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지혜-2
어머님께서는 내가 기본 훈련 6주를 막음 하는 날 면회를 오셨는데 수백명중에서도 오로지 혼자서 밥을 휴대하신 분이셨던 것은 위병소에서는 혹시 맛이 간 밥을 먹으면 복통이 일어난다고 금지를 당하게 되니 아기를가진것처럼 위장을 하고 면회장으로 들어오신 것이다.
닭고기와 먹는 데 2시간이 걸린 것은 급히 먹으면 체한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너무 많이 집어넣어서 목구멍까지 꽉 찼는데 조금만 움직여도 입속으로 도로 넘어올 지경이었는데 평지에 않는것 보다는 계단에 않는 것이 부담이 더 적었다.
내가 양부모님을 초청하여 영주권을 만들어 드렸는데 정부에서는 의료비는 무료이지만 푸드 쿠폰을 주랴고 물어 왔지만 내가 거절을 했는데 미국에 오신 후 세금을 한 번도 내신 적이 없으니 명분이 없어서 내가 거절을 했으며 두 분이 몇 년을 사시다가 귀국 하셨다.
그 당시 내가 아버님께 하얀 회중시계(pocket watch)를 사드렸는데 한국 방문 때 보니 노란 색 시계이었는데 더 이상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버님께서 작고하신 후 내가 다시 방문을 했을 적에 어머님께서 내게다가 그 회중시게를 주셨다.
그다음 방문 때 들려주신 이야기는 아버님께서 금으로 된 손목시계가 있었지만 나를 주시지 않았던 것은
만약 내가 손목에다가 휴대를 하고 워싱턴시를 거닐 적에 혹시 흑인이 나의 뒤통수를 치고 탈취를 당할 수가 있다는 생각에서 이셨단다.(지혜로움)
집념도 강하셔서 학원에가셔서 배우신 솜씨로 '전국 시조창 가창대회'에 출전을 하셔서 상장 6장을 받으셨는데 유품으로 내가 보관을 하고 있다.
한국전쟁 때 안양에서 피난을 오신분의 금색의 월쌈(Waltham)시계를 사셨는데 금시계인줄이로 사셨지만 몇 년이 지나서 황금코팅이 벗어지니 브론즈시계로 변했다.
문자판은 스레믹이다.
뚜껑을 열어도 기어들은 보이지않고 천진만 보이는데 김천의 삼성당 시계점 주인은
'팽이시계라 부른다'고 하셨다.
이 시계점에 나의 초등학교동기생 김D춘을 아버님께서 취직을 시켜주었는데 나중에는 시게점 주인이 되었고 우리집의 자명종시계를 위탁판매로 그당시의 가격인 3천원에 팔아주었다.
집념이 강하신 것으로 아버님께서는 흰색 싱글에 백구두를 착용하셨는데 바닥까지 백색인 구두는 아예 만들지를 않았단다.
브론즈 시계때문에 서운해 하시다가 나중에는 금줄에 매인 금시계를 사신 것 같다.
외손녀가 인터넷에 알아보니 싯가가 6천 달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