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黃眞伊]
조선시대의 시인 ·명기(名妓).
일명 진랑(眞娘). 기명(妓名) 명월(明月). 개성(開城) 출생.
중종 때 진사(進士)의 서녀(庶女)로 태어났으나,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고 시(詩) · 서(書) · 음률(音律)에 뛰어났으며,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하였다.
15세 무렵에 동네 총각이
자기를 연모하다가 상사병(相思病)으로 죽자
기계(妓界)에 투신, 문인(文人) · 석유(碩儒)들과 교유하며
탁월한 시재(詩才)와 용모로 그들을 매혹시켰다.
당시 10년 동안 수도(修道)에 정진하여 생불(生佛)이라 불리던 천마산(天馬山) 지족암(知足庵)의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유혹하여 파계(破戒)시켰고, 당대의 대학자 서경덕(徐敬德)을 유혹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뒤, 사제관계(師弟關係)를 맺었다.
당대의 일류 명사들과 정을 나누고 벽계수(碧溪守)와 깊은 애정을 나누며 난숙한 시작(詩作)을 통하여 독특한 애정관(愛情觀)을 표현했다.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에 내어’ 는 그의 가장 대표적 시조이다.
서경덕 · 박연폭포(朴淵瀑布)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렸다. 작품으로 《만월대 회고시(滿月臺懷古詩)》《박연폭포시(朴淵瀑布詩)》《봉별소양곡시(奉別蘇陽谷詩)》《영초월시(井初月詩)》 등이 있다.
1.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버혀 내어
춘풍(春風)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조선 선조 때의 개성 기생 황진이의 작품이다.
현대어법에 따라 개작해 보면 다음과 같다.
동짓달 긴긴 밤을 한 허리 베어 내어
춘풍 부는 날 이불 속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정든 임 오신 밤이면 굽이굽이 펴리라
2.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님을 언제 소겻관대
월침 삼경(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업네
추풍에 지는 닙소릐야 낸들 어이 하리오
이 시조는 황진이의 작이다.
뜻 풀이 삼아 다음과 같이 고쳐보았다.
원전에 누가 될 것을 저어하면서....
내 언제 믿음 없어 임을 언제 속였기에
달 기우는 삼경에도 오시는 소리 전혀 없네
추풍에 지는 잎소리니 낸들 어찌하랴
3.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 아니로다
주야(晝夜)에 흐르니 옛 물이 이실소냐
인걸도 물과 같아야 가고 아니 오노매라
황진이는 기생이었지만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였던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을 화담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 삼절(松都三絶)의 하나라고 말했다.
황진이는 학문이 경지에 올랐다는 서경덕일지라도 송도 제일의 기생인 자신의 유혹의 치맛자락에는 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황진이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서경덕을 유혹하였으나 그의 마음을 흔들지는 못하였다.
그리하여 황진이는 서경덕을 유일한 존경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사제(師弟)의 의(誼)를 맺기를 청하였다. 이에 서경덕이 허락하였다고 한다.
이로 보아 서경덕의 인품이 어떠했는지 알 만하고, 일개 기생을 덕망 높은 유학자가 제자로 받아들였으니 서경덕이 도량 넓은 학자였음도 알 수 있다. 또한 서경덕이 인정하여 제자로 받아들인 황진이도 그저 미모만으로 개성 제일의 기생이 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시조는 그의 스승이었던 서경덕의 죽음을 애도하여 지은 것이라 한다. 인생은 흐르는 물과 같이 순간을 머므르다 가는 것이니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노래하고 있다. 그것이 서경덕과 같은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마찬가지이다.
물이 인생 또는 인간을 비유한 것이라면,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자연을 비유한 것이리라.
유구한 자연과 유한한 인생을 대조 시켜 인생무상을 말하고 있다.
뜻을 알기 쉽게 풀어 개작하면 다음과 같다.
산은 옛날 산이나 물은 옛날 물이 아니구나
밤낮으로 흐르니 옛날 물이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아서 가면 아니 오는 것을
4. 청산리(靑山裡) 벽계수(碧溪水)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도라오기 어려오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수여간들 엇더리
이 시조에 얽힌 것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송도의 황진이에 대한 명성은 전국에 자자했었다. 이 때, 왕가 종실(宗室)에 벽계수(碧溪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자기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황진이를 만나 그녀가 아무리 유혹해도 그것에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늘 큰 소리를 쳤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황진이는 그를 유혹해보기로 하였다. 마침 벽계수가 송도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을 시켜 그를 달 밝은 가을밤에 개성 만월대(滿月臺)로 오게 하였다.
그리고 황진이는 곱게 단장한 후, 낭랑한 목소리로 이 시조를 지어 읊으며 그를 유혹하였다. 이 노래를 듣던 벽계수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이에 도취되어 그만 타고 온 나귀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쳤다나 어쩠다나.....
하여튼 이 일로 벽계수는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이 시조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은 표현법은,
위의 이야기로 볼 때 중의법을 적절하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벽계수' 를 글자 그대로 청산 속의 '푸른 시냇물' 이라는 뜻으로, '명월' 을 '밝은 달' 로 해석해도 자연스러운 문맥이다. 하지만, '벽계수' 를 왕실 친족인 이은원의 호로 보고, '명월(明月)' 은 황진이의 기명이었으니 황진이 자신으로 보아도 글의 흐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벽계수에게 자신과 이 달 밝은 밤의 빈 산에서 어우러져 놀아보자는 유혹의 뜻이 충분히 전달되는 것이다. 한 단어를 이용하여 두 가지 흐름을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청산(靑山)' 은 영원히 변함이 없이 그 자리에 있는 자연을 나타낸 것이라면, '벽계수' 는 순식간에 스쳐 가는 인생을 비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시내는 그대로이나 시냇물은 늘 새로운 물에 밀려 사라지는 것이니 말이다.
결국,
무한한 자연에 비하여 인생은 얼마나 덧없는가,
그럴 진대 풍류로 허망함을 달래보자고 노래한 것이다.
한편 '청산(靑山)', '벽계수(碧溪水)', '명월(明月)', '공산(空山)' 이 어울려 이루는 풍류의 분위기를 유혹의 세계로 발전시켜 놓았다. 애원이나 노골적이거나 음탕한 성적 도발로서가 아니라 멋으로 남성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니, 황진이가 왜 그리도 유명한 기생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한다.
5. 청산(靑山)은 내 뜻이오 녹수(綠水)는 님의 정(情)이
녹수(綠水) 흘러간들 청산(靑山)이야 변할손가
녹수(綠水)도 청산(靑山)을 못니져 우러예어 가는고
이 시조는 자연 현상에 기대어 사람의 마음을 적절하게 표현한 황진이의 작품이다. 비록 흐르는 물이 잠시 계곡에 머물다 사라지는 것처럼 자신을 하룻밤의 사랑으로 생각하며 임은 스쳐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임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임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청산처럼 변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을 떠난 임도 아마 자신을 잊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원작에 누가 될 것을 염려하면서도 현대어로 개작을 해본다.
청산은 나의 뜻이요 녹수는 임의 사랑
녹수가 흘러가도 청산은 변치 않네
녹수도 청산을 못잊어 저리 울며 가는가
결국 나에 대한 임의 사랑이 설령 바뀌었다 하더라도 임에 대한 나의 마음은 영원함을 노래하고 있다. '청산'이 넘치는 애정과 정열에 불타는 내 마음이라면, 그 밑으로 푸르름을 머금고 흐르는 '녹수'는 임이 나에게 속삭여주던 정이라 할 수 있다.
청산은 녹수가 영원히 자신의 품안에 있기를 원하지만, 녹수는 더 좋은 경치를 향해 떠나간다. 그러나 흘러간 녹수야 지금 있건 없건, 임을 향한 청산의 마음이야 변할 까닭이 있겠는가? 그리고 저리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아 녹수도 청산을 잊지 못해 눈물을 뿌리고 있는 것이리라.
[출처] 황진이 [黃眞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