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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망과 징계로 경고하시며 이끄심
(시 39:11)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
(잠 1: 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잠 6: 23)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잠 9: 8)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잠 25:12)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전 7: 5)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렘 2: 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요 16: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고전 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골 1: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딛 2: 8)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요일 3:20, 21) 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계 2: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나의 형제들이여, 믿음과 행함의 문제들을 신자들에게 증거 할 때에 매우 조심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에 사람들은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신자들은 열심히 선행을 하도록 권고를 받을 필요가 있다. 저들은 믿음으로 성공하는 방법, 순결하게 되는 방법 및 저들의 헌물이 하나님께 향기가 되는 방법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모든 방법들은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명확한 성격을 띤 기별들을 신자들에게 증거 해야 한다. 사람들은 모든 악의 모양을 책망하고 견책하기 위하여 나아가야 할 것이다. (1SM 379.4)
만약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주셨던 기별과 같은 사명을 어떤 교회의 사자가 받았다면 그 기별은 인간 대리자들을 통하여 부주의함과 패역함과 죄를 책망하여, 백성들로 회개하고 죄를 자복하기에 이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결코 죄를 숨기려 하지 말 것이다. 견책의 기별 가운데 처음과 나중이시며 만유이시고, 만유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한다. (1SM 380.1)
화잇 여사는 어떤 편지나 기사를 읽지 않았음 — 그대는 내가 그대의 편지 꾸러미를 읽지 않았다고 비난할지 모른다. 나는 그것들을 읽지 않았으며, ‘켈록’의사가 보낸 편지도 읽지 않았다. 나는 출판사를 향한 엄숙한 책망의 기별을 가지고 있었으며, 만약 내가 내게 보내진 편지들을 읽는다면, 후에 증언이 나올 때에 그대와 켈록 의사가 “내가 그에게 그 영감을 주었다”고 말할 유혹을 받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 서신 301, 1905. (3SM 63.3)
반세기 동안 나는 주님의 사자였으며, 내 생명이 지속되는 한 나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위하여 내게 주시는 기별들을 계속 증거 할 것이다. 나는 아무런 영광도 내 자신에게 돌리지 않는다. 내 젊은 시절에 주님께서 나를 당신의 사자로 삼으시고. 당신의 백성들에게 격려, 경고, 그리고 책망의 증언을 전하게 하셨다. 60년 동안 나는 하늘 사자들과 교제해 왔으며 계속하여 거룩한 사물에 대하여 배워 왔고. 하나님께서 영혼들을 그들의 잘못된 길로부터 하나님의 빛 안의 빛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끊임없이 일하시는 방법에 대하여 배워 왔다.(3SM 78.1)
기별을 우습게 여김 — 백성들 앞에서 말할 때에 나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리라는 기대를 흔히 갖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영혼들의 유익을 위하여 합당하게 보시는 대로 내게 책망, 경고의 기별이나 혹은 격려의 기별을 주실 수 있다. 나는 이 말을 하게 될 것이며. 그것들은 내가 진리 안에서 진실로 사랑하며 존경하는 나의 형제들의 노선과 연관될 수도 있다. (3SM 81.1)
분명한 책망을 받는 이 사람들 중의 어떤 이들은 모든 단어들로 그들 자신의 진술을 입증하게 하기 위하여 애쓴다. 말씀에 대한 왜곡, 묵과, 잘못된 설명, 그릇된 적용 등은 놀랍기까지 하다! 이 일에 사람들은 연합한다. 어떤 이가 생각지 않은 것을 다른 이가 제공한다. — 서신 172, 1906. (3SM 82.1)
이것이 바로 사단이 계획한 바이며,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의 증언의 경고와 책망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길을 준비한 자들은, 모든 종류의 오류의 밀물이 활력을 얻어 솟아오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성경 말씀을 그들의 증거로 주장할 것이며, 온갖 형태의 사단의 속임이 편만할 것이다. — 서신 109, 1890. (3SM 83.4)
증언에 대한 믿음을 포기함 — 한 가지는 확실하다. 사단의 깃발 아래 서는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은 먼저 하나님의 영의 증언에 포함된 경고와 책망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3SM 84.3) 자만과 우상은 제쳐 져야 한다. 나는 기름진 음식이 몸의 건강을 상하게 하고 있으며 조직을 파괴하고 있고 마음을 망치고 있음을 보았다. 그것은 재물의 큰 낭비였다. (3SM 274.3)
나는 성도들의 집이 오물과 불결함과 모든 부정한 것이 없이 단정하고 말쑥하게 유지되어야 함을 보았다. 나는 하나님의 집이 자녀들에 대한 부모들의 부주의함과 그곳의 단정치 못함과 불결함에 의해 더럽혀졌음을 보았다. 나는 이러한 것들이 공개적으로 책망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 만약 진리를 고백하는 어떤 이들 중에 이 문제에 대해 즉각적인 변화가 없을 때에는 그들은 장막에서 추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3SM 274.1)
식욕과 적절한 음식 — 그 후에 나는 식욕이 거절되어야 함, 즉 기름진 음식이 준비되지 말아야 함과 식욕에 쓰여 진 것은 하나님의 금고에 드려져야만 한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그곳에서 증언할 것이며 자아를 부인한 그들은 하늘에 상급을 쌓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정결하게 하고 계심을 보았다. (3SM 274.2)
나는 남은 무리 중의 많은 사람들이 병든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들의 식욕을 방종하여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었다. 만약 우리가 좋은 건강을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건강을 특별히 돌보아야 하며, 건강에 해로운 식욕을 거부하여야 하며, 정제된 음식을 적게 먹고, 기름기가 없는 섬유질 음식을 먹어야만 한다.
그러면 그대가 식사를 위하여 식탁에 앉을 때 마음속으로부터 음식 위에 하나님의 축복을 구할 수 있으며 올이 성기고, 양분을 골고루 갖춘 음식으로부터 힘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흡족하사 그 음식에 은혜로운 축복을 내리실 것이요, 그것은 받는 자에게 유익이 될 것이다. (3SM 274.4)
나는 우리가 솔로몬이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잠 30:8)라고 기도했던 것처럼 기도해야 하며, 기도하면서 그것을 행하여야 할 것임을 보았다. 평범하고 건강에 필수적이며, 기름기가 없는 음식을 취하라. 그러한 음식이 우리에게 알맞은 것이다. (3SM 274.5)
그들의 배[위장]로 그들의 신을 삼는 안식일 준수자들이 얼마간 있다. 그들은 기름진 음식을 확보하는 데 그들의 돈을 허비한다. 나는 그러한 자들이 구원을 받는다 해도 그들의 식욕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먹지 않는 한 그 고통스러운 욕망이 무엇임을 알게 될 것임을 보았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먹는 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3SM 275.1)
기름으로 가득한 케이크와 파이의 껍질을 준비한 자들이 어떻게 그 위에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할 수 있겠으며,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먹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먹고 마셔야만 한다.(3SM 275.2)
지나간 시대에서처럼 오늘날도 이 시대의 죄와 오류를 책망하는 진리를 증거 하면 반대를 당할 것이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 3:20). 사람들이 성경으로 그들의 입장을 지탱할 수 없음을 알게 되자, 많은 사람들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것을 지탱하기로 결심하고 인기가 없는 진리를 옹호하는 자들에 대하여 악의로써 그 인격과 동기를 공격한다.
이러한 일은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있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는 말을 들었고, ‘예레미야’는 배반자라는 욕을 들었고, ‘바울’은 성전을 더럽히는 자라는 무고를 당하였다. 그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진리에 충성하는 자들은 치안을 문란케 하는 자, 이단자, 분열을 좋아하는 자라는 등의 비난을 받아왔다. 예언의 확실한 말씀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유행을 따르는 죄를 담대하게 책망하는 자들에게 대한 비난과 공격을 의심 없이 믿어 버린다.
이런 정신은 더욱더 증가될 것이다. 성경은 장차 국가의 법령과 하나님의 율법이 서로 상치되고,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순종하는 자는 누구든지 악을 행하는 자처럼 비난받고, 벌을 받을 때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밝히 알려 주고 있다. (GC 458.2)
예수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책망과 경고와 주의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와 ‘요한’과 그 형제들은 그분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많은 견책을 받았으나, 그분과 함께 있기로 결심했다. 예수님 또한 제자들이 허물이 있었지만 내어 버리지 아니하셨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을 본래 약하고 허물이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시며, 그들이 만일 그분에게서 배우고 단련 받기를 원하면, 그분의 사업을 하는 데 적합하도록 훈련시키신다. (Ed 91.2)
그러나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에게는 그분의 지상 사업이 아주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직접적으로 책망하지 않으셨다. (Ed 91.3) 책망의 참된 목적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자기의 과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시정하려는 의사를 가질 때라야 비로소 달성되는 것이다. 이 목적이 달성되었을 때에는, 용서와 능력의 근원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본인에게 자존심을 갖게 하고, 용기와 희망을 북돋울 것이다. (Ed 291.6)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 중 실수한 자들에게 경고와 책망이 주어지는 것은 그들의 생애가 명목적인 다른 교회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생애보다 더욱 비난받을 만하기 때문에서도 아니고 ... 그들이 큰 빛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율법이 그들의 마음속에 기록되어 있다는 그들의 신앙고백에 의하여 하나님의 특별히 택한 백성으로서의 위치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CCh 91.3)
주님께서는 그분의 율법을 지키노라고 공언하는 백성들을 책망하시고 꾸짖으신다. 그분은 그들이 모든 죄와 악에서 분리되어 그분을 경외하는 중에 완전히 거룩해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그들의 죄를 지적하시고 그들의 불의를 공개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이 세련되고, 성화되고, 고상해져서 마침내 그분의 보좌에 이르기까지 향상되게 하시고자 그들을 책망하시고, 꾸짖으시고, 바로잡으신다.(CCh 91.7)
진리에서 뒤로 물러간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증언들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들의 노선에 대한 이유로 삼는다. 여기에 질문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정죄하시는 우상을 버릴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그릇된 방종의 길을 계속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바로 그것들을 책망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빛을 거절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그들이 자신을 부인하고, 그들의 죄를 책망하는 증언들을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으면 증언들이 그들의 죄를 책망한다는 이유로 그것들을 거절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CCh 95.1)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책망 받는 자들은 겸손한 도구를 대항하여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을 파멸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시지, 실수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다.” 책망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의 본성에 달가운 일이 아니며, 하나님의 영으로 깨우침을 받지 않은 사람의 마음으로써 책망의 필요와 그것이 가져다주기로 계획된 축복을 깨닫기가 불가능하다. 사람이 유혹에 넘어져 죄에 빠지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도덕적 지각도 왜곡된다. 양심의 경고는 무시되고 그 음성은 분명히 덜 들린다.
그는 옳고 그릇된 것을 구별하는 힘을 차츰 잃어버리고, 마침내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바르게 깨닫지 못한다. 그는 신앙의 정신은 결핍되어 있으면서 신앙의 형식은 지키고, 그 교리를 열렬히 고수할 것이다. 그의 상태는 참된 증인이 묘사한 그대로이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7). 하나님의 영이 책망의 기별을 통하여, 이것이 그의 상태라고 주장할 때, 그는 그 기별이 참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그 경고를 거절해야 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CCh 96.2)
하나님께서 충분한 증거를 주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누구나 증언들의 성격에 대하여 납득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한 다음에는 비록 그들의 행동에서 죄악적인 것을 깨닫지 못할지라도 책망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다. 만일 그들이 그들의 상태를 완전히 깨달았다면 무엇 때문에 책망이 필요하겠는가? 그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그들 앞에 제시해 주셔서 그들이 너무 늦기 전에 회개하고 개혁하게 하신다. 경고를 무시하는 자들은 눈먼 상태가 되어 자기기만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유의하고, 필요한 은혜를 받기 위하여 그들에게서 죄를 분리시키는 일을 열렬히 하는 자들은 그들의 마음의 문이 열려져, 사랑하는 구주께서 들어오셔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자들은 그분께서 말씀하실 때, 그분의 음성을 깨닫는 자들이다. 영적인 사람들은 영적인 것들을 분별한다. 그런 사람들은 주님께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해 주실 때 감사하게 생각할 것이다. (CCh 96.3)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 12:8). 우리 주님께서는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계 3:19)한다고 말씀하셨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히 12:11)는다. 비록 징계가 고통스럽기는 해도,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히 12:10)기 위하여 아버지의 부드러운 사랑으로 정해진 것이다. — 교회증언 5권, 680-682. (CCh 97.2)
온 하늘은 상처를 받은 자와 과오를 범한 자와의 사이에 있는 면접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과오를 범한 자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제시하는 책망을 받아들이고, 그의 잘못을 시인하여 하나님과 그의 형제의 용서를 구할 때, 하늘의 햇빛이 그의 마음을 충만하게 한다. 쟁론(爭論:다투어 논함)은 종말을 고하고 우정과 신뢰가 회복된다. 사랑의 기름[성령]이 잘못으로 말미암아 생긴 불목(不睦:사이가 나쁨)을 제거한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마음과 마음을 동여매시고, 하늘에서는 연합이 이루어진 것을 인하여 음악이 연주된다. (CCh 256.6)
하나님은 모든 죄를 똑같은 크기로 여기지 않으신다. 유한한 인간의 평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하나님의 평가에는 범죄의 등급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는 그들의 행동에 나타난 이런 저런 잘못이 아무리 사소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어떤 죄도 작게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작은 것으로 여기고 처리하는 죄도 하나님께서 큰 범죄로 간주하시는 바로 그런 죄가 될 수도 있다.
주정뱅이는 멸시를 받고 그의 죄 때문에 하늘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말을 듣지만, 그와 반면에 교만과 이기심과 탐욕은 책망을 받지 않고 넘어간다. 그러나 이런 죄들이 특별히 하나님께서 불쾌히 여기시는 것들이다. 그분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약 4:6)신다. (CCh 259.5)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비치는 복음의 빛은 이기심을 책망하고, 관후(寬厚:두터운 너그러움)와 박애를 격려한다. 주라는 요구가 증가하는 것이 슬픈 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섭리로 그분의 백성들을 그 제한된 활동 범위에서 불러 내셔서 보다 큰 사업에 착수하라고 하신다. 도덕적인 흑암이 세상을 덮고 있는, 현 시기에 있어서 무제한의 수고가 요청된다.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속(世俗:세상흐름)과 탐심(貪心:과한욕심)의 함정에 빠질 위험 속에 있다. 저들은 저희의 재정(財政:경제)을 요구하는 소리가 증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의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자선심을 행사하라고 요구하는 대상들이 저들 앞에 놓여 져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고는 저들은 위대한 모본이 되신 분의 성품을 본뜰 수 없다. (CCh 272.2)
서로 봉사하려고 움직이는 제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려고 한동안 기다리셨다. 그 다음에 거룩한 교사이신 예수께서는 식탁에서 일어나셨다.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되는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다. 제자들은 놀라움으로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며,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조용히 기다렸다.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 하”(요 13:5)셨다. 이러한 동작은 제자들의 눈을 뜨게 하였다. 쓰라린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저희 마음에 가득 찼다. 그들은 무언의 책망을 이해하였으며, 다 같이 새로운 빛 가운데서 자신들을 바라보았다. (CCh 299.3)
사람은 이 비난들을 스스로 대항할 수 없다. 그는 죄로 더러워진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서 그의 죄를 고백한다. 그러나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회개와 믿음으로 그들의 영혼을 지켜 주도록 그분께 바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탄원하신다. 그분은 그들을 변호하시고, 갈바리의 강한 논증에 의하여 그들의 비난자를 물리치신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순종하심으로써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가 그분께 주어졌다.
그러므로 그분은 범죄 한 인류를 위하여 자비와 화해를 그분의 아버지께 주장하신다. 그분의 백성을 비난하는 자에게 그분은,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슥 3:2)라고 주장하신다. (CCh 351.2)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들 스스로를 악의 지배에 맡기지 않았다. 그들은 죄를 버리고, 겸손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찾았다. 그리고 거룩한 중보자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탄원하신다. 그들의 배은망덕 때문에 가장 크게 모욕을 받아오신 분, 그들의 죄와 그들의 회개까지도 아시는 분께서는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내가 이 영혼들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버렸다. 그들을 나의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신다. (CCh 353.2)
나는 많은 사람들의 유일한 희망이, 그들의 실수를 충분히 깨닫고 이해할 기회를 갖도록 버려져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형제들이 지혜롭지 못하게 동정함으로 그들이 멸망하게 된 것을 보았다. 그들이 현명하지 못한 형제들의 동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될 때, 그들은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이 발길을 다시 돌리고자 할 때는 반신반의의 일을 하게 된다. 그들은 그들의 육신적 생각에 맞도록 그 문제를 분석하고 책망자를 비난한다.
그리고 그 문제를 가리어 버린다. 근본을 살펴보고 치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동일한 실수를 다시 하게 된다. 그들이 자신의 잘못을 완전히 느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겸비하게 함으로, 그분께서 그들을 굳게 해 주시도록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짓된 동정자들은 그리스도와 봉사하는 천사들의 마음과 완전히 반대되게 활동하였다. (1T 213.1)
아버지와 어머니들이여, 자녀들에게 친절하게 말하라. 그대들이 얼마나 예민하며, 책망 받을 때 얼마나 참을 수 없는지 기억하라. 그대의 자녀들도 그대와 같다는 것을 생각하고, 또한 그 사실을 알라. 그대들이 질 수 없는 것은 자녀들에게도 지우지 말라. 그대들이 비난과 책망을 참을 수 없다면, 그대들보다 훨씬 더 연약하고 훨씬 더 견딜 수 없는 자녀들 역시 참을 수 없다. 그대들의 명랑하고 쾌활한 말로써 언제나 가정을 햇빛과 같이 되게 하라.
그대가 맺는 자제와 신중과 수고의 열매는 백배로 결실할 것이다. 부모들은 흠잡는 일과 사소한 잘못에 대한 가혹한 비난으로 자녀들의 행복에 어두운 구름을 드리울 권리가 없다. 실제적인 잘못과 죄는 사실 그대로의 죄악상을 드러내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확고하고, 단호한 조치가 강구되어야 한다. 자녀들은 그들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절망적인 상태로 버려져서는 안 되며, 향상하여 부모들의 신임과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용기를 갖게 되어야 한다. (1T 401.1)
전술(前述:앞에 진술)한 것은, 남자들이 입은 것과 유사한 의복의 스타일을 따르고자 하는 자들에 대한 책망으로 내게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여자의 의복의 공통적 스타일을 보게 되었으며, 그것들을 교정하기 위하여 교회증언 10호에 있는 다음의 권면을 하게 되었다.(1T 458.1) “하나님께서는 남녀 간의 의복을 분명히 구별되도록 계획하시고, 그것에 관하여 분명한 지시를 해야 할 만큼 그 문제가 중요함을 보셨다.
남녀가 한가지로 동일한 의복을 입으면 혼란이 생기고, 범죄가 크게 증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사도 ‘바울’이 살아나서, 경건하다고 공언하는 여자들이 이런 스타일의 의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본다면, 그는 책망을 할 것이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딤전 2:9,10).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도의 교훈을 완전히 무시하고 금과 진주와 값진 것으로 단장한다.”(1T 460.1)
나는 건강개혁사업이 아직도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음을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크게 감동을 받고 그들의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무관심한 상태가 되어 개혁에 있어서 거의 첫 계단도 밟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는 불신의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며, 이 개혁이 강한 식욕을 제지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뒤로 물러간다. 그들은 주님 앞에서 다른 신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취미와 식욕이 그들의 신이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 있고, 타락한 식욕에 탐닉되어 건강을 희생시키고 있는 자들이 책망을 받고, 죄를 지적당하고, 그들의 우상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확신하기를 원치 않는다. 비록 하나님의 음성이 건강을 훼손시키는 방종을 버리도록 직접 말해 준다 할지라도,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해로운 것들에 여전히 집착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우상과 결합된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미구에 그분의 천사들에게, 그들을 내버려 두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1T 486.1)
영감 받은 사도는“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한다. 그런 다음에 그는,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라고 덧붙여 경고한다. 세상에 대한 사랑이 젊은이들의 마음에 두드러져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들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결정적으로 사랑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의 마음속에 거할 여지가 없다. 그들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로부터 그들의 쾌락을 발견하기 때문에 아버지와 그분의 영의 은혜를 알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젊은이들의 생애를 특징짓고 있는 경솔과 유행, 경박하고 헛된 이야기와 웃음 등으로 하나님은 모욕을 당하신다. 바울은 젊은이들에게 근신하도록 권면한다.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권면하여 근신하게 하되,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딛 2:6-8).(1T 499.1)
“자르고 베어 버리다” 이 표현은 잘못하거나 잘못했다고 생각되는 자들을 책망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말을 나타내기 위하여 흔히 사용된다. 이것은, 형제들을 책망할 의무가 없으면서도, 조급하고 용서성 없는 태도로 이 일을 감당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꼭 알맞은 말이다.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잘못을 책망함에 있어서 해야 할 특별한 의무가 있는 자들에게도 부당하게 적용되었다. 그런 사람들은 사업의 책임을 지고 있으므로, 귀중한 영혼들을 사랑으로 성실하게 다루어야 할 사명을 느끼게 된다. (1T 612.3)
나는 그대가 흑암에 싸여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예수께로부터 온 빛으로도 해소되지 않았다. 그대는 그대의 위험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고, 냉담한 무관심과 무감각과 무사태평 속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이렇게 끔찍한 상태의 원인에 대하여 문의하였는데, 과거 수년 전의 일로 그대가 진리를 받은 이후로 그것으로 인해 성화되는 경험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 지적되었다. 그대는 식욕을 만족시키고 정욕을 채우느라고 그대의 영성을 파괴하고 말았다.
나는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두신 은사를 통하여 빛을 주신 것을 보았는데, 그 빛은 교훈하고, 권면하며, 지도하고, 책망하며 경고하는 것이었다. 그대가 믿는다고 하는 이 증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데, 그대는 그것들을 실천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빛을 무시하는 것은 그것을 거절하는 것이다. 빛을 거절함으로 사람은 흑암과 불신의 사슬에 매인 포로가 된다. (2T 93.1)
주께서는 주어진 증언들을 통해 그대들을 경고하고 책망하며 권고하셔서 그대들의 생각에 그분의 진리의 말씀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려고 하신다. 기록된 증언들은 새로운 빛을 주고자 함이 아니라 이미 계시된 영감의 진리를 마음에 생생하게 부각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의무, 동료 인간에 대한 의무가 하나님의 말씀 중에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그대들 중에는 주어진 빛에 순종하는 자가 거의 없다. 부가적인 진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증언들을 통하여 이미 계시된 위대한 진리들을 단순하게 하셨으며 그분의 택한 방법을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우고 그것들을 마음에 부각시켜서 모든 사람이 핑계 댈 수 없게 하신다. (2T 605.2)
나는 계속 말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 책들과 소책자들로 싸여있듯이 하나님께서는 그대들 주위를 책망과 권고와 경고와 격려로 둘러 싸셨다. 그대들은 여기서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며, 간절히 더 많은 빛을 구하고 있다. 나는 그대들이 이미 주어진 빛을 따라 살지 않으면 그대들의 길에는 증언을 통해 단 한줄기의 빛도 더 첨가되지 않을 것을 말하라는 권세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
주께서 그대들의 주위를 빛으로 둘러쌌다. 그러나 그대들이 그 빛을 감사히 받지 않았다. 그대들이 그것을 짓밟았다. 어떤 이들은 그 빛을 멸시하고, 다른 이들은 소홀히 여기고, 혹은 무관심하게 따랐다. 소수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기뻐하셨던 그 빛을 따르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2T 606.1)
증언을 통하여 특별한 경고를 받은 어떤 이들은 몇 주 안에 받은바 책망을 잊어버렸다. 어떤 이들에게는 같은 증언이 반복해서 주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들을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중요한 것으로 생각지 않았다. 그것들은 그들에게 한가한 이야기로 들렸다. 그들이 그 주어진 빛을 따랐다면 그들은 힘들고 심하다고 생각하는 손해와 시련을 피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만을 비난해야 한다. 그들은 지기에 괴로운 멍에를 스스로 목에 매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묶어 주신 멍에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이 그들을 위하여 베풀어졌다. 그러나 그들의 이기적이며, 악하고, 불신하는 영혼들은 그분의 선하심과 자비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시련에 놀라고 난관에 봉착하므로 결국 사단의 덫에 걸리게 될 때까지 그들의 지혜를 좇아 달음질한다. 그대들이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과거에 주신 빛을 모아들일 때에 그분께서는 빛을 더 주실 것이다. (2T 606.2)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은 두려운 책망이며,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3T 252.1) 그들이 전혀 잘못되어 있는데도 스스로 옳다고 확신하는 것보다 더 큰 기만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에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참된 증인의 기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비참한 기만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그 기만을 알지 못함을 보여 준다.
그들은 그들의 형편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한탄할 만한 상태임을 알지 못한다. 기별의 대상자들이 스스로 높은 영적수준에 처해 있다고 자부할 때, 참된 증인의 기별은 그들이 영적으로 눈멀고 가난하고 곤고한 상태에 있다는 무서운 책망으로 그들의 안전을 깨뜨린다. 그렇게 통렬하고 가혹한 증언이 잘못될 수가 없는 것은, 그 기별을 전하는 자가 참된 증인이므로 틀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3T 252.4)