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간 금요일 2009. 3. 13
사순 제2주간 금요일 2009. 3. 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비유를 들어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마태 21,33-43)
오늘의 묵상
봄을 재촉하는 단비가 적시는 금요일입니다.
이제 우리 곁에 다가올 본격적인 봄의 향연에
몸도 마음도 더욱 새롭게 하시는 사순시기를 빕니다.
의형제를 맺은 도둑 세 명이 있었어요
이들은 서로 협동하여 부잣집을 털어 큰 재물을 얻었습니다.
그 중에 도둑 한 명이 자신들의 성공을 자축하고자 술을 사러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그러자 남은 두 명은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공모하였습니다.
“우리 합심하여 저놈이 올라오면 즉시 죽여 버리자.
그러면 우리 몫이 더 커지지 않겠느냐?”
두 도둑은 술을 사러 간 그 하나가 올라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한편 술을 사러 간 도둑도 한참을 걸으며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 저 두 놈을 죽이면 그 많은 재물이 다 내 차지가 될 수 있을 터이니
저놈들을 죽여 버리자.’ 이윽고 마을로 내려간 도둑이 돌아오자 남은
두 명이 그를 죽여 버렸습니다.
뜻을 이룬 둘은 서로 축하하며 마음껏 술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이 둘도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자신들이 마신 술에는 이미 독약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탐욕은 결국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고 맙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포도밭 소작인들이 주인의 종들과 그 아들까지 죽이고
자신들이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하자, 주인은 그 악한 소작인들을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다른 소작인들에게 그 포도밭을 맡깁니다.
우리는 주어진 역할과 책임에 최선을 다할 뿐,
그 이상의 욕심으로 그나마 우리에게 허락하신
주님의 은총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마음
-허찬란 신부-
젊은 청년 신자들과 함께 ‘체험! 삶의 현장’이란 팀을 만들어 어려운 농가의
일손을 돕는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힘이 들어도 보람을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거는 기대는 없다 할지라도 애써 힘을 보탠 농가에서 배신을 당할 때는 얼마나
속상한지 모릅니다. 한번은 잘 가꾼 농장을 주인이 다단계에 빠져 팔아버린 적이
있습니다. 농장주인의 처지가 안타까워 저는 조용히 그가 판매하는 전기요를 하나
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삽시간에 소문이 나서 아주
곤란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제인 제가 자신의 물건을 샀다고 자랑스럽게 알린
모양입니다. “내 아들, 상속자야 알아보겠지” 하고 기대하다 크게 실망하고 노하신
하느님의 마음처럼 저 역시 그 농장주인에게 실망하면서 여지없이 마지막 남아
있던 선량한 마음까지 박살나버렸습니다. 자존심은 물론 교회의 나눔 정신까지
무너져버렸습니다. 그래서인지 사회복지, 자선사업을 생각하며 가난한 이웃을
도우려 해도 자주 머뭇거리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가만히 그때 일을 생각하면서
복음을 들여다보니, 하느님이 너무도 이스라엘을 믿으셨고, 당신의 외아들마저
내놓으시는 무모함을 느끼게 됩니다. 만일 저처럼 사회가 금지시키는 다단계
신자를 도운 사목자가 있다면 다들 처신을 잘못한다고 욕할 테지만 이런 험한
세상 속으로 오늘도 사제를, 신자들을 보내시는 하느님의 마음이 어떠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