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071) - 걷기로 다진 친선
단풍 짙게 물들고 낙엽 수북하게 깔리는 11월에 접어들었다. 첫날 기도에서 세상에 평화를, 공동체에 번영을, 가정에 화목이 깃들기를 염원하였다. 모두가 충실한 날들 가꾸소서.
백마강변의 화사한 코스모스 물결
지난 주말 서울 송파구 일원에서 사단법인 한국체육진흥회가 주최하는 제29회 한국국제걷기대회가 열렸다. 코로나 여파로 여러 해 만에 갖게 된 행사, 아내와 함께 서울로 향하는 발걸음이 뜻깊다.
행사 전날, 2년마다 조선통신사 옛길 서울~도쿄 한일우정걷기에 함께 하는 일본 참가자들을 환영하는 만찬모임을 가졌다. 참석자는 일본 회원 17명을 포함하여 40여 명, 두 시간여 정담을 나누며 손 잡고 노래하는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걷기로 다진 평화와 우정의 물결이 아름다워라.
만찬장에 함께 한 한일우정걷기 동호인들
제29회 서울국제걷기대회는 토‧일(10월 28~29일) 양일간 송파구 장지동의 가든파이브를 출발하여 송파구와 인접 성남시의 탄천 주변을 오가는 5km, 10km, 25km, 42km 코스에 남녀노소 천여 명이 넘는 인파가 운집한 대규모행사,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온 외국인들이 낯익다. 덕담이 넘치는 축사와 가벼운 몸 풀기로 서막을 열고 오전 10시에 행사장을 출발하여 이내 천변에 들어서서 힘차게 내딛는 발걸음이 생동감을 안겨준다. 드높은 가을 하늘, 곱게 물든 단풍물결 헤치며 행복한 날들로 나아가시라.
걷기에 앞서 몸 풀기하는 모습
이틀간의 서울 걷기를 마친 일본 참가자 중 14명과 체육진흥회원 20여명은 연이어 월‧화(10월 30~31일) 이틀간 부여~공주~세종을 잇는 명소탐방걷기에 나섰다. 첫날 코스는 부여에서 공주까지 금강 하천 길 따라 28km 걷기, 일행은 오전 6시 반에 전세버스 편으로 서울을 출발하였다. 세 시간여 달려 오전 9시 40분에 걷기출발 장소인 부여의 부소산성 입구에 도착, 나와 아내는 아침 일찍 청주를 출발하여 부소산성 입구에서 일행과 합류하였다.
10시부터 산성걷기에 나서 낙화암과 고란사를 둘러보고 선착장의 유람선에 올라 30여분 백마강을 휘돌며 시원한 강바람에 풍진의 찌꺼기를 깨끗이 날려 보냈다. 유람선의 마이크에서 흘러나오는 ‘백마강 달밤’의 노랫가락이 정겨워라.(유람선 타기를 주선한 이 고장 출신 김명중 회원의 호의에 감사)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잊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에 울어나 보자
고란사 종소리 사무치며는
구곡간장 올올이 찢어지는 듯
누구라 알리요 백마강 탄식을
깨어진 달빛만 옛날 같으리’
운치 있는 백마강의 유람선
한 많은 역사가 서린 부소산 일원을 조망하고 평지의 선착장에 내려 본격적으로 걷기에 나서 다시 부소산성 입구와 주변 관광지를 거쳐 금강 둑길에 접어들었다. 4대강 개발 사업으로 정비된 금강 일원을 종주하는 도보와 자전거 길이 쾌적하고 갈대와 억새 가득한 강변의 풍광이 시원하다. 공주~부여 강변길은 10여 년 전 한일동호인들이 서울~목포~부산에 이르는 900여km의 한국일주 1차 걷기 때 지났던 길,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중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몇몇 동호인들은 그때 같이 걸었던 멤버들이기도. 이들과 함께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을까.
금강변 따라 걷는 모습
도중에 식당이 없어 미리 주문한 도시락으로 중간의 휴게소에서 점심식사, 강변길 따라 열심히 걸어 오후 5시에 예정 거리를 앞당겨 걷기를 마무리하고 버스에 올라 숙소로 정한 공주시내로 향하였다. 숙소 앞에서 일행과 작별, 대전 유성을 거쳐 청주의 집에 돌아오니 저녁 8시가 가깝다. 일행 중 상당수는 며칠 후 일본걷기에서 다시 만날 터, 평화와 우정을 다진 친선의 발걸음 이어지라.
* 지난 봄 제9차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에 함께 한 일본참가자 히다이 하루오 씨가 환영만찬 때 한국 측 참가자들에게 한글로 된 ‘제9차 21세기 조선통신사 우정걷기의 인상’이라는 30여 쪽의 소책자를 나누어주었다. 나도 여러 차례 함께 걸은 기록을 동호인들의 도움을 받아 일본어판으로 공유하기도. 다음은 히다이 하루오 씨가 쓴 내용의 요약이다.
1. 한국에서 일어난 일
제9차 21세기 조선통신사 우정걷기는 4월 1일 경복궁을 출발, 53일에 걸쳐 서울~도쿄를 걸었다. 옛날 조선통신사는 각 지방의 객관에서 묵었지만 우리는 모텔에서 묵었다.(일본은 대부분 비즈니스 호텔 이용) 식사는 가는 곳마다 있는 식당에서,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열어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어 좋았다.(* 일본인들은 한국 식당의 무한리필 서비스에 만족)
2. 배와 버스여행
서울~부산은 전 구간 걷기, 부산에서 후쿠오카까지는 배편, 후쿠오에서 오사카까지는 버스로 이동. 배편으로 이동한 대마도, 이키섬, 아이노시마의 볼거리가 흥미롭고 버스 편으로 처음 방문한 가미노세키 탐방이 뜻깊었다.
3. 조선인가도
오사카에서 도쿄에 이르는 육로는 여러 개의 고유한 도로명이 있다. 오사카에서 교토까지는 요도(淀川)강변길, 교토에서 구사쓰까지는 도카이도(東海道), 구사쓰에서 히코네까지는 조선인가도, 히코네에서 다루이까지는 나카센도(中山道), 다루이에서 나고야까지는 미노로(美濃路), 나고야에서 도쿄까지는 다시 도카이도(東海道), 그 중 조선인가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조선통신사들이 통과하는 길로 지정한 노스(野洲)에서 도라이모토(鳥居本)까지 약 40km의 거리. 조선통신사는 이를 하루 만에 걸었지만 우리는 이틀간 걸었다.
4. 돌길
일본의 옛길 중 비탈길에 조성한 돌길이 특별하다. 우리가 걷는 코스 중 하코네 돌길이 그 중 하나, 이번 여행 때 하코네 돌길 걷는 중 비가 내렸다. 일행 중 빗길에 여러 사람이 넘어졌다. 다행이 큰 부상은 없었지만 운동화가 물기 있는 돌길에는 취약한 편이다. 조선통신사가 하코네를 지날 때는 돌길 위에 수천 장의 멍석을 깔았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5. 평화 순례의 길
이번 걷기 중 우리는 ‘세계에 평화를’이라는 깃발을 내걸고 걸었다. 우리가 걷는 조선통신사의 길은 에도시대 260년 동안 일본과 조선의 평화의 가교가 된 길이었다. 우리는 걸으면서 경유하는 지방자치단체나 민간단체로부터 평화의 서명을 받았다. 세계에는 여러 순례의 길이 있다. 이는 대부분 종교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우리가 내건 평화는 한국과 일본은 물론 세계를 아우르는 민초들의 자발적인 호응을 촉구하는 뜻이 담겨 있다. 함께 걷는 조선통신사길이 복잡하고 어려운 국제정세를 평화와 우의로 연결하는 순례의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