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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숭사리 교회개혁포럼 원문보기 글쓴이: 일분테스트
<최승호형제님의 글에 눈물날 정도로 공감하는 바이며, 정말로 이러한 운동이 일어나기를 뼈에 사무치게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교회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평신도 교회'와 유사하다고 생각되기에 감히 이러한 제목으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저희들은 이러한 평신도 교회(?)가 확장되어지기를 갈망하면서, 수십년전부터 이러한 모습으로 조용히 주님을 섬겨왔습니다.>
교회사(敎會史) 연구학자(硏究學者)들에게 ‘형제운동’, ‘형제교회’ 또는 단순히 ‘형제들’이라고만 알려진 무리들의 역사적 배경과 그 믿는 바에 대해 지금부터 살펴보고자 합니다. 물론 이들 스스로는 결코 ‘형제교회’라는 교회명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 스스로 ‘형제교회’라는 교회명을 사용하고 있는 무리들과는 전혀 다른 교회임을 참고로 말씀해드립니다.
1. 들어가는 말
오직 믿음과 기도로 수많은 고아들을 먹인 죠지 뮬러(George Muller)를 아십니까? 복음으로 세계를 흔들었던 디 엘 무디(D. L. Moody)의 심령을 흔들었던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는 헨리 무어하우스(Henry Moorhouse)입니다. 맨체스터 대학교 주경학 교수였던 에프 에프 브루스(F. F. Bruce)를 아십니까? 이들은 모두 기독교계에서 존경받는 분들로서 ‘형제들’이라고 알려진 무리들과 함께 하나님을 섬겼던 분들입니다.
그리피스(Thomas Griffith)는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녀 중에서 진리를 가장 바르게 해석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했으며 학자요, 저술가였던 아이언사이드(H. A. Ironside)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알든 모르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형제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으며, 판톤(Panton)은 “형제운동의 영향력은 종교개혁보다 훨씬 컸다”고 말했습니다.
세계적인 전도자 무디(D. L. Moody)는 “전 세계의 책이 다 타버릴지라도 나에게 한 권의 성경과 매킨토쉬의 모세 오경 주해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했고, 스펄젼(C. H. Spurgeon)은 윌리암 켈리(William Kelly) 에 대해 “그의 생각은 우주처럼 크다”고 말했는데, 이들이 극찬한 매킨토쉬와 윌리암 켈리도 ‘형제들’이라고 알려진 무리들과 함께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에스라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치는 일에 전력했습니다(스7:10).
세상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다비교회(Darbyites)’, ‘형제교회(Brethren)’, ‘기독교 형제교회(Christian Brethren)’, ‘플리머스 형제교회(Plymouth Brethren)’ 등으로 불렀으나 그들 스스로는 파명(派命)을 사용한 적이 없었고, 어떤 계급적 호칭도 배격했습니다.
거룩해졌으니 성도로, 믿음을 가졌으니 신자로, 사랑을 인하여 형제로, 순종을 인하여 제자로, 경배를 인하여 제사장으로, 증거를 인하여 증인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했으니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잘 지적한 말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 시대에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들은 있었어도 ‘회중교회’는 없었습니다. 침례 받은 성도들은 있었어도 ‘침례교인’들은 없었고, 모임에 장로들은 있었지만 ‘장로교인’들은 없었습니다. 그 모임들에 감리(監理) 하는 자는 있었지만 ‘감리교인’들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의 권위에 떨었지만 ‘퀘이커교도’들은 없었습니다. 그들 모두 오순절의 축복을 나누었지만 그 곳에 ‘오순절주의자’들은 없었습니다. 형제들이 모두 다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었지만 ‘모라비아파’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그리스도인들로서 단순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출처 : ①A.P.깁스, 모임에 대한 성경의 원리, 전도출판사 / ②송찬호, 19세기에 있었던 하나님의 역사, 엠마오 성경학교)
2. 교파(敎派)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어떠한가?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이 아니라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고전1:10-13)
1) 성경에는 종파(宗派)가 있는가?
성경에서 침례교나 장로교, 성공회나 회중교회, 감리교 등과 같은 많은 교파에 대해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 많은 교단들 안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며 그들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파는 다른 종파의 많은 그리스도인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성경의 올바른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취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만든 교파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여러 구분된 무리로 나눕니다. 교파는 그 의식(儀式)이 그들을 침례교로 만들고 교회의 통치제도가 장로교 또는 회중교회로 만듭니다.
또 어떤 이들은 어떤 파의 창시자의 이름을 따라 루터교나 웨슬리교(감리교)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구분들은 성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2) 성경은 교파주의(敎派主義)를 옹호하는가?
성경은 교파주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나누는 분파주의, 건전한 삶과 건전한 교리 가운데 있는 자들을 자신들로부터 구분하는 행위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이 파벌주의는 일찍이 고린도 교회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바울은 이를 책망하여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한 사역자들이니라”(고전3:3-5)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분파행위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고전1:13)라고 반문했습니다.
만일 바울이 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거나, 그들을 위해 죽었거나, 바울의 이름으로 그들이 세례를 받았다면 그들이 모일 때 바울의 이름으로 모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나뉘어져 있는 수백 개의 교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성경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일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로 묶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며 영적인 것이 아니라 육적인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주 예수님은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라고 기도하심으로 분쟁과 분파가 주님의 뜻이 아님을 명백히 하셨습니다.
3) 성경은 어떤 교파에 참여하라고 권하는가?
열차에서 처음 만난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이야기가 오고 간 후에 한 그리스도인이 물었습니다. “어느 교회(교파)에 나가십니까?”
다른 그리스도인이 “그것이 바로 제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당신이 저를 좀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당신에게 성경 밖에 없다고 생각하시고, 당신은 그 성경에서 내게 어느 교회에 나가라고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그리스도인은 잠시 생각하다가는 “만일 당신이 성경에서만 그 답을 찾으라면 저는 당신에게 어느 교회도 가라고 말씀드릴 수 없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그 그리스도인은 “그것이 바로 나의 현재의 입장입니다.”라고 말하고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만든 모든 혼란스러운 교파주의를 떠나서 하나님 말씀에 기록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모이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가르치는 바이며 “형제들”로 알려진 사람들의 입장입니다.
(출처 : A.P.깁스, 모임에 대한 성경의 원리, 전도출판사)
3. 참다운 교회에 대한 역사의 증언과 교훈
1) 구약의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고 성막을 보여주신 식양(式樣)대로 지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막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고 하나님의 백성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복지에 이르렀으나 세월이 흐르자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게 되었습니다(삿21:25).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이라는 종을 일으키셔서 영적으로 무너진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켜 세우셨고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전성기를 지나자 점차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고 히스기야왕은 개혁을 단행했습니다(왕하18:1-8).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이스라엘은 영적인 타락과 더불어 국가적 몰락의 비운을 맞게 되었습니다. 바벨론 포로귀환 시대, 곧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시대에도 부흥이 있었지만 잠시 뿐 이었습니다(스6:19-22, 느8-9장). 영적 어두움이 그들에게 몰려왔고 내용 없는 형식만이 존재하게 된 사실을 말라기서와 복음서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마23장 참조).
2) 신약의 교회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도와 속사도 시대에도 많은 이단들의 가르침이 난립하였으나 신실한 종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과 성경의 진리를 보존해 오셨습니다.
2-3세기의 극렬한 박해시대에도 순수한 신앙이 지켜졌지만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AD 313년) 이후에는 세속적인 것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교회는 본래의 순수성을 상실하고 타락과 부패의 늪으로 빠져갔습니다.
성경의 우화적(寓話的) 해석【영해(靈解)】, 교황의 절대적 권한, 성도들로부터의 성경의 탈취(유일한 라틴어 성경, 성경의 교회 해석권) 등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과 단순한 신약교회의 진리, 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성도의 소망이 사라짐으로써 중세의 영적(靈的)인 암흑 천년을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14세기에 신실한 종인 위클리프(AD 1329-1384)를 통해 성서 회복 운동을 전개하시고 성경을 영역(英譯)하여 영어권의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있도록 하셨으며 그로 하여금 성경을 올바로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또한 보헤미아 여왕의 고해신부였던 존 후스(AD 1369-1415)의 개혁 주장과 르네상스를 통한 새로운 지식에 대한 추구, 강력한 민족 국가 (영국, 프랑스, 독일)의 발생 등은 개혁의 촉진제가 되었습니다.
15-16세기에 독일의 말틴 루터(AD1486-1546), 스위스 취리히의 쯔빙글리(AD1486-1531), 스위스 제네바에서 활동했던 존 칼빈(AD1509-1564),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AD1513-1572) 등의 개혁자들을 통해 은혜의 복음을 회복하시고 영적인 어두움을 거둬내셨습니다.
그러나 개혁 1세대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자 개혁교회 역시 형식과 전통만을 고수하는 형식적인 교회로 전락하여 갔습니다. 그래서 개혁교회가 또 다시 개혁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기독교 신앙의 교본인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형편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17세기에 하나님께서 존 번연(AD 1628-1688)과 리차드 백스터(AD 1615-1691) 등의 청교도들과 필립 스페너(AD 1635-1705)와 아우구스트 프랑케(AD 1663-1727) 등의 경건주의자들을 통해 순수한 신앙을 고수해 오셨습니다.
18세기에는 존 웨슬리(AD 1703-1791)와 죠지 휫필드(AD 1714-1770)가 십자가의 도, 곧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19세기에는 영국의 찰스 스펄젼(AD 1834 -1892)과 미국의 디 엘 무디(AD 1837-1899), 찰스 피니(AD 1792-1875), 그리고 형제운동의 주역이었던 존 다비(AD1800-1882)와 죠지 뮬러(AD 1805-1898) 등이 복음을 증거하며 진리를 확산시키는 일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자 급격한 문명의 발전으로 인하여 물질적인 부를 향유하게 되었고 영적인 일들이 점점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용 없는 형식적인 교회,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된 민주적인 교회, 영적인 것이 아닌 물질만능적인 교회로 전락하여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교회가 아닌 세상의 영향을 받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새 천년, 21세기를 맞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합당한 태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으로 교훈 받고 성경으로 확인하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최선의 지침이요, 최고의 권위요, 최종의 확증입니다.
4. 역사 속에 나타난 성경에 충실한 교회들
2000여 년의 교회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존중하고 그 성경으로 돌아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오직 그리스도와 말씀에 충실했던 무리들이었으며, 그들을 통해 은혜의 복음(구원의 복음)과 신약성경에서 가르치는 교회진리가 지켜져 왔습니다.
기독교의 세속화된 기득권자들이 자칭 정통주의자임을 내세우며 편협한 시각으로 이들을 이단으로 내몰며 핍박할 때에도 이들은 피 흘림으로 은혜의 복음과 참된 신약교회(초대교회) 진리를 지켜왔습니다.
사실 기독교의 역사는 세속화된 기득권자들에 의한 참다운 신앙인들에 대한 핍박의 역사였으며, 이는 지금까지 줄곧 계속되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시의 타락한 기득권자들이었던 유대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사단의 하수인으로 매도 당하셨으며(마10:25, 12:24),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죄명으로 어처구니없게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셨습니다(마26:65).
뿐만 아니라 이들은 또한 사도시대 때에도 여전히 사도들과 그 무리들을 이단시하며 핍박했습니다(행24:1-5, 24:10-14).
또한 중세 카톨릭 시대에는 성경대로 주님을 섬기려 했던 왈도 파(派), 죤 위클리프, 요한 후스, 사보나롤라 등도 도리어 이단으로 몰리어 집단 학살을 당하기도 하였고, 죽은 후에 그 무덤이 파헤쳐져 그 유해가 불에 태워지기도 하였고, 산 채로 불에 태워져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루터와 쯔빙글리, 칼빈(칼뱅)도 종교개혁을 하는 과정에서 이단으로 몰리어 수없이 죽음의 위협을 느끼면서 살아갔습니다.
이와 같은 핍박은 구약시대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구약시대에도 참다운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핍박을 당하며 수없이 죽임을 당했으며,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사실을 직접 언급하기도 하셨습니다(마5:11-12).
그러면 지금부터 영적으로 매우 어둡던 시절에 이단이란 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 말씀을 최종 권위로 삼고서 하나님 말씀만을 순종하던 자들의 발자취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사도와 속사도 시대
오순절 이후(행2:1)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서 사도들과 그들의 동역자들에 의해 교회진리가 가르쳐지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사도들이 사명을 다 한 후 사도들의 제자들과 또 그들의 제자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신약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이 점점 변질되어 갔지만 하나님께서는 시대시대마다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종들과 무리들을 일으키셔서 순수한 교회의 모습을 보존해 오셨습니다.
2) 세칭(世稱) ‘바울 파(派)’, ‘보고밀 파(派)’, ‘알비 파(派)’
8세기 말경 아르메니아 귀족 출신의 셈바트(Sembat)가 인도했던 세칭 바울 파(派)가 있었는데 이들의 교회는 침례받은 신자들로만 이루어졌으며 신약성경의 근본진리를 고수하였고 지역교회의 독립성과 다양성을 보존하였습니다. 12세기에 보고밀리에서 의사로서 복음과 가르침에 헌신하다 공개 화형(AD1119년)당한 바실(Basil)이 이끌었던 보고밀 파(派), 12세기 중엽에 프랑스 남부지역에서 시작된 알비 파(派)란 무리들이 있었는데 이들의 지도자들은 화형(브루에이스/AD 1126년)되거나 옥사(앙리/AD1147년) 당했습니다.
3) 세칭(世稱) ‘왈도 파(派)’
12세기 후반부터 13세기 초엽까지 놀랍게 주님을 섬겼던 리용의 부자 피터 왈도가 두드러지게 활약함으로 얻은 이름 왈도 파(派)가 있었습니다.
세칭 왈도 파(派)로 불리운 자들의 신앙관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구원이 얻어지는 것이며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했습니다.
초대교회가 보여준 의식을 계승하며 영(靈)의 내적 증거를 중요시했습니다. 중대한 진리의 동일성은 교제의 필수 요건으로 보았고 여타 다른 분별에는 폭 넓은 자유가 허용되었습니다. 이들은 규칙적인 경건 생활에 열심이었고 영성(靈性) 뿐만 아니라 교육(敎育)도 중요시 여겼습니다.
4) 세칭(世稱) ‘롤라드 파(派)’, ‘후스 파(派)’
로마 카톨릭이 세계를 지배하던 14세기에 영국의 위클리프가 성경을 영어로 번역(위클리프 성경)했고, 성경의 권위를 회복했습니다.
그는 성경이 진리임을 믿었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문자적인 성경해석을 토대로 성령의 사역에 의해서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 사람이시고,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며, 그 분의 십자가를 통해서 죄인이 구속되었고, 이것을 통해서만 죄 사함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사도행전과 서신서에서 가르치고 있는 올바른 신약교회의 진리를 깨달았고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제사장임을 역설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가리켜 롤라드 파(派)라고 불렀습니다. 위클리프의 제자 제롬이 귀국 후 배운 그대로 가르쳤는데 그의 가르침은 보헤미야의 여왕 고해 신부인 존 후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후스는 “구원은 은혜에 의해, 믿음을 통해서!”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교회의식과 복음증거에 대해 성경의 인도를 구했는데 카톨릭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AD1415년)되었고 마침내 화형 당했습니다. 후스를 따르는 무리들을 사람들은 후스 파(派)라 불렀습니다.
5) 세칭(世稱) ‘연합형제단’, ‘재(再)침례파’, ‘메노파’
그레고리라는 사람이 북동 보헤미야에서 15세기 중엽에 연합 형제단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삶에 강조점을 두었고 성경대로 교회를 치리 했습니다.
거룩한 삶은 양심의 자유와 조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삶의 순수성이 강조되었습니다. 그레고리는 투옥되어 심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16세기에 독일과 여타 지역의 형제단 교회가 확실한 중생(重生)의 경험 없이 받은 세례는 무효하다고 보고 그 이후 중생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침례를 다시 베풂으로 재(再)침례 파(派)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이들은 “믿는 자들의 모임은 독립적이고,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을 준행해야 한다.”라고 굳게 믿었고 서로를 형제자매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수세기 동안 이단으로 정죄(定罪) 되어 박해 당했던 사람들의 증거를 이어 갔습니다. 이들은 총체적(우주적)인 교회와 지역교회를 분별함으로 성경의 교회의 모습과 특징을 알았습니다. 이들의 지도자로는 공인된 유능한 장로였고 신학대학 교수였던 휩마이어가 있었는데, 결국 화형(AD1527년)당했고 휩마이어에게 침례 받았던 명문학교 책임자(AD1523년)로 있었던 한스 뎅크는 루터파에 의해 추방당했습니다. 또한 메노 시몬(AD1492~1559년)이 흩어진 성도들을 모아 모임으로서 메노 파(派)라는 별칭(別稱)을 얻었는데 이들은 침례와 성만찬을 증거 했습니다.
6) 세칭(世稱) ‘모라비아 형제단’, ‘스툰드 파(派)’
18세기에 보헤미야 형제단의 『권징지침』이란 책을 통해 영향을 받았던 모라비아 형제단은 초대교회를 회복하고자 하는 결심을 가지고 모이기 시작했고 후에는 복음증거에 사로 잡혀서 조직 전체가 선교회로 전환(AD1732년) 되었습니다.
독일의 경건주의자에게 영향을 받았던 이들의 지도자 진젠돌프( ~AD1760년)는 경건한 삶을 살았고 설교에 헌신했습니다. 모라비아 형제단을 통해 요한 웨슬리가 회심을 경험하고 놀랍게 하나님의 쓰임을 받았습니다.
한편 러시아에서도 독일인 이주자들의 모임이 생겼는데 성경 읽기를 통해 특별한 성령의 조명과 권능을 경험했습니다. 이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 만인 제사장직, 성령의 내주(內住)하심, 복음전파, 성도의 교제, 은사와 사역의 자유를 배웠고 정교회의 성직 제도를 폐지했습니다. 러시아 황제였던 알렉산더 1세는 [영국 및 외국 성경협회] 설립을 권장하여 성경 읽기가 확산됨으로 건전한 모임이 발전되었습니다. 역사는 이들을 가리켜 스툰드 파(派)라고 부릅니다. (출처 : E.H.브로우드벤트, 순례하는 교회, 전도출판사)
5. 교회사 연구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형제운동’이란?
1) 형제운동의 발단
교회사(敎會史)는 끊임없는 개혁의 역사입니다. 루터, 칼빈, 웨슬리를 통한 부흥이나 이와 유사한 개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초엽 대다수의 교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금 냉냉한 형식주의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나폴레옹이 일으켰던 전쟁으로 성도들은 성경의 예언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주님의 오심이 가깝다는 진리가 새롭게 주목을 끌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고학적 발견은 고등비평을 궁지로 몰아넣었고 성경의 권위를 회복시켜 갔습니다.
이에 따라 3대 각성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선교열의 고조, 성경의 대대적인 보급, 그리고 이제 말씀드리려는 형제운동(Brethren Movement)의 시작을 들 수 있습니다.
2) 형제운동의 시작
1825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성경을 연구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더블린 대학교의 트리니티 대학 동창생으로 성경을 상고하면 할수록, 당시의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을 떠나 형식과 전통에 얽매여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827년 마침내 7명의 신앙동지들이 국교를 떠나 따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운동은 아일랜드를 비롯한 영국 전역은 물론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스페인 등 유럽 대부분의 지역과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아프리카, 중국, 인도, 아라비아 등 세계전역에서 거의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후세(後世)의 역사는 이를 가리켜 형제운동(Brethren Movement)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3) 형제운동의 주역
성경학자로 근세의 터툴리안(Tertulianus)이라 불리우는 다비(J. N. Darby), 고아원의 설립자로 일생을 통해서 무수한 기도의 응답을 받았던 죠지 뮬러(George Muller), 모세오경을 주해한 매킨토쉬(C. H. Mackintosh), 수 많은 주해를 썼고 다비의 저작 전집을 발행한 윌리암 켈리(William Kelly), 다니엘서를 주해하여 예언의 기초를 확립시켰던 앤더슨 경(Sir Robert Anderson), 원어에 뛰어난 학자인 트레겔레스(S. P. Tregelles), 탁월한 교사요 저술가였던 에릭 사우어(Erich Sauer), 하나님의 사랑을 정열적으로 전했던 무어하우스(Henry Moorhouse), 완벽한 신구약 성구사전을 출판한 위그람(George Vice Simus Wigram), 인도에서 주님만 의지하고 선교했던 그로우브스(Anthony Norris Groves), 리빙스턴을 이어 아프리카에서 초교파적 선교에 헌신했던 아르놋(Frederick Stanley Arnot), 수많은 찬송가의 저자인 데크(J. G. Deck), [구원의 안전, 확신, 기쁨]의 저자로 잘 알려진 죠지 커팅(George Cutting), 그밖에도 채프만(R. C. Chapman), 스탠리(Charles Stanley), 그랜트(F. W. Grant) 등 천여명의 교계 석학과 지도자들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신앙 양심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모이게 됨으로써 당시의 기독교계에 커다란 감동과 영향을 끼쳤습니다.
(출처 : 송찬호, 19세기에 있었던 하나님의 역사, 엠마오 성경학교)
4) 한국의 형제운동의 어제와 오늘
1950년 한국전쟁 이후 한국이 세계에 알려지게 되면서 세계 각처에서 한국선교를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1959년 젊은 대학생들이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 속죄의 복음을 듣고 구원받게 되면서 경인지역 비롯하여 전국 각처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현재는 한국 전역에 약 230여 개 교회가 세워져 하나님의 복음과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선교기관으로는 엠마오 성경학교(Emmaus Bible School), 그리스도인 훈련원(Christian Training Institute), 구도자 전도협회(Seekers Evangelism Fellowship), 캠퍼스 형제 선교회(Campus Brethren Fellowship), 열린문 선교후원회(Open-door Missionary Service Committee), 어린이 전도의 집(Children Mission House), 그리스도인 성경 캠프(Christian Bible Camp), 선한 사마리아원(고아원), 전도출판사(Evangelical Publication Inc.), 그리고 크리스챤 넷(Christian Nets) 등이 있으며 극동방송(서울, 대전, 창원), 아세아 방송을 통하여 약 30년간 복음과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 해외에 10여 개국(캄보디아, 태국, 필리핀 등)에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현지인 교회가 세워져 세계선교의 일익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6. ‘형제운동’의 신앙 핵심 내용
1) 성경에 대하여
모든 신구약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오류가 없습니다. 성경은 인생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이 완전하게 계시되어 있는 신앙생활의 최종적 권위입니다. 성경의 권위는 어떤 신조나 헌법이나 전통에 우선(優先)하는 것입니다(벧후3:21).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5~17).
2)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은 만유(萬有)의 창조주로서 영원하시고 무한하시며 한 분이신 동시에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로 계십니다. 이 진리는 하나님의 비밀이기에 만물 가운데 그 유비(類比)를 찾아 볼 수는 없으나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을 수 있습니다(고후13:13).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3:16~17).
3) 그리스도에 대하여
(1)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곧 참 하나님이신 동시에 참 사람이십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그 몸으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하여 완전하고 영원한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히10:10).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2:24).
(2)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으며, 지금은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대언자(代言者)로 계십니다(고전15:20).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體恤)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4~15).
4) 성령에 대하여
성령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시며 사람으로 죄를 깨닫게 하시고 믿음으로 죄인들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성도의 심령에 내주하셔서 예배하도록 인도하시며, 기도하도록 감동하시며, 전도하도록 힘을 주시며, 봉사하도록 은사를 주시며,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십니다. 교회는 모든 활동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복종해야 합니다(고전12:13).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5) 구원에 대하여
(1) 오직 믿음에 의한 구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나 범죄로 인하여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존재가 되었습니다(롬3:23). 죄는 유전되어 자자손손(子子孫孫) 모든 인류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각종 죄악은 물론이고 불안과 초조, 은닉과 공포, 전쟁과 소란, 미움과 질투, 질병과 죽음 등, 이 모든 것이 죄가 남긴 유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으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 모든 죄를 담당시키셨습니다(벧전2:24).
그러므로 오직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에 의하여 거듭나게 되며 영적 생명을 얻게 됩니다. 선행(善行)은 구원의 열매이지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딛3:5~7).
천국은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어지는 신분으로 가는 나라이지 우리의 선행과 수고의 대가(보상)로 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롬3:20, 행13:39, 딛3:5, 히7:19, 갈3:10).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9).
(2) 영원한 구원
참으로 거듭난 사람은 결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이라도 구원받은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8:38~39).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불변하기 때문이며(히6:17), 그리스도의 구속이 영원하기 때문이며(히10:14), 성령께서 구속의 날 까지 인치셨기 때문이며(엡4:30), 구원받은 자들이 보존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요6:3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28~29).
6) 교회에 대하여
(1) 성도는 주의 성전
예수님을 믿어 거듭난 무리들이 하나님의 교회이며 성전입니다. 따라서 집회장소는 성도들의 신앙활동을 위해 중요하지만 구약시대의 성전처럼 신성시할 대상은 아닙니다(고전3:16).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2) 교회는 주의 몸
교회는 한 몸이며 모든 성도는 그 몸의 지체들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나 민족이나 신조에 의해 파명(派名)을 달리하고 분열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고전12:12).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침례를 받았느뇨”(고전1:12~13).
(3)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각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받들어 자주(自主), 자급(自給), 자립(自立)해야 합니다. 따라서 성도간 교회간에 사랑으로 서로 도와야 하지만, 타 교회를 간섭하거나 다스리는 조직과 제도는 합당치 않습니다(엡1:22).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1:22~23).
(4) 모든 성도는 제사장
모든 성도에게는 제사장으로서 다양한 은사를 따라 전도, 기도, 교육, 교제, 예배, 헌신, 봉사해야할 의무와 특권이 있습니다(마23:8~10).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5) 교회의 직임
교회의 직임에는 감독(장로)과 집사가 있습니다. 감독이나 장로는 동일한 직임으로 성도들을 보살피고 돌보는 사람이며(행20:17,28), 집사는 은사와 믿음의 분량대로 섬기는 일에 힘쓰는 사람입니다. 요컨대 감독과 집사는 사회적 신분이나 직위에 상관없이 성숙된 인격을 필요로 하는 봉사의 직분입니다(딤전3:1~10).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5:2~4).
(6) 침례는 최초의 순종
중생을 체험한 사람만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침례는 주님이 명하셨고(마28:19), 바울이 상세히 교훈했으며(롬6:1-4), 제자들이 순종했던 예식입니다(행2:41, 10:47, 16:33, 18:8). 침례가 결코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순종의 첫 발자국이 됩니다. 또한 침례는 어원적으로나 문맥적으로나 교훈적으로 보아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이 합당합니다(행8:38~3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9~20).
(7) 성찬을 통한 예배
주의 만찬은 주 예수님의 분부와 사도들의 본을 좇아 매주일 시행하면서 주님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마26:26~29, 행20:7). 예배는 죄를 위한 제사도, 구원의 방편도, 은혜나 상급의 조건도 아닙니다.
또한 설교를 듣거나 복음을 전하거나 기도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니고, 다만 주님을 기념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드리는 우리의 심령은 주님께만 향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11:23~26).
(8) 교회에서의 여성의 지위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해야 합니다(고전14:34). 또한 여자는 교회에서 너울을 쓰는 것이 합당합니다. 이는 시대적 풍조나 지역적 풍속이 아니고 모든 성도의 교회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또한 주 안에서는 신분상 남녀의 차별은 없지만 질서상 구분이 있어야 합니다(갈3:28).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고전11:7~10).
(9) 교회의 재정
교회의 재정은 감동을 받아 은밀하게 자원하여 드리는 연보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믿음을 따라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헌신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강요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고후9:6~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6:17~19).
7) 종말에 대하여
(1) 교회의 휴거
예수님이 오실 때 주 예수님을 믿고 죽었던 성도들이 부활하고, 살아있던 성도들은 변화를 받아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몸이요, 신부요, 성전인 교회의 지체된 구원받은 성도는 모두 휴거 될 것입니다(고전15:51~52).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2) 전무후무한 환난
성도들이 휴거 된 후에는 큰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없었고 이 후에도 없을 환난으로, 온 세상에 임할 것입니다(마24:21). 그래서 휴거 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자들은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이는 그 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조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막13:19).
(3) 주 예수님의 지상재림
큰 환난 후에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에 재림하실 것이며 열방을 심판하신 후, 천년동안 다스리실 것입니다(막13:24~2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계20:6).
(4) 최후의 심판
크고 흰 보좌에서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그들의 행실대로 심판을 받고 둘째 사망 곧 불못에서 세세토록 고난을 당할 것입니다(계21:8).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이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20:11,13,15).
(5) 성도의 소망
성도들에게는 영광스러운 새 하늘과 새 땅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슬픔 중에 위로를 받으며, 주의 오심을 고대하며 주님을 충성스럽게 섬길 수 있습니다(계21:1).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3:13~14).
(출처 : 송찬호, 19세기에 있었던 하나님의 역사, 엠마오 성경학교)
7. ‘형제운동’에 대한 교회사 연구학자들의 견해
교회사가(敎會史家)들의 눈에 비쳐진 세칭(世稱) ‘형제교회’는 어떤 교회이며, 그들은 어떤 무리일까요? 비록 사가(史家)들의 견해가 소위 ‘형제들’의 입장을 정확하게 대변해 주지는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형제들’은 성경을 존중하는 교리적으로 건전한 자들이며, 많은 이들에게 영적 감화와 영향을 끼친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사가(史家)들의 견해를 그대로 싣습니다. 직접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1) E.S.모이어(인물중심의 교회사 390~392쪽/플리머드 형제단/대한기독교서회)
후기의 속종교개혁 시대에 신비주의적 교훈의 영향을 받아 발생된 또 한가지 교회는 보통 플리머드 형제단이라고 부르는 단체이다.
이 형제단 운동이 일어난 시초로 말하면 19세기 초에 앵클리칸 교회 신자들 중에 교파주의, 형식적인 교인의 자격, 비성서적인 교회의 명칭 또는 교회의 일인정치(一人政治)를 반대하는 단체들이 여기 저기서 일어날 때의 일이었다. 이러한 단체의 초기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 다비(John N. Darby, 1800 - 1882) 였다. 법관이 될 목적으로 공부하였지만 전도에 소명감을 느껴 법관 생활을 떠나서 아일랜드 교회의 성직자로 안수를 받았다. 그는 약 2년 동안 열심으로 순회 전도를 하였는데 너무도 피로한 탓으로 건강을 해쳤다. 그뿐 아니라 당시의 교회의 형편이 너무도 비참한 상태에 있음을 개탄하여 교직을 사면하였다. 다비는 1872년에 위에 말한 한 단체에 가입하였다. 이 단체는 몇 해 동안 본부를 플리머드에 두었는데 이들은 보다 더 성서적인 이름을 택하여 자기들을 형제단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플리머드에서 온 형제단이라고 했는데 차츰 변하여 나중에는 플리머드 형제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교회 역사에 있어서 다른 많은 개혁운동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한 반동적인 운동이었다. 영국, 아일랜드, 그 밖의 여러 나라에 있는 기성교회들은 그 신자들 사이에 진정한 우애가 없었으며, 또한 그들에게 요구되는 영의 양식이 없었다. 교회의 예배는 모두가 형식적이어서 생명이 없었으며, 설교자들의 설교는 대부분이 회의론(懷疑論), 합리주의 및 고등비평이었다. 그래서 많은 신자들은 기성 교회 밖에서 참다운 우애정신과 교훈을 추구하였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곧 형제단운동의 중심사상이었다.
교리적으로는 이 형제단은 성서의 모든 기본적인 교훈을 옹호하였다.
이들은 분명히 성서 중심적이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의 친근한 학도들이었다. 그들에게는 근대주의적이라든지 합리주의적인 경향은 거의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신학의 정밀성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여러 당파로 갈라지기 쉬운 듯한 경향이 보였다. 미국에 있는 이 교파의 신자의 총수는 약 3만 명 밖에 안되는데 적어도 8개의 분파로 갈라져 있다.
교회의 조직면에 있어서는 우회파와 비슷하다. 이 교회에도 인간이 안수하는 교역자는 없다. 주님의 부르심을 입은 교역자는 목사, 전도사 및 교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여자의 설교는 허락하지 않는다. 이들은 조직된 교회는 없고, 우호단체 곧 회를 조직한다. 인간적인 감독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 회를 주관하며, 그들의 모든 계획과 활동을 인도하신다. 전도사나 선교사에게 일정한 봉급이 없다. 어떠한 직업을 갖거나 또는 주님께 직접 의지함으로써 자신들과 자기들이 가족을 자급적으로 부양한다. 예배 때에 연보를 하지 않는다. 이 형제단은 다른 교파와 같이 확실한 교회 조직이 없고, 일정한 목회제도와 지정된 봉급을 받는 안수받은 교역자도 없고, 선교회나 분명한 선교부도 없으며, 신학교와 성서학교도 없지만 복음을 멀리 또한 널리 전파하고 있다. 이 형제단은 현재 전 세계를 통하여 56개국에서 약 1,000명의 대표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이 파에서 배출된 몇 사람의 저명한 성서학자와 설교가를 말하면 다비(J. N. Darby), 뮐러(George Muller), 뉴톤(B. W. Newton),켈리(William Kelly), 매킨토쉬(C. H. Mackintosh), 트레겔스(S. P. Tregelles), 그랜트(S. W. Grant), 링컨(William Lincoln) 및 무어하우스(Henry Moorhouse) 등이다. 맨 마지막으로 말한 무어하우스는 수백만 명의 심령을 흔들어 구원의 길로 들어서게 한 무디(D. L. Moody)의 심령을 움직이게 한 사람이었다. 알버트 뉴만이 말하기를 “저 유명한 무디 선생을 위시하여 많은 부흥 전도가들이 대부분 형제단 신자들의 저서와 또는 그들과의 개인적 접촉에 의하여 받은 감화로 전도가로 일생을 바칠 포부를 갖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뮐러는 영국 브리스톨에서 난 위대한 신앙가였으며, 동시에 고아원 사업가로 유명한 사람이다.
2)어드만 社(최신 세계교회사 656~657쪽/형제단/도서출판한글)
기독교 역사에서 때때로 어떤 특별한 이름을 거절하고 초대교회의 사고방식과 신앙 내용을 되찾으려고 노력하는 운동들이 일어났다.
19세기초 영국에서 나타난 이러한 운동은 또한 스위스와 독일 그리고 유럽 대륙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일어났다. 플리머드(PLY- MOUTH)가 초기에 뛰어났기 때문에 “플리머드 형제단”이라고 칭하였지만, 형제단(BRETHREN)은 언제나 특별한 이름을 피하려고 했다.
창설자들은 주로 국교회(성공회)의 복음주의자들이었으며, 그들은 복음주의 운동이 충분한 효과가 없다고 느꼈다. 또한 당시의 비국교주의의 어떤 특징들을 유감으로 여기는 비국교도들이 있었다.
창설자들은 교회의 분리된 상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그들의 단순한 성찬 예배가 교파와 관계없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친교의 방편이 되기를 원하였다. 즉 그 예배는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라는 것을 나타내주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성직자 계급을 필요로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기대하였고 끈덕지게 성경에 의지하였다. 그들은 현세의 소유와 즐거움 그리고 신분을 부인하였다. 그들의 초기 지도자들은 강력하게 칼빈주의적 교리들을 주장하였는데 그들은 종종 열심있는 복음 전도자들이었다. 곧 그들은 독특한 형태의 예배와 교회생활을 발전시켰다.
처음부터 두 가지 강조점이 있었다. 다비(J.N.Darby)와 다른 사람들은 교회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의 다른 “세대들” (DISPENSATIONS)의 마지막 단계에 있으므로 황폐해 있다고 믿었다. 회합들은 장로들과 집사들로 세워져야 하는 것이 아니었고, 단순히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사람들의 집단을 이루는 것이었다. 후에 “배타적인”회합들은 권위주의로 기울어졌다.
단순히 기독교 형제회(혹은 “OPEN" BRETHREN)로 알려진 다른 집단은 작지만 영향력 있는 비국교도 집단으로 발전하였다. 이민과 선교에 대한 강력한 강조의 결과(영국의 경우 대략 형제단의 1 %가 선교사가 되었음)로 형제단은 세계의 대부분의 지역에 존재하고 있다. 그들은 아르헨티나(여기서 그들은 두 번째로 큰 선교집단을 형성)와 자이레와 잠비아와 남부 인도와 싱가포르 그리고 뉴질랜드에 비교적 많이 있다.
형제단의 가장 독특한 강조는 교회의 직무와 봉사의 기회가 모든 신자에게 골고루 주어진다는 것이다. 회중의 서로 다른 회원들이 예배와 성찬식을 인도한다. 전임의 목회자는 아주 드물었다. 그러나 전임의 복음전도자들과 성경 교사들이 널리 순회 전도를 하였다.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형제단의 또 다른 특징은 지역 교회 이상의 교회 통치(행정)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교의 재정적 후원과 교회 건축 혹은 성경 대학의 설립 같은 특별한 기능에 응하기 위해 담당 기관들을 세울 수는 있다. 그러나 성직계급 제도나 중앙집권적 조직은 없다. 지역 교회들은 그 당시의 필요와 지역적 상황에 비추어서 성경의 가르침을 자유롭게 적용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어떤 집단의 고정된 보수주의가 결국 널리 인정된 일반적인 관례가 된다. 협의회와 잡지들은 교리적이며 실제적 관점(그들이 공유하고 있는)을 강화시킨다.
특히 교회의 일치와 재조직의 시대에서 형제단의 공헌과 경험은 그들의 수와 비교할 때 뛰어난 것이었다. 그들은 성경이 계속 비난의 세례를 받았을 때 변함 없이 성경의 권위를 고수하였다. 형제단의 많은 회원들은 교파간의 기관에서 지도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그들은 복음전도에 적극적이었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였는데, 그 교회는 모든 참된 신자들로 이루어지며 구성원들 가운데 주어진 영적인 은사들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3) A.M.렌위크(세계기독교교회사 289~292쪽/그리스도인 형제회/보이스사)
1827년에 그리스도인 형제회로 알려진 종교 단체가 발생하였다. 이 단체가 후에 영국과 미국의 영적 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처음에는 더불린(Dublin)에서 출발하여 곧 잉글랜드로 넘어갔다. 초기에는 이 전에 선교사였던 안토니 노리스 그로브스(Antongy Norris Groves), 법률가 벨레트(J.G. Bellett), 더불린의 허칭손(W.F. Hutchinson), 존 파넬(John V. Parnell), 등이 지도했고 후에는 콩글튼(Congleton)경과 크로닌(Cronin)박사 등이 지도하였다. 여기에 당시 아일랜드에서 성공회의 목사로 수고하던 존 넬손 다비(John Nelson Darby)가 가담하였다. 그는 지적 능력이 대단하였을 뿐만 아니라 생활이 경건하여 형제회의 가장 특출한 지도자가 되었다.
이 운동의 초기에 주로 중상(中上) 계층의 지원을 받았으나 불원간 근로 계층의 사람들에게까지 지지폭을 확대시켰다. 안토니 노리스 그로브스(Anthony Norris Groves)는 선언하여 말하기를 “누구의 설교나 봉사를 기다리지 말고 주님께서 당신이 선히 여기시는 대로 우리 자신들 중에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심으로써 우리 모두의 덕을 세워주실 것을 믿고 그저 단순하게 우리 모두가 주님의 제자로서 함께 모이자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그들이 어떤 목적을 줄곧 지녀왔는가를 알 수 있다.
그들은 교권주의를 거부하였으며 그들의 집회는 성령에 의하여 인도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과 참된 그리스도인은 모두 제사장이란 점을 강조하였다. 그들이 볼 때 모든 교회는 세속적이며 죽어 있거나 혹은 정통적이지만 너무 냉냉하였다. 그들은 예수 재림의 교리를 전파하는데 있어서도 특별한 강조를 하고 있었는데 이 문제는 당시 런던의 레전트 스퀘어에서 스코틀랜드 교회를 섬기고 있던 널리 이름이 알려진 웅변적인 목사 에드와드 어빙(Ed- ward Irving)에 의하여 대중화되었다.
플리모드에서는 B.W 뉴톤의 지도로 이 운동이 강화되었다. “플리모드 형제들‘이란 이름은 이곳에서 연유한다. 1847년에 뉴톤은 이단의 협의로 고소되었다. 여기서 나온 그는 플리모드에 별도의 집회소를 설치하였고 끝에는 런던의 한 독립적인 목사가 되었다. 브리스톨(Bristol)의 베데스다(Bethesda) 체풀에는 고아원의 창설자로 이름난 조지 뮬러(George Muller)와 헨리 크레이크(He- nry CraiK)가 공동 목사로 수고하고 있었다. 이들은 형제회와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어서 플리모드에서 올라온 일부 뉴톤의 추종자들이 합류하였다.
‘배타적인 형제회’를 대표하고 있었던 다비(Darby)가 이것을 정죄하였지만 뮬러와 크레이크는 자신들의 종파 밖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언제라도 협조하고 친교를 나눌 의사를 가지고 있는 ‘개방’파의 지도자들이 되었다. ‘배타적인 형제회’는 교리 문제로 수차 분열을 거듭하고 있어서 다른 집단에 대하여 형제애의 정신을 보이고 있는 개방파와 연합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비는 1882년에 뮬러는 1898년에 각각 사망하였다.
오늘날의 형제회는 절대로 확실한 성경에 기초한 단순한 신앙을 가진 하나의 살아있는 힘이다. 그들은 죄에 의하여 인류는 잃어버린바 되었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만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내세의 생활이 훨씬 더 중요한 만큼 그들에게 있어서는 영혼의 구원이 사회 개혁이나 정치 철학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었다. 그들은 대학이나 기업 활동에서 뚜렷이 구별되는 사람들이었고 영국, 영연방, 유럽, 미국의 어디에서나 적은 숫자로 조용하지만 효과적인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또 강력한 선교적 관심이 있다.
4)조효근 (세계 기독교 평사<중, 근세> 206 ~209쪽 / 플리마우드 형제단의 신비주의/도서출판 들소리)
플리마우드 형제단(the plymouth Brethren)은 죠지 폭스 시대와 요한 웨슬리의 복음주의 운동이 거세게 일어난 후에 일어난 폭스와 같은 또 하나의 반동적인 집단이다.
이들은 영국 국교회는 물론 여러 복음주의 교회가 너무 형식적이고, 계급적이며, 교회의 1 인 통치 곧, 감독제도의 강화에서 오는 타성을 극복하고, 성도들 간의 우애와 사랑을 서둘러야 한다는 뜻으로 일어난 종교운동이다.
이들의 지도자로는 존 엔․달비(John N. Darby, 1800-1882)가 있다. 달비는 법관이 되기로 하고 공부하다가 소명을 받고 일어나 전도자로 일생을 살았다.
그는 아일랜드 교회에서 성직자 안수를 받고 열심히 일했는데 당시의 교회 형편이 너무 부도덕하다고 느끼며 성직자 직임을 사임했다.
그리고 1827 년 플리마우드 형제단에 가입하여 그 지도자가 된 것이다. 합리주의와 고등비평에 시달리던 영국 교회들, 목사들의 설교에는 생명력이 없었다. 이러한 교회를 다시 한 번 일으키기 위하여 플리마우드 형제단은 활동했다.
그들은 성경의 모든 기본정신을 옹호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공부하는 학도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근대 합리주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 복음주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플리마우드 형제단은 폭스의 퀘이커와 같이 교회 조직이 빈약하여 겨우 수 만명의 신자 뿐인데도 그 분파는 여덟개로 나뉘어졌다.
플리마우드 형제단 조직의 대강을 살펴보면, 그들은 ① 사람이 안수하는 성직자가 없다. ② 전도자 호칭은 목사․전도사․교사로 부른다. ③ 교회가 조직되지 않고 회원 제도이다. ④ 형제단 최고 감독자는 사람이 아니라 ꡒ성령ꡓ이시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성령의 인도를 따라 전도 계획을 세우고 복음사업을 한다. ⑤ 목사․전도사․선교사는 일정한 급료가 없고, 개인의 능력으로 살든지 아니면 주님께 직접 의뢰한다. ⑥ 예배 시에 연보가 없다. ⑦ 교육기관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현재까지도 60 여개 나라에 1,000 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놀라운 단체이다.
플리마우드 형제단에는 유능한 성경 학자나 설교가가 많이 있다. 죤 엔․달비((John N. Darby), 영국 브리스톨의 위대한 신앙가요 고아의 아버지인 죠지 뮬러(George Muller), 비 더불유 뉴톤(B. W. Newton), 윌리암 켈리(William Kelly), 성경학자 시․에이취․멕킨토쉬(C. H. Mackintosh), 에스․피․트레겔스(S. P. Tregelles), 에스․더블유․그란트(S. W. Grant), 윌리암 리콜른(William Lincoln), 헨리 무어하우스(Henry Moorhouse) 그리고 무어하우스를 통하여 감화를 받은 디․엘․무디(D. L. Moody) 등이다.
우리는 위의 사람들 중에 19세기 이후 세계 복음주의 운동에 큰 몫을 한 사람들 이름을 알고 있으며, 그들의 업적이 얼마나 뛰어났는가, 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무서운 사람들. 조직도, 신학교육기관도 성직자라는 지위도 그리고 교회 중심적 혜택(제사장 시대의 후광)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성령께만 의존하는 참된 길을 걷고 있는 저들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5)스탠리 군드리(무디의 생애와 신학 54~57쪽/생명의 말씀사)
만일 무디가 복음주의의 모임에 속한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접촉하여 가장 중요한 대외적인 교리적 영향이 이 기간 동안에 그를 형성하였다면,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이 사람들 중에 몇 명의 신분은 확인할 수 있다. 본국에서 무디는 회중 교회 교인들과 감리교 교인들과 친밀하게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한 플리모드 형제들(Plymouth Brethren)과도 사귀었다. 무디가 사귄 사람들 중에 가장 흥미 있고 쉽게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가 영국에서 사귄 사람들이었다. 1873년에 집회를 시작하기 전에 그는 영국을 세 번 여행하였다. 그 여행의 주된 목적은 영국인 신앙 동지들로부터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들과 사귀는 데 성공하여 영국의 복음주의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가 접촉한 사람들의 명단을 보면 거의 영국 복음주의의 명사들이었다. 1867년 처음 영국에 갔을 때 그는 죠지 윌리암스(George Williams)를 포함한 영국의 YMCA의 인물과 YMCA 사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의 주된 목적은 위대한 침례교 설교자 스펄젼(C.H. Spurgeon)과 고아 사업으로 유명하게 된 플리모드 형제인 죠지 뮬러(George Müller)를 만나 그들의 말을 듣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거기서 접촉한 형제들은 좀더 광범위하였다. 비록 그들의 견해를 다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무디는 그들에게 감사하였다. 또한 무디는 비국교도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평신도였던 헨리 바레이(Henry Varley)와 주요한 복음주의적 정기 간행물의 편집자였던 스미디스(T. B. Smithies)와 복음주의적 정기 간행물들과 책의 편집자이며 출판인이었던 몰간(R. C. Morgan)과 플리모드 형제들의 한 회원이며, 일반적으로 “소년 설교자”로 널리 알려져 있던 헨리 무어하우스(Henry Moorhouse) 등과 사귀게 되었다.
1867년에 있었던 이 최초의 방문은 4개월간 계속되었으며 1870년에 무디는 잠시 돌아왔으나 1872년에 다시 여행하였다. 세번째 여행 시에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런던이나 런던의 근처에서 보냈으며, YMCA의 정오 기도회에 참석하는 일과 비국교도 예배당에서 설교하는 일과 새로운 사람들과 사귀는 일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1872년 7월말경에 그는 일년에 한 번씩 열리는 마일드웨이 총회(Mildway Conference)에서 주요한 연설을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영국 각지에서 온 수백명의 복음주의자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영국에서 가졌던 이같은 교제들은 무디에게 신학적으로 견문을 넓히는 기회가 되었다. 본래 이것이 그의 여행의 주된 동기였으며 또한 이것은 1873년에 시작된 부흥 운동에서 무디가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해 주는 구실을 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 가운데 무디의 전망과 설교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헨리 무어하우스였다. 무디는 그 후 그의 메시지에서 가끔 그 사실을 언급하곤 했다. 1867년의 그들의 만남은 간단하고 우연한 것이었으나 다음 해 무어하우스가 미국에 왔을 때 무디를 설득하여 그의 시카고 교회 강단에 설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무디가 젊은 설교가를 거의 알지 못했고 처음에는 별로 큰 인상을 받지 못했지만 그에 대한 무디의 태도는 변하게 되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친밀한 우정이 싹트게 되었다. 무디는 무어하우스에게 큰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였다.
특별히 무디는 무어하우스의 자극의 결과로 그의 설교 준비에 있어서 성경의 중요성을 새롭게 강조하게 되었다. “당신 자신의 말을 전하는 것을 중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것이 그가 무디에게 한 충고였다. 비록 무디의 개인적 성경 연구와 그것에 응답하는 그 자신의 믿음이 이미 그의 신앙에 중요한 영향을 주어 왔지만(교리적 영향을 찾는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무시하기 쉬운 사실), 1868년과 그 다음 무어하우스가 죽기까지 여러 해 동안 헨리 무어하우스의 영향의 결과로 성경 연구가 새로운 차원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무디는 고백하였다.
또한 복음 메시지의 요소로서의 사랑에 대한 무어하우스의 강조도 무디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요한복음 3 : 16로부터의 그의 설교와 그 결과로 생겨난 무디와의 토론은 그의 복음주의적 접근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무어하우스를 만나기 전에 무디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에 대하여 회개할 것을 호소하였으나 이제는 하나님이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죄인들은 지옥 불과 정죄의 공포에 의하여 하나님께 나갈 것이 아니라 사랑에 의하여 이끌림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노예들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들을 원하시는 것이다. 미국의 전통에 있어서 전에 있었던 부흥회 설교의 어조와는 아주 다른 어조로 무디는 복음주의적 설교를 하게 되었다.
1860년 무디가 구두 장사를 그만둔 후에 그가 활동한 운동과 그가 만난 사람들을 살펴보면 이미 위에서 언급한 영향 이외에 두 가지 요소가 나타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비록 무디가 그 속에서 활동하던 복음주의는 알미니안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었으나 무디 자신은 일반적으로 플리모드 형제들과 특별히 헨리 무어하우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칼빈주의의 영향하에 들어오게 되었다. 챨스 스펄젼이 무디에게 끼친 칼빈주의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이것은 무디가 시종 일관 칼빈주의자였다는 것을 암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가 무어하우스와 스펄젼을 몹시 존경하고 있었으므로 만일 무디가 재구성된 알미니안이 아니었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 참으로 일찌기 그를 칭찬하며 그의 전기를 쓴 감리 교도인 다니엘스는 그의 “칼빈주의의 강점들”과 “칼빈주의적 신학”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플리모드 형제들로부터 무디는 또한 “세대주의의 진리”를 배웠다. 무디는 성경의 세대주의적 해석을 말할 만큼 조직적인 사상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몇 가지 세대주의의 주제가 그 대요에게서 마멸되었고, 그는 전천년설(premillennialism)의 종말론의를 따른 미국 최초의 유명한 부흥사가 되었다. 사랑과 성경에 대한 무어하우스의 강조와 관련하여 칼빈주의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두 가지 요소는 1860년에서 1873년 동안의 형성기에 무디가 신세진 가장 현저한 신학적 부채이다.
6)케니스 레트렛(기독교사 下 305~306쪽/생명의 말씀사)
이들보다 수적으로 많은 자들을 보통 ‘다아비파’(the Darbyites) 또는 ‘플리머드 형제들’ (the Plymouth Brethren)이라고 불렀으나 그들은 스스로를 다만 ‘형제들’(the Brethren), ‘그리스도인들’(Christians) 또는 ‘기독교 형제들’(Christian Brethren)이라고 불렀다. 초기에 뛰어난 지도자는 아일랜드에 있는 영국 국교회의 성직자이던 존 다아비(John Nelson Darby, 1800~1882)였다. 이 운동은 더불린(Dublin)에서 시작되었지만 플리머드(Plymouth)에 제 2의 중심지를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들이 주로 상류 계층 사람들로서 기존 교회, 특히 영국 국교의 세속성과 영적 메마름에 대해 불만을 느낀 자들을 중심으로 했지만, 마침내는 중류 계층과 가난한 자들이 중심이 되었다. 그들은 성서를 문자 그대로 믿었으며, 신약성서를 모본으로 한 집단을 형성했다. 성서 예언을 연구하던 그들의 상당수는 예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믿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분리되어 의롭고 거룩하게 살아야 하며, 세상의 오락 및 영혼을 오염시키는 것은 무엇이든지 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기존교회를 불신했는데, 그것은 교회가 세상과 타협했다고 간주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회합을 열었으나 중앙 조직체는 없었다. 그들은 신경(信經)을 배척했으며 성령께서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인도하사 신앙과 예배로 한데 묶어주신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회심을 중시했다. 그들은 사회 개혁은 소용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기독교의 사명은 남녀 인간을 세상으로부터 구해내는 일이라고 가르쳤다. 그들은 신자의 세례를 침수(浸水)에 의해 베풀었으며, 주일마다 성만찬을 행하였다. 그들은 안수를 받지 않았으며, 평신도 전도자들을 임용(任用)했다. 그들은 초기에 분열됐다. 그런데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어울릴 수 있는 정도에 관한 논란 때문이었다. 그들 가운데 저명한 인물에 죠지 뮬러(George Müller, 1804~1898)가 있었는데, 프러시아(Prussia) 태생인 그는 20세쯤 되었을 때에 할레(Halle)의 한 경건주의자들의 모임에서 회심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1829년에 그는 유대 사람들의 선교사로 영국에 갔다. 프랑케(A.H. Francke)와 그가 할레에 세운 고아원의 모본을 따, 그는 브리스톨(Bristol)에서 고아원을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필요한 물질을 얻는 방도로 신앙과 기도를 전적으로 의지하였다. 형제단들은 열심있는 선교사들이었으며, 모든 대륙에 흩어져 있으면서 ‘많은 나라의 기독 선교회’(Christian Missions in Many Lands)라고 부르는 단체를 발전시켰다.
8. 맺는말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에도, 모세가 성막을 지을 때에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이신 식양대로 준행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초대교회가 순종했던 바를 유의하여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듯이 우리도 성경에서 깨닫게 하시는 대로 신약교회의 진리를 힘써 따라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어떤 사람들과 교제해야 할 것인가를 분별함에 있어서 혈연(血緣)이나 지연(地緣)이나 물연(物緣)에 좌우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유일무이한 지침으로 삼아 신약성경이 지시하는 대로 결정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믿음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신약교회의 진리를 따라 섬기기를 힘쓰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과 서신서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모델을 본받아 계승하기를 원하면서 오직 성경에만 최고의 권위를 두고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대로 순종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첫댓글 좋은 공부가 되겠습니다...잘읽고 시간날때 자세히 다시한번 읽으려 퍼갑니다!
그런데 의외입니다?...예수의 발님께서 이러한 자료를 올리시니^^
제가 의외입니다. 형제님이 이런 답변을 하시다니^^. 저는 모든 교회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파교회나 비교파교회나 말입니다.
시크릿가든형제님 혹시 이글을 보시면 ..이글에서 ..성서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교파, 교단의 명칭을 사용하지 아니하며....."신약교회"라고 정의하는 것을 보시고.........."신약교회"라는 말을 저에게서 처음듣는 말이라는 ..오해를 푸시길 바랍니다..또한 성서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신약성서"가 지시하는대로 따른다는 말도 제가 사용하는 말과 같음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날의 신학교를 졸업했다고 목사가 되어 교회(?)를 좌지우지하는 대부분의 교회라는 것들과 얼마나 다른지요.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고 그분의 영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고 이끌려지는 소수의 무리들은 항상 그분에 의해 보존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돌이켜서 오직 주께 의지함으로 그분의 친히 이끄시는 무리들에 속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모든 성도들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첫 걸음은 ..가정교회입니다..평신도교회만이 대안은 아닙니다..지금 한국에는 이름뿐인 평신도 교회.. 무뉘만 평신도교회인 곳들도 많이 있습니다.<평신도교회를 이끄는 사람들이 로마카토릭의 교리들과 칼빈의교리들을 ..신앙의 중심으로 하거나... 여러 신학자들의 교리들을 믹스하여 중간형태로 가는 곳들도 있습니다...사람이 만든 모든 교리들을 다 버리고 오직 신약성서가 지시하는대로 가야함에도 말입니다.>
제가 아는 평신도교회(편의상 신학을 하지 않은 형제가 모임을 이끌고 매주 성찬을 하고 침례를 하고 등등....)들이 꽤 있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진리(내가 사(행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를 통해 행하시는(살아내시) 적이지 않고 스스로들이 무언가를 할 수 있고 해야한다는 것들을 강조하는 형편들입니다.
그렇습니다..일부 평신도 교회들을 보면 ...기존의 교리들은 그대로 안고 있으면서 ...목사제도만 개혁하자고 하는 형편들입니다..
순례자님과 김폴님께서, 교파를 떠난 어떤 모임`들의 문제점을 잘 지적해주셨습니다. 필히!! 해결해야할 난제이지요...그래도, 교파교회`보다는 나은 형편입니다...
순례자님이 잘 보셨나 싶습니다.
윗글은 제가 속한 형제교회에 관해서 적은 글입니다..결코 성도를 성직자와 평신도로 나누는 평신도교회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아마도 이글을 적으신 형제님께서는 최승호형제의 평신도 교회와 공감이 되기에 평신도(?)교회라고 적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선은 평신도라는 용어를 쓸쑤밖에 없을것 입니다....이해의 효율성을 위해서 말입니다
아직도 율법과 십자가의 도가 무언지..... 주일성수가 무엇이 잘못되어는지....그러한 기초적인 진리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그들에게 성도라는 의미속에 감추어진 의미를 알수가 없을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사실 용어부터 바르게 사용이 되어야 겟지요...평신도라는 말이 성경에 없는 말이고 성도를 구분짖는 용어이기 때문입니다.평신도라고 하면 반대되는 단어로 성직자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서랍님의 말처럼 보편화가 되어서 이해를 돕기 위해 평신도(?)란 용어를 사용했겠지요...
맞습니다. 평신도라는 말이 비성경적 단어이지만, 편의상 사용한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또 한가지 ....애초부터 침례교나 형제교회에서 구원받고 자라나신분들은 잘 모르시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기성교단들 에서 나오는 기독교 역사의 자료는 ....다 캐톨릭의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한 변게된 역사들만을 접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즉 ....기성교단의 사람들은 ...개신교가 카톨릭에서 갈라지어 나왔다...그런한 자료와 가르침에서 자라온 사람들입니다
저도 맨처음 어떤 침례교인들을 만나서 ....종교개혁의 루터를 무시한는 말투에 무지 기분이 나빴던적이 기억합니다...더욱더 기분이 않좋았던것은 형식화된 구원간증에 틀에 벗어나며는 ...구원을 못받은것으로 간주하는 자세들이나 ...무조건 감리교인들이나 장로교인들은 구원을 못받은것으로 간주하는 틀에잡힌 자세들 이었습니다
형제교인들이나 침례교인들도 ...진리를 접근하는 방식에서 ...어떠한 교만한 자세들은 버리어야 할것입니다...효과적인 전도를 위해서 말입니다......아이고 말이 다른데로 세었네요^^::
저는 어떤 성경을 잘아시는 장로님의 성경가르침을 통하여 전박적인 ...전체의 숲에 관한 성경지식과 ...십일조 목사들 교회의 관한 잘못된 성경의 가르침에서는 이미 벗어나 있었으나.....저역시 ...그리고 그 장로님 역시 기독교 역사를 가르칠때는 ....개신교가 종교개혁이후.... 캐톨릭에서 ..갈라지어 나온것으로 기독교의 역사를 가르칩니다....그당시야 예날이니 ...기독교 역사는 성경에서가 아니라 시중에 나온 자료들로서 충당하니 ...그 장로님도 그렇게 밖에 생각하실수 밖에 없었을것 입니다....그당시는 인터넷도 없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마는 침례교인들의 그러한 좋지 않은 반감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지식에서 ...옳바른 기독교의 역사릉 찾아보기 시작한 원인중에 하나는 제가 늘 갖고 있었던 ...의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의문은 ....................그러며는 예수님 돌아가시고 .....카톨릭하에 있었던 1000년동안은 그러며는 복음의 정지 상태가 아닌가 .......그러며는 그동안은 하나님은 무었을 하셨단 말인가 ......그렇다며는 하나님의 공의의 하나님이 아니지 않는가라는..... 풀리지 않는 ...질문들 이었습니다
아이고 ~ 괜히 댓글 시작해서 ...길어지네요^^::
그만 줄이고 결론으로 가야 할것 같습니다~~~~!...........그래서 작은나라님께 한가지 건의 드리는것은 ....지금 돌아다닌는 즉 ....일반신도들이 접하는 기독교의 역사들은 .....캐톨릭의 영향하에 ...쓰여진 기독교 역사가 대부분입니다............................그러니 .....그러니 옳바른 기독교의 역사에 대한 인식의 글들을 시간나시며는 올리시고 ........아니라며는 그러한 ....책을 알고 계시며는 이곳에 소개를 부탁 드린다는 것입니다....끝!! ..죄송합니다..쓸데없이 길어져서
서랍님의 말에 공감을 합니다..자신이 속한 교회만이 옳다는 것은 교만이라 여깁니다..다른 모습의 교회 역시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이기에 서로가 협력하고 인정해서 주님을 드러내야 되는 것이라 여깁니다...교회를 선택하는것 역시 각자가 성경에서 조명을 받을때에 자연스레 찾게되리라 여깁니다..20년전만 하더라도 구원을 말하면 이단이라 치부했으나 이제는 구원의 복음이 비밀이 아니기에 모든 교파를 막론하고 전해지고 있습니다..그러나 교회는 감추워진 비밀이기에 찾는 자에게는 찾게되리라 여깁니다..
형제교회에게만 구원의 복음이 전해졌다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것입니다..다른 많은 교단의 목사님들과 전도자들에 의해서 구원의 복음이 전해졌기에 은혜가운데 은혜라고 여깁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예배를 받으때에 카톨릭의 유전대로 드려지는 예배의 형식일지라도 마음의 중심을보시는 분이시기에 예배를 받으신는 분이라 여깁니다.. 더 나아가서 신약성경에서 보여준 교회의 모습과 예배에 관한 말씀을 깨닫게 될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리라 여깁니다..
작은 나라님의 의견에 거의 동의가 되지만~"다른 모습의 교회 역시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이기에~"--> 이점은 동의가 안되는 군요? 주님이 세우신 교회도 아니고, 다만 허용된 종교들일 겝니다. 장사치들의 종교말입니다. 교회란 그리스도의 영으로 맷어진 무리들일겁니다. 표현의 미쓰이던지~, 아니면 공격이 두려워서 좀 미화한 내용으로 봅니다. 그리고 서랍님의 "개신교"는 잘못된 용어지요? 허긴 제도권의 그들은 개신교란 말이 합당할 것입니다. 참된 교회 즉 예수님 당시로 부터 주~욱 이어져 온 교회는 늘상 그대로 존속되어 왔지요? 루터로 나온게 아니고 말입니다. 루터는 잃었다가는 조금 찾은 영혼일 뿐입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교회의 모습을 볼때에 당시의 교회이지만 역사적으로 진행되어진 교회의 모습이며 현재 많은 교회가운데에 이루어져 있는 교회이며 우리 모두가 일곱교회중에 한 교회에 속해있기 때문입니다...
일곱교회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교회가 어떠한 교회인가를 알고 그대로 순종하며 이루워가야 된다고 여깁니다..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교회가 어떠한 모습인지를 밝혀 주셨으며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될때에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며 이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함을 알 수 있을것입니다
요한계시록2장부터 3장에 걸쳐서 일곱교회의 모습을 보게될 때에 하나님으로 부터 책망받는 교회와 칭찬받는 교회의 모습이 어떠한 교회인가를 알게되면 결코 책망받는 교회에 있지는 못할것입니다...하나님을 부르나 하나님이 없는곳...촛대가 옮겨간곳...여자 이사벨을 용납해서 음행을 저지르는 교회는 행위대로 갚아주신다고 했으며 .살았으나 죽은자라고 하셨으며,,,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며 칭찬하는 교회도 있으며 토해 내치겠다는 교회도 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알고있어야할 좋은 자료입니다....제 견해로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교회사``안에, 카톨릭`과 교파개신교`는 그 이름자체가 등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떤 집단으로서의 교회``가 아니니까요.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