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삶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무엇일까? 가장 근원적이면서 희망적인 유일한 단어.. 그것은 사랑일 것이다. 사랑이 주는 행복은 강력하다. 러셀은 그의 자서전 서문에서 단 몇시간 동안의 사랑의 환희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남아 있는 전 생애를 주저 없이 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그것은 사랑이 인간을 엄습하는 죽음같은 외로움을 잊게 해 주기 때문이다.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 돈, 권력이 사랑보다 중요하고 사랑은 그저 저절로 겪게 되는 즐거운 감정정도로 생각하며 세월을 보낸다. 즉 사랑의 본질이나 속성에 대한 깊은 생각 없이 사랑하고 결혼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랑스럽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기와 성적(性的) 매력이 뒤섞여 있다는 뜻이다. 자본주의 문화권에서의 인간의 애정 관계는 상품 및 노동시장을 지배하는 교환형식과 동일하다. 즉 자기 자신의 교환 가치의 한계를 고려하면서 서로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최상의 대상을 찾았다고 느낄 때에만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질 수 있다.또한 열정으로 시작되는 사랑은 반드시 실패로 끝난다. 시간이 갈수록 친밀감과 기적적인 면은 점점 줄어들고 권태 내지 실망감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를 최소화 하려면 사랑에 대한 이해와 실천의 기술이 필요하다.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사랑의 본질과 속성에 대해서 깊이 파헤치고 있어 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사랑의 이론(속성)과 실천 두가지를 다루고 있지만 실천에 대한 부분은 생략한다. 후자의 글은 비교적 원론적이고 추상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
사랑에 대한 이론은 인간 실존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인간에게 분리 경험은 모든 불안의 원천이다. 생명의 짦음,자신의 죽음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자연 및 사회의 힘 앞에서 느끼는 자신의 무력함, 이러한 모든 인식은 인간의 흩어져 있는 실존을 견딜 수 없는 감옥으로 만든다. 인간의 가장 절실한 욕구는 이러한 분리 상태를 극복해서 고독이라는 감옥을 떠나려는 욕구이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시대와 모든 문화는 어떻게 자신의 개체적 생명을 초월해서 합일을 찾아내는가 하는 문제 즉 외부 세계와 어떻게 결합하는가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인간은 모순을 통해서만 실재를 인식할 수 있으며 사고의 세계는 역설에 사로잡혀 있다. 즉 세계를 궁극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고가 아니라 행위, 곧 일체성의 경험에 있다. 신에 대한 사랑도 사고를 통한 신에 대한 지식이거나 사상이 아니라 신과의 일체성을 경험하는 행위이다.
합일의 형태와 대답은 여러가지이다. 우선 원시적 자연 숭배에서와 같은 도취적 집단 행위(성적 난행 의식, 축제)나 알코올이나 마약 중독같은 것이 있다. 그러나 도취적 방법은 일시적이고 주기적이다.관습과 신앙에 바탕을 둔 합일,즉 국가, 교회와 같은 집단과의 합일은 분리 고독 상태를 극복해 줄 수 있다. 현대 사회의 평등 추구와 인간의 표준화 요구는 이러한 합일의 과정이다. 분리 상태에서 생기는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노동과 오락역시 정형화 되고 평균화 된 합일의 일부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은 주로 정신에만 관계되고 육체에는 관계 되지 않으므로 이런한 이유 때문에 도취적인 해결책과 비교하면 결함이 있다. 합일을 이루는 세 번째 방법은 창조적 활동이다.모든 형태의 창조적 작업(예술,직공)에서 일하는 자와 그 대상은 하나가 되고 인간은 창조 과정에서 세계와 결합한다. 그러나 완전한 해답은 대인간적인 결합이다.이는 다른 사람과의 융합의 달성이며 곧 사랑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인간적 융합에 대한 욕망은 가장 기본적인 열정이고 인류를 집단을 ,가족을, 사회를 결합시키는 힘이다. 사랑이 없으면 인간성은 하루도 존재하지 못한다.
*
여성적 극과 남성적 극의 양극이 합일할 때에만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합일을 발견한다. 이러한 양극성응 모든 창조의 기초이다. 남성적 요소와 여성적 요소라는 양극성은 자연에도 존재한다. 지구와 비, 강과 바다, 밤과 낯, 어둠과 빛, 물질과 정신의 양극성이다.이슬람교의 위대한 시인 루미(Rumi)는 다음과 같이 읊었다.
'정녕 사랑하는 자가 정녕 사랑받는 자를 원하는 것은사랑받는 자가 그를 원할 때뿐이다.사랑의 불꽃이 '이' 가슴에서 타오를 때'저' 가슴에도 사랑이 깃들인 줄을 알게 된다.그대의 가슴에서 신에 대한 사랑이 자라날 때 온갖 의심을 넘어서서 신은 그대를 사랑했다.또 한 손이 없으면 한 손으로는 손뼉을 칠 수 없다.거룩한 지혜는 운명이거늘, 이 지혜는 우리들에게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한다.이러한 운명때문에 세계의 각 부분은 짝을 찾아 이룬다.------'
------
*
성숙한 사랑은 각자의 통합성 즉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합일이다. 사랑에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또한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다. 준다고 하는 행위(기쁨, 관심,이해. 지식,유머, 슬픔 등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모든 것)는 나의 활동성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더 즐겁다. 사랑은 타인을 풍요하게 만들고 타인의 생동감을 고양시킨다. 사랑의 능동적 성격에는 준다고 하는 요소 외에도 보호, 책임, 존경,지식(상대방에 대한 침투) 등의 기본적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사랑은 지식에 이르는 단 하나의 길이며 사랑은 합일의 행위를 통해 나의 물음에 대답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타인에 대한 사랑 사이에 분업은 있을 수 없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조건이 된다.사랑만이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한 건전하고 만족스러운 대답이다. 저자의 결론은 사랑은 기술이라는 것이다.그리고 사랑하는 능력과 성숙도(이웃 사랑, 겸손, 용기, 신념, 훈련) 없이는 성공이 불가능하다.
*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지음
첫댓글 현대의 고전이지요. 가장 손쉬운 합일은 적당한 한잔 술일겁니다. 싸고 신속하고 부작용이 적으니.
과음은 狂飮이 될 위험이 있으니, 술이 안맞는 사람에게는 운동이 좋고요.
정파의 경지는 이미 디오니소스의 그것에 도달했구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