도로 갈까. 원동호로 갈까, 아니면 초읍동에 있는 작은 호수로 갈까 망설이다가 일단은 서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 들렀다. 정류장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어도 서로 가는 방향이 달라 버스가 와도 한두 사람밖에 타지 않는다. 용호동에서 24번 버스가 서면으로 가기에 내가 버스에 올라가자 두 명이 뒤따라 탔다. 버스 안에는 열다섯 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으나 아무도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없어 조용한 분위기는 서면까지 이어졌다. 상석은 버스에서 내렸으나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잠시나마 망상에 젖었다. 서면에 오면 친구가 운영하는 심리상담사무실이 있지만, 자주 들리면 싫어할까 싶어 오늘은 가지 않기로 했다. 한참을 생각해도 어디에도 갈 곳이 없어 멍청하게 서서 고민에 젖었다. 하루를 어디서 즐겁게 보낼까 하면서 망설이다 선택한 곳은 초읍동에 있는 작은 호수였다. 친구보다 호수를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라 초읍동 저수지에 가려고 결심했다. 등산복을 입은 예쁜 아주머니들이 버스에 우르르 올라탄다. 상석도 망설임 없이 여인들 따라 어린이 대공원 쪽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에 올라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승객이 엄청나게 많았으나 대다수가 등산복을 입은 남녀노소들이다. 자연의 섭리가 있기에 세상이 존재하듯이 사람에게도 평화로움을 유지하려고 음 인과 양인들이 함께 등산하는 무리에 상석도 끼어있다. 상석은 버스 안에서 손잡이를 잡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차창밖에는 활동사진의 한 장면처럼 다양한 풍경들이 눈앞을 스쳐 간다. 달리는 버스에서 다음 정류소는 어린이 대공원 앞이라고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입구 쪽으로 다가가 내릴 준비 하는데 버스가 덜컥하면서 조금 급하게 정지하는 순간 아무것도 잡지 않아 넘어질 뻔하면서 앞에 서 있는 아주머니의 어깨를 잡았기에 넘어지지는 않았다. 미안한 마음에서 죄송하다고 사과의 말을 전했다. 그 여자는 괜찮아요, 하더니 웃으면서 먼저 버스에서 내린다. 어린이 대공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아주머니들과 함께 내려 초읍동 저수지 쪽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무리 지은 등산객들은 만남의 장소로 모여든다. 산으로 가는 길목에는 많은 등산객이 모인 자리가 대기실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다리는 사람, 만나서 반가워 얼싸안고 인사하는 사람, 먼저 도착한 등산객은 가려고 서성거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산행코스가 좋은 길목이라 한곳에 많이 모이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사방으로 흩어지는 갈림길이다. 각자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지만, 단체 등산객들은 정해진 목적지를 향하여 부지런히 걷는다. 단체 산행은 기러기 첨병처럼 산행 대장이 방향을 잡으면 대원들은 무조건 따라가는 모습이 사회생활에서 단체행동을 보여준다. 온 산에는 울긋불긋 오색찬란한 단풍이 산으로 오라고 손짓하지만, 등산할 준비를 하지 않아 스쳐 가는 등산객들만 바라보았다. 혼자서 터벅터벅 호수 언저리로 걸어갈 때 가로수같이 길가에 선 상수리 나뭇가지에 직박구리가 날아와 날개를 털며 재재거린다. 잠시 후 또 한 마리가 날아와 곁에 앉았을 때 한참을 몸짓으로 사랑을 표출하더니 한순간 후대를 이어가려고 씨앗을 심는다. 상석은 넋을 잃고 직박구리의 행동을 쳐다보고 있을 때 사랑이 끝났다고 날개를 털더니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가던 길을 다시 걸어가고 있을 때 고요한 호숫물 위에 한 마리의 청둥오리가 한가롭게 짝을 기다리고 있다. 청둥오리의 작은 움직임에도 물결이 일어나 동그라미 그리며 번져나더니 점점 넓어져 호수 가장자리까지 밀려와 뭍에 닿는다. 물결은 작은 돌멩이를 애무하더니 다시 밀려나기를 반복한다. 호수 언저리로 걸어갈 때 수많은 고목이 단풍을 이루고 있어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었다. 상석은 터벅터벅 정처 없이 걷다가 호숫가 빈 의자에 앉았다. 잔잔한 호수 속은 거울같이 물이 맑아 땅바닥까지 훤하게 보였다. 물속을 들려다 보다 지난날이 생각나서 젊었던 시절을 추억했다. 회사에 다닐 때 키 크고 덩치가 좋아 직원과 자주 싸우다가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겨 다녔다. 모델 같은 상석은 여자들에게는 왕처럼 대우받았으나 상관에게는 전혀 눈에 들지 않았기에 오래도록 진급이 되지 않았다. 상석은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여자들에게 사랑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쉽게 그만둘 수가 없었다. 생김새가 아주 순하게 잘 생겼으므로 회사에서는 모델처럼 인기가 높아 회사의 아이콘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특히 여인들에게 인기가 아주 상승해 있었다. 사내다운 매너가 아주 좋아 끼가 있는 여인들에게 더욱 인기가 좋았다. 미인을 매료시키는 아주 특별한 기술이 있는지 잘생긴 여인이라면 상석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은 여자가 없었다. 상석은 키가 185센티며 무게가 75kg으로 균형 잡힌 사내였다. 게다가 허리는 개미허리처럼 가늘어도 아주 유연했다. 회사에서는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회사의 명승을 높이는데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기에 인기가 절정에 다다랐다. 여직원을 잘 다루는 특별한 기술을 가졌기에 유명한 바람둥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회사에서 바람둥이라고 중역들은 싫어했지만, 여직원을 잘 다루었기에 주문받은 물량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상석은 업무시간에 누구보다도 근무에 열정을 쏟았기에 맡은 수량을 완전히 채울 수 있었다. 상석은 회사 일에는 몸을 아끼지 않고 일했지만, 여인들의 꾀임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직장생활 할 때 여직원들은 자존심을 버리면서까지 상석을 잡아보려고 전화로 연락을 자주 했다. 퇴근한 후에 집으로 바로 가는 날이 별로 없었다. 타 회사의 멋진 노처녀도 만나보자고 강요하던 생각도 잊히지 않고 떠오른다. 이런 소문이 퍼지기 전에도 상석의 인기를 여성들에게는 아주 대단했다. 끼가 많은 여직원은 소문을 듣고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가끔 만나 데이트로 밤을 지새울 때도 있었다. 상석은 호시절을 생각하면서 얼빠진 사람처럼 혼자서 호숫가에 앉아 빙긋이 미소 지으며 웃었다. 상석은 의자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면서 사색에 잠겼다. 넓은 호수에는 하늘에서 놀러 온 해님이 더위를 피해 물속에 앉았다. 구름도 덩달아 내려와 물속으로 여행하는 모습이 아주 한가로워 보였다. 그때 상석이 앉은 의자 앞으로 여인의 그림자가 스쳐 갔다. 혼자서 저수지로 나들이 나온 여인이 넋을 잃은 사람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에 눈길이 끌렸다. 고개 들고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니 근심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 여인은 호숫가로 걷다가 상석이 앉은 자리 앞으로 스쳐 가더니 멀리 떨어져 있는 빈 의자에 앉는다. 상석은 무심코 여인이 앉은 모습에 눈길이 끌려 계속 바라보았다. 홀로 앉은 여인이 아주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상석은 같은 처지로 보여 그냥 넘길 수 없어 용기를 냈다. 쭉 빠진 여인의 외모에 매료되어 이야기 나누고 싶어 가까이 다가갈까 망설이다가 그만 접었다. 그녀가 긴 시간에도 석불처럼 앉아서 호수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의아하게 했다. 상석은 생각을 바꾸어 여인 곁으로 살며시 다가가 곁에 앉아도 되는지 물었다. 그녀는 남자가 곁에서 무슨 말을 해도 못 들은 척하는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여인은 두려움이나 반가움 따위는 간데없어 보였다. 무상에 젖어 호수만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이 몹시 안쓰럽고 궁금해 보였다. 상석은 예쁜 여인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바람둥이 성격을 가진 사내였다. 여인을 매료하려고 옆자리에 살며시 앉았다. 상석은 평소와 달리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장의 박동 수가 빨라졌다. 나이가 환갑을 넘겨도 쑥스러움은 변하지 않았다. 여인들에게 끌려다닐 땐 마음에 여유가 있었는데 상석이 그녀를 끌어보려고 하니 가슴이 떨렸다. 상석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고개 돌려 서슴없이 말을 붙였다. 우울해 보이는 여인에게 호수에 무엇이 보이는가? 하고 예기치 못한 질문을 던졌다. 게다가 안녕이란 인사말을 부드럽게 덧붙였다. 묵비권을 주장하던 여인은 아주 귀찮아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터벅터벅 발걸음 옮기더니 산길 따라 걷는다. 무심코 따라나선 상석은 그녀 곁에서 발을 맞추며 말을 시켰다. 그녀는 청각장애인처럼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여인은 고갯마루로 한참을 올라가더니 그늘지고 전망이 좋은 곳에 앉았다. 상석이 그녀 곁에 다가앉아 심리상담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여인은 참아오던 입을 들썩거리며 망설이더니 상석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상석은 그녀에게 우울증은 대화를 주고받아야 치료가 된다고 했다. 묵비권을 주장하던 여인은 그제야 생각을 바꾼 모양이었다. 그때야 고개 돌려 상석을 쳐다보며 말문을 열었다. “왜 자꾸만 귀찮게 하오?” “외로움을 함께 나누려고요.” “상담원 맞아요?” “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그렇게 보이네요.” “원인을 알면 해결이 빨라요.” “때가 되면 그렇게 되겠지요.” “미루면 병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당장 물어보세요?” “……” 여인은 대화를 몇 마디 나누더니 말문을 닫았다. 상석은 아주머니에게 무엇 때문에 심기가 괴로운지 알고 싶다고 다잡아 물었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곁에서 자꾸만 말을 시키자 여인은 귀찮아하면서도 무거운 입을 열었다. 괴로운 심정이니 그냥 망상에 젖도록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상석이 이유는 몰라도 온종일 곁에서 조잘거리고 싶다며 떠나지 않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침울한 표정으로 웃음이 없던 그녀가 다시 상석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한마디 던진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분이 말이 많아서 싫다며 귀찮은 듯 망설인다. 심리치료를 하려면 말이 필요하여 원인을 물어도 말이 없으니 더 이상의 진전이 없다고 했다. 말이 없던 그녀가 더디어 말문을 열기 시작한다. 아저씨의 얼굴이 싫지 않고 호감 가는 형이라고 엉뚱한 말로 상석의 기분을 돋운다. 특히 여인들이 좋아하는 얼굴형으로 보인다고 중얼거린다. 게다가 바람둥이 아저씨 같다고 덧붙인다. 상석은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바람둥이를 싫어하세요?” “네, 바람둥이와 말하기 싫어요.” “심히 괴롭거나 우울할 때는 누구와 대화를 자주 하세요.” “아픈 곳도 없으니 그냥 돌아가세요.” 상석은 말을 더 이어보려고 질문했으나 이렇다 할 대답은 어디서도 들리지 않았다. 무딘 사내지만, 우울한 여인을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했다. 그녀의 표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채 입을 열지 않았다. 무심코 풍경만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해 보인다고 곁에서 자꾸만 말을 시켰다. 여인은 고개를 한 치도 돌리지 않았고 대답은 모깃소리만큼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을 보지 않으려고 먼 곳으로 고개를 돌린 여인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해 보여 해결하고 싶다고 했다. 상석은 무슨 걱정이 그렇게도 많은지 다시 물었다. 어떤 질문을 해도 그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속세를 떠나 머리를 깎은 사람처럼 고뇌하고 사색하는 모습이 아주 심각해 보였다. 상석이 곁에서 말문을 열어보려고 온갖 방법으로 말을 시켜도 대답은커녕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그 순간 소슬바람에 낙엽 한 잎이 앉아있는 여인의 무릎 위에 떨어졌다. 그녀는 한 잎의 나뭇잎이 행운인지 불행인지 의아하여 곰곰이 생각했다. 떨어진 낙엽을 주어든 그녀는 곁에 앉아있는 사내가 인연이겠다는 느낌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불혹의 나이로 보이는 그녀는 짓궂은 사내에게 귀찮아하면서도 억지로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남자와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상석은 이유는 몰라도 세상살이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처음 보는 사내의 수많은 질문에 답하지 않더니 고개 돌려 대화할 기미가 보였다. 상석은 다시 열변을 토해 설했다. 세상은 자연의 섭리처럼 평형을 이루어야 살아갈 수 있다며 여러 가지 예를 들었다. 야간에 어디서든 빛을 밝혀주는 전등도 음전기와 양전기가 합쳐야 불빛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하듯이 여인에겐 남자가 필요하다며 이유를 자상하게 알려주었다. 음 인과 양인이 만나서 하나의 가정을 이룰 때 둥지 안은 불빛처럼 환한 웃음이 넘쳐난다고 덧붙였다. 상석은 여인에게 반세기를 살아온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심리학을 공부하였기에 여성의 마음을 잘 안다고 덧붙였다. 여인은 답답한 심정을 조금이라도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상담하듯 말문을 열었다. 근간에는 심기가 불편하여 마음 달래려고 이곳에 나왔다고 했다. 이토록 외면하는 여인에게 기어이 말문을 열개하는 사내가 무엇을 노리는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상석은 여인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심리치료를 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을 이었다. 보시다시피 나이 차이가 너무나 커 남녀로 보이지 않고 내담자와 상담자로 보았다고 사실을 털어놓았다. 여인은 교육계에 종사하기에 상석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 “심리치료원이요?” “네, 그렇습니다.” “상담은 자주 하세요?” “서면에 오면 사무실에 들려주세요.” “전문 상담자인가요?” “그렇기에 대화하기를 유도하였지요.” “고등학교 3학년 담임입니다.” “그러세요. 반가워요.” “이토록 외롭고 괴로움을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어떤 방법도 없으며 심리치료로 해결해야 합니다.” 상석은 지나간 버스 손든다고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과거의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현실에 적응하며 살라고 했다. 게다가 편하게 웃을 수 있는 분위기로 변화시켜보라고 덧붙였다. 각박한 세상에 외로움을 품고 어떻게 살라고 이처럼 슬픔을 가졌는지 걱정된다고 말을 이었다. 여인은 무슨 말인지 의아해하면서 고개 돌려 바라본다. 상석이 외로움은 혼자서 치료가 불가하며 생각을 바꾸어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다니며 대화를 많이 하라고 권했다. 여인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생각을 바꾸어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변했다. 지인들은 모두가 대화하라고 하였기에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신상을 밝혔다. 보름 동안 혼자서 이곳으로 와서 곰곰이 생각하고 생각해도 별다른 대책이 떠오르지 않고 외로움만 더하더라고 했다. 외로움의 치료는 상담이라고 하고 일방적인 상담은 치료되지 않으니 대화를 자주 주고받아야 결과가 좋아진다고 주치의처럼 말했다. 여인은 얼마 전에 남편을 여의고 심적 충격에 빠져 답답한 가슴 털어버리려고 호숫가로 나들이 왔다고 했다. 상석은 애처로운 여인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계속 말을 시켰다. 상석은 그녀의 남편이 젊은 나이에 그 많은 일을 접고 왜 먼저 떠났는지 의아하다고 했다. 삶의 행로에서 만남의 즐거움도 잠시 이별이라는 아픔을 접하다니 참으로 안쓰럽기 그지없다고 여인을 위로했다. 젊은 나이에 어려움에 부닥쳐 심히 괴롭겠다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곁에서 이토록 마음 달래주는 나그네가 부모나 남매보다 더 고맙다고 진심을 털어놓았다. 맞아, 그렇게 의문이 있으면 자꾸 질문하여 답답함을 털어버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치료방법이다. 상석은 그녀에게 치료해 주겠다며 무엇이든 알고 싶은 말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다. 여인은 말문을 열더니 이름은 조연희라고 밝히고 상담을 자주 간청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야지 그게 치료를 받는 것이니 미루지 말고 실행하라고 권했다. 갑갑한 마음은 대화로서 확 털어버려야 속이 시원해진다고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어떤 아픔보다 처방이 어려운 마음의 치료는 심리 상담뿐이라고 덧붙였다. 답답한 심정을 속으로 삭이려면 가슴에 영원히 상처만 쌓인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그제야 말문을 열더니 자신의 신상을 허심탄회하게 나열해 놓았다. 며칠을 말없이 슬픔에 젖어 풀리지 않았는데 잠시라도 나그네랑 몇 마디 나누었더니 말문이 열린다고 했다. 이래서 상담이 필요하구나! 곁에서 지인들이 대화를 많이 하라고 하더니. 이제야 그 말을 깨달았다며 상담자를 쳐다보았다. 연희는 이처럼 고마움을 무엇으로 보답할까 고심하다가 문득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연희는 상석에게 시 한 수 선물하겠다고 했다. 즉석에서 한 수 읊었다.
“비 오듯이 쏟아지는 외로움이 온몸에 젖어 석탑처럼 굳었는데 스쳐 가는 나그네가 엉켰던 외로움을 녹여주니 무겁던 마음이 펄럭이는 깃발처럼 가벼워진다.”
조용히 듣고 있던 상석은 여인의 시 한 수에 정신을 차리고 답 시를 읊었다.
“병들어 시들어가는 한 송이의 꽃에 해충을 제거하고 해가 저물 때까지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었더니 밤이슬 먹고 생기 찾아 다시 꽃잎 펼치며 진한 향기 풍긴다.”
이렇게 서로가 시(詩)로서 마음 전하며 대화가 이어졌다. 상석은 연희의 마음을 달래느라고 중천에 머물던 해가 서산마루에 걸리도록 상담 속에 빠져들었다. 연희는 훌륭한 상담자를 만나 침울했던 가슴에 밝은 빛을 비춰주었다고 고마워했다. 이 고마움을 무엇으로도 보답할까 걱정하는 연희는 상담을 자주 받아도 되는지 엷은 미소 보이며 물었다. 게다가 연희는 안정을 위해 언제라도 내담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상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야지 하면서 자주 대화하기를 바랐다. 오늘은 해가 기울었으니 집으로 돌아가고 다음에는 전화로 상담하라고 주머니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연희는 고맙다며 상담을 자주 받고 싶다고 애교스럽게 말했다. 세상은 어둠 속으로 물들어가자 호숫가 가장자리 걸터앉은 어둠이 점점 짙어졌다. 연희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상석도 뒤이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가는 길은 달라도 버스 타는 곳까지 함께 가자며 호숫가 산책길로 발을 맞추며 나란히 걸었다. 상석은 연희에게 외로움을 그리움으로 생각을 바꾸어보라고 권했다. 연희는 그리워할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상석을 쳐다보았다. 가족도 있고 부모도 있으니 그리워해야 할 사람은 너무나 많으니 잡념을 버리고 오로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의지를 굳게 가지라고 했다. 직장생활 할 때 휴일이면 집에 있기가 무료하니 반드시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으로 찾아가라고 덧붙였다. 연희는 엷은 미소를 보이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상석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며 직장에서 틈을 내어 짧은 대화라도 자주 하다 보면 좋은 치료가 될 거라고 했다. 연희의 집 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오자 손을 들어 안녕을 전하고 헤어졌다. 며칠이 지나자 연희는 갑갑한 마음 달래고 싶다며 음성으로 상담을 청했다. 상석은 흔쾌히 승낙하고 상담을 시작하여 장시간 이어졌다. 몇 주간 사흘이 멀다고 상담하더니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어 가족들과 대화도 나누고 웃어줄 때 자녀들이 좋아하더라고 했다. 내담자는 마음의 안정을 찾았으니 만나서 상담하고 싶다고 했다. 여인은 잦은 상담에 사라진 웃음이 되살아났다고 상담자에게 진심으로 고마움 전한다고 했다. 얼마의 기간이 흐르고 내담자는 상담자를 자주 만나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서면에 있는 친구의 사무실이 상석의 집무실이라 생각하고 심리 상담을 자주 받던 연희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온 것 같다고 했다. 연희의 웃음에 온 가족이 좋아했다는 말을 전할 때 상석은 상담자로서의 뿌듯한 보람을 느꼈다. 환한 얼굴엔 미소를 가미한 연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고 상담자에게 애교를 부리며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상석은 꽃봉오리가 피어나듯 미소가 절로 생겼다. “상담을 계속 받아야 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완치된 느낌입니다.” “아닙니다, 더 받는 게 좋아요.” “그렇다면 언제까지라도 받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앞으로 상담은 무료서비스입니다.” “그럼 지금까지는 외상이었습니까?” “아니요, 미소를 가미한 아양으로 대신 받았습니다.” “심리를 다루는 아저씨는 웃고 울리는 마법사입니다.” “눈물이 나지 않는 사람에게 울음도 가르칩니다.” “하이고 얄궂기도 하다, 별난 것도 가르치네요.” “그게 심리치료만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연희는 상담도 좋지만, 자주 보았더니 안 보면 보고 싶다고 했다. 상담자도 같은 생각이라고 하면서 엷은 웃음을 터뜨렸다. 우연히 만나지는 모습에서 인연이라고 믿는 연희는 상석과 연결고리가 맺어졌다고 생각했다. 상담을 자주 받던 연희는 수개월이 지나자 완치된 느낌이라고 아양을 떨며 좋아했다. 상석은 나이가 비슷했으면 여생에 함께하자고 하겠는데 차이가 심하여 젊은 사람 중매하겠다고 했다. 연희가 중매는 극구 사양하면서 앞으로 그런 말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했다. 내담자는 상담한다는 이유로 생각날 때마다 상석의 사무실을 찾았다. 만나면 삼촌처럼 대하는 연희는 상석을 인연이라는 느낌을 받았기에 다른 말은 귀에 들지 않았다. 상석은 연희를 밀어내면서도 일면에는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십 년이란 세월의 차이가 아니었더라면 상석은 반드시 낚아챘을 것이다. 착하고 순박한 연희를 거절했으나 보내기는 더욱더 아까운 인물이었다. 인연이라는 느낌을 받았으나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큰 욕심을 부리는 것이라 짝을 맞추어 주려고 노력했다. 상석과 연희가 서로 밀고 당기는 사이 몇 계절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연희는 서해가 보고 싶다며 방학하면 여행하자고 서슴없이 제의했다. 상석은 그녀의 말에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었다고 했다. 바람둥이의 기질이 아직도 살아있기 진솔하다는 거짓 심정을 털어놓았다. 여인으로 보였다면 얼마든지 즐기고 버렸을 것이지만, 교편을 잡는 교육자라 조카처럼 대하며 곁에 두고 싶다고 했다. 연희는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은 같으나 정도가 다르니 말도 못 하고 바라만 보았다. 아주 자상하고 인자하여 남편처럼 대하고 싶다고 진심을 털어놓았다. 상석은 연희에게 하루빨리 안정된 삶을 찾으려면 재혼하여 인생을 즐겨보라고 권했다. 연희는 상석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보호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 몇 시간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말을 시키려는 모습에서 인내심과 이해심을 알았다. 아주 대단한 저력으로 상대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묘한 심리를 이용하는 언행에서 인연이라고 느껴졌다고 했다. 이 은혜 반드시 갚아드리겠다고 다짐하며 영원한 주치의라고 생각을 굳혔다. 연희는 상석에 시간 좀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연희는 내담자로서 상담자에게 베푼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성적 감정을 참지 못하여 해결하려는 심리였다. 연희는 집으로 초대해도 오지 않는 상석을 어떻게 요리할까 고심하였다. 상석은 너무나 편하게 대해주는 연희를 멀리하지 못하고 조카처럼 가까이에서 대하고 싶었다. 며칠이 지나자 연희는 상석에게 연락했다. 상석은 밝은 음성이 반가워서 친절하게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그녀는 하소연하듯 말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언젠가는 본의 아니게 스트레스가 쌓이더라고 했다. 갑갑한 마음 달랠 수 없어 폭발하고 싶은 심정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연희는 오래도록 집에서 외로운 밤을 길게 보냈더니 또 우울증이 나타난다고 했다. 상석은 깜짝 놀라서 당장 만나자고 했다. 동생처럼 또한 조카 같이 믿었는데 다시 우울증이라니 하면서 걱정을 태산같이 했다. 연희는 퇴근 시간이 되어 학교에서 회식이 있다고 모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거역하고 상석의 집으로 찾아왔다. 상석은 연희를 기다리며 어떻게 대할까 생각에 젖었다. 잠시 후 연희가 도착했다. 서로 반갑다며 포옹이 하고 싶었다. 서로 채면 때문에 손을 잡고 상하로 흔들었다. 소파에 마주 앉아 대화가 이어졌다. 연희는 며칠을 말없이 상석의 그리움에 젖어 있었다. 삶을 바꾸어보려고 다시 상담을 의뢰하고 싶다고 했다. 상담자는 갑갑한 마음 대화로서 털어버리고 잠시라도 편안한 생활로 이어보라고 권했다. 상석은 그녀의 잦은 전화에도 한 번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시들어가는 화초에 물을 뿌려주겠다며 언제든지 오고 싶을 때 찾아오라고 했다. 그녀는 앞으로 전화 상담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상담이 필요할 때 통화보다 직접 만나서 상담하겠다고 했다. 상담을 빌미로 육체적으로 관계를 맺어보려고 노력했다. 상석은 만날 수 있는 시간만 허락한다면 어디든지 찾아가겠다고 했다. 직장에 매여 있으니 낮에는 시간이 없다고 했다. “만나고 싶어요?” “퇴근 전에는 나갈 수가 없잖아요?” “네, 그렇지요?” “퇴근 후에 만나고 싶어요?” “선생님은 여성으로서 최고의 직장입니다.” “그런가요?” “평생직장이니 교장 선생님까지 하세요.” “그때까지 상담자가 함께해 준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음이 안정되면 얼른 재혼해야지요.” “재혼은 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말하오?” “상담자가 내담자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지 말고 어서 재혼하세요.” 연희는 사무실에 앉아 오랜 시간에 상담자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 중에 서로의 친밀감을 알리면서 함께 하겠다는 무언의 약속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연희가 상석에게 상담하겠다고 제의했다. 휴일에 처음 만났던 장소 호수 언저리로 가겠다고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상석은 휴일이 다가오자 흥얼거리며 약속장소에 먼저와 연희를 기다렸다. 계절은 다섯 번이 바뀌어 단풍은 다 떨어졌지만, 지다 남은 이파리가 소슬바람을 피하려고 샐룩거린다. 한참 후 낙엽을 밟으며 상담을 받아야 할 내담자가 나타났다. 연희는 지금까지 어두운 색깔의 옷만 입었는데 오늘은 밝고 화려한 블라우스에 치마를 입고 상석 앞에 나타났다. 상석은 반가워서 얼싸안고 싶었지만, 예의를 지키려고 연희가 내민 손을 잡고 상하로 흔들었다. 손은 따스함보다는 사랑스러운 감성을 느끼게 했다. 그녀는 근간에 웃음이 쉽게 나오지 않았지만, 잦은 상담이 효과를 보였는지 밝은 미소로 인사한다. 호숫가 의자에 나란히 앉은 상담자와 내담자는 심리치료를 위해 대화가 이어졌다. 상담의 분위기가 아주 좋게 흘러가더니 여인은 먹구름이 사라지고 새털구름이 피어나는 기분이라며 함께 걷자고 권한다. 연희는 언행보다 그리움이 스트레스를 부른다고 한다. 며칠을 보지 않으면 성격이 급해지고 화가 나지만, 상석 앞에 나타나면 언제 그랬는가 할 정도로 상황이 달라졌다. 호수 언저리 넓은 길로 걸어갈 때 연희는 상석의 팔짱을 끼고 발을 맞춘다. 그녀는 삼촌처럼 아주 편안하게 대해주니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했다. 이 고마움을 상담자에게 고개 숙여 감사하다고 덤으로 인사했다. 내담자는 상담자 덕분이라며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상석은 상담을 받았으면 재발이 되지 않는 치료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연희는 상석과 함께 걸으며 나누는 대화에 빠져들어 하루해가 너무나 짧게 느껴진다고 투덜거린다. 하고 싶은 말보다 곁에 있으면 세상에 부러움이 없다고 한다. 세상이 먹물로 물들자 연희는 헤어짐을 너무나 안타까워하면서 멀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고개 돌려 바라본다. 상석은 연희에게 사람은 샛강처럼 살아가므로 멀어졌다 다시 만나면 좀 더 발전하고 생각을 달리한다고 하면서 오늘의 즐거움은 여기서 마치고 내일을 위해 집으로 가자고 권했다. 연희는 오빠와 헤어져 어둠 속으로 걸으면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모퉁이를 돌아 멀어져갔다. 연희는 자녀들 앞에 웃음을 보이면서 옛날처럼 밝은 모습을 보였다. 자녀들은 엄마의 밝은 표정을 보고 아주 좋아했다. 아들이 엄마가 가족들 앞에 웃음을 보이게 해준 의사에게 고마움을 전해달라고 말한다. 엄마는 자녀에게 심리치료로 이렇게 좋아질 줄 몰랐다며 상담자를 만나면 아주 고맙다고 전해야 하겠다고 했다. 근간에는 가족끼리 모이면 화목하여 웃음소리가 그치는 날이 없었다. 그러다가 상담자를 며칠간 보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화풀이를 자녀에게 하게 된다는 사실을 연희는 뒤늦게 깨달았다. 참다못해 상담자에게 전화하여 마약 중독자처럼 변해버린 이 심정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상석은 이젠 완치하여 날아갈 듯이 좋은 심정을 털어놓고 싶을 것인데 무엇이 앞을 막는지 의아하다고 했다. 상석은 친구와 약속을 했더라도 연희의 부름이 있으면 미안한 감정도 멀리하고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했다. 아마도 연희에게 완전히 빠져든 모양이다. 상석은 연희가 잘 따라준 덕분에 쉽게 좋아질 수 있었다고 격려의 말을 전했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고 말하는 연희가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외롭거나 우울한 마음 썰물처럼 밀려가고 환한 웃음은 밀물처럼 밀려온다고 좋아한다. 그리움이 있을 때 몇 주간 사흘이 멀다고 상담하더니 또다시 마음이 완전히 안정되었다고 했다. 가슴속 가장자리에 들러붙은 외로움도 입속에서 아이스크림이 녹듯이 사라졌다. 그녀는 직장에서 돌아와 자녀들에게 대화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이것은 수개월의 잦은 상담 때문에 굳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고 가족과 둘러앉아 웃을 수 있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가정은 점점 화목해졌고 불안해하던 자녀들의 마음에 안정된 문이 열렸다. 얼마의 기간이 흐르고 내담자는 상담자를 직접 만나기 위해 사무실로 찾아갔다. 상석은 연희를 반갑게 반겨주면서 심리 상담으로 충분히 역설했다. 연희는 수개월에 걸쳐 심리치료사를 자주 만나 편안하게 대화하다가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녀는 전화 상담보다는 직접 만나니 빠르게 심리가 변하더라고 아주 좋아했다. 여인의 웃음에 온 가족이 좋아한다는 말을 듣는 상석은 상담자로의 흐뭇한 보람을 느꼈다. 여인의 얼굴에 환한 미소는 꽃봉오리가 피어나듯 보기가 아주 좋았다. 연희는 상석과 자주 만날 때마다 너무나 편안하고 따뜻하고 대해주므로 자신도 모르게 정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오빠가 있었기에 행복이 살아났고 의지하고 기댈 곳이 있었으니 마음은 전남편보다 더 가깝게 지내고 싶었다. 연희는 학교생활에서 학생들과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고 있을 때 그중 한 명이 딸처럼 다가와 귓속말로 속삭였다. 퇴근하면서 자기 집으로 가정방문 오라는 부탁의 말이었다. 담임선생인 연희는 귀여운 학생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학생은 교실에 남아 공부하다가 선생님이 퇴근할 때 함께 집으로 갔다. 연희는 골목으로 올라 번지 없는 빈민촌 마을에 다다랐다. 여기가 네 집이야? 아니요, 조금만 더 올라가면 있어요, 하고 앞서 걸었다. 연희는 숨차지만, 참아가며 학생을 따라 초라한 집으로 들렀다. 학생의 어머니가 좁은 마당에서 반갑게 반긴다. 작은 집에는 단칸방에 부엌 하나 있었다. 학생이 먼저 방으로 들러 어서 들어오라고 한다. 방으로 들어가니 작은 판에 저녁준비를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세 사람이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으면서 학생은 밖으로 나가고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동안 딸을 가르쳐 주시어 고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요?” “생활이 어려워 딸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그럼 학교는?”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었습니다.” “남편은 어디에 갔어요?” “고기잡이 따라간 지가 석 달이 지났어요.” “소식이 없어요?” “고기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밭떼기 하나 없이 하루살이처럼 살았어요.” “무슨 일을 하려고요?” “…………” 연희는 생각해 보자고 하고 집에서 나왔다. 학생은 골목 모서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고개 숙여 인사한다. 연희는 학생의 어깨를 다독이며 용기를 잃지 말라고 하면서 생각해 보자고 하고 돌아왔다. 며칠이 지나고 상석과 의논하여 일자리를 마련해 주려고 학생의 집으로 찾아갔다. 학생과 어머니는 어디론가 이사해 버리고 빈집에는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마저 찾아보기 어려웠다. 빈집에는 방문이 열린 채 바람에 비걱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상석은 사람은 생자필멸이라고 하듯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마저 사라지니 두 번 다시 논하지 말라고 했다. 연희는 주변으로 돌아다니며 이웃을 만나 물어보았으나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학생이 애처로워 발걸음 떨어지지 않아 멍하니 서서 마을을 바라보며 망상에 젖었다. 학생의 친구들은 곧 대학생이 될 것인데 고등학교 졸업도 못 하였는데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걱정하였다. 상석은 연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현존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행로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니 언제 어디서 만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때 도움을 주면 된다고 연희의 마음을 달랬다. 연희는 눈물을 훔치며 그 불쌍한 것이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생각할수록 애처롭다고 투덜거렸다. 상석은 연희의 어깨를 다독이며 눈앞에 나타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보자고 달랬다. 그녀는 불혹의 나이에 독신자로 살아가지만, 자녀가 있었기에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다. 남자의 그리움이 밤마다 불혹의 연희를 괴롭혔으나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친구를 만나거나 취미 생활에 열정을 쏟아보려고 생각을 바꾸었다. 퇴근하면서 볼링장으로 들려 볼을 굴리면서 외로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수개월에 걸쳐 온갖 방법으로 상석과 볼링을 함께하자고 유인했으나 한 번도 승낙을 받지 못했다. 동생같이 대하는 상석이 가족처럼 만만하여 어리광을 부리기도 했다. 상담이 마무리되었다고 만나주지 않을까 성급한 결정을 내리기도 했지만, 상석은 언제나 변함없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만나면 만날수록 이해심이 많고 솜털처럼 부드러웠다. 상석은 언제 만나더라도 부모같이 너그러운 성격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정에 깊이 빠져든 여인은 상석을 연인이라고 믿고 짝사랑했다. 새로운 삶으로 태어나게 한 심리치료사와 헤어나지 못할 아주 깊은 정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상담자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데이트하자며 오빠와 만남을 요구했다. 오빠는 연희의 말이라면 무조건 승낙하니 때로는 미안한 마음으로 만나기도 했다. 만나자고 말만 하면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다른 일을 멈추고 약속장소에 나타난 오빠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연희는 상석이 너무나 믿음직스러운 삼촌이나 고향 친구처럼 믿음직스러웠다. 곁에서 멀어져 갈까 걱정되었기 때문에 잡아보려고 여러 방법을 모색해 보았으나 먹혀들지 않았다. 게다가 오빠는 남매처럼 여유를 보이며 대하는 모습에서 더더욱 헤어나지 못하겠다고 했다. |
첫댓글 안녕 하세요?
지명이님~!!
카페 운영자 울타리 입니다
공유글♡나눔 게시판은
스마트폰으로 쉽게 접하기
쉬운 정리된 글만 올려달라는
공지 올려놨는데
못보셨나요??
게시판 특성을 살릴수있도록
협조 바랍니다
게시판 특성이 퇴색되지 않게끔
서로서로 이해와 양해가
필요합니다~
공지 참고하셔서
넓으신 양해 바랍니다^^
항상~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