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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꿈꾸어 왔던 백령도행을 드디어 이루어내게 되었다
백령도의 원래 이름은 곡도(鵠島), 따오기(鵠)가 흰 날개를 활짝 펴고 나는 모습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서해 최북단의 섬 백령도는 한국에서는 8번째로 큰 섬이다
섬이지만 농토가 많아 농사가 주업이어서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총 인구 약 1만여 명 중 민간인은 2,530세대 5,000여명, 나머지는 군인과 가족이다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쾌속선을 타고 뱃길로 123마일을 달리면 4시간 만에 백령도에 도착한다
인천연안여객선터미널
전주에서 새벽 3시 반에 출발하여 인천항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아직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지만 연3일 연휴를 맞이하여 터미널은 매우 붐비고 있었다
아침밥은 김밥 한줄로 때웠지만 설레임으로 가득찬 우리들은 마냥 행복하였다
하모니플라워호에 승선하다
하모니플라워호는 여객 544명을 싣고 최고 속도 40노트로 달리는 쌍둥 쾌속 카훼리선이다
쾌속선으로 육지와 이어지기 전에는 인천에서 약 11시간이 걸리는 멀고 먼 최북단 외딴 섬이었다.
1993년에 쾌속선이 취항했으니 여행 또는 관광으로 백령도가 이름을 높인지는 얼마 되지 않은 편이다
백령도의 위치
백령도는 오랫동안 황해도 장연군에 속했지만 지금은 인천시 옹진군의 부속 섬이다.
인천에서는 229km의 먼 거리지만 북한 장산곶과는 13.5km에 불과할 정도로 지척이다.
서울보다 평양이 가까운 백령도는 북한 황해도의 여러 지역보다 위쪽에 있다.
해병대원들과 함께 가다
여객선에는 대청도와 백령도 근무를 명받고 들어가는 해병대원들이 200여명 타고 있었다
끼리끼리 모여서 담배를 피우거나 간식을 먹으며 대화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일반인들에게 전화기를 빌려서 가족이나 애인과 통화하는 모습이 전혀 밉지 않았다 ㅋㅋ
소청도(小靑島)
출항한지 3시간 만에 보이는 소청도에서는 해병대원들의 진지와 갈매기들이 반겨주었다
대청도에 비해 1/5정도 크기이며, 대청도에서 남동쪽으로 4.5km 지점에 있다.
소청도는 이웃 섬인 백령도와 대청도에 비해 아직은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았다.
서해 최북단의 섬 백령도는 한국에서는 8번째로 큰 섬이다.
섬이지만 농토가 많아 농사가 주업이다.
섬을 둘러보려면 최소한 1박 2일은 머물러야 한다.
백령도 용기포(龍機浦)에 내리다
소청도와 대청도에서 한 무리의 승객들을 내려주고 인천을 떠난지 4시간 만에 백령도에 도착하였다
용기포는 여객선과 어선이 공존하는 항구이며, 백령도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여객터미널을 나서자 마치 외국 공항처럼 손님들의 이름을 쓴 팻말을 들고 있는 여행사 직원들이 많이 있었다
까나리액젓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도착한 식당 앞의 갯벌에 까나리액젓을 담은 통이 많이 있었다
백령도에서는 냉면에 까나리액젓을 넣어 먹을 만큼 아주 중요한 양념이다
식당의 주모가 완주 봉동 출신이고, 버스 기사가 전북 부안 출신이어서 진한 정이 느껴졌다
용기포 등대
용기포 선착장 옆 용기원산 정상에는 백령도 인근 바다 선박들을 인도하던 용기포 등대가 있다.
1960년대에 사용하던 것으로 지금은 사용치 않지만 고색창연한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등대 발치에는 기암괴석과 동굴이 있는 등대해안이 있는데 군부대 지역이라 민간인들은 접근할 수 없었다
사곶해안
사곶해수욕장은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함께 세계에 단 두 곳뿐인 천연비행장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모래밭은 미세한 규암 가루가 두껍게 쌓여 이루어진 해안이다.
옛날에는 물이 빠지면 콘크리트 바닥처럼 단단해서 한국전쟁 때는 유엔군이 천연 활주로로 활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백령호를 만들기 위해 제방을 쌓은 뒤부터는 푸석푸석한 모래밭으로 변해 버렸다
그대여, 사는 일이 자갈돌 같아서 자글거릴 땐
백령도 사곶 해안에 가볼 일이다
그곳엔 그대 무거운 한 생애도 절대 빠져들지 않는
견고한 고독의 해안이 펼쳐져 있나니
아름다운 것들은 차라리 견고한 것
사랑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에도
그 뒤에 남는 건 오히려 부드럽고 견고한 생(生)
백령도, 백 년 동안의 고독도
규조토 해안 이곳에선
흰 날개를 달고 초저녁별들 속으로 이륙하리니
이곳에서 그대는 그대 마음의 문지방을 넘어서는
또 다른 생의 긴 활주로 하나 갖게 되리라.............................................................................박정대 <사곶해안> 부분
서해최북단비
백령호(湖) 옆에는 '서해최북단백령도'라고 새겨진 거대한 비가 서 있었다
이 지방에 전해 오는 말에 "먹고 남는 백령도, 때고 남는 대청도, 쓰고 남는 소청도"란 이야기가 있다.
예부터 백령도는 농토가 넓어 자급자족이 가능했다 한다.
그럼에도 사곶과 화동 사이 820m 바다 물길을 막아 담수호를 만들고 만 안쪽의 갯벌 350ha를 논으로 만들었다.
이제 갯벌은 사라지고 간척사업이 끝났지만 새로 생긴 100만 평의 논 또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백령방조제
농어촌진흥공사에서 4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만들었다.
간척이 되기 전 갯벌 바다에는 꽃게와 가자미가 넘쳐났고, 김 양식과 굴 양식은 어민들에게 큰 소득을 안겨 주었다.
간척사업의 실패로 막대한 예산이 낭비됐고 주민들의 삶의 터전인 갯벌이 유실됐다.
게다가 천연기념물인 사곶해수욕장까지 썩어가게 만들었지만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백령호(湖)
농업용수로 쓰기 위해 40만 평의 담수호를 만들었으나 염분의 유입으로 담수호는 쓸모없는 저수지가 되고 말았다.
주민들은 간척지를 논으로 쓰지 못할 바에야 둑을 허물고 갯벌을 되살려주기를 바라지만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최근에 간척지에 비행장이 들어설 계획이 수립되고 있다니 불행중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용틀임바위
장촌마을 해안에 있는데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모습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위 스스로 하늘을 향해 나선처럼 꼬여 오르는 형상이 매우 인상적이다
용틀임바위는 가마우지와 갈매기의 서식지이기도 한다
백령도에서도 선사시대부터 농경과 어로를 하며 사람이 살았다.
<고려사> 지리지에 따르면 백령도는 본래 고구려 땅이었다. 옛 이름이 곡도(鵠島).
고구려 멸망 후에는 신라 영토로 편입되었고, 고려 태조 때 백령도란 이름을 얻었다
천안함 46용사 위령탑
안타까운 천안함 침몰 사건은 2010년 3월 26일에 발생하였다
백령도 근해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PCC-772 천안참이 피격되어 침몰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 장병 40명이 사망했으며 6명이 실종되었다.
우리는 위령탑 앞에 국화 한 송이씩 바치며 46용사들의 명복을 빌었다
요새화된 백령도
국토의 최북단에 위치한 백령도는 곳곳이 요새화되어 있었다
인천의 거리가 228km, 황해남도 룡연군과의 거리가 17km니 남한 본토보다 북한 본토가 13배 이상 가깝다
지구에서 가장 포악하고 비인간적인 집단과 마주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현실이다
두무진포구
두무진은 백령도의 최서북단에 있는 포구다.
해적의 출입이 많았다고 전해지며 1832년 최초의 선교사인 토마스가 두무진을 통해 상륙하였다
도무진포구는 명승 제8호인 두무진의 규암절벽 관광의 출발지라 상당히 붐비고 있었다
두무진 (頭武津) 1
장군들이 회의하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해서 두무진이라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4㎞에 걸친 해안선에 따라 오랜 세월동안 파도와 비바람에 깎여 만들어진 높이 50여m 내외의 규암절벽을 일컫는 이름이다.
북녘땅 장산곶과 몽금포 해안이 가깝게 보여 실향민들이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며 애환을 달래는 곳이기도 하다.
코끼리바위
서해의 물을 다 마셔 버리겠다는 듯 코를 바다에 담그고 있는 코끼리 형상의 바위.
해식절벽에 깨어진 약한 틈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곳이 오랜 시간 동안 침식을 받으면 관통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지형을 지형학에서는 시아치(sea-arch)라 한다
두무진의 포식자들
두무진 앞 바다의 포식자는 셋이다... 사람과 물범과 가마우지
바위섬에 무리지어 앉아 있는 가마우지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들은 주변 환경에 익숙해진듯 유람선이 지나가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무진 (頭武津) 2
그런데 두무진 바위들은 육지와 등을 돌리고 있다.
이 곳을 창조한 신이 이 곳을 만들어놓고 너무 아름다워 자신만 보기 위해 육지와 등을 대도록 했을까?
두무진 바위의 절경은 유람선을 타야만이 그 관람이 가능하다.
두무진 (頭武津) 3
두무진의 기암은 웅장하고 거대하되, 위압적이지도 사납지도 날카롭지도 않다.
오랜 세월 파도를 견디며 풍화로 깎인 바위에서는 무한한 시간의 깊이가 느껴진다.
왼쪽 꼭대기에 우뚝 솟아있는 모양의 바위는 부처 같기도 하고, 아기를 안고있는 여인 같기도 하다
점박이물범을 보다
우리는 바위 위에서 느긋하게 쉬고 있는 점박이물범을 보는 행운을 누렸다
백령도는 우리 바다에 살고 있는 점박이물범의 주된 삶의 터전이라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섬이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자 천연기념물(제331호)인 점박이물범은 몸 크기는 사람과 비슷하다
최대 10분 동안 수심 100m 이상 잠수하여 생선을 잡아먹는데, 워낙 먹성이 좋아 어민들에겐 애물단지라고 한다
백령도 앞바다에 200~400마리가 서식하는데 두무진 앞바다엔 최대 15마리 가량 산다고 한다
형제바위
가까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상을 하여 형제바위(일명 부부바위)로 이름 지어졌다.
간조때 형제바위를 가깝게 볼 수 있는 형제바위 해안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10여명이 함께 들어갈 수 있는 해식동굴이 발달되어 있다.
잠수함바위
이 바위는 영락없는 잠수함의 형상을 하고 있다
유람선 선장이 심청이가 타고 살아 나온 잠수함이라고 하여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심청이는 흔적도 없고, 가마우지 한 마리가 바위에 앉아 있었다
선대암(선 大巖)
우뚝 선 큰 바위라는 뜻이다
612년(광해군 5) 백령도로 귀양 온 이대기가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풍광이 빼어나다.
원래는 백령도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파도의 침식을 많이 받아 해안가와 분리되어 바다 쪽에 떨어져 서 있는 형상이 되었다
두무진 (頭武津) 4
두무진 바위들은 기독교적 시각으로 보면 천지창조의 오묘함을 체득할 수 있는 곳이요,
불교적으로 말하면 수많은 깨달은 부처들이 줄지어 앉아 있는 형국과 대면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삶의 무게가 가볍다고 느껴질 때 찾아오면 무거운 무게를 안고 돌아 갈 수 있고,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고 생각할 때 찾아오면 그 무게를 덜어놓고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두무진 (頭武津) 5
이토록 아름다운 두무진이 오랫동안 왜구와 해적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두무진 앞 낭떠러지 위에 기와로 요망대를 짓고 해적의 출몰을 감시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군이 망을 보던 망대가 있었다.
지금은 우리 해군기지와 초소들이 들어서서 북한을 감시하고 있다.
통일기원비
두무진포구의 해안선 자락에 '통일비룡(統一飛龍)'이란 글씨와 날으는 용이 새겨진 비석이 있었다
흑룡부대 장병들이 통일염원의 혼을 담아 건립한 기념비다
북한의 장산곶이 빤히 보이는 곳에 세워진 통일기념비 앞에서 통일의지를 다졌다
장산곶이 보인다
두무진과 바다를 마주 보는 땅이 북한의 장산곶이다.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 나오는 한번 비상하면 뭇 짐승이 벌벌 떤다는 장산곶매의 그 장산곶이다.
두무진과 장산곶 사이에 NLL이 그려져 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남북 모두 넘을 수 없는 선이다
다시마 수확
근방에 사시는 할머니께서 해변가에 널어놓은 다시마를 거두고 계셨다
한때 백령도는 대청도, 소청도와 함께 홍어잡이로 유명했다.
1986년에만 배 한 척당 평균 2천만 원의 어획고를 올렸다고 한다.
백령도에서 홍어가 사라진 것은 남획 때문이다
캔맥주의 진정한 맛
한 시간 이상 유람선 탑승과 두무진 순례로 갈증이 심해졌다
좁은 골목에 있는 슈퍼를 발견하고 망설임 없이 들어가서 캔맥주를 마셨다
캔맥주의 진정한 맛은 목마를 때 마셔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ㅎㅎ
갈매기의 꿈
이 갈매기는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배에서 어부들이 버리는 생선 내장을 찾고 있는 것일까
북녁땅에 두고온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짝 잃은 과부 갈매기를 찾기라도 하는 것일까?
생선회로 마무리하다
두무진 포구에 늘어선 횟집 중 첫번째 집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무엇보다 백령도 생선회는 모두 자연산이다.
육지서 양식산을 들여오기엔 뱃길이 너무 멀어서다.
백령도 바다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우럭 산지로 알려졌다.
호텔 J&B에 묵다
호텔 이름은 Jeju 와 Baengnyengdo의 첫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호텔 사장이 제주 출신이라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작년에 새로 지은 호텔이라 깨끗하고 아늑해서 여간 좋지않았다
호텔 로비에서 캔맥주로 입가심을 하고 꿈나라로 들어갔다
첫댓글 아직은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용기를 내어 떠났습니다
결국은 아주 잘 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해병대의 진지와 북한 장산곶, 월래도를 바라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동행한 형님께서 다음에는 장산곶에서 백령도로 오자고 말씀하시네요
산행 후기도 어쩜 이렇게 맛깔나게 잘 쓰십니다. 가서 듣고 본 내용을 아주 재미나게 보여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