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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순복음전주성령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임성재목사
4월12일 주일 낮 (요삼1:2~4)
진리 안에 살자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은 훌륭한 부모 안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삶이 평안합니다. 권력이 있고. 재산이 많고, 지식이 출중하고, 미모와 풍채가 으뜸인 부모 안에서 살면 무슨 걱정거리가 있겠습니까?
부모의 그 후덕을 배경으로 쉽게 가치가 상승되고, 많은걸 거느리고 지시하며 특권을 누리고 살 수 있으니 기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훌륭한 부모 안에서 사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가장 부러움의 대상이 됩니다.
다음은 사람들은 보편적 좋은 환경 안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보다 넓고 보다 쾌적하고, 안락한 환경을 가진 주거지에 전원주택을 짓고 살기를 원합니다.
그보다 특별한 지배층의 사람들은 그런 아름답고 쾌적한 장소에 별장을 짓고 사는 것을 꿈꿉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사람이 수준 높고 가치 있는 사람처럼 보여 집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세계에 탑 스타들의 삶은 그야 말고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호화문화를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
세상을 스타숭배의 세상으로 전락했다고 본다면 틀린 말일까?
이렇게 잘난 부모, 최고의 환경, 가장 잘나가는 스타의식을 자기 삶의 본질로 착각하고 살고 있는 그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것이 그 사람의 진리가 되어 그 사람을 어디로든 이끌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잘나가는 부모가 없는 사람은 늘 부모가 원망스러울 것입니다.
최고의 환경이 자기 환경이 아니면 이 사람도 항상 괴로울 것입니다.
그 환경을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총 동원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때로는 불법을 때로는 밤을 지새우며 고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삶이 평안하지 못합니다.
스타가 되는 것이 그리 쉽습니까?
스타가 되기 위해 가진 수모, 가진 고난과 고통을 이겨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삶을 만족이라는 그림으로 그려내기 위해서, 만주의 주되시며 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은혜로 여기시는 참 가치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려낸 그림에는 모두가 (虛構)허구에 찬 허무한 그림들뿐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삶을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내기 위해 어제도 오늘도 또 알 수 없는 내일도 그토록 당당하고 확신 있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그 그림이 다 그려져서 더 이상 그릴 수 없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날에 자신이 보기에도 또는 가족 친구 이웃과 사회가 볼 때 정말 완벽하게 잘 그렸구나, 정말 흠잡을 때가 없구나, 할 정도로 잘 그려졌길 바랄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과 모든 이에게 가장 좋은 가치를 남겨 놓을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 중심으로 우리의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가는데 순차 적으로 어떻게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 한 것인가?
진리 되시는 하나님께서 감동으로 주신 말씀, 곳 진리의 말씀을 중심으로 듣고, 깊이 생각하고, 묵상함으로 진리 되시는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순복음 전주 성령교회 안에 충만하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진리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진리가 없는 곳에서, 또는 진리를 배척하는 곳에서, 또는 진리가 말살된 곳에서 사는 사람은 최고의 불행과 함께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금도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으면서 해매고 있습니다.
진리를 사전적으로 정의하면 이렇습니다.
참된 이치. 또는 우주의 근원적 원리. 그 어떤 지식과 과학과 논리로 결정해도 같은 답으로 정의 할 수밖에 없는 그것이 바로 진리, 라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주의 근원적 원리나 이치들입니다.
계절에 따라 나타나는 자연현상,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우주에 나타나는 법칙적 현상들 등을 진리다, 라고 합니다.
그럼 하나님은 진리를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이 진리다, 라고 선포하셨고 지금도 성령님을 통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진리이신 줄 믿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진리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이 세분하나님이 진리 이십니다. 진리는 변함없는 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인간 역사를 보더라도 진리를 외면하거나, 진리를 거스르는 세대는 결코 축복의 시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 시대에도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지 않은 아담과 하와는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최고의 비운을 맞게 됩니다.
그 후에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어긋나는 삶을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세상을 말살시키지 않으시고 항상 선지자들을 세워서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도록 하셨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예로 창11장에 바벨탑 사건이 진리를 거스른 대가가 어떤 것인가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가 진리가 되기를 바라는 본능적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이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음을 아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바벨탑을 쌓는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궁리 끝에 내린 결론은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 었습니다.
창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진리 되시는 하나님 이름을 자기들 이름으로 덮어 하나님은 감추고 자기들이 나타나 온 세상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의 탑 그것이 바로 바벨탑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진리 곳 하나님 이름을 인간에게 통으로 넘겨주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인간이 진리가 된다면 그 결과로 나타나게 될 현상에 대하여는 하나님이 아니시라, 우리가 생각해도 끔찍하고 피비린내 나는 현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원래 인간은 진리가 돼서는 안됩니다.
진리이신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정말 바람직한 것임을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어린 아이가 바닷가에 놀러가서 부모의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 미아가 될 뿐 아니라 얼마나 큰 위험에 노줄 되는지 자신은 모르지만 부모는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부모는 자녀를 지키기에 급급하여 자신을 위하여 즐기는 시간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시간을 별도로 홀로 즐기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자칫 하는 순간 인간들은 자기 탑을 쌓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별로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요즘 젊은 층의 세대나 어린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듯이 이 땅의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부모가 자기 집에 찾아오는 것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요즘 인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가슴을 뚫고 들어오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자기에게 들어오면 세상의 오락 쾌락 향락 등을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문화의 모든 것은 일시적으로 기쁨을 주는 마약과 같은 것들로 가득한 세대입니다.
이런 세대를 살고 있는 우리와 또 우리 자녀들과 후손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진리, 진리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진리라는 사실을 놓쳐서는 않됩니다.
세상 사탄은 끊임없이 세상이 진리라고 속삭입니다.
눈을 감으나 눈을 뜨나, 앉으나 서나, 생각하면 생각할 때마다 세상은 쉼 없이 생각을 타고 속삭입니다. 세상이 진리라고 말입니다.
세상이 진리가 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우리 양심도 알고 우리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영혼의 굶주림으로 허기진 우리에게 와서, 여기에 너희가 그토록 찾고 있는 빵과 생수가 있다고 속삭이는 것이 바로 세상에서 유혹하는 사탄의 간계입니다.
이 사탄의 말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비유적으로 하신 것이 바로 좁은 문 비유입니다.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세상은 감각적인 곳이며 육신의 본능에 충실히 맞추어진 곳입니다.
그러나 진리 되시는 하나님의 처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곳이며, 영으로만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곳이며, 감각으로 느낄 수 없는 곳이기에 진리의 문인 좁은 문은 찾는 이가 적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듣고 깨달았다면 넓고 큰 세상 문을 선택할 것이 아니고 오직 진리 되신 하나님의 문, 곧 좁은 문을 선택하여 그 길에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며 삶의 현장에서 최고의 가치와 자랑거리와 아름다움을 멋진 화폭에 담아 그려내는 승리의 그리스도인이 모두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은: 오직 진리이신 하나님과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같이 동행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할 수 있는 방법은 유일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는 길이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기록해서 우리가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해 놓으셨습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에서 하는 말씀인가?
우리가 쉽게 생각하기를 어디를 가기 위해서 또는 어디를 통과하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티켓인데 하나님께 가려면 예수님께 이 티켓을 받아야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이따금씩 있기도 합니다.
이 분의 믿음은 그야 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최고의 믿음을 가진 분이시든지 아니면 하늘나라에 절대 들어갈 수 없는 하나님의 상식에서 벗어난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분이시든지 둘 중의 한분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늘나라를 맛보며 하늘나라를 누리고 살려면, 티켓을 가지고 가야 하는데 이 티켓은 여행 티켓과는 달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충실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 티켓 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정직하고, 성실하고, 분명하게 믿음으로 티켓에 기록했다 해도,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라 절대 하나님의 공의를 거스름이 있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티켓의 가장 핵심적인 키는 예수님을 닮아 있느냐는 것입니다.
티켓의 기록된 내용을 보니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너무 흡사하게 닮아 있다면 하나님의 칭찬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서 하늘의 음식으로 늘 배부르고 기뻐하고 은혜로 충만하여 기적과 이적 속에서 감사와 찬송으로 세상의 허무들을 짓밟고 넓은 문의 광체도 허탄한 것으로 치부하며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성도들의 본향인 천국의 삶을 미리 앞당겨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큰 비밀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사나 죽으나 항상 천국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요11:25~26에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 화, 되어집니다. 예수님 닮은 사람은 하나님과 항상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특별한 특권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닮아 있으면 됩니다.
그의 외적 사람은 어떠하든지 관계없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비켜 갈 수 없는 진리의 눈에 거스름이 없으시다면 하나님은 기뻐하고 또 기뻐하시며 항상 같이 하시기를 예수님과 함께 하신 것 같이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예수님을 얼마나 닮아 있는가?
깊이깊이 자기의 마음을 더듬고 또 더듬어서 닮지 않은 곳은 벗어내고 씻어 내고 회개하여 예수님 화, 시킴으로 결국 하나님과 항상 함께 하고, 누구도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만 알 수 있는 그 크고 비밀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고 누리는 순복음 전주 성령교회 성도님들 모두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진리로 살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고 말씀을 듣고 믿음에 이르렀으니 성령께서 함께 하고 계신 분이신줄 믿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진리의 자유를 만끽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주... 자유한 곳입니다.
그 어떤 것에 구속되지 않고 오직 자유에 구속되어 자유한 상태가 하나님의 나라의 자유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삶을 다 살고 이 육신의 옷을 벗고 가게 되는 우리들의 본향의 자유는 우리가 논할 것도 없습니다. 왜냐 그곳의 자유는 우리가 상상하고 이 세상에서 누리는 자유로는 비유 할 수 없는 완전한 진리 안으로의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에서의 자유에 목말라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유는 절대적 요구되는 필요한 요소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의 자유는 오직 성령으로만 채울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 하나가지고는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누가 불쾌한 말 한마디 하면 우리 마음은 불쾌해 집니다.
누군가 고통스러운 말을 하면 우리 마음은 고통을 느낍니다.
고통은 어떤 고통이 됬든 자유롭게 하지 않습니다.
자유는 평안입니다. 평화입니다. 기쁨입니다. 감사입니다.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구속은 불편합니다. 고통을 수반합니다. 답답합니다. 슬픕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유하기를 바랍니다.
이 자유를 잘못 이해하고 자유하려다가 오히려 온전히 구속당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물질로부터의 자유를 얻겠다고 부조리에 걸립니다. 그랬다가 목숨까지 빼앗기는 사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유를 잘못 정의한 사람은 오히려 그 자유가 그 사람에게 큰 감옥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자유를 누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의 전으로 살고 있는 우리는 성령 충만하기 위해 수고와 땀을 흘려야 할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그냥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밥을 먹으면 모든 영양소를 통해 건강합니다.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먹었다고 먹지 않으면 결국 배고파 죽는 것과 같이 성령을 받았다고 그냥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성령충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행전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막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기도해야 성령 충만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곳에 예수님이나 성령님께서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아쉽지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올바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막11:17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와계십니다. 이분이 바로 성령님 이십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우리 몸에 이르기를 너희 몸이 성전이라고 고전6:19 에 말씀하십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면 우리 안에는 항상 기도소리가 끊임없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성전이 맞는 것입니다.
기도소리가 끊어지면 강도의 소굴이 됩니다. 저와 여러분의 가슴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아버지에게 항상 하셨던 것과 같이 우리도 끊임없이 기도하는 소리가 들리고 나타나야 할 줄 믿습니다.
그래야 성령 충만의 삶을 유지 할 수 있습니다.
걸으면서 집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그 어디서나 우리 가슴속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예수님이 하셨던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기도를 끊임없이 해야 살아 있고 능력 있고 생명 있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모습에는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전인구원의 축복이
신28:3~6절의 말씀처럼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아멘-
진리 위에 삶의 터전을 삼고 진리의 터 위에 집을 짓고, 진리의 터 위에서 가정과 사업과 인생의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첫댓글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소중한 말씀 감사합니다.
자료 감사합니다.
설교 자료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