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8월 4일(이하 한국시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벌어진 제23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에서 미국을 7-0으로
꺾고 통산 5번째 정상에 올랐다. 청소년대표팀은 2년 전 우승 멤버보다 전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상대팀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투타의 집중력을 앞세워 2회 연속 우승에 성공했다.
덕수고 3학년 성영훈(18)은 이번 대회 4경기에 등판해 3승을 올리며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성영훈의 인터뷰 내용을 일기
형식으로 정리했다.
7월 23일
드디어 출국이다. 지난해 타이중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등 해외는 몇 번 나가 봐 설레거나 흥분되지는
않는다. 정윤진(덕수고) 감독님이 코치로 동행한다.
그렇지만 세계 대회에 나가는 국가대표라 무게감이 느껴진다. 합숙기간 동료들과 부담감 없이 열심히 하자는 얘기를 나눴다.
일주일 동안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다만 덕수고와 연습경기에서 포수 (김)재민(17,경남고)이가 슬라이딩을 하다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다쳐 걱정이다. (김)재윤(18,휘문고)이가 계속 마스크를 써야 할 형편이다.
(오)지환(18,경기고)이가 주장답게 분위기를 좋게 하려고 노력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는 좋은 녀석이다.
7월 26일
숙소인 앨버타대 기숙사는 괜찮은 편이다. 1인1실인 데다 방에 샤워 시설과 화장실이 갖춰져 있다. 들어 보니 쿠바,
대만대표팀이 머무는 숙소보다 훨씬 낫다고 한다.
그런데 (정)성철(18,광주일고)이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은 듯하다. 한국에선 괜찮았는데 오랜 비행 때문인지 힘들어 보인다.
이번 대회에 일본이 나오지 않아 아쉽다. 고시엔 대회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은 한국보다 섬세한 야구를 한다는데 꼭 한 번 보고 싶다. 나중에 일본에 진출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후지카와 규지
(한신 타이거스)를 좋아해 일본 선수들과 대결해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7월 27일
예선 첫 상대는 멕시코다. 초반에 쉽게 점수가 나 경기가 잘 풀릴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경기 전 분석에서
멕시코 선수들이 변화구에 약하다고 해 성철이는 변화구 위주로 던졌다.
그러나 멕시코 선수들이 변화구에 조금씩 적응했다. 성철이는 변화구를 많이 던져 직구 릴리스 포인트를 잃었다.
결국 지환이가 마운드에 올랐다. 지환이도 변화구 위주로 던졌지만 멕시코 선수들은 속지 않았다.
2-2로 맞선 5회말 1사 만루에서 루이스 후아레스에게 2타점 적시타를 내줘 역전 당했다. 강길용(경기고 감독) 코치가
나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지환이가 2-4로 뒤진 7회초 1사 만루에서 싹쓸이 2루타를 쳐 역전했다.
뒤지고 있다 역전해 분위기가 곧바로 좋아졌다. 9회 마운드에 올라 네 타자를 상대해 삼진 3개를 잡고 경기를 마무리했다.
점수는 11-4였지만 힘겨운 승리였다.
7월 28일
호주전에 등판해 8⅓이닝을 던져 안타 6개를 맞고 삼진 14개를 잡으며 승리투수가 됐다. 호주가 강팀이라는 전력 분석
결과가 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변화구에 약했다. 변화구 위주로 상대하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사고가 일어날 뻔했다. 5회 초 선두타자가 포수의 타격방해로 출루했는데 다음 타자 얼굴을 맞춰 호주 선수들이
흥분했다.
병살타를 이끌어내려고 몸 쪽으로 던진 게 빠졌는데 오해한 것 같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고 적시타를 맞아 한 점을
줬지만 큰 어려움 없이 막았다. 6-1로 쉽게 이겼다.
7월 31일
29일과 30일 3, 4차전 상대 네덜란드와 러시아는 전력이 약했다. 각각 12-3, 17-1로 이겨 8강 진출은 이미 확정돼 있었다.
러시아는 7회 콜드게임승이었다. 이번 대회 우승후보라는 미국이 예선 마지막 상대였다.
선발 투수는 (장)영석(18,부천고)이었다. 미국 타자들은 역시 강했지만 영석이도 잘 던졌다. 7회초를 앞두고 3-2로 앞서
있었다.
영석이는 선두 타자 오스틴 매덕스에 우익수 옆 2루타를 맞고 몸에 맞는 공 두 개를 내줘 1사 만루 위기를 맞았다.
구원 등판한 (허)준혁(18,휘문고)이가 2사 만루에서 적시타를 맞아 3-4로 역전 당하고 말았다.
미국 에이스 제이크 바레트를 상대로 8회 2사 1, 2루와 9회 2사 2, 3루의 기회를 잡았지만 역전에 실패했다.
미국 타자들은 상, 하위 타선 모두 힘이 좋았다. 직구에는 방망이가 바로 나왔다. 그러나 변화구엔 약했다.
다음에 만나면 어떻게 던져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8월 2일
충분히 쉬었지만 몸이 별로 좋지 않았다. 미국전을 마치고 단체 사진을 찍을 일이 있었는데 점퍼를 벗었다 입었다
했더니 감기 기운이 있었다.
함상규 트레이너가 주선해 한 교민 분의 도움으로 사우나를 해 조금 나아졌지만 그래도 구속이 영 안 나왔다.
허벅지도 안 좋았다.
나중에 병원에 가니 내전근이 조금 찢어졌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예선전 때 최고 시속 149km까지 나왔는데 대만과
8강전에선 시속 142km 정도였다. 그래도 던져야 했다. (김)광현이 형처럼 에이스답고 싶었다.
2학년 때인 지난해 아시아선수권대회 때 본 광현이 형은 책임감이 강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안 던지는 선수가 아니었다.
그때 나는 2학년이라 2경기에 나가 2이닝을 던진 게 전부였지만 선배들에게 배운 게 많았다.
나도 책임감을 갖고 던지기로 했다. 난 선발로 나가 완투를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있는 힘을 다해 던지고 몸이 좋으면 좀 더 던지는 식이다. 대만전 피칭도 그랬다. 2회초 선취점을 내줬지만 야수들이
3회 말 공격에서 2점을 내 역전했다.
4회초 볼넷 2개와 야수선택으로 1사 만루에 몰린 뒤 3실점했지만 5회말 (안)치홍(18,서울고)이의 적시타, 영석이의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4-4 동점을 만들었다.
6회말에는 1사 2루에서 재윤이가 적시타를 쳐 역전에 성공했다. 그때부터는 내가 힘을 내야 했다. 다행히 6회부터 9회까지
한 명의 주자도 내보내지 않아 승리를 지켰다. 야수들이 도와 준 덕에 5-4 승리 투수가 됐다.
8월 4일
드디어 결승이다. 전날 쿠바와 4강전은 예상 외로 쉬웠다. (박)민규(18,경남고)의 커브가 기가 막히게 들어갔기 때문이다.
민규는 삼진을 12개나 잡았다. 쿠바 선수들은 힘이 좋아 보였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그러나 어려서 그런지 변화구 대처 능력이 부족했다. 타자들의 도움도 컸다. 이번 대회 내내 타자들은 모두 좋은 타격감을
유지했다. 예선리그 미국전에서 3점을 뽑은 게 가장 적은 득점이었다.
동료들이 힘을 내니 나도 결승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몸은 좋지 않았지만 이종운(경남고) 감독에게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감독은 내게 “몸이 안 좋은데 괜찮겠냐. 나간다면 선발이나 중간 어느 쪽이 편하겠냐”고 물었다.
나는 “감독님, 선발로 딱 3이닝만 전력으로 던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결승전이 시작됐다. 대회가 진행될수록 응원하러 오시는 교민들이 점차 많아졌다. 한국에서처럼 마음이 편했다.
미국 타자들의 약점은 이미 파악돼 있었다.
이번 대회 내내 강태원(KIA 스카우트) 전력분석요원이 주신 자료가 유용했다. 미국 타자들을 한 번 봤기 때문에 자신감도
있었다.
경기 초반부터 (김)상수(18,경북고)와 (정)수빈(18,유신고)이가 안타를 치며 빠른 발로 내야를 흔들며 2회와 3회에 점수를
냈다.
공은 평소보다 좋지 않았지만 직구를 노리는 미국 타자들의 허를 찔러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던졌다.
이번 대회에서 직구와 변화구의 비율은 7대3 정도였지만 이날은 슬라이더를 많이 던졌다. 미국 타자들은 역시 변화구에
약했다.
“1이닝만 더 던지자”는 마음으로 던지다 보니 경기는 어느새 9회였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 나니 우승의 기쁨보다는
후련한 마음이 컸다.
사실 통증이 있어 진통제도 먹었다. 어머니에게 말씀 드렸더니 마음이 불편하신 듯 했다. 그래도 내 할 일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나는 책임감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앞으로 프로에서도 어디서 어떤 임무를 맡든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년 신인왕 성영훈...
신인왕 고고고 가는거야...
원년베어스맨 주니...
첫댓글 아 이거 스포츠 2.0 잡지에서 봤습니당.^^ 다시봐도 감동.^^
성영훈 화이팅...
느낌이 .. 내년에 몬스터(?)시즌으로 기록될 것 같은 .. ^^
성영훈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