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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기(令旗)
이 정 환
눈치를 챈 놈은 ˙새미’였다.
어제만 해도 고깔 쓰고 무동(舞童)을 서 제일 꼭대기에 올라가던 ‘가열'*의 그 신출내기였다. 네 등〔四層) 을 서서 세 사람의 머리 위에서 원숭이처럼 까불던 그 자식이 눈치를 챘던 것이다.
“아부지, 저것이 겁 없이 따라온다이.”
얄미운 ‘새미’ 란 놈은 기어이 꼭두쇠(패두목)에 일러바쳤다.
꼭두쇠는 힐끔 뒤를 돌아다보는 듯했지만 곧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굿중패*의 앞을 서서 걸음을 계속한다.
“아부지, 저것이 저 거랭이가……”
그러나 ‘새미’의 가냘픈 목소리는 때마침 이별가처럼 퍼지는 풍물소리, 노랫가락에 묻혀버리고 만다.
께겡 께겡 떵땅 괘애……
에혜에헤이어 어허야 요홀 에로구나
황혼 아니 거리검쳐 잡고
성황당 숭벅궁새 한 마리 낡에 앉고
또 한 마리 땅에 앉아
네가 어디메로 가자느냐
네가 어디메로 가자느냐
이 산 넘어가도 거리숭 벅궁새야
저 산 넘어가도 거리숭 벅궁새 야
가도가도 붉은 황톳재는 끝없이 뻗었고 십여 명 굿중패의 풍물소리는 허기지고 구슬픈 가락으로 자칫 꺼져 내려앉을 것 같다.
느닷없는 거센 바람이 뿌우연 먼지를 일구고 지나간다.
“아부지!”
풍물소리가 가늘고 약해진 틈을 다서 ‘새미’가 날카롭게 소리친다. 꼭두쇠는 험악한 얼굴로 ‘새미’를 돌아다보고,
“뭐냐?”
우레 같은 목소리를 내지른다.
행중(行衆)*의 모든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시선은 일제히 ‘새미’를 돌아다본다. 어느새 풍물소리도 뚝 멎었다.
그때 ‘새미’가 손가락질하는 황톳재 솔밭 속으로 희끗희끗한 행주조각 같은 옷을 걸친 소년이 얼른 숨는 게 행중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이 소년의 이름은 판쇠였다. 걸레쪽 같은 옷은 너절하였으나 몸맵시는 가늘고 희고 긴 목을 가지고 있었다.
행중 사람에게 들키면 혼이 날까봐 억새풀이 우거진 언덕 아래 착 엎드려 있는 품이 흡사 얼룩덜룩한 십 년 묵은 두꺼비 같다.
화주(火主, 총무·기획 담당)가 소년이 엎드려 있는 곳까지 다가서며 소리를 질렀다.
“일어서!”
소년은 자라목처럼 고개를 쑥 뽑아 화주를 올려다보고 느릿하게 일어선다.
“따라와!”
소년은 그 걸레쪽 같은 옷에 묻은 흙을 툭툭 털며 화주의 눈치를 살피다가 화주가 웃고 섰는 것을 보자 꾸벅 절부터 한다.
행중 사람들은 꼭두쇠를 따라 풀밭에 들어가서 풀 위에 털썩털썩 앉는다.
“아부지, 이 자식 솔개마을에서부터 따라왔어요.”
‘새미’는 제가 먼저 발견한 자랑삼아 신명이 나서 떠든다.
“뭐? 솔개마을에서 부터라?”
솔개마을에서 황톳재까지는 삼십 리도 넘는다. 도중에 마을다운 마을 하나 없이 화전민의 움막만이 두어 군데 있는 황량한 곳이다. 더구나 전라도에서 충청도로 넘어가는 도경지대이다.
키다리 꼭두쇠 영감은 소년을 어루만지듯 쳐다보고 순간 푹 한숨을 쉬었다.
나이는 쉰을 두서넛 훔쳤을까, 하나 그의 볼에 깊게 패인 주름살이 그를 영감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따라가고 싶으냐?”
“예.”
소년은 누더기 옷 속으로 손을 넣고 연신 긁적긁적하며 계집애같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년은 굿중패의 울긋불긋한 옷이 좋아 보여 따라나선 것이었다.
“몇 살이냐?”
“열다섯 살이라오.”
“부모들이 아느냐?”
“암도 없어라오.”
소년은 부모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철이 들고는 이장집에서 아이를 봐주고 밥술이나 얻어먹고 있었던 것이다.
판쇠 자신은 모르는 이야기였으나 마을 노인들의 말로는 어느 해 광대 내외가 이장에게 주고 갔다던가……
“이름은?”
“판쇠라오.”
판쇠의 눈에선 기쁨을 담은 야릇한 광채가 인다.
“음!”
꼭두쇠는 신음하듯 목소리를 울리고 천천히 화주를 쳐다본다. 어떻게 할까 그런 눈이었다.
해사한 얼굴의 청년 화주는 꼭두쇠의 심중을 재빨리 이해하고
“밥이나 먹여서 돌려보내지요.”
하고
“야, 판쇠야, 너 있던 이장집에서 편히 있거라. 우리도…… 모두 뿔뿔이 흩어질지 내일을 모른다. 이대로 계속해갈지 걷어치우고 헤어져버릴지……”
판쇠에게 하는 말을 행중 사람들도 들어보라는 듯이 한숨을 섞어 말하는 것이다.
순간, 행중 사람들의 표정이 싹 어두워지는가 싶자 여기저기 풀밭에 다리를 내던지듯 퍼질러 앉았던 몇 명이 잔기침을 하고 후룩 한숨을 토한다.
모두 잠시 동안 침묵하고 있는 사이 식화주(식사 담당)가 큰 보따리에서 주먹밥을 꺼내 한 덩이씩 행중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김밥이었다.
판쇠는 김밥을 손에 들자 어젯밤 이장집에서 자기가 용이 엄마하고 같이 밥을 김에 말던 일이 생각나고 용이 엄마가, 판쇠야 나는 어쩌고…… 가지 마, 하던 얼굴이 떠오르고 이걸 얻어먹으면 나는 영이들을 따라가기는 틀리는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들자 김밥을 손에 쥔 채 멍청히 앉아 있었다.
그는 부엌데기 용이 엄마에게만 굿중패를 따라가야겠다는 뜻을 은근히 비친 것이었다.
“안 먹을래? 그럼 나나 주라.”
‘세미’가 어느 결에 김밥을 채다 먹는 것이다.
‘새미’는 열두 살이었지만 어른들보다 후딱 김밥을 먹고 판쇠의 몫까지 빼앗아 먹으면서 목구멍을 씰룩거리는 것이다.
이 ‘새미’는 어미 없이 자라난 꼭두쇠의 유일한 혈육으로 돼 있는 것이다. 이 아이의 어미는 꼭두쇠에게서 달아난 지 칠 개월 만에 한 사람 거지중을 시켜 이 아이를(그때 겨우 백날이 지난), 꼭두쇠에게 보냈던 것이고 아이는 이름도 없이 ‘새미’라고만 불리어지고 있었다.
행중의 꼭두쇠나 화주, 식화주, 상쇠님, 징수님, 고장수님, 북수님, 호적수님, 법고(法鼓)님, 상무동 모두들 어두운 얼굴을 숙인 채 밥만은 정신없이들 먹는 것이다.
두 명의 ‘삐리’*들이 식화주님이 떠주는 탁주를 패두목인 꼭두쇠를 비롯한 각기 기능의 부장격인 ‘뜬쇠’들에게 차례로 돌리고 양재기가 비기를 기다려 부하들인 ‘가열’들에게도 한 잔씩 돌렸다.
이렇게 술이 한 순배 돌아가자 조금 전에 그들의 가슴을 납덩이처럼 무겁게 눌러오던 우울한 공기는 씻은 듯 가시고 지친 팔다리에 새로운 힘이 뭉클 솟는다.
징수님이 쌈지에서 담배를 긁어내어 한 대 꼬나물고 벌떡 일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상쇠님, 북수님, 고장수님, 법고님들이 벌떡벌떡 일어섰다.
북수님이 퉤 하고 손바닥에다 침을 뱉고 북채를 힘껏 쥔다.
연희의 리더 격인 상쇠님이 꽹과리로 가락을 넣는다.
께겡 께겡 떵땅 괘애……
길긋 가락이 구성지게 황톳재를 넘어 산록(山麓)으로, 푸른 솔밭 속으로 번져간다.
꼭두쇠는 하늘을 우러러 길게 한숨을 토하고 건장하고 믿음직한 ‘뜬쇠’들을 죽 둘러보았다.
어느덧 나머지 ‘가열’들이 잽싸게 가락에 낀다.
상무동들은 제비처럼 미끄러지듯 꼭두쇠를 중심으로 가볍게 돈다. 어지럽다.
상모가 갈매기처럼, 쨍쨍 쏟아지는 햇볕을 휘감아 빙빙 돌고 너울너울 춤을 춘다.
꼭두쇠는 그들의 의사를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벌써 몇 번째의 발돋움이었던가. 자칫 해체의 위기에서 칠전팔기, 간신히 이 행중을 이제까지 유지해온 것은 이들 남은 열 몇 명의 ‘뜬쇠’와 ‘가열’ ‘삐리’들의 얽히고 맺힌 인연 때문이었다.
사실 이 꼭두쇠 최두보(崔斗甫) 노인이 이끌고 있는 남사당*은 열두 해 전에 이미 해체되어야만 할 위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 당시 두보 행중(斗南行衆)의 부두목인 온흑달(溫黛達)과의 싸움질 때문에 일어나는 흙구름이었다.
그때 두보는 사실상 남사당의 꼭두쇠로 있기에는 적합지 못한 신병을 앓고 있었다.
지금도 다 나은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금방 자지러질 듯한 심한 기침을 했던 것이다.
풍물을 잡는 사람에게는 두보와 같은 기침을 해서는 폐물이 되는 것이다.
쇠잡이로서나 열두 발 상모로서는 당시의 어떤 패거리의 고수보다 우수한 그였지만 한 번 콜록거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터져나오는 심한 기침 때문에 쇠를 두드리는 손이 후들후들 떨리는 것이었다.
한때 그는 풍물 중에서 가장 중노동인 수버꾸였었다. 수버꾸가 열두 발 상모를 돌린다. 하나 열두 발 상모를 돌릴 수 있는 체력을 잃은지 오래였던 것이다.
연희의 리더는 상쇠가 하는 게 통례이나, 이 무렵 패거리들의 기습(氣習)*으로 패거리의 진가를 따지는 데 있어 패거리의 꼭두쇠가 연희자 출신인가 아닌가에 크게 좌우되었다. 때문에 패거리의 꼭두쇠는 각기 기능면에 숙달된 자가 앉아야 했다. 따라서 꼭두쇠가 병이 나면 아니 되는 것이었다. 그 까닭은 언제든 행중끼리의 경연이 아닌 꼭두쇠 끼리의 기술 싸움에 대처해야만 되기 때문이었다.
하여간 그때 행중의 일부에서는 병든 두보 대신 흑달을 패두목으로 세우려는 기미도 있었다.
그러던 어떤 날 새벽 흑달은 스무 명의 인원을 빼돌려 두보의 곁에서 떠나가버렸다.
두보가 정신을 차려 남은 인원을 세어보니 겨우 열다섯 사람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병들어 인기가 없어져가는 두보의 곁에서 알게 모르게 떠나는 사람들은 많았다. 신파극단에'……곡마단에……더러는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흑달이 떠나간 그때처럼 그에게 심한 상처는 주지 않았던 것이다.
흑달패는, 그가 수소문한 바로는, 걸립패(乞粒牌)⁕라고 불리며 영·호남 일대를 두루 쓸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들 걸립패는 절을 짓기 위해 쌀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무렵 승려만으로 구성된 걸립패와 포장 치고 신파를 겸하는 포장걸립도 많았다.)
남사당의 단조로운 풍악과 연희에 신물이 난 사람들은 이들 걸립패의 고사와 덕담(德談)에 귀를 열었다.
어쩐지 찌뿌드하게 무겁고 허전한 실의와 가난에 허덕이는 백성들은 고사의식이 강하고 탈춤을 잘 추는 걸립패에게서 무너져가는 것들의 공통성을 피아간에 더듬고 서로들 부축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걸립패에서 끌어다 놓은 떠돌이 승려가 꽤 덕담에 능숙하다는 소문이었다.
이 무렵, 신파와 서커스와 그리고 약장수들의 유랑극단이 횡행하자 두보 패거리의 인기는 점점 더 떨어져 나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사당의 정통파로서 군림하던 두보 행중은 많은 고수를 잃고 꼭두쇠는 병들고 심한 운영난에 허덕이었다.
그리하여, 그들 행중은 모든 희망과 용기가 탈진(脫盡)된 듯한 지경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한 덩이씩의 김밥과 두어 잔 탁주로 하여 힘을 되찾은 그들은 또 한 번 ‘해보자’는 자각들을 가지고 험난하기만 한 앞길로 이미 짓쳐나갈* 기세를 보이는 것이다.
이런 일은 그 강약의 형편은 달라도 가끔 있어왔다. 하지만 오늘의 이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감격은 순전히 판쇠 소년의 출현으로 해서 벌어지는 것이었다.
꼭두쇠인 두보는 그걸 너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눈을 감았다 다시 조용히 뜨면서 두보는 화주에게 한 소리 영을 내렸다.
“영기(令旗)를 이 삐리 판쇠에게 들려라!”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황톳재의 삐딱진 자갈길로 발을 내디디면서 아직도 젊은 열기가 있을 것만 같은 낭랑한 목소리로 한가락 뽑았다.
죽장 짚고 망혜 신어라
천리강산 구경 갈 제
충청도라 계룡산이면
공주 금강을 구경하고
전라도라 지리산이며
하동 섬진강 구경하고
강원도라 금강산이면
일만 이천 봉 구경하고
함경도라 백두산이면
두만강수를 구경하고
…………………………
어느새 행중의 울긋불긋한 꽃송이 같은 고깔들은 싱싱한 연꽃의 행진처럼 꼭두쇠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등에는 꾸려 짊어진 보따리가 쏟아지는 오월 햇볕에 더워 보였다.
이튿날 점심 새때, 그들 남사당패는 어느 조그만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에 들어섰다기보다 마을로 들어서는 서낭당 고개에서 숨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서늘한 바람에 땀을 들이고 있노라면 ‘내 왔소’ ‘남사당패가 왔소’ 하듯 그중 몇 사람의 날라리 꽹과리로 엮은 취군가락*이 마을로 퍼져 들어갔다.
기잡이 판쇠는 남사당 영기를 들고 화주를 따라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이장의 ‘곰뱅이를 트러(허락을 얻으러)’ 가는 것이었다.
화주는 마을로 들어서면서 판쇠에게 말했던 것이다.
“곰뱅이 터지면 마을에선 그 표시로 농기(農旗)를 둥구나무에 꽂는다. 승낙의 표시거든. 그러면 넌 영기를 애둥구나무에 꽂으란 말이다.”
판쇠는 한 발 한 발 마을로 걸어 들어가면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러자 서낭당 마루턱에 유랑의 짐을 풀고 취군가락을 울리던 행중은 어느덧 마을에서 훤히 올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온갖 재주를 보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흥취를 돋우어 그들을 맞아들이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모심기를 하고 있던 두레꾼들이 허리를 펴고 서서 히죽히죽 웃는다. 벌써 그들 두레꾼들 가운데 성급한 사람은 한입 가득히 군침이 앵겨 꿀떡 침을 삼킨다. 밤에 벌어질 연희를 그려보며 막걸리 맛을 연상해 냈으리라.
“곰뱅이 트러 가시우?”
한 두레꾼이 화주와 판쇠를 다정하게 지켜보며 느릿한 말씨로 물어온다.
“예, 안 터주면 임자네들이 사시요.”
그들 두레꾼들은 노임 외로 받는 얼마간의 유홍비로 남사당패를 사기도 하는 것이다.
“보릿고개를 넘기다 보니 빚이 한 짐 된걸…… 지금은 쇠가 말랐오. 이장에게 트시요.”
화주가 두레꾼하고 이런 수작을 건네고 마을 이장집에 찾아갔을 무렵, 서낭당 근방의 언덕에선 재주 부림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
두보 노인은 패거리들의 재주를 둘러보면서 상쇠나 중쇠를 제쳐놓고―제쳐놓았다고는 하지만 실은 인원이 모자란 그들은 이런 경우 다른 재주 부림에 끼어 있는 것이지만―스스로 쇠(꽹과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때 몹시 귀에 익은 가락을 들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가락은 두보 노인의 추억처럼 항시 머리를 떠나지 않는 환각일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려 했었다.
하나 그 가락은 점 점 뚜렷하게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럴 수야, 그렇게 우연한 일이 일어나려고?
그 가락은 두보 노인이 열일곱 살, 장영준(張榮俊) 행중에 있을 때 익힌 광대탈 중의 한 가락인 것이다.
소년 시절의 설움과 배고픔이 금시 그 가락 속에 묻어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나이까지 그 가락을 이 서낭당 고개에서 아련하게 듣기 위하여 살아 있는 것처럼 착각되었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적시고 흘러내렸다.
그때 그 아련하게 들려오던 추억 의 한 가락은 사오십 명의 장한*들이 목청껏 뽑아 부르는 장엄한 가락이 되어 두보의 가슴을 쳐왔다.
엘렐렐레 네길 헐거
젊은 놈 집안에 늙은 놈 있어도 못살고
늙은 놈 집안에 젊은 놈 있어도 못살고
늙은이가 잠시 집안을 떠났더니
저들끼리 소 잡아먹고 북 메고
말 잡아먹고 장구 메고
개 잡아먹고 소고(小鼓) 메고
안성(安城) 가 헌쇠 갈려다가
괭매 퉁퉁 홀로록 삐쭉 하는구나.
열아홉 살 때 두보는 흑달과 탈춤 덜미(인형극―꼭두각시)놀이를 배웠던 것이다.
두보는 얼마 후 상모와 쇠로 천안 일대에는 물론, 영남·호남 지방에까지도 그 위명이 높았으며 그와 반대로 흑달은 장구와 탈춤으로 이름을 휘날렸던 것이다.
두보와 흑달이 사이가 나빠지기는 두보 나이 마흔이 채 못 된 서른하고도 아홉 살 때 흑달이 서른일곱인가 되는 봄부터였다.
두보가 늙은 총각으로 느닷없이 장가를 든 뒤부터 그랬으니 두보의 색시가 너무 예쁜 탓인지도 몰랐다.
두보의 색시는 점례라는 이름으로 떠돌이 무당의 딸이었다.
그가 소문 없는 장가를 들자 장영준 행중 사람들은 뉘나 없이 놀랐지만 제일 분개한 것은 흑달이었다. 그는 두보의 이얏동모로 몸과 마음을 바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남사당패에는 이속의 관습이 있었다. 패거리들이 모두 남자이고 보니 언제부터인지 고적한 객고를 달랠 양으로 서로 짝을 찾아 부부나 다름없는 기습(氣習)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남자(남편)가 동모님, 여자(여편네)가 이얏동모. 그렇게 불렸다.
이얏동모는 대개 나이 어리고 예쁘장한 소년이 되는 것이지만 두보와 흑달의 사랑(?)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열렬하기만 할 뿐 변할 줄을 몰랐던 것이다.
흑달은 쓸쓸한 객고를 오직 여자가 된 것만 같은 착각 속에서 행복했었다. 그런데도 두보는 엉뚱한 색시에게로 정을 바꾼 것이었다. 그는 이를 갈았다.
그러나 두보는 목련처럼 피어오른 점례를 보고 세상에는 여자라는 이성이 따로 존재한다는 명확한 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 계기는 실로 뜻하지 않았던 장소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두보는 영동 지방에서 성한 박기술(朴己述) 행중의 초청을 받고 장영준 행중에서 잠시 떠나 영동에 내려와 있었다. 단오날 이 지방 농악대회에 나가는 패거리를. 지도하기 위해서 였다.
그는 상쇠로 그 행중을 도왔다.
단오놀이가 한창일 무렵 대회와는 상관없이 버꾸(法鼓〕를 치며 제비처럼 잽싸게 상모를 돌리면서 신나게 돌아가는 두 여인이 있었다. 점례와 그의 어미 얼레댁이었다.
모녀는 두보의 혼을 뺏기 위해서 그곳에 나타나 빙빙 맴돌며 어지럽게 상모를 돌려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토록 모녀의 몸놀림은 아름다웠다.
얼레댁은 그 쪽 찐 머리 하며 가지끈 동여맨 허리께의 곡선이 청상과부*의 서릿발 같은 신산한* 아름다움을 풍겨주었다. 그러나 점례의 미끈둥하게 목련처럼 피어난 자태에는 힘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두보는 점례 모녀를 위하여 쇠와 상모의 기예를 익혀주기로 하고 계속 영동에 머물렀다.
천안에 남아 있던 패거리들에게서는 사람을 놓아 두보가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독촉했다. 그러나……
두보는 영동에서 얼레댁 모녀와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행중 사람들이 염려되고 보고 싶은 얼굴들도 많았지만 어쩐지 점례와 얼레댁 곁을 떠나는 것은 죽는다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것 같았다.
나이 들도록 그렇게 의지하고 천하게 보이지 않던 흑달이 징그럽도록 더럽게 보이고 그가 있는 곳에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두보는 남녀 혼합의 패거리를 갖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대체로 이 무렵 패거리들은 남자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간혹 여자가 섞인 패거리는 네댓에서 칠팔 명의 가족 패거리거나 광대 부부거나 보잘것없는 포장 속에 멍석 깔고 무대를 대신하는 유랑극단 정도였다.
두보는 천안에 있는 패두목 장영준의 간곡한 편지도 받았지만 점례나 얼레댁과 헤어질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삼 년인가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두보는 약장수를 따라 다니는 상무동들과 유랑극단에서 재주를 부리는 어린아이들을 모아 동가식서가숙*의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얼레댁과 점례와 두보가 한방에서 뒹굴어도 새 행중 사람들은 예사롭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두보가 마흔네 살인가 되는 중양절*이었다. 그는 영동에 돌아와 있었는데 천안에서 급히 내려온 장영준의 사자를 맞았다. 장영준이 위급하다는 것이었다.
그가 그럭저럭 주워 모은 패거리를 데리고 천안으로 가봤을 때는 장영준은 죽은 후였다.
장영준의 유서에 따라 두보가 꼭두쇠가 되고 흑달이 부두목이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중년이 다 되도록 ‘동보’ ‘이얏동보’ 하고 지내던 두 사람이 ‘엄지’ ‘새끼’ 꼭두쇠가 되었으니 최두보 행중의 탄생은 그야말로 화려한 출발이라 할만했다.
그런데 이날부터 이 두 사람뿐 아니라 행중 사람들은 누구고 이상한 기분에 들뜨고 은근한 분노로 주먹을 불끈 쥐게 되었다.
오라는 이도 오라는 곳도 없이 날만 밝으면 뜬구름처럼 유랑의 길을 걷다가 마을에 들어서면 사랑채나 혹은 연자방앗간에서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뜨거운 동모님 사랑에 빠지던 그들이었다.
그렇던 것이 사정이 달라진 것이다.
얼레댁과 점례는 모녀간이라고는 하지만 사내들 눈에는 그저 한물의 계집 이었다.
두보와 얼레댁 점례가 차지하는 사랑채나 방앗간 구석은 홍시처럼 흐물거리고 푹 익어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 세 사람 주변에는 싸늘한 살기와 푸르딩딩한 질투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두보는 안성(安城)에 가서 헌쇠도 갈 겸 점례의 옷감을 사오기 위해 얼레댁을 데리고 외출을 하려 했었다.
그가 오래간만에 누렇게 낡았으나 그리 형체가 망가지지만도 않은 중절모를 늘러 쓰고 잠깐 거울에 비춰보고 있는데 흑달이 차양이 풀이 죽은 벙거지를 쓰고 두보의 거적에 쑥 들어오며 여보게, 안성은 내가 임자 장모(얼레댁)와 같이 다녀옴세, 침을 맞아야겠어. 하며 싱긋 웃었다.
“침은 또 무슨 그새!”
두보는 모처럼의 나들이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던 참이라 그 어떤 야릇한 기대 같은 것이 깨어지는 것 같아 야멸치게 툭 쏘아붙였다.
“영, 손목이 시어서 환장하겠네. 안성에 가면 침쟁이가 쓸 만한 게 있다네.”
흑달은 그즈음 오른팔에 가벼운 신경통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풍물꾼에게 흔히 있는 병이었다.
“두목은 점례나 지키고 있게. 요즘 애들이 점례에 눈독을 올리고 있으니 조심해얄걸. 두목은 고장수 박가란 놈이 점례에게 화장수 만들어준 걸 아나? 히히……”
두보는 점례가 쓰고 있는 미안수란 게 고장수로 있는 그 해사한 녀석의 솜씨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는 그런 말을 듣고는 배겨날 수가 없었다. 중절모를 벗었다 썼다 우물쭈물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는데 얼레댁 이 뒷간에서 돌아오더니,
“아따, 최 서방, 온가 말대로 하십시다. 이 에미년이야 늙은 물건, 함부로 굴러도 이젠 깨질 곳도 닳을 곳도 없지만 점례년이야 고이고이 임자가 지켜야지. 이년은 온가 따라 안성 가서 곰국이나 실컷 사달래 먹고 와야지. 이 늙은 년이 이놈 저놈에게 꼬리야 치지 않을 테니 두고 보시우.”
두보는 이 얼레댁과의 관계를 그 무렵 깨끗이 끊고 지냈다.
처음 얼레댁을 알고는 점례에게 접근하기에 앞서 얼레댁에게 몸을 빼앗기고 지냈다. 그가 서른아홉, 얼레댁이 마흔하난가 둘이었고 그때 점례는 열일곱이 었다.
얼레댁은 좀 성미가 이상했다. 두보의 마음이 자기에게는 없고 점레에게 있는지를 알자 며칠간 쌀쌀하게 대하는가 싶더니 돌연 한숨을 훌홀 쉬고 점례와 혼인해달라고 나왔던 것이다.
두보가 그 말을 듣고 갈피를 못 잡자 자기는 원래 그렇게 사주팔자에 나와 있으니 지금 임자 아니면 어떤 누구하고도 다신 그런 혼인을 시키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딸애가 불쌍하니 할 수 없지 뭐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점례와 살을 섞고는 세 남녀가 한방에서 뒹굴었으나 장영준이 죽고 두보가 꼭두쇠로 된 이래로는 차차 두보 쪽에서 얼레댁과의 관계를 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거기엔 흑달이나 다른 ‘뜬쇠’들의 차가운 ‘눈’에 대한 대책의식 같은 것이 작용한 건 사실이다.
하여간 얼레댁이 흑달과 같이 안성에 가겠다고 한다.
두보는 얼레댁과 흑달이 배신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점례의 행동에도 수상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아 흑달과 얼레댁이 안성에 갔다오겠다는 요청을 무시할 수만도 없어 그들을 안성에 보내고 말았다.
그의 예감은 옳았다.
사흘 만에 안성에서 돌아온 그들은 터놓고 부부 행세를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새벽 고장수 박가와 점례까지 합쳐 쓸 만한 ‘뜬쇠’는 죄 빼돌려 꺼져버린 것이었다.
두보는 점례 모녀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들이 자기의 빼어난 기술을 얻어가기 위해 일시적으로 몸을 기탁해 있었든 어쨌든 그로서는 여자와 지낸 세월만으로 족했다. 어쩌면 너무 진한 정념 때문에 잃어버린 떠돌뱅이 특유의 소슬한 기운을 되찾은 것이 그의 성미에 맞는 것만도 같았다. 사실 그는 점례 모녀가 사라지자 애초 자기는 허전한 연자방앗간이나 소슬한 사랑방에서 차디찬 쇠나 어루만지고 지내기를 바라고 있은 철두철미한 남사당의 꼭두쇠였는지도 모른다는 자위마저 한 것이었다.
그러나 흑달의 가혹한 처사에는 이를 갈았다. 언제든 만나면 이 치욕을 씻어보리라 마음먹었다. 치욕을 씻는 방법으로서는 이얏동보까지 지낸 흑달에게 육신의 미로써 대결하기는 어려운 일이고 그렇다고 거의 반평생을 떠돌이 남사당패로 보낸 자기로서 무슨 썩 빼어난 무예의 손속으로 대항하기도 어려운 일, 하여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상모나 쇠로써 그의 장구나 탈춤의 인기를 꺾어놓으리라 결심하였다.
그는 남은 여남은 명의 가열들을 수습해 이끌고 그날부터 방방곡곡을 떠돌았던 것이다.
더러 흑달이 두보 행중이 기숙하는 가까운 지방에서 기세를 올리는 것을 알고도 그는 여러 번 흑달패와 부딪는 것을 회피했었다. 왜냐하면 그가 데리고 있는 ‘가열’들은 거의 오 년이나 십 년씩은 기예를 익혀야 흑달 행중을 따라갈 정도로 기술들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그는 더욱 심한 천식을 앓게 되었다. 그러면서부터는 자신이 병으로 쓰러지기 전에 흑달과 만나 결판을 짓고 싶었다.
어차피 운영난에 허덕이는 행중, 결판을 짓고 나면 행중을 해체하고 화전 뙈기나 일굴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두보 행중이 전라도를 돌아 충청도로 가는 무주 구천동에 오게 된 동기도 흑달패가 그 지방에서 멀지 않은 영동에 머문다는 소식을 들어서 였다.
두보는 먼 추억으로부터 깨어났다. 그리고 그들이 이제까지 걸어온 길과는 반대쪽 신작로로 해서 그들이 머물고 있는 서낭당 고개께로 곧장 치닫듯 올라오는 일단의 굿중패를 보았다.
그 패거리들의 선두엔 흑색 영기가 마풍에 휘날리는 흑색 신번(神幡) 처럼 두보 행중에 도전해오고 있었다.
흑달이 이끄는 걸립패의 영기였다. 걸립이란 글자대로 절을 짓기 위해 쌀을 얻는다는 뜻이다. 고사의식이 강한 이들 걸립패는 온갖 재앙을 풍물로 몰아낸다는 것이다.
염왕 앞에 죄를 다스림 받을 때 연화대로 갈 사람에게는 적·황·백·청·자색의 오색 신번을 든 사자가 길을 안내하고 지옥으로 갈 죄인은 마왕군의 사자가 흑색 신번을 가지고 죄인을 잡아가는 것이다. 적·황·백·청·자색은 부처의 덕이지만 흑색은 죽음의 나락을 상징한다.
흑달이 흑색 영기를 패거리의 기치로 삼은 데는 온갖 액신을 잡아간다는 뜻도 된다. 더구나 패두목의 이름이 흑달이다.
하여간 흑달패의 일행이 무서울 정도의 건장하고 늠름한 자태를 서낭당 고개에 나타내고 우뚝우뚝 섰을 때는 쇠잔한 남사당 패거리는 쫓긴 새처럼 힘 없고 처참한 사색을 띠고 있었다.
두보는 눈을 들어 흑달패의 진용을 훑어보았다.
흑달이 봉산탈을 가슴에 매달고 중로⁕의, 그러나 희끗희끗한 머리를 보이며 잔잔한 미소를 날리듯 패거리들의 한가운데 의젓하게 서 있었다. 그 옆에는 승려 차림의 중이 죽장을 짚고 표표하게* 서 있었다.
두보는 눈을 찢어져라 뜨고 흑달 행중의 사람들을 샅샅이 살폈으나 얼레댁과, 점례는 없었다. 물론 고장수 박가도 보이지 않았다.
“옛 동모님 보니 반갑소. 그동안 안녕하섰던가?”
두보의 눈치를 살피던 흑달이 수작을 건네오는 것이었다.
“피차가 한가질세, 이얏동모. 이젠 너도 다 늙어빠져 동침은 어림없겠구나. 가죽이 아프겠는걸.”
두보는 문득 자기와 어린 ‘가열’들을 배신하고 달아났던 흑달의 지난날을 생각하니 사정 보고 반갑던 일이 후회되고 금시 그가 미워진다.
“선배님께서 이 늙은이의 벽(비역)을 생각해주시니 고맙소. 흥, 야이 늙은 놈아, 네 계집은 빳빳한 생선이 좋아 달아났거니와 네 장모님 소식이 궁금하지도 않느냐? 네 이놈, 이 빙장 어른에게 열두 번 절하고 장모님도 위아래 뻥 하시 냐고 물어보아라.”
두보는 이년들이 다 무슨 변고가 있은 게로구나 생각하면서도 얼른 물어보기도 그렇고 해서
“이놈, 늙다 만 놈아, 너야말로 퇴계(退鷄)나 물어뜯다가 불알에 꿰차고 내뺀 주제에 무슨 잠꼬대냐.”
“너 부아 한번 잘 건들이는구나. 그년들이 행중에 끼여 있으니 구설수도 많고 액이 많은 것들이라 행중이 단합이 잘 안 돼서 내쫓았다.”
“내쫓은 게 아니고 네놈이 채였구나.”
이렇게 욕지거리들을 늘어놓고 있는데 곰뱅이를 트러 마을에 들어갔던 화주와 판쇠가 풍채가 있어 보이는 영감을 데리고 돌아왔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오셨는데 심히 죄송합니다.”
영감은 마을 이장이었다.
이장의 말인즉 실은 영동에 머물고 있는 흑달패를 마을 사람과는 아무 상의도 없이 영동에 갈 일이 있던 길에 흑달을 만나 오늘내일 안으로 마을에 들어와 고사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두보 행중의 화주가 곰뱅이를 트러 왔기에 그 자초지종을 얘기해도 듣지를 않아 이렇게 패두목에게 아뢰러 나왔다는 것.
두보는 그 말을 듣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행중의 사기도 말이 아니었다.
그때다.
흑달이 너털웃음을 한 차례 웃더니,
“어떤가 늙은 고수. 내 비록 이 마을에 초청되어 왔으나 그 약속을 해약할 테니 우리 오래간만에 피차의 손속으로 대결을 하지 않겠나? 이기는 쪽이 마을에 남고 지면 두말없이 이 마을을 떠나세.”
두보는 그 말에 살아날 것만 같은 힘이 뭉클 솟고 갑자기 격하게 기침이 쏟아져 나왔다. 가슴이 너무 뛰기 때문이었다.
“예전 이얏동모다운 제안이다. 좋다. 어린아이들까지는 시간도 없고 하니 너와 나와 맞붙으면 어떨꼬?”
두보가 각기 기능의 부장격인 ‘뜬쇠’들을 경연에 넣지 않고 혼자 상대의 제안대로 싸움을 도맡으려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한 패거리의 꼭두쇠로서 상쇠의 역까지 맡고 있었고, 현재 상쇠로 있는 사람은 실은 중쇠였다. 그러니까 꼭두쇠인 자기를 빼놓고는 상쇠(임시로 있는)와 수장구가 좀 나은 편이고 그 다음 ‘뜬쇠’들은 흑달패의 절기를 가진 ‘뜬쇠’들을 당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나 부보 패거리에 무처럼의 곰뱅이가 터져 진양조로 시작해서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 휘모리에 이르기까지 행중이 한판 부시고 각기 기능대로 묘기를 보일 적에 가장 난감한 것은 수법고(수버꾸)에 이르러서이다. 수버꾸가 돌리는 상모늠 열두 발 상모이다. 보통 길굿이나 당산나무를 만나 굿을 할 적에는 보통 솜씨에 체력만 있으면 무난하게 넘길 수 있으나 일단 큰 마을에 들어가 곰뱅이를 틀 때에는 최후의 절정을 장식하는 이 열두 발 상모를 잘 돌려야 한다. 이 열두 발 상모는 머리께의 줄이 노끈이구 거기에 흰 종이를 나풀거리도록 길게 달아놓았다. 이것은 돌릴 적에 좌우에서 전후로 혹은 물구나무도 서는가 하면 열두 발 상모 끝이 땅에 닿지 않도록 훌쩍 뛰기도 한다. 앉아서도 돌리고 손바닥으로 땅을 짚고 비스듬히 옆으로 엎어져서 돌리기도 한다. 이때쯤 되면 체력보다 묘기이다. 두보패의 수버꾸는 그걸 잘 해내지 못할뿐더러 두보패를 맞이하는 관중들은 열두 발 상모로서도 천하제일의 두보를 두고 구차스레 굿중패의 규칙 따위를 물으려 하지 않는다. 두보는 열두 발 상모로 바꾸어 쓰고 수버꾸가 되기도 한다. 어쨌든 두보는 행중끼리의 경연을 피하고 꼭두쇠끼리 맞붙자고 했다.
흑달은 두보의 그 말에 누런 이를 드러내고 키키키 박쥐처럼 웃더니
“그 듣던 중 반가운 제안이군, 늙은 동모님아. 오랜만에 네 열두 발상모의 절기를 구경하고 싶구나. 어떠니, 벽통을 공중에 올리고 물구나무 한번 서 보이겠느냐?”
이때 두보 패거리의 화주가 발끈해서,
“흑달 선배는 무례하오. 어찌 한 패거리의 꼭두쇠에게 수버꾸의 고된 재주를 보이라 한단 말이요. 후배들이 비록 배움은 적지만 힘껏 싸우겠으니 준비들이 나 하시요.”,
했으나 두보는
“흑달은 듣거라. 너 같은 이얏동모를 만나 피차 벽 속까지 훤하게 아는 터에 뭐 군시럽게 공식(公式) 놀음까지 할 필요야 있느냐. 네 이놈, 내 먼허도 없는 꼭두쇠야. 오랜만에 네 꼭두각시놀음을 보고 싶다만 그것 아니라도 늙어서 서러운 네놈에게 내 이얏동모로 있을 때 하던 탈춤을 추래서야 대접이 되겠느냐. 허니 이놈, 네 한때 수장구 노릇도 했었지. 장구야 달인의 솜씨렷다. 그걸 한번 보여줄 수 없겠느냐?”
흑달은 또 그 박쥐 웃음을 키키 웃더니
“좋소. 늙은 동모님이 엣정을 생각해서 가벼운 운동을 시키니 쓰다하지 않겠소. 그런데 이놈아, 늙은 뼈로 열두 발 상모를 돌릴 수 있겠느냐? 못 하게 생겼으면 그 잘 치는 쇠나 울리렴, 하겠느냐?”
두보는 허허 웃고 우레 같은 소리를 내지른 것이었다.
“얘들아, 열두 발 상모를 가져오너라. 오랜만에 이놈에게 열두 발 상모의 용트림을 보여줘야겠다.”
흑달도 가슴에 메고 있던 봉산탈을 벗고 재빨리 장구 칠 준비를 끝마치자 흥, 코웃음을 날리며 떵 땅 장구스리를 내보인다.
흑달의 장구는 귀신장구라고들 했다. 그가 장구를 치는 옆에 섰던 사람이 넋을 놓고 구경하다가 집에 돌아갔는데 며칠이 되어도 장구소리가 귀에서 떠나지 않아 다시 흑달을 찾아가서 사정 얘기를 하니 흑달이 맨손으로 장구를 한 번 텅 치는데 그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의 귀에서는 장구소리는 떠나고 웬 적막한 바람소리가 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두보의 열두 발 상모는 그와는 좀 달랐다. 한 아름이나 되는 둥구나무 밑에서 열두 발 상모를 돌리다 상모 끝이 그 둥구나무의 가지에 감겼다. 나뭇가지는 보통 사람의 몸뚱이만 했다. 웬만하면 상모는 뚝 끊어졌을 것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큰 가지를 땅에까지 연하게 휘게 하고 살아 있는 뱀처럼 스르르 풀렸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만한 고수들의 싸움이라 구경꾼들의 눈에는 누가 잘하고 못하는지 분간이 안 된다.
어느 때는 황새가 너울너울 춤을 추는 것도 같고 어느 때는 두 마리 이무기가 구름을 얻어 하늘로 승천하는 것도 같고 때론 무사시대의 용맹한 무사가 칼날을 번득이며 적을 무찌르기 위하여 짓쳐나가는 것도 같았다. 열두 발 백사가 꿈틀거리는 것도 같고 어느 잘 추는 칼춤이 저러랴 싶은 것 이다.
떵땅 떵땅
돌아간다 돌아간다.
열두 상모 돌아간다.
늙은이 동모님의
고의춤도 돌아간다.
돌아간다 어화 얼씨구
축 처진 고놈도 털레 퉁퉁 돌아가네.
흑달은 왜소한 체구를 까불까불 앞뒤로 흔들면서 두보의 코 끝에 닿을락말락 장구를 텅탕 퉁탕 상모(수장구가 쓰는)를 쌩쌩 돌린다.
두보는 큰 바위처럼 서서 별로 힘들이지 않고 열두 발 상모를 조정한다.
백사처럼 꿈틀거리는 길고 짧은 꼬리들이 서로 물어뜯을 듯이 맴돌며 접근했다가는 떨어지고 떨어졌는가 하면 얼기설기 종횡좌우로 뒤엉킨다.
흑달의 장구도 그렇지만 두보가 돌리는 길고 긴 열두 발 상모도 마구잡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처음 그들은 완만한 사박자의 진양조로부터 시작했다. 어느덧 중모리로 가락이 변하고 중중모리에 접어들자 두보의 열두 발 상모도 차차 그 돌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러기를 몇 번째.
두보의 숨소리가 차차 가빠지는가 하자 웩! 하고 구역질을 한 번 하고 그 다음부터는 자지러질 듯 기침이었다.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세 번씩, 세 번씩 열두 번쯤 기침을 하는 것인데 몸은 반듯이 하고 기침을 할 때 그 반동으로 고개가 아래로 조금 숙여졌다 다시 올라갔다 하니 열두 발 상모는 기묘한 곡선을 그리며 나풀거린다.
이 두 고수들의 싸움을 어느 때부터 관전하고 있었는지 두 사람 둘레에는 흑달패나 남사당패 외에 스물네댓 명의 구경꾼들이 그들 두 사람을 삥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시선은 흑달 쪽에보다 기침을 무슨 장단처럼 삼아 형형색색의 절묘한 솜씨를 엮어내는 두보 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구경꾼들은 이장과 마을 아낙네에 두레꾼들이었다.
흑달은 구경꾼들의 시선이 두보에게 집중하는 것을 알자,
“늙은 사위야, 내 딸의 소식이나 아는가? 그 고장수 박가놈하고 같이 달아나기는 했지만 연분이 없어 벌써 헤어지고 딸년은 제주도에 건너갔다더라. 너 이놈, 기침도 심한 것 같은데 일찍 기권하고 제주도나 가보아라.”
두보는 그 말은 들은 체 만 체 잠시 멈췄던 기침을 또 터뜨리면서 조금 전에 보여주었던 기묘한 뺑뺑이질을 하는 것이다.
“늙은 동모님아, 보아하니 신병으로 명이 얼마 남았을 것 같지 않은데 내 한 가지 네게 실토할 테니 듣거라. 네가 애지중지 기르고 있는 네 자식(새미)놈은 실은 그게 박가의 씨란 말이다. 헤헷, 연놈들이 헤어질 때 내게 네 장모를 시켜 맡아달라고 가져온 걸 난 네가 불쌍해서 네 씨인 척 인편으로 네게 보냈던 거지. 네 장모님은 무당짓 싹 씻고 그길로 절에 들어갔지. 여기 대사님의 알선으로 말이다. 그런데 대사님 말을 들으면 아직도 그년은 젊은 나이를 번제(燔祭)*로 한 여승 같은 노녀가 못됐다네. 살(肉)로 갚을 빚이 많은 계집 같잖든가 왜…….”
흑달은 이상과 같은 말을 우렁차고 빠른 구변으로 지껄여었으나 여전 중중모리로 접어든 장구를 치면서였다.
흑달이 주워섬기는 얘기를 줄곧 꺼짙 듯한 기침을 토해내면서 듣는 두보의 눈에선 분노와 괴로움이 범벅이 되어 파란 빛이 감돌었다.
그의 파란 눈빛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가슴속에는 절망의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아, 그랬던가 그랬던가 행여 행여가 만나면 가슴에 맺힌 생채기는 말끔히 씻어버리고 서로 용서를 나누리라던 점례도 얼레댁도 고장수 박가도 처음부터 날 속이고 있었더란 말인가. 아, 혈육! 혈육! 하하하, 속았구나아…… 중중모리에서 엇모리로 접어든 장구는 떵땅 떵땅 요란하였다. 두보는 버꾸를 춤수듯 치며 상모를 돌리며 뜀질을 계속하였다.
엇모리에서 휘모리로 돌아간 장구는 기관총처럼 터지고 상모는 프로폘러처 럼 돌아갔다.
그의 눈알이, 머릿속이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목구멍이 뜨겁게 타고 타다 남은 재가 싸느랗게 식어간다고 생각할 때, 몸에 부력(浮力)이 생겼다. 그리하여, 길고 긴 열두 발 상모가 친친 백사처럼 그의 영혼을 옭아매고 구천으로 나르[運搬]고 있었다.
두보가 땅에 주저앉는 것을 본 구경꾼들은 한참이나 그가 운명한 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상모는 그의 신기의 여운으로 한참이나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입에서 검붉은 거품이 욱 토해져 나오는 것을 보고 당황한 사람은 흑달이었다. 그는 어느 여편네가 망부(亡夫)*에 저렇게 곡을 하랴 싶으리만큼 섧 게 우는 것이었다.
상여는 흑달의 제안으로 흑달패 뜬쇠들이 메었다.
두보패의 뜬쇠들은 상제 노릇을 했다. 그들은 상모와 울긋불긋한 고깔 대신 대오리로 얽어 만든 패랭이를 쓰고 상여의 뒤를 따랐다.
이 고향도 혈연도 본적도 없는 유랑인의 상여가 마을을 벗어날 즈음 마을 아낙네들은 사자(死者)와는 그다지 인연도 없을 법한데 하여간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어어훠어엉 어어휘어엉어―헤에ㅡ
어어훠어엉 어어휘어엉어ㅡ헤에ㅡ
상여꾼들의 가락이 서럽게 서낭당 고개를 넘어가고, 운삽*이며 명정이며 영 기 같은 만서*며 연꽃으로 꾸민 거대한 꽃송이 같은 상여가 마을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날 무렵 마을 건너편 산록에 두 소년이 나타났다.
앞을 뛰어 달아나는 건 ‘새미’요 뒤쫓는 소년은 판쇠였다. 판쇠의 손엔 장대가 쥐어져 있고 그 끝에는 누우렇게 바랜 천이 꽁꽁 감겨져 있었다. 남사당 영기였다.
판쇠는 뭐라 고함을 쳐 ‘새미’를 불러세운다.
쌕쌕거리며 ‘새미’에게 다가선 판쇠는,
“이 후레자식아. 느그 아버지 상여도 안 따라가냐?”
했다.
‘새미’는 눈살을 찌푸리고 아우성치듯,
“상관 마 이 거지야.”
판쇠는 장대로 ‘새미’를 후려칠 듯하며,
“이 후레……‥ ”
했으나,’
“우리 아버지 아니라잖나!”
하고 울어버린다.
판쇠는 그 말에 주춤했으나 물러서지 않고,
“그래도 널 키워줬잖나…….”
“담에 나 혼자 찾아가면 못쓰나. 난 혼자 찾을 수 있다.”
“……”
판쇠는 문득 생각키우는 점이 있었다.
간밤의 일이었다.
남사당인 두보 패거리의 ‘뜬쇠’들이 컴컴한 상마당 구석에 모여 앉아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는 걸 들었던 것이다.
상모나 쇠로써 누구 따를 사람이 없던 두보가 살았을 때에도 행중을 유지하기가 어렵던 그들이었다. 두보가 죽은 지금에 이르러 이렇다 하는 고수 하나 변변히 없는 자기들로서는 이 행중을 단합해서 끌고 가기는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대로 흩어질 수밖에 없을 바에야 흑달패에 입단하는 게 어떠냐는 것이었다.
거기 대해 화주가 의견을 제출했다.
“흑달이 두보를 죽인 것같이 되었는데 두보외 눈이 감기겠소?”
상쇠님이 그 말에 응수했다.
“흑달과 두보는 동모님 싸움을 한 것에 불과하오. 사랑 싸움인데 뭘…….”
징수님, 고장수님이 그 말에 동조했다.
“흑달이 장례 비용까지 크게 써가면서 저렇게 서러워하니 두보도 지금쯤 안심하고 극락 갈 거요.”
식화주님도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화추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한참 있더니 한숨을 후룩 내쉬고 나직이 말했다.
“여러분들의 뜻이 그렇다면 그럴 수밖에 없소.”
사실 패거리의 살림을 맡고 있는 식화주의 의견이 그렇고 보면 화주로선 왈가왈부할 자격이 못 되는 것이다. 화주는 단지 연예면의 기획을 맡을 뿐이기 때문이다.
간밤엔 그런 말들을 주고받고 어딘지 찌푸둥하고 쓸쓸하고 또 어딘지 얄팍한 희망과 포부 같은 것에 들떠 뒤숭숭하게 넘어갔던 것이다.
판쇠는 간밤의 이야기들이 결정이 되었을 때 자기가 맡은 영기는 어떻게 되나 그것만 걱정이 됐던 것이다.
흑달패의 기잡이는 힘세 보이고 무섭게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들과 합치면 내가 맡은 남사당의 영기는 뒤에 서나 앞에 서나 그렇잖으면 뺏기나, 뺏기고 마는 것일까……
조금 전까지도 그런 근심을 하고 있었는데 상여 뒤를 따르던 ‘새미’가 살짝 빠져 가는 것을 보고 여기까지 좇아왔던 것이다.
“너 지금부터 어디로 갈래?”
판쇠는 뭔가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되면서 물었다.
“나도 모른다. 엄마를 찾아갈까 할매를 찾아갈까…….”
판쇠는 무얼 생각했는지 부산히 영기를 펴며,
“너 무동 잘 서더라. 내 짝패를 구할 테니 나하고 이 영기 가지고 돌아다녀보자. 어떠니?”
‘새미’는 침을 땅에 찍 뱉고,
“네깐 거지가 뭘 할 줄 알아서…….”
“뭣이?!”
판쇠가 영깃대로 ‘새미’를 때리려 몸을 날리는데,
“왜들 시작부터 싸움이냐. 가자…… 내가 마, 어디든 같이 가줄 기다.”
경상도 사투리도 곧잘 쓰는 해사한 얼굴의 화주 어른이었다.
“으……이·……”
“어…… 허……”
서럽게 목메인 상여소리는 아련하게 구름 속 영(嶺) 너머 갔다.
『월간문학』 13호(1969. 11); 『까치방』 (창비 1976)
이정환(李貞桓) ● ● 竗,0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농업학교를 졸업
했다. 한국전쟁이 나자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탈영병으로 오인되어
9년간 감옥생활을 했으며, 이후 전주에서 서점을 경 영하며 고단한 생
활올 해왔다. 1969년 『월간문학』 신인작품 공모에 단편 「영기(令旗〉」가
+''- 〈―널Ξξ긁1훅궐 ξ彗ξ쥬ㅣ¼놓;푸:::÷¼켤:革:沆置,:½拜솰굵짭
숨겨진 사연 둥을 특유의 유머로 포착한 개성 있는 작품들을 발
표했다. 주요 작품으로 「영기」 「까치방」 「독보(˚蜀步) 꿈」 「부르는
소리」 『샛강』 둥이 있다. 1984년 위암으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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