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들의 여자 친구와 연적이 된 중년 여성의 심리를, 마치 외과의사가 해부학 실습하듯 섬세하게 파고 들어가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름휴가]는, 스릴러로서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은밀한 삼각관계의 불온함을 매력적으로 살리고 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연출을 보여준 사람은 독일 감독 슈테판 크로머.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중년 여성인 미리암(마티나 게덱 분). 정치학 연구원인 그녀는 자신의 동료이면서 오랫동안 동거하고 있는 앙드레(피터 다보아 분)와 또 사춘기의 아들, 그리고 아들의 연인인 12살 소녀 리비아(스베아 로드 분)와 함께 바닷가로 여름휴가를 온다. 그들의 이웃에는 미국 출신의 빌(로버트 젤리거 분)이라는 남자가 머물고 있다. 아직 어린 남자 친구에 비해 중년의 빌은 세상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다. 나이에 비해 조숙하고 관능적인 아름다운 소녀 리비아는 빌에게 매혹당한다. 영화의 대부분은 빌을 중심으로 그에게 이끌리는 어린 소녀 리비아와 그것을 막으려다가 역시 빌과 관계를 갖는 미리암 이 세 사람의 삼각관계를 중심축으로 전개된다.
칸느 영화제 감독 주간 초청작인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름휴가]는 바닷가 여름 휴양지에 휴가를 보내기 위해 떠난 미리암 가족 등 4명과 이웃집 남자 빌 등 5명의 등장인물만으로 대부분 진행된다. 결혼하지 않고 동거로 가족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미리암 부부와 그들의 아들, 또 아들의 애인인 어린 소녀, 이 네 사람은 외형상 서로의 사적인 부분에 대해 깊은 관여를 하지 않고 동질성을 확보하고 있는 신개념 가족이다. 앙드레는 부인이나 아들의 일상에는 깊게 관여를 하지 않는 개인주의자이며 이웃에 사는 빌은 미리암 가족에게는 이방인이고 아웃사이더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름휴가]는 신개념의 가족이라는 동질집단에 외부의 아웃사이더가 등장해서 집단의 균질성이 파괴되는 것을 다루고 있다.
가족의 균열이 일어나는 것은 미리암의 욕망 때문이다. 아들의 연인인 리비아가 빌에게 끌리는 것을 눈치챈 그녀는, 리비아의 부모를 대신해서 현재는 자신이 보호자라는 것을 내세워 리비아가 빌을 만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빌이 리비아를 유혹해서 육체적 관계를 가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빌을 찾아갔다가 그의 솔직한 모습에 이끌린다. 미국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빌은 조금 우유부단한 남자다. 그는 아버지가 카레이싱 도중 사망하자 어머니의 고향인 독일로 돌아온 것이다. 빌을 만난 미리암의 흔들림부터 영화는 더욱 섬세하게 날을 세운다.
빌을 중심에 두고 중년여성 미리암과 리비아가 대립을 하고 있다. 리비아에게는 빌과 만나지 마라고 요구하면서 미리암 자신은 익숙하게 빌을 유혹해서 섹스를 한다. 리비아와 미리암의 아들은 티격태격 싸우다가 다시 연인 관계를 회복하는 것 같지만, 이제는 빌이 태도를 바꾼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리비아라고 미라암에게 선언하는 것이다. 미리암은 12살의 어린 소녀 리비아에게 질투를 느낀다. 지적 교양을 갖추고 이성적이며 가정적인 미리암의 캐릭터는 빌을 중심으로 리비아와 삼각관계를 형성하면서 극도의 이기적인 모습으로 변해간다. 인간의 이중적 욕망의 실체를 파헤치고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 파멸을 초래하는가를 보여주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름휴가]는 미리암의 내면심리가 어떻게 이동하는가를 살펴보는게 핵심 포인트다.
한 가정의 중심으로서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던 미리암은 빌에 대한 욕망이 불타오르면서 너무나 태연하게 죄책감없이 빌과 섹스를 하고 리비아를 그에게서 떼어 놓으려고 한다. 이제 그들은 두 대의 요트에 나눠 타고 바다를 항해한다. 영화에서 그들이 세일링하는 장면은 스칸디나 반도와 유틀란트 반도로 둘러 쌓인 북유럽의 내해인 발트해. 리비아와 미리암은 함께 배를 탄다. 리비아는 돛에 머리를 부딪쳐 쓰러진다. 그것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고였을까? 머리를 다친 후 곧바로 응급조치를 했다면 리비아는 살 수 있었을까? 리비아의 죽음은 가족의 해체를 가져온다. 앙드레와 아들은 미리암을 보호하기 위해 리비아가 요트에 딸 때의 위치를 거짓 진술한다. 하지만 미리암은 앙드레를 떠나 빌에게 간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름휴가]는 인간 심리의 물결을 세심하게 분석하고 있다. 가장 큰 사건은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리비아의 죽음이다. 그녀의 죽음은 명백한 사고사다. 요트를 타고 항해를 하던 중 돛에 머리를 맞아 쓰러진 그녀를 미리암이 의도적으로 방치했는지, 아니면 그 이전 교묘하게 돛을 조종해서 리비아의 머리를 향해 돛의 방향을 틀었는지, 그건 명백하지 않다. 어쩌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일지도 모른다. 돛이 이동하는 위치로 리비아를 오게 한 후 그녀의 머리가 이동하는 돛에 부딪치게 했을 수도 있다.
미리암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영화는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관객들은 다만 사건의 앞뒤 정황을 생각해서 추측만 할 뿐이다. 리비아의 죽음 이후 미리암 앙드레 커플은 끝내 헤어지고 미리암은 빌과 함께 산다. 영화의 마지막 에필로그는 우리에게 먹먹한 느낌을 전해준다. 뒤늦게 공개되는 리비아의 편지. 리비아의 부모들은 미리암과 빌을 만나서, 사건 직전 리비아가 친구에게 써 보낸 편지를 읽어준다.
올해 서른 여섯 살의 슈테판 크로머 감독은 지난 10년동안 작가 다니엘 노크와 함께 일해 왔다. 연출자와 각본가로 만난 두 사람의 파트너쉽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름휴가]에서 절정을 이룬다. 오직 대사와 상황만으로 등장인물들의 내적 변화를 관객들이 감지하게 하는 뛰어난 영상 표현은 관객들에게 스릴러적 긴장감을 유지시키면서 미적 쾌감을 선사한다. 푸른 바다를 항해하는 하얀 요트가 강렬한 시각적 대비를 이루면서, 연인 사이에 끼어든 낯선 청년 단 세 사람만으로 흥미진진한 스릴러를 만든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초기 흑백 영화 [물 속의 칼]처럼, 바다와 요트를 배경으로 욕망의 삼각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슈테판 크로머 감독은 인위적인 영화음악의 사용을 배제하고 갈대가 바람에 서걱이는 소리나 바닷물을 가르며 요트가 조금씩 전진하는 소리 등 일상의 사실적인 소리에 관객들의 귀가 열리게 함으로써 극도의 리얼리티를 화면에 부여한다. 이야기들은 스릴러적 구조 위에 건축되면서도 멜로와 드라마 등의 탈장르적 혼합구조를 갖추고 있다. 미리암 역의 마티나 게덱은 우리에게는 플로리안 헨켈-도너스 마르크 감독의 [타인의 삶]을 통해 알려진 배우다. 그녀가 연기한 작품으로는 동독 붕괴 직전 비밀경찰의 감시에 시달린 유명 여배우를 연기한 [타인의 삶] 이외에도 로버트 드니로 감독의 [굿 세퍼드]가 있다.
한 소녀의 죽음과 가족의 해체를 비극적으로 다루고 있는 심리 스릴러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름휴가]는 캐릭터의 붕괴를 통해 인간의 무서운 이중적 욕망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